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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대사의 긴 이야기 2
공성대사의 말이 이처럼 전입가경으로 치닫자 홍소미와 마대위를 제외한 특사단 일행들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고,
천외패황궁 측 사람들도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듯 연신 딴전을 피우며 헛기침을 해댔다.
공성대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 길로 무림맹으로 달려간 빈승은 사도 맹주의 소매를 붙잡고 떼를 썼지요.
‘맹주. 무림맹 현판을 닦는 일이라도 좋으니 뭐든 시켜주시오.’하고 말이오.
그랬더니 사도 맹주는 펄쩍 뛰며 ‘대사님께 어찌 그런 일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맹주를 한번 해 보시지요.’
하고 말하는 게 아니겠소. 밥이나 짓고, 빨래나 하라면 했지 어찌 그렇게 중대한 일을 내가 할 수 있겠소?
나는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즉시 무림맹을 나와 버렸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도맹주가 빈승보다 한 수 위였던 모양이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골치 아픈 땡초를 어찌 무림맹에서 떼어놓을 수가 있었겠소?
그 후, 빈승은 1년 동안 뭔가를 해 보겠답시고 천하를 떠돌아 다녔소이다.
하지만 결국 돌아간 곳이 그 냄새나는 땡초들이 우글거리는 수옥(獸獄:축생들의 감옥)이외다.”
소림사가 ‘주지육림의 냄새나는 소굴’에서 ‘냄새나는 땡초들이 우글거리는 수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빈승은 다시 선방에 들어앉았지만 도저히 참선을 할 수가 없었소이다.
천하창생들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고 싶었지만 1년간 천하를 돌아다닌 끝에 얻은 경험으로는 그것도 쉽게 되는 게 아니더이다.
허허, 웃기지 않소? 지나가는 행인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는 도적놈들을 계도하고 사람들 몇을 살려준 일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도적들은 불상한 양민들을 도우려는 의적들이었고, 내가 구해준 사람들은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이었으니 말이오.
빈승은 그 길로 손을 탁탁 털고 다시 산으로 돌아왔소이다. 눈이 있으면 무엇 하리오,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것을.
힘이 있으면 무엇 하리오, 힘쓸 상대를 제대로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아미타불, 선재로다…….”
공성대사의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사람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에서 깊은 선기를 느꼈던 것이다.
“빈승은 그동안 헛살아 왔다는 걸 깨닫게 되었소이다. 그래서 선방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무림맹에서 사람이 찾아왔더이다. 천하의 억조창생을 위한 일은 아니지만 억울한 일로 형제자매를 잃고
비탄에 빠진 불쌍한 중생 한 사람을 구제해 보지 않겠느냐고 말이오.
그래서 빈승은 그에게 물었소이다. 도대체 그 불쌍한 중생이 누구이며, 또 어찌 그런 일을 당했는가 하고 말이오.”
공성대사의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구석에 앉아있던 마대위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공성대사를 바라보았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공성대사도 힐끗 자신을 바라보는 듯 했다.
공성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빈승이 그의 사연을 들은 즉, 어떤 무리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어떤 땅을 차지하기 위해 고아원을 불태우고,
어린 고아들 수십 명을 학살했다는 것이오. 그리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의 한을 풀어달라는 것이었소.
아미타불, 선재로다 선재야…….”
잠시 불호를 외며 말을 멈춘 공성대사를 향해 천외패황궁측 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분위기를 보면 슬슬 본격적인 용건이 나오는 순간인데, 느닷없이 누가 고아들을 죽이고 고아원을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도대체 그게 이번 특사단 방문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혈귀검 단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공성대사를 바라보았다.
잠시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공성대사의 입이 다시 열렸다.
“빈승은 무림인들이 치고 박고 싸워서 간과 뇌수를 땅에 쏟아내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왈가왈부할 마음이 없소이다.
누가 옳고 그른지 밝혀내는 일 자체도 어렵거니와, 무림인 자신들이 옭아맨 번뇌의 그물 속에서 싸움질이나 하다가
죽는 것 모두가 업보이니 말이외다. 고개만 돌리면 거기가 피안일진데…, 아미타불.
허나 무림인들이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일반 양민들을 학살한다면 이는 천고에 용서받지 못할 죄악인 것이오.
따라서 빈승은 여기에 매인 악연을 끊고, 용서와 화해를 주선하기 위해 오늘 이렇게 선방을 박차고 나온 것이외다. 아미타불.”
공성대사의 긴 이야기가 끝나자 천외패황궁 측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혈귀검 단혁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대사님께서 무림맹 특사의 자격으로 방문하신 목적이 바로 그 고아원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방금 대사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에, 고아원을 불태우고 고아를 학살한 무림인들이 바로 우리 천외패황궁이며,
귀맹의 특사단은 그 일을 따지기 위해 본궁을 방문했다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소이다. 빈승은 확실히 그런 목적을 위해 방문한 것이지요.”
혈귀검 단혁을 비롯한 천외패황궁 측 사람들은 일순 당혹감에 빠졌다.
그들은 무림맹 특사단의 방문목적이 궁의 중원진출에 대한 공식적인 항의라고 생각해 왔다.
따라서, 특사단이 할 수 있을 예상 가능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완벽히 준비함은 물론,
궁에 대한 정파의 선전포고시기를 최대한 늦추어 보도록 대화를 이끌어 나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특사단은 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자신들은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을 들고 나오는 게 아닌가.
대화의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혈귀검 단혁이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무림맹의 특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소림의 달마원의 고승이 있지도 않은 엉뚱한 일을 트집 잡아 본궁을
방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성대사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인데…, 도대체 언제 그러한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혹시 부궁주께서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천외패황궁의 제 이인자인 부궁주가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마무리 지었을 리가 없다.
치밀하기로 정평이 자자한 그가 어찌 살인멸구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명확한 일에 허점을 남겨 놓을 수 있겠는가.
‘당시의 정황에 대해 알아보아야겠구나.’
그는 특사단 일행들을 쭉 둘러보다가 마대위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그러자 마대위도 눈을 치켜뜨며 도전적인 태도로 마주 노려보았다. 적대감이 가득 실린 눈빛이다.
혈귀검 단혁은 가볍게 헛기침을 한차례 한 후 공성대사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본인으로서는 대사님께서 하신 말씀의 진위를 파악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비록 패도를 지향하는 본궁이기는 하나 어찌 무공도 모르는 아이들을 함부로 해치겠습니까.
아마도 무림맹과 대사님께서는 본궁에 원한을 가진 누군가의 간교한 술수에…….”
“개소리!”
갑자기 터져 나온 마대위의 일갈에 분위기가 급속히 차가워졌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로구나.”
혈귀검 단혁 곁에 앉아 있던 대주들과 팔비신검 막추의 입에서 험악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특사단 일행들도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당장 손이라도 쓸 기세였다.
“잠깐!”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혈귀검 단혁이 손짓으로 그들을 말렸다.
대주들과 막추는 당장이라도 마대위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지만 단혁의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입을 다물자 혈귀검 단혁이 마대위에게 말했다.
“방금 본좌에게 개소리라고 했나?”
“그렇다.”
“그렇다면 내가 개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겠지.
그렇지 못하면…, 본좌가 하늘에 맹세컨대 네놈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여주마.”
보통 사람이 들었다면 치를 떨고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을 무서운 살기가 실린 위협이었다.
그러나 마대위는 눈도 깜박하지 않고, 오히려 냉소를 치며 대답했다.
“흥! 내가 바로 그 고아원의 출신이며, 당시 흑건회라는 회의 회주였다.
고아들은 나의 아우, 동생들과 마찬가지였고. 네놈들이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에 바로 고아원이 있었단 말이다.”
마대위는 살기를 내뿜으며 천외패황궁 측 사람들을 쭉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흑건회, 그리고 마대위. 이 이름을 기억하는 새끼들이 있을 거야. 그 놈들을 데려와.”
“참고로…….”
마대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들려온 여인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홍소미에게 향했다.
홍소미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말을 이었다.
“개방에서는 이 일에 대한 조사를 이미 마쳤습니다. 당시 이곳 제령에 살았던 사람들도 이미 찾았구요.
그러니 증인이라면 줄을 세워서 데려 올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불에다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혈귀검 단혁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계집년 따위가…….’
위협적인 기세가 그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홍소미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내공을 끌어올려 그의 기세에 대항했다.
비잉, 쨍그랑!
가벼운 공기의 파동이 전해지는 듯 하더니 홍소미 앞에 있던 찻잔이 갑자기 깨지며 그녀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음…….”
이 모습을 본 마대위가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씨팔, 뭐야? 한번 해보자는 거야?”
천외패황궁 측 인물들도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기세였다.
방 안이 난장판이 되려는 순간 묵직한 불호가 방 안을 울렸다.
“아미타불!”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는 내부가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내공이 약한 세가의 청년들은 안색을 찌푸리며 고통을 참는 모습이었고, 혈귀검 단혁도 흠칫하는 표정으로 내공을 거두었다.
공성대사가 사자후신공을 섞어 불호를 외운 결과였다.
혈귀검 단혁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싸움이라도 일어났더라면, 그래서 무림맹의 특사들 중 하나라도 죽음을 당한다면,
그 즉시 무림맹과의 대화는 단절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천외패황궁이 무림맹에 먼저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령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소림의 백팔나한과 무당의 진무칠십이위가 물밀 듯이 밀려오게 될 것이고,
현재 제령에 있는 천외패황궁의 전력만으로는 이들을 막아낼 수 없다.
결국 천외패황궁의 중원진출은 강력한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혈귀검 단혁이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홍소미에게 말했다.
“험, 내가 잠시 흥분한 듯 하오. 미안하게 되었소.”
“아니에요.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홍소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자 혈귀검 단혁은 다소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짧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최소한 팔성 이상의 진력을 실어 홍소미를 압박했고,
따라서 제 아무리 개방의 후기지수라고 해도 작은 내상은 입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홍소미의 모습을 보니 내상은커녕 가벼운 충격조차
받지 않은 듯한 모습이 아닌가. 구파일방의 웬만한 수뇌급 고수라 해도 자신의 팔성 진력을 받아내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로서는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이를 전혀 내색치 않은 채, 주위를 환기하듯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음. 일단 특사단의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공성대사님을 통해 자세히 들었소.
그리고 개방에서 그 일에 대한 사전 조사까지 모두 마쳤다고 하니 간단히 무시할 일만은 아닌 듯 하오. 하지만!”
단혁은 잠시 말을 멈춘 후 특사단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귀맹의 말만 듣고 본궁이 공식적인 대응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말이 되지 않소이다.
따라서 본궁에서도 이 일을 자세히 조사하여 낱낱이 밝힌 후, 다시 여러분들을 만나 본궁의 입장을 말씀드리겠소이다.”
공성대사가 불호를 외며 말했다.
“아미타불. 그렇게 하시지요. 그럼 빈승 등은 천외패황궁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리겠소이다.”
“늦어도 이틀을 넘기지 않겠습니다. 그 동안 대사님과 특사단 여러분들은 이곳을
자신의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계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혈귀검 단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곁에 있던 대주들과 총관이 모두 일어나 그와 함께 방을 나갔다.
“여러분들은 나를 따라 오시오.”
방에 홀로 남아 있던 팔비신검 막추가 특사단 일행들을 이끌고 나갔다.
그는 긴 복도를 지나 장원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복도 곳곳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많은 고수들이 숨어있는 듯 했다.
잠시 후, 일행들은 방을 하나씩 배정받게 되었다.
팔비신검 막추는 특사단과 헤어지기 전에 다짐을 시키듯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함부로 이곳을 돌아다니지 말도록 하시오.
그리하면 저희는 여러분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소이다.”
그의 말에 마대위가 냉소를 쳤다.
“흥! 어디 한번 막아 보시지.”
도발적인 마대위의 대꾸에도 막추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한번 그렇게 해 보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공성대사에게 가볍게 포권을 한 후 등을 돌렸다.
특사단 일행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 홍소미가 마대위에게 전음을 날렸다.
[마 소협.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우리들에 대한 저들의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마 소협을 살인멸구 하는 거예요.]
홍소미의 전음에 마대위도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첫댓글 즐독입니다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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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잘 보고있습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즐감~!
즐독
ㅈㄷㄱ~~~~~~~~~`````````````````
감사^^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갑니다^^^
감사...
잘읽었습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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