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욥 트뤼니히트는 말기의 자유행성동맹의 정치인이자 국가원수입니다. 외전에서 엘 파실 전투가 벌어졌던 우주력 788년에 국방위원회의 관료가 되었고 이 때부터 차후에 내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란 알렉스 카젤느의 말이 나올 정도로 유망주였습니다. 그리고 본편 시점에서는 국방위원장이 되어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후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에서 본인은 반대표를 던진게 높이 평가되어 마침내 동맹의 국가원수, 최고평의회 의장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는 권력을 잡는 정치능력은 탁월했지만 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책임의식은 크게 부족했습니다. 할 줄 아는건 위기가 닥치면 빤스런 하는 것과 양 웬리를 포함해 자기에게 위협이 될만한 이들을 쪼는거 뿐이고 월터 아일랜즈 같은 부패인사나 네그로폰테 같은 무능인사를 써주는걸 보면 그의 식견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물론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아일랜즈는 나중에 의도치 않게 활약하지만...) 결국 그는 온갖 삽질 끝에 페잔 점령 작전으로 동맹이 위기에 빠지자 도망쳐버렸다가 제국군이 하이네센으로 돌아오자 아직도 자기가 국가원수임을 내세워 양 웬리와 동맹군이 버밀리온 성역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데도 냉큼 항복하며 덧붙여 양 웬리를 모욕하는 안면수심의 행보를 보입니다.
이후 그는 동맹 시민들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제국으로 망명했다가 라인하르트에게 청해 노이에란트 총독부 고등참사관이란 이름으로 다시 구 동맹령으로 복귀합니다. 이후에 별 일을 안 일으키고 조용히 살다가 노이에란트 전역 후 죽기 직전의 로이엔탈에게 라인하르트를 모욕하는 실언을 내뱉다가 로이엔탈의 블래스터에 맞고 사망합니다.
작중 행보를 보면 벌볼것 없는 정치인으로 승진과 권력을 잡는 것만 유능하지 실무에서는 완전 깡통 그 자체로 잠깐만 활약했지만 그의 따까리로 나왔던 월터 아일랜즈가 더 유능해보일 지경입니다. 물론 그 자신은 동맹의 국가원수보다 더 큰 꿈을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었으니 그가 동맹의 국가원수에 만족하고 그 지위를 위해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면 또 다를 수 있겠지만 네그로폰테 같은 무능력한 사람들을 써먹는걸 보면 그의 정치적 수완과는 달리 사람 쓰는 능력은 영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동맹 시민들의 인기를 얻었나 싶은데 그 단서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욥 트뤼니히트는 외모가 잘생기고 연기력이 뛰어나 여성 투표자들의 표를 긁어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비전도 능력도 실적도 공약도 아니라 그냥 외모와 연기력이 마음에 들어서 찍어준 사람들이 많았다는 의미인데 이는 건전한 민주의식에 의한 투표는 아닙니다. 정치투표에서 해당 후보의 외모와 매력만 본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투표하는 인기투표와 별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런데 현대 대한민국에도 이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들어 신조어 '팬덤 정치', 그 이전의 콘크리트 지지층 등의 용어에서 볼 수 있듯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의 강성 지지층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무슨 일을 해도 무조건 지지합니다. 정말 역대급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은 그것을 그만두지 않으며 그 정당. 후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욕합니다.
그래도 정치인들 중에서도 이들만 신경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중도층보다는 강성 지지층들에게만 신경쓰며 그들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을 되풀이하는데 지지층들 중에서도 강성 지지층들에게만 맞춤 전략은 결국은 강성 지지층들 이외의 지지자들과의 생각은 동떨어지기에 떨어져나가기 일쑤일테고 그럼 외연 확장을 못하니 강성 지지층들의 표 외에는 얻을 표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선거에서의 패배를 의미하며 이미 2016년부터 외연 확장을 외면하여 선거에서 패배한 경우가 여럿 존재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는 올바른 민주주의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인은 국민 모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고 국민들도 자신들을 위한 정치인을 찍어야 하는데 국민 대다수가 아닌 자기 지지자들만 신경쓰고 지지자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자신들에게 듣기좋은 소리만 한다고 지지하는 것은 건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다수의 비지지층을 외면하고 소수의 지지층을 생각하는 정치와 다수의 피지배민을 외면하고 소수의 지배층만 생각하는 정치가 본질적으로는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최대다수의 국민들을 생각하는 사상이지 소수의 지지자들만 생각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욥 트뤼니히트 같은 정치인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자유행성동맹이 맞았던 운명을 피해갈 수 있을까요? 욥 트뤼니히트의 겉면모와 매력에 빠져 그에게 표를 줘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간 동맹 말기의 시민들, 루돌프의 카리스마에 매료되어 그를 찍어줘 최악의 폭정에 신음하게 된 연방 말기의 시민들을 은영전을 봤다면 알 것이고 건전한 의식을 가졌다면 거기서 교훈을 얻어 그 같은 참사가 되풀이(독일에서 이미 일어난 적이 있으므로)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정당과 정치인이라고 무조건 지지하지 말고 내가 지지하는 정당고 후보는 물론 그렇지 않은 정당과 후보들의 공약이라도 한번 확인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 첫번째일 것입니다.
첫댓글 전제군주국에서 나라가 망하는건 군주와 신료들의 책임이지만 민주국가에서 나라가 망하는건 시민들의 책임이다. - A.뷰코크
항상 멋진 글에 감동하고 갑니다.. 혹시 따로 블로그 하시는게 있나요?
블로그가 있긴 한데 활동은 거의 안 해요. 카페활동만 주로 하죠.
중우정치 민주주의 최대의 문제점이지요. 특히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가 넘쳐나고 진짜와 가짜 정보가 혼재하며 진실을 흐리게 만드는 요즘 시대에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정치인이 혐오조장을 하는게 가장 짜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