대를 잇는다는 것
매방산님이 어린 시절 형수님 이불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10살까지였다고 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형님이 대를 이어가야 하는데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다니
홀로 남은 그 부인은 어쩌란 말이냐?
손을 보지도 못하고 전몰했으니 대는 어찌 이어간단 말이냐?
그래서 형수님이 작은아들 손인 매방산 님을
자기아들처럼 키웠다는 건데,
그러다가 형수님이 재혼해 나갔다니
키운 어미와 헤어지게 된 수양아들은 어쩌란 말이냐?
키우고 자란 그 모정은 또 어쩌란 말이냐?
이런 비극 속에 세월은 또 흘러
형수님과 수양아들은 서로 떨어진 채
그리움의 세월을 보냈다는 건데
남의 이야기지만 나는 한참이나 눈물이 나더라.
내가 중학시절에 아녀자들이 우물가에서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나의 어머니가 처음 여자가 아니라는 거였다.
그렇다면 재혼인 셈인데
첫 부인은 어찌 되었을까?
가출했을까? 사망했을까?
자식을 못 낳아 소박맞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와는 아무런 핏줄의 인연이야 없지만
그저 막연히 어느 하늘 아래 잘 사시길 바라곤 했는데
이게 무슨 심사였던지 모르겠다.
그동안 대를 이어가는 과정에 숱한 비극들이 있었다.
그게 사실로 기록되고
문학으로 탄생되고
노래로 환생하고
참 얼씨구요 절씨구다.
서(庶)는 서자를 말할 때 서요
얼(蘖)은 서자 얼인데
조선조 신분차별시대의 서러운 그 이름
서자, 서얼, 얼
이건 모두 양반이 상민과 첩지를 해서 낳은 자식이요
아버지 호적에도 올리지 못하는 피눈물을 안고 살았으니
홍길동이 그랬던 거다.
한때는 잦은 전쟁으로 사내들이 불려 나가
자꾸자꾸 전사한 고로
고향에 남아있는 아녀자들이 결혼할 사내가 없는지라
양반이 아니어도 좋다
서자도 좋다, 서얼도 좋다. 얼도 좋다.
심지어 당시 천대받던 스님도 좋다, 졸병도 좋다.
그런 씨라도 받자고 하는 타령이
바로 얼씨구(蘖氏求) 요 절씨구(卍氏求) 요
지하자(至下者) 좋다는 건데
여자는 "얼씨구절씨구 지하자 좋다"를 선창하면
사내들은 "들어간다"로 화답했으니
그래서 그 완결구가
"얼씨구절씨구 좋다, 들어간다"가 됐다는 건데
그저 각설이이긴 하다.
나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선산을 아우에게 물려줬다.
나는 딸만 둘이지만 아우는 남매를 두었기 때문이다.
삶의 방 선남선녀들이시여!
대를 잇는다고 억지는 부리지 마시라.
첫댓글 대가
끊어졌다가
태여난 늦둥이 아들
정말
귀한 대접 받았습니다
누나들 두명
벗어놓은 제옷을
타넘어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큰누나는 동생
업어 키우기위해
학교도 그만두고 ᆢ
에고
그런 자식이
효도는 커녕 불효만
하고 돌아가신뒤
가슴아파 합니다
얼씨구 절씨구에
그런 깊은 뜻이 ᆢ
배우고 갑니다
형수님을 뵈었어야 하는데요.
그게 인륜인데요.
@석촌 나중에
후일담 한번
올리겠습니다
@매방산 훈훈한 이야기면 올리세요.
아니면 가슴아파서요.
얼씨구 절씨구 들어간다에
그런 뜻이 있는줄 처음 알았습니다
각설이는 많은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통합 선별 정제과정을 거치니
누구라도 정설을 주장하긴 어렵죠.
나둥~^^ 어디가서 써먹어야 겠다요 ㅋㅋ
저(막내)는 큰형수 님과 25살 차이가 나서
제 어머니 젖이 부족해서
큰형수님 젖을 자주 빨고 자랐따고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지 36년 정도 되죠.
그랬군요.
전엔 못먹어서 젖도 안 나오고
그래서 젖 동냥도 많았으니까요.
저도 매방산 님 글 읽고 한참 동안
눈물 흘렸습니다.
대를 잇는다는 것, 지금 세상에서는
안 통하지요.
저도 맏며느로서 딸만 둘 낳고
엄청 스트레스 받았습니다.
둘째 딸 낳았을 때는 아들 낳고 개선장군
처럼 서있는 시동생 내외앞에서
어머님이 어찌나 역정을 내시던지요.
이제는 성차별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아들을 낳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석촌 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랬군요.
아들 딸 점지하는건 하늘이 하는 일인데
그걸 어찌하라구요?
이제라도 그런일이 없어야겠지요.
옛적에는 대를 이어야만 했었지요
석촌님은 대를 있지 못하고
남매를 둔 아우님의 아들이 대를 이었군요
즉 조카가 장손이 되겠습니다 ?
저의 경우도 첫째 큰 형님은 딸만 둘 두었으니
둘째 형님의 아들 즉 조카가 장손이 되었습니다
그랬다네요.
전 딸도 아들도 맞춤하게 놔 줬어도 소박을 맞았어요 첩지에겐 딸만 둘 두었던데 그 딸들마저 지 애비 죽었을 때 곁에 없었다고
제 글이 운선 님 아픈 기억을 끌어냈나보네요.
이왕이면 좋은 기억을 끌어내야 하는데~
글감이 보이면 아무 생각없이 부연해 보는데
선택지에 조금 작위를 첨가해야겠네요.
굿나잇 ~~~
@석촌 에이~ 상관 없어요 상처 자리 옛날에 다 메꾸어 졌으니 이런 속내 스스럼없이 댓글에 달지요 쾌념치 마십시요 흐~
@운선 ㅎㅎ
잘 읽었습니다~~~
아들도 딸도.... 고루 있으면 좋겠지요~~~~
남녀 성비가 같아야 하니까요..
에휴!
저는 아들만 둘 낳았는데.
또 임신 됐는데 아들 낳을까봐
지웠어요.ㅠ
아들 낳을 자신은 있어도
딸 낳을 자신은 없었어요.
저는 지금보다 아주 옛날에
태워났어야...ㅋ
내가 딸만 둘이라니 아들 둘이라고 자랑...ㅎ
나도 작은집엔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렇다고 그걸 밝힐 수도 없고...ㅎ
오늘 또 배웠습니다. 한글이 딸리는 저는 글마다 배우는 내용들이 많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네에, 고맙습니다..
저희는 차남인데도 아들을 못 낳은 것을 시부모님이 매우 서운해하셨어요.
딸 셋을 낳은 뒤에도 제 나이 마흔 될 때까지 설날마다,
올해엔 너희도 아들을 낳으라는 덕담(?)을 들었으니까요. ^^
부족한 며느리였던 제게, 아들 손주 하나 밖엔 바라는 것이 없으셨는데
그 바램도 못 이루셨지요.
장남이셔도 아들이 있는 아우님께 선산을 넘기신 석촌님, 그릇이 크십니다.
저도
위에 딸
두명낳고
죽자고 노력해서
막내 아들 낳았습니다
제아내는
세상 다얻은듯
했고요
그런 세월이 있었지요
당시엔 시대 정서가 그랬지요.
지금이야 다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