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이백쉰일곱 번째
오래된 미래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 캐슬린 제이미 산문집 <표면으로 떠오르기>라는 책의 소개 기사를 읽다가 우리가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것들에 생각이 멈췄습니다. 알래스카주 퀴나하크 마을에는 에스키모족으로 알려진 유피크족이 살고 있답니다. 기후 위기로 그곳 툰드라가 훼손되면서 유럽인들이 이곳에 오기 전인 500년 전, 수렵채집으로 자급자족하며 아무 문제 없이 살았던 과거 유피크족의 흔적이 드러났답니다. 한때 강력했지만 멸망한 문명의 흔적, 오만한 현대문명에 자연이 전하는 경고라는 겁니다. 오래전 ‘한살림’에서 선물로 받은 <오래된 미래 : 라다크에서 배우다>라는 책에서도 그랬습니다. 황량한 황무지에 가까웠던 척박한 땅 라다크인들은 가족 수만큼, 경작할 수 있는 만큼의 땅만 소유하고 물 한 방울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도 자원으로 다시 사용하는 일상으로 자연으로부터 얻은 모든 것을 헛되게 소비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족 공동체가 바탕에 있으며 이러한 작은 여러 공동체가 서로 친밀하게 유대하고 배려하며 거의 완전하게 자급자족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자원은 빈약하지만 모든 것을 아껴 쓰고 재순환합니다.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여성평등주의 환경운동가였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인도군이 주둔하고 인도 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 지역으로 개방하면서부터 ‘개발’이 어떻게 라다크가 사회적, 생태학적, 경제적으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며 개발 이전의 라다크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오래된 미래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배려와 상생이 넘치던 공동체문화에서 우리 자신과 지구를 치유할 수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