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양방향 소통이다.
어느 대감이 남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이 하루에 몇 명인지 문제를 냈다. 그 자리에 모인사람들이 저마다의 답을 내 놓았지만 대감은 고개를 저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하루에 남대문을 드나드는 사람은 단 두 사람입니다.”그러자 대감이 크게 웃으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사람은 대답했다. “나에게 이(利)를 주는 사람과 해(害)를 주는 사람, 두 사람입니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을 분류하면 크게 나에게 이를 주는 사람과 해를 주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누가 이를 주고 해를 주는지는 얼굴만 보아서는 판단할 수 없고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가 있다. 좋은 만남, 반갑지 않은 만남. 그리고 잘못된 만남으로.
복사기 업체인 제록스에 스티브 잡스라는 청년이 찾아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자는 제의를 했다. 하지만 제록스는 그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잡스는 애플컴퓨터로 세상에 나오기까지 17개 회사에서 퇴짜를 맞았다.
1986년 IBM은 헐값에 지분을 인수하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의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좋은 기회를 차 버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그것은 만남의 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인연은 서로가 원하는 바가 있어야 이루어진다.
인연도 인연이지만 만남에는 배려가 필요하다. 만남 그 자체로 만족하지 않고 만남을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려면 마음으로 전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만남과 배려, 그리고 기다림은 사람과의 인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제록스와 IBM처럼 만남은 있지만 관심이 없거나 배려가 없다면 인연은 거기까지다. 그리고 기다림은 다시 만남으로 이어지는데, 셋 중 가장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배려다. 자기시간과 자기희생, 그리고 자기반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피츠버그의 가구회사 점원인 클리멘트 스톤은 가게 앞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할머니 한 분을 발견하고는 상점 안으로 모셔와 차를 대접하며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시라고 했다. 다른 종업원들이 눈치를 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비가 그치자 할머니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가셨다. 얼마 후 그는 강철 왕 카네기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편지에는 “당신의 친절에 감사하며 별장에 필요한 가구를 주문합니다.” 차를 대접받은 할머니는 바로 카네기의 어머니였다. 그의 가게에서 카네기가 가구를 주문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주문이 많아졌고 나중에 그는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작은 친절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매출로 이어진, 한마디로 친절이 영업의 시작이요, 성공의 첫걸음인 셈이다. 배려의 인연이다. 작은 만남에 작은 배려, 그것이 성공의 시작이 된 것이다. 사실 그런 성공의 기회가 올 줄 알았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利)가 될지 해(害)가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저 마음가는대로 행동할 뿐이며, 그것이 좋은 인연이었다면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와 해로 구분되는 세상에서 사람의 인연만큼 알 수 없는 것도 없다. 인연을 맺어 보려고 그렇게 애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둘도 인연을 내세우지만 시간이 지나면 남보다 더한 원수처럼 갈라서는 사람이 있다. 살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연은 어찌 보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마치 천생연분이라는 착각. 그러나 단지 이(利)를 목적으로 만남의 인연을 맺으면 이(利)가 다하면 그 인연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 된다.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천하의 저울을 말하면서 그 중에는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시이리(是而利) 저울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구상 점원의 성공이야기처럼 세상이 그렇게 순리대로 될 것이라고 믿지만 결과가 항상 순리대로 흐르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는 게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