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목대피소 취사장에서 잠이 들었다. 망봉 쯤을 올랐을 때 쯤 뒤돌아 보았다. 등 뒤의 지는 해는 지나치게 붉었다.
스물아홉 먹은 집 나온 지 사흘째 라는 한 친구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허기를 때우고 한잔 술을 마셨다. 서른 먹은 또 한 친구는 삼십일 째 라고 했다.
둘 다 지리산은 처음이라고 했다. 둘 다 많은 고민들을 지고 여기까지 왔다.
함께 웃고 떠들다 함께 잠이 들었다.
그 시각, 장터목대피소 취사장엔 셋 뿐이었다.
밤새 세찬 바람만 잠들지 못하고 불어댔다. 코고는 소리와 바람소리는 그렇게 앙상블을 이루었다.
새벽, 그 바람은 여전했다. 꼬박 밤을 새운 바람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바람을, 흔적을 담고 싶었지만 담을 수 가 없었다. 그 바람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날 두드리고 휑하니 멀어져 갈 뿐이었다.
그 바람에 흔들리는 건 오로지 나였다. 내가 나를 담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제석봉에서 해돋이를 보고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왔다.
아침을 맛나게 먹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1915m 천왕봉에 피어있는 진달래.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 그 어느 땅, 그 어느 곳에서도 붉게 피어납니다.
그래서 신동엽 시인은 이 땅을 '진달래산천' 이라 불렀나봅니다.
한 사람이 하루종일 천왕봉 위에 서 있습니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지자체와 기존 '자연공원법'을 개정해 결과적으로 더욱 손쉽게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하려는 환경부의 반환경적인 입법예고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지난 4일 입법 예고한 '자연공원법 및 하위법령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2km인 국립공원 로프웨이 설치 허용기준이
올 9월부터 5km로 늘어납니다. 또 공원지구에 설치하는 건축물의 높이도 현행 9m에서 케이블카 정류장을 설치할 수 있는
높이인 15m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는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건설을 요구해 왔던 자치단체, 개발론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현재 케이블카를 추진중인 지자체는 전국 16개입니다. 케이블카 설치가 논의되는 곳은 제주도 한라산, 울산 울주군 신불산,
경남 밀양시 천황산, 강원도 설악산, 대구 팔공산, 전남 목포시 유달산, 전남 영암군 월출산, 전남 구례군 지리산,
경남 산청군 지리산, 전북 남원시 지리산, 경기 과천시 관악산 등 11개 지역입니다.
@중산리골
현재 지리산 지역은 산청군, 구례군, 남원시 지자체에서 각각 추진중입니다.
산청군은 중산리에서 제석봉까지 5km의 케이블카를 추진중입니다. 구례군 또한 산동에서 노고단까지 4.5km,
남원시는 고기리에서 정령치까지 3.46km를 준비중이라는 군요.
@바로 앞은 제석봉
천왕봉에 서면,
제석봉, 장터목, 일출봉, 연하봉, 삼신봉, 촛대봉, 세석,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벽소령, 형제봉, 연하천, 명선봉, 토끼봉, 화개재, 삼도봉, 반야봉, 노루목, 임걸령, 노고단에 이르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14-15일 천왕봉에서 1박 2일을 보내며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케이블카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노고단과 천왕봉에서의 일인시위를 접하고 처음
이 문제를 알게되었다고 하는군요. 물론 알고 나서는 대부분 케이블카 건설에 대해 반대의견을 나타냈습니다.
2008년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선 70%의 국민이 국립공원에 케이블카가 건설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천왕봉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선 거의 95% 이상이었습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개인의 문제(체력, 건강)를 이유로 케이블카 건설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같은 날 다른 시간에 천왕봉을 오른 정읍고등학교 학생들과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학생들은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20여명의 정읍고교생들은 대부분 케이블카 건설에 반대하는 서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15여명 부산대 학생들은 아무도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여대생은 옆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케이블카 건설을 왜 반대하지? 있으면 편리하고 더 좋지 않나?"
다들 천왕봉에서 처음 이 문제를 접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은 달랐습니다.
장차 교사가 될 부산대생들은 이미 충분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겟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비판적 지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암기된 지식만이 가득합니다.
상대적으로 고등학생들이 덜 경쟁적이고 더 이타적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케이블카 문제'의 본질입니다.
지자체라는 정치권력과 개발과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 그 둘은 사실은 일란성 쌍둥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연생태를 위하여, 장애인과 노약자의 권리와 복지를 위하여, 지역경제를 위하여" 라고 이쁘게 떠들어댑니다.
자본의 이익추구와 개인의 편리추구는 그렇게 만납니다. 전자는 기만에 바탕하고 후자는 이기심에 바탕합니다.
지리산이라는 이 대자연에 깃든 무수한 생명들은 그저 그들의 이익과 편리를 위한 수단이자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 시대, 욕망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전 연하천산장지기 김병관입니다.
그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그가 지리산지킴이로써 제 역활을 못했다는 자기 반성에서 비롯될 겁니다.
또한 여지껏 지리산을 팔아 제 밥벌이를 해온 자로서의 인간적 양심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산장지기하면서 수많은 등산객들에게 스스로 내뱉은 자연보호,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이러저러한 말들에 책임을 져야지요.
지리산 반달곰 복원을 꿈꾸는 사람들, 제석봉 생태계복원을 꿈꾸는 사람들, 지리산 덕으로 여지껏 밥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
케이블카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렇다면 김병관 만큼은 해야하지 않은지.
누군지, 왜인지는 몰라도 아름답지 않나요? 이 모습.
천왕봉, 중봉, 제석봉 사이의 마루금 진달래는 아직 온전히 피어나진 않았습니다. 지금은 또 모르겠죠.
한라산 진달래가 백두산 진달래에게
/문병란
따로따로 피고진 지
몇 해인지, 1948년 4월 3일
그 해 그 봄에도 한라산 진달래는
유난히 고옵게 온 몸으로 피었는데,
피 먹고 자란 한라산 조선 진달래
떨어져 고읍게 떨어졌는데,
아기 진달래
어른 진달래
골짜기 마다 산비탈마다
억수로 피어나
한 많은 진달래 만세 외쳐댔는데,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들
총구멍 난 애된 가슴마다
그날의 진달래 온 누릴 덮는구나
울어라 새여
피어라 꽃이여
한라에서 백두까지
무리져 피어나는 4월의 잔달래 진달래
언제나 만나느냐고
언제나 함께 어우러지느냐고
총구멍 난 가슴에
앳되게 서로 손짓해 부른다
어서오라고
어서오라고
서로 뜨거운 가슴 불타오른다.
“지리산에 가는 것은 산을 보러 가기 위함도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에 드는 사람들, 신갈나무와 조릿대,
죽어서도 서있는 하얀 고사목, 정감 있는 산길, 얼굴을 닮은 바위와 벼랑, 봉우리에 걸린 구름, 부서지는 물거품과 물소리,
그 숱한 풍경들이 지리산이고 그들이 나를 푹 젖게 한다.”
/강영환 시인
“땀이 배어있는 산, 그리고 삶과 죽음이 영원한 산,
아직도 다하지 못한 말들이 남아 있기에 깊어진 짝사랑은 불러주지 않아도 나는 지리산을 간다.”
/ 강영환 시집 <그리운 치밭목>(1)
5월 24일 11시 지리산 제석봉에서 만납시다.
5월 24일 '케이블카 없는 자연공원을 위한‘국민행동의 날’ http://www.npcn.or.kr/zero/view.php?id=news&no=394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서명'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0364
첫댓글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블로그에는 인사만 안드렸지 자주 찾아갑니다. 아무튼 좋은 작품 만드시길 바랍니다.
하하.. 얘 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 어쩌다가....
케이블카 없이도 지금껏 아무런 문제 없었는데 ~왜 기계의 힘을 빌릴려고하는지 두발로 숨가프게 올랐을 때만이 산도 살아 있는게 아닐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제석봉 전망대에서 만납시다.
예전에,,저도 참 많이 갔었는데,,,이젠 무릎을 다쳐서~가끔,,이렇게 들어와 사진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단지 전,,기회가 되면 걸어서 못가니까,,한번쯤은 기계의 힘을 빌어서 라도,, 그곳에 서서,,,바람의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습니다,,그 것 뿐입니다,,
이참에 환경부를 없애버리고 자연보호부를 만들었음 좋겠어요
그러게요..그냥 좀 놔두지....어떻게하면 막을수있을까요?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찬성하는 쪽 사람들의 의견을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케이불카보다...............헬기로 올라....밧줄타고 내려오게 하는것은 어쩔까요.....ㅋㅋㅋㅋ
자연은 자연 그대로 지켜주어야 자연도 사람을 지켜줍니다. 왜 우리나라는 자연을 파괴하기만 하는 것일까요. 사랑하는 지리산이 더 심각한 파괴의 길로 가는 건가요... 가슴이 아프네요...
연하천 전 산장지기님 수고 많으십니다......화이팅
힘 내시고 지리산 지킵시다,,개발보다 더 값진것 그냥 그대로 내비두는것,,,,
고생하십니다 내일 많은분들이 반대시위에 동참하기위해 오르실텐데 힘이되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산행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어 전국의산이 점점 황폐해가고 있어 안타까운데 케이블카라니 절대반대합니다
지속적인 반대서명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생태계복원한다고 뱀사골산장 없애고, 지리산의 산역사이신 분을 내쫓더니 케이블카 설치가 생태계 복원이오? 백지화 하고 성삼재휴게소와 도로도 다 철거해야 합니다.!~ 민족의 영산에 감히~ 반달곰이 웃겠소이다!~ 두 발로 오를 자신이 없는 분들은 그 곳에 발을 내딛고 설 자격이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절대 반대합니다.
케이블카반대운동 지지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산에 오르겠다는건 욕심 아닐까요 욕심으로 자연에 해를 입히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