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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이제 버릇이 좀 되었는지 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선잠을 깨게 되었다.버릇이 좀 되었는지, 아니면 마치 준비를 하였다 알람 시계를 끄고 다시 해가 뜨기까지 30분을 더 자려는 심산 인지, 이제 나는 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선잠을 깬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손가락 마디의 통증이 그 시간만 되면 자명종처럼 더 아파오기 때문에 깨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제 버릇이 좀 바뀌었다고 스스로 칭찬을 좀 해 주고 싶다.
갑작스레 밝아질 전등에 눈이 부실까 실눈을 뜨고 전등 스위치를 켠다. 다시 눈을 꼭 감지만 얇은 눈꺼풀을 통 과하여 엷은 노란 빛으로 파고드는 전등빛에 서서히 정신에도 전원이 켜진다.
더듬어 찾은 TV리모컨으로 TV를 켜 방 안을 한번 더 밝히고 소리를 키워 눌려지듯 가라앉은 공기를 들썩거려 피워 오르게 한다.
엉거주춤 일어나 아픈 손가락을 둔하게 움직여 냉수 한잔을 마신다.
몸 안 진액이 돌기 시작하여 뇌 속으로 신선하고 청량한 기운을 올려보낸다.
기상이다.
이젠 밥을 먹고 짐을 챙겨 나가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끝나가는 여행, 몸은 아주 익숙하게 아침 준비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애마의 잔등에 몸을 얹는다.
7시 45분 호남정맥 마지막 일정을 시작한다.
호남정맥은 이제 18개 정도의 포인트만 남겨두고 있다. 여행 막바지, 속력을 좀 내서 다니다보니 하루에 25개 포인트 정도를 섭렵하고 있으니 아마도 오늘 오후 3시 즈음이면 호남정맥을 완주하고 남해바닷길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찌뿌드한 하늘의 아침, 어제 저녁에 보았던 벌교 꼬막거리 조형물 앞에서 기분 좋게 스타트 포즈를 발사한다. 이른 아침 버스 안 출근길, 등교길의 승객들이 그런 나를 별난 놈처럼 바라보지만 내가 누군지도 모를 것이며, 남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니 내가 즐거우면 된다.
자! 달려보자!
석거리재에 도착하니 더할리 카이저님이 말한 더할리 호남지부에서 걸어놓은 호남정맥을 알리는 빨간 띠가 눈에 띈다. 이 띠를 호남정맥 70번째 포인트에서 처음 발견하다니 반갑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또 혼자 비실비실 웃으면서 빈계재로 향한다.
얼굴에서 웃음이 채 사라지지 않았는데 빈계재에서도 또 더할리의 빨간 띠를 만났다. 한번 눈에 들어오니 계속 들어온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는 모양이다. 카이저님이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나는 여느 산악회의 띠를 보는 것처럼 의미없이 지나쳤을 것이다.
보고 있어도 보지 않는 현상. 즐겨 들었던 영어 강좌에서 들은 See, Watch, Look의 뉘앙스 차이가 생각난다.
내 인생의 여러 장면들도 이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소중한 가족들과의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보고 있었으나 보지 않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반성하게 된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보아야겠다. 보려 노력해야겠다. 보고 느끼고 공감하고 기억하고 함께 해야겠다. 사랑한다 말해야겠다.
낙안읍성은 예전에 동문 선후배들과 함께 와서 구석구석 둘러보고 막걸리에 전을 먹었던 곳이다. 어느 민속촌, 민속마을보다 짜임새있게 잘 보존된 곳이라 생각한다. 혼자 이런 복장으로 둘러보기엔 낙안읍성의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아 다음 포인트로 출발한다.
낙안읍성을 돌아 오공재로 오르는 길은 한 눈에 낙안읍성과 주변 평야와 개천이 보이는 길이다. 동 트는 낙안
읍성을 언덕에서 항공뷰로 보는 것은 낙안읍성 안을 돌아다니며 보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다.
법보사찰인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싶었으나 이런 복장으로 경내로 들어가면 나의 요란한 행색에 놀랄 관광객과 혹여 마주칠 스님들의 마음의 평화를 해할까 싶어 절 입구에서 사진으로만 남기고 돌아 나온다.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은 특이하게도 양쪽으로 감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낙동정맥, 백두대간, 호남정맥을 다 돌아다녔어도 매실 밭이나 사과 밭, 포도 밭이 도로 양편에 있는 경우는 있었으나 가로수로 과실수를 심어놓은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가까이서 보니 먹지 못하는 감인 듯 맛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낙엽진 산야와 오늘처럼 흐린 하늘에 주황빛으로 도드라지듯 선명하여 마침내 입체감있게 보이기까지 하는 감나무의 열린 감들이 참으로 예쁘고 탐스럽다.
백두대간과 2개의 정맥을 지나며 여러군데서 수력 발전과 담수 공급을 위해 지어진 댐과 그로 인한 수몰지역, 망향비를 보았다. 고향이 도시이다보니 계속된 개발로 내가 커 온 곳 또한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되었기에 어쩌면 나 또한 망향의 그리움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그 때의 모습이 그립지는 않은 것을 보니 나는 완전하게는 공감할 수 없는 망향비가 아니겠는가.
노동마을 회관으로 가는 길에서 묘하게 재미있는 S자 도로를 만났다. 꼬여들며 끝에서 오르막인 길 모양새가 재미있다.
백두대간 종주때 산 길 끝에 있는 암자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완벽한 고요함을 느끼면서, 또 여행중 인생사의 여러 잡스런 자극에서 멀어지면서, 기도를 하고 수도에 정진하는 성직자들은 속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깊은 산중이나 폐쇄된 수도원에 드는 것이 맞겠다 생각을 했었다.
천자암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관광객들에게는 최악의 위치에 자리해 있다.
천자암의 초입까지 가는 길도 차 1대 지나갈 만한 산간 마을의 옆구리를 끼며 가는 길인데, 본격적인 천자암 길은 아예 차량은 오르기 어려운 급경사의 길이다.
차량진입금지 팻말을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의 급경사에 기가 질려 급히 더할리 카페의 호남정맥 종주 게시글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입구의 주차장에 바이크를 주차하고 40도 경사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고 적혀있다.
자켓과 조끼, 핼멧을 벗기 귀찮아 삼각대와 핸드폰을 손에 쥐고 라이딩 복장 그대로 언덕길을 오른다.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체감하는 것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섣불리 본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직감하며 후회한다.
몇 발자국 오르지도 않았는데 라이딩 부츠의 무게가 온전히 전해지는 다리는 자꾸만 부츠의 앞축을 땅에 긁으며 힘겹게 움직이고 있고, 가죽자켓과 많은 장식이 달린 조끼는 내가 가진 온갓 번뇌인 것처럼 어깨를 짓누르며 둔한 몸을 더 무겁게 누르고 있다.
추워서 덧입은 내복과 열선 자켓, 팬츠는 그새 땀구멍이 뿜어낸 뜨겁고 축축한 땀을 비닐하우스처럼 가두어 젖어가며 피부에 달라붙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고, 핼멧은 열오른 머리를 압력밥솥 마냥 푹푹 찌고 있다.
그나마 공기가 티하나 없이 맑아 다행이다. 폐와 횡격막은 있는 힘껏 공기를 큰 숨으로 들이마시고 소리내어 내뱉고 있다. 이건 헉헉이 아니라 흐아~~ 후우~~ 소리를 내는 오래된 증기기관차 같다.
반이나 올랐을까, 주차장이 하나 더 보인다. 육성으로 아이 씨~소리가 나온다. 그러고보니 카페에서 바이크를 주차하라고 한 곳이 여기 더 높은 주차장이다. 여기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눈을 들어 언덕을 보니 굽어있는 길은 끝이 안보인다.
발걸음 옮기는 박자를 조절한다. 힘주어 빨리 걷기 보다 조금 천천히 걷되 힘을 아끼고 호흡에 맞춰 걸음을 옮긴다. 어짜피 올라야 할 길이라 마음먹어서인지 걸음 박자를 조절해서인지 무거운 다리가 한결 나아진 기분이다.
오기같은게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올라야 하는 길인가보다 생각했다. 아니다 어쩌면 생각조차 멈추었던 것 같다. 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지막 급경사 코너를 돌아 고개의 끝에 닿으며 내게 신기한 일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분명 헉헉거리며 깊은 숨을 내뱉았는데 고개 끝에 닿아 평지를 만나자 가빴던 숨이 한순간 평안해졌다. 이 가파른 고개를 올라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잠잠해진 숨소리와 그저 오르는데 집중한 나머지 더 맑아진 정신이 놀라웠다.
천자암이 보인다.
쌍향수는 천연기념물 지정을 받아 마땅할 모양새다. 이 깊은 산중에 이렇게 오래되고 멋드러지게 생겨난 나무 두 그루가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높은 산중의 천자암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내 두 다리로 올라와서인지 더 좋아보인다.
땀을 흘려 그런지 생각조차 다 비워져 그런지 가뿐해진 몸이 오히려 활기가 돋는듯 하다.
천자암을 내려오며 깊은 산중에서 속세를 벗어나 기도에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고 이 산을 내려갔을 여러 스님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발 한발 힘든 고난과 고통과 업보를 업고 올랐던 길을 맑아진 머리와 묘하게 활기가 돋은 몸으로 가뿐하게 내려가면서 내가 무얼 그리 힘들게 지고 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마음에 무얼 그리 버리지 못하고 체할 정도로 꾸역꾸역 삼켜가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려오며 보는 오르막 길에서 방금 전 거친 숨과 무거운 몸을 끌고 올라오던 내 모습이 잔상처럼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준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증오를 내려놓기로 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상념이야 나도 인간이기에 어쩔수 없겠으나 따라오는 증오와 저주 섞인 혼잣말은 이제 하지 않으려 한다. 미친듯 헉헉거리며 끝나지 않을 오르막을 오를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내 마음과 정신은 이제 정상에 닿았고,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과 몸으로 나의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이 펼쳐지고 있는 산 아래로 내려가야겠다.
올랐던 길에 비해 내려오는 길이 짧았던 것은 내 가벼워진 몸과 마음 때문이겠지.
송광사와 주암호, 접치를 지난다. 천자암을 오르내리며 시간이 좀 흘렀지만 이제 8개 포인트를 남겨둔 시점에서 아직 오후 1시도 되지 않았다.
노고치를 오르는 길에 도로 유실로 인해 차량 통행이 제한되었다는 낡은 플랭카드를 몇 번 보았으나 카카오 네비에서 도로 유실 정보가 뜨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복구가 다 되었겠다, 혹여 중간에 도로가 막혀있으면 돌아나오면 된다 생각하고 노고치로 향한다.
다행히 노고치 정상까지 유실된 도로는 없었고, 흘러내린 토사를 정리한 흔적들이 있어 도로 복구가 다 되었다 생각했다.
노고치 정상을 막 벗어난 시점, 카카오 네비가 큰 도로가 아닌 좁은 산길쪽으로 길을 안내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포장된 산길로 진입한다.
조금 가다 보니 산 중턱 매실 농장 끝에서 포장도로가 끝이 나고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이미 여러번 임도를 지나와 봤기에, 그리고, 평탄한 임도였기에 별 걱정 없이 임도로 들어선다.
코너를 돌아 앞으로 다시 포장도로가 보여 안심하는 마음과 함께 시선이 포장도로로 향하는 찰나, 앞바퀴가 움푹 파인 돌 틈을 밟고 중심을 잃고 오른쪽 수로로 깊게 파 놓은 쪽으로 기운다. 발을 디뎌 무게를 받칠 땅이 없는 허공에 헛발을 짚으며 몸은 바이크에서 이탈하였고 고랑쪽으로 떨어지듯 착지하여 몸이 다치진 않았으나 바이크는 오른쪽 경사지 쪽으로 많이 누우며 엔진의 고동을 멈추었다.
백두대간 종주때와 똑같은 상황으로 똑같이 전도된 상황인데, 그때와 다른 것은 이번에는 바이크의 엔진가드가 고랑쪽 경사진 곳으로 내려와버려 바이크가 우측으로 많이 누웠다는 것이다. 바이크의 엔진가드는 엔진을 보호하는 기능도 있지만 이렇듯 바이크 전도때 적당한 각도로 눕게 하여 다시 일으키기 용이하게 하는 목적도 있는데 엔진가드마저 고랑쪽으로 좀 내려와 바이크를 일으키기에 너무 수평으로 누워버렸다.
한번 겪어서 그런가, 별로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친 곳이 없으니 일단 안심이고, 바이크도 일단 상한 곳은 없어보인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여행가방을 분리하고 바이크를 세우려 힘을 써 본다.
낭패다.
바이크가 전도된 오른쪽으로 고랑이 있어 다리와 허리에 힘을 받칠 지면이 너무 아래에 있다. 경사진 흙길에 발을 디디고 힘을 줘 봤으나 미끌어진다. 반 이상 서 있는 자세로 팔 힘으로 바이크를 밀어보지만 팔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침식사만 간단히 하고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에 천자암을 다녀오며 기운을 써버린 상태라 몇번의 시도에 힘이 방전되어버린다.
한번 시시바와 새들백 가드를 잡고 올려 80%를 세웠으나 마지막 힘도 부족하고 발이 경사지에 미끌어지며 실패하는 바람에 바이크 앞바퀴와 엔진가드는 고랑쪽으로 더 내려와버린 상황이다. 더 넘어가지 않게 돌맹이로 엔진가드와 경사면 사이를 받쳐 고정한다.
방금 노고치를 지나며 고개 정상 즈음에 매실, 감 농장의 야외 가판대가 있던 것을 기억하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왔던 길을 걸어 나간다.
그런데 이 사단을 내고서도 신기하게도 걱정이 안된다.
누군가 지나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수 있을거란 대책없는 긍정심은 정체가 무얼까 싶다.
큰 도로로 나왔다. 하지만 야외가판대는 닫혀있고, 지나는 차는 한대도 없다.
Plan A는 안될것 같으니 Plan B로 진행한다. 사륜차 자동차보험에 타이어펑크로 출동 신고를 한다. 보험사에서 오면 사정을 설명하고 바이크만 세워달라고 하면 된다. 수고비를 약간 챙겨드려 내 성의를 표할 생각이다.
보험을 접수하였고, 시내에서 출발하니 30분 정도 걸린다는 연락이 왔다.
바로 그 순간. 필연처럼 그 좁은 산길로 들어서는 트럭을 만났고,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운다.
무슨 일인가 놀라 창을 내린 운전자는 연세가 좀 있으신 어르신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흔쾌히 차에 타라고 하신다.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매실밭을 일구시는 어르신이라 하신다.
성인 2명이 힘을 쓰니 꼼짝도 안하던 바이크는 단 한번에 몸을 일으킨다. 허리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사이 어르신은 별일 아니라는 듯 차에 올라 후진으로 왔던 길을 돌아가시는 바람에 무얼 여쭈어볼 틈도 없었다.
바이크 상태를 살피고 시동을 걸어보니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번에는 핸들바에 힘을 가하지 않아 핸들바도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풀었던 짐을 체결하고 옷을 갖춰입고 나도 왔던 길을 돌아 다시 큰 도로로 나간다. 임도가 시작되는 곳에 나를 태워주셨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큰 도로에서 길을 다시 검색해 보니 원래 경로는 임도쪽이 아니라 큰 길로 계속 가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네비게이션 오류인지 다시 경로설정을 해 보아도 임도로 가라고 나온다. 간혹 카카오네비에서 자동차전용도로제외 옵션으로 검색할때 이렇게 이상한 도로로 빠졌다가 원래 도로로 합류하게 하는 오류가 있는 것을 경험한 터라 또 그런 오류인가보다 생각하고 큰 길로 가 보기로 한다.
조금 내려온 길 도로 유실로 인해 길이 통제되었고, 공사 차량이 통행하도록 바리케이트의 일부가 열려있다. 이렇게 통제된 도로이다보니 우회도로인 임도로 네비게이션이 안내를 했던 것이었다.
거의 보수가 다 된 도로를 내려와 산 아래 마을의 마트로 가서 건강음료 1박스를 사서 왔던 길을 되돌아 오른다. 다시 임도로 들어서서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아직 트럭이 그대로 서 있고, 나를 도와주었던 어르신은 전정가위로 웃자란 매실나무 가지를 정리하고 계셨다.
어르신께 목소리를 높여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작지만 받으시라고 사 온 건강음료를 트럭에 놓고 가겠다 하니 크게 웃으시며 별로 도운 것도 없는데라 하시며 겸연쩍어 하신다.
와이프가 하는 가게에서 매년 매실청을 담는데 매실을 택배로 받을 수 있다고 하셔서 어르신의 전화번호와 함자를 핸드폰에 저장한다. 내년 6월 매실이 날 때 그때 넘어진 오토바이 운전자라고 전화 드릴테니 기억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허허 웃으시는 너털웃음을 들으며 길을 돌아 나온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릴때부터 고마운 사람은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고마움은 반듯이 보답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고 그런 가르침이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 사이에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에 작지만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해 드리고 도움응 받은 주제에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임도에서 바이크 전로로 인해 1시간 반을 소비하는 바람에 호남정맥을 마무리 하면 오늘이 끝나겠다 싶다.
마음이 조금 급해졌지만, 뭐 또 좀 늦으면 어떠랴 내일 가면 되지 생각하며 찬찬히 좀 더 안전에 신경쓰며 도로를 달린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모자랄 듯 하여 옵션 경유지인 최참판댁과 한석사는 오늘 일정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나중에 숙소에 와서 알고보니 내일 일정인 남해바닷길에 이 두 곳이 들어가 있어 이 또한 다행이다 생각한다.
연수관 같은 건물 앞에 쌩뚱맞게 새마을호 열차 2량이 있던 송치재, 청소골 계곡의 정혜사 앞길, 황전터널을 빠른 속도로 지난다.
본격적으로 섬진강이 시작되는 길이 보인다. 넓고 잔잔하며 양 옆으로 보드라운 모래톱을 끼고 있는 섬진강의 자태가 단아하다.
잎이 다 떨어졌지만 봄여름의 풍경이 상상되는 섬진강 매화길을 지난다. 지난 여름 수해로 많은 피해를 입은 섬진강이지만 차분하게 상처를 극복하고 있는 섬진강의 모습이 아름답다.
토끼재를 지나며 노을 비추는 섬진강과 산자락을 만난다. 이렇게 소중한 깨달음과 작은 이벤트로 스펙터클하게 진행된 호남정맥 종주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간다.
마음은 평안했고, 조금씩 차오르는 벅찬 감격이 가슴에서 느껴진다.
비촌수어재를 지나는 시각이 4시 50분. 이제 마지막 포인트인 망덕포구가 눈 앞이다.
낙동정맥 5일, 백두대간 7일, 호남정맥 4일...
벅차오르는 감격과 더불어 오히려 조금 차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서로 섞이며 망덕포구로 향한다.
17일차 저녁 절묘한 타이밍인 오후 5시에 나는 마치 미리 해질녘 데이트 약속이나 한 것 처럼 호남정맥의 마지막 포인트 망덕포구에 도착했다.
중간에 노고치재에서 바이크 전도로 1:30분 정도를 소요하는 바람에 어쩌면 딱 이 시간에 딱 맞게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모든 현상에는 어쩌면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그를 바라보는 내 시각에 따라 불행이거나 짜증일수도 있고 필연처럼 다가온 행운이거나 기쁨일수도 있다.
오늘 하루가 지기 전 마지막 포인트, 호남 정맥을 정리하는 마무리 점프를 할수 있게, 그것도 이렇게 뜻깊고 멋진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우연같은 기회와 시간을 갖게 되어 뿌듯하고 행복하며 너무나 보람차다.
호남정맥의 마지막 날. 호남정맥은 내게 또 평생의 기억에 남을 스펙터클한 결말을 경험케 한다. 나 보기에 아름다우나 쉬운 여자는 아니야라 말하는 색동 저고리 곱게 차려입은 아릿다운, 도도한 여인과 같은 호남정맥을 이렇게 뿌듯하고 벅찬 감격으로 마무리 한다.
이 길에서 배운 삶의 지혜와 소중한 경험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에 담으리라.
그리고 곱게 봄 옷을 차려 입은 때 다시 한번 아릿다운 그녀를 만나러 오리라.
꼭 다시 만나러 오리라 아릿다운 그대여.
오늘의 여정 : 호남정맥 70 석거리재~ 88. 망덕포구
첫댓글 대단하시네요~^^
최곱니다
응원과 쌍엄지척 감사드립니다. 꼭 해보고 싶었기에 시간이 날때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미친듯이 싸돌아다녔습니다. 머리가 많이 비워졌고 욕심도 많이 비우고 왔습니다. 제 평생의 추억이 될 것이고, 앞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 여행이었다 생각합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할리 입문 후 많은 투어 및 개척 투어 따라 다녀 봣지만 그중에 호남정맥 완죤 갑중의갑 아닌가 생각 듬니다ㅎ 할리라이프 응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로드킹님의 많은 칭찬과 응원으로 끝까지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백두대간, 낙동정맥, 호남정맥 모두 각각의 개성이 있는 코스였다 생각합니다. 여행 마치고 하루 쉬면서 사진을 열어보는데 그때의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조차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여러 개척자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감히 제가 시도해 볼수 있었던 길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화이팅입니다~~
칭찬 감사드립니다. 호남정맥 끝내고 남해바닷길도 2일에 걸쳐 완주했는데, 집에 돌아와 가족들 챙기고, 직장에 복귀할 준비하느라 마지막 2일 여정은 정리할 틈이 모자라네요. 역시, 여행할 때와 다시 현실에서 내게 맡겨진 소임을 해야 하는 때는 시간적 여유가 다르네요. 그래도 조만간 남해바닷길 2일도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응원 감사드립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ㆍ저도 백두대간만 완주하고 정맥은 일정 조율중인데 내년으로 미루었습니다 멋진 투어기 잘읽었습니다 잘 정리해서 더할리 카페에 완주 신청 해주셔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남해여행 기대합니다
독도님 계속 응원해 주신 점 너무 감사드립니다. 내년에 호남정맥, 낙동정맥 투어 완주 하시면서 투어기 올려주시면 저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정말 뜻깊은 여행이었고, 잊지 못할 풍경이었고, 꼭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저만의 작은 앨범으로 만들어 힘들거나 지칠때 뒤적거리며 그때의 감동과 제 다짐을 떠올려 보려 합니다. 남해바닷길도 완주했는데, 현실에 복귀해야 하다보니 이것 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있어 벌써 시간이 모자라네요. 천천히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고~!
최고~!
최고~!
최고입니다.지심님 안라 하시고 지금처럼 행복하세요!!!
최고의 칭찬 감사드립니다. 여러 형제님들의 응원 덕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했고, 평생 추억할 것이며, 길에서 배운 것들 마음에 잘 담고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행이 준 이 소중한 선물을 잘 간직하겠습니다. 응원과 칭찬 감사드립니다. 샬롬~
소중한 경험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잘 써주셔서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셨다니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누구나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는데 저는 운이 좋게도 이렇게 1달을 돌아다닐 기회를 얻었고, 형제님들과 이렇게 나누면서 많은 응원 받을 수 있어서 더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달리는 모양입니다. 캬아~
오늘도 종주후기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재미있는 설명과 글도 이해가 쉽게 정리를 하여서 보는이들이 감동을주네요 ,,,
무사히 완주하시고 행복한날 쭈욱 이어 가시길 바랍니다 ~~~
응암동 늑대님 많은 관심과 여러번의 응원 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읽으시면서 미소를 지으셨다니 제가 받은 감동이 조금이라도 전해진 것 같아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난 1달이 참 빠르게 지나갔구나, 신기루처럼 아름다웠구나, 멋진 꿈과 같은 시간이었구나 싶습니다. 꿈에서 깬 듯 하지만 제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 시간이고 경험이었기에 행복합니다. 내일부터 다시 행복한 일상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응암동늑대님의 많은 응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좋은글과 투어후기 풍경까지 생생하게 접했습니다~^^
늘~ 안투ㆍ즐투하십시요
바람이 불고 구름이 흐르는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고요하면서도 제자리에 있지 않는 자연의 모습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 속에서 퉁퉁거리며 달려나가며 마음이 치유되었습니다. 바람과 구름의 부드러운 손길로 상처를 보듬어 주었습니다. 칭찬 감사드립니다. 예뻤던 구름들이 자꾸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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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올리신글 보고 대단하시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장거리 공도와 임도를 다니시는 동안 바이크는 별무리가 없으신지요? 아무쪼록 무사완주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2003년식 100주년 로드킹인데, 여행 마치고 보니 3034마일을 달렸더라구요. 4883킬로미터 정도 되네요. 머신 트러블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과속방지턱을 세게 넘으면서 연료게이지 부레가 빠졌는지 연료 잔량 표시가 안되는 트러블이 있었고, 여행 마지막 날 과속방지턱에서 한번 날랐다 떨어지면서 새들백과 머플러를 잡아주는 부속이 하나 부러진 것이 전부입니다. 이 부속은 원래 충격에 잘 부러지는지 미국에 헤비로더 부속이 애프터마켓 제품으로 있네요. 오늘 이베이에 heavy load saddle bag support bracket을 주문했습니다. 무사히 완주했고, 남해 바닷길 2일 여정은 차차 정리해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깨비 지심 아~ 종주를 마무리하셌군요~ 축하드립니다~엄지척이십니다~^^
@미사킹 네. 종주 마무리 잘 하고 좀 쉬면서 마지막 여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엄지척 감사드립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글도 잘쓰시고..그저 부럽습니다...건강히 완주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은 제 마음이 가는대로 쓴 것이라 다시 읽어보니 무슨 사춘기 소년의 일기장 같기도 해서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글을 올리게 되네요. 남해바닷길 2일 포함하여 18일간의 전국일주를 토요일 밤 무사히 마쳤습니다. 일요일은 집에서 좀 쉬고, 내일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일터에 나와 분주히 일상으로 돌아갈 차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유롭게 쓰던 시간을 벗어나 이렇게 시간, 분 단위로 무언가를 해야 하니 좀 낯설기도 합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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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가득한 여행 안라 하셔서 축하드립니다
열정에 박수를 드립니다
엄지척~~~
축하와 응원 감사드립니다. 막상 종주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즐겁고 행복했던 꿈을 꾼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분 좋은 꿈. 잊지 않고 싶은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