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토리노, 델레 알피. 유벤투스(홈) vs AC밀란(원정)
델레 알피 구장은 여석 하나 없이 꽉 차 있었다. 유벤투스의 열정적인 서포터들은 이미 경기 시작 두시간 전부터 북을 울려대고 연기를 피우고 종이쪽지를 던지며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이에 맞서 밀란의 서포터들도 경기장 골대 뒤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응원하고 있었지만, 뭔가 유벤투스 쪽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런 분위기는 밀란의 벤치도 마찬가지였다.
“감독은....... 늦네요......”
카카가 몸을 풀다 벤치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필리포 인자기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발목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카카는 머쓱해져서 리프팅을 시작했다. 락커룸의 분위기는 작년과 너무 달랐다. 주장 말디니는 말이 없어졌다. 가장 나이가 많은 코스타쿠루타는 비록 부상이라곤 하지만, 연습장에 단 한번도 얼굴을 내 미는 경우가 없었다. 가투소는 늘 감독에 대한 불만으로 투덜거렸고 선수들도 감독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갔다. 코치진들도 괜시리 짜증이 늘었다. 카카는 이런 팀 분위기가 너무 걱정되었다.
“아!”
순간적으로 카카는 공을 너무 세게 차 버렸다. 공이 뒤편으로 붕 하고 날아갔다. 카카는 공을 잡으려고 뒤돌아섰다.
“어...... 뭐야...... 이거......”
유벤투스의 서포터들이 새로운 플랜카드를 꺼내 달고 있었다.
{약물중독자는 축구를 더럽히지 마라}
“우~~우~~ 우~~”
갑자기 유벤투스 서포터들이 일제히 야유하는 소리를 냈다. 카카는 뒤돌아 벤치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정규언 감독이 서 있었다. 정감독은 멍하니 플랜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울 코치는 유벤투스 서포터들 쪽을 바라보고 막 화를 내더니 본부석으로 쿵쾅쿵쾅 걸어가더니 플랜카드를 가리키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뭐야...... 도대체......”
카카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장을 이리저리 둘러보자 저 편에서 말디니도 그 플랜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삐익!
심판의 호각 소리와 함께 유벤투스의 공격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유벤투스는 초반부터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대니 머피가 공을 잡고 들어오자 가투소가 그 앞을 가로 막았다. 앞을 가로막은 가투소는 손끝으로 오른편을 가리켰다. 카푸에게 오른쪽에서 압박해 달라는 뜻이었다.
탁.
카푸가 달려오자 머피는 공을 살짝 띄워서 오버래핑하는 네드베드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젠장! 전술 훈련을 제대로 안했더니만 완전 엉망이야!”
가투소가 소리치며 공을 바라봤다.
네드베드가 안정적으로 공을 트래핑하고 드리블하기 시작했다. 스탐이 네드베드에게 붙었다. 하지만 너무 타이트하게 붙었다. 네드베드가 달려오는 스탐을 마르세유 턴으로 가볍게 제쳤다.
“제길!”
네스타가 왼편이 뚫리는걸 보고 네드베드쪽으로 뛰어갔다.
“안돼! 위치를 지켜!”
말디니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늦었다. 네드베드는 프리가 된 델 피에로에게 낮게 깔린 센터링을 올렸다.
말디니가 다급하게 델 피에로 쪽으로 달려들었다.
‘충분히 막을 수 있어!’
말디니는 델 피에로의 슈팅 코스를 완벽하게 막아내는 위치에 섰다.
순간, 델 피에로는 공을 잡지 않고 옆으로 흘렸다.
“아차!”
프리가 된 트레제게가 오른발로 공을 트래핑했다. 디다가 골대 앞에서 뛰어나왔다. 하지만 트레제게는 미처 디다가 자세를 잡기 전에 한 박자 빠르게 슛했다. 낮게 깔리는 슛.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트레제게는 유유해 골 세레머니를 하러 떠났다.
“와아아아아아!!!!!!!!!!!”
유벤투스 관중들의 환호성이 델레 알피 구장을 가득 메웠다. 전반전 7분만의 일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가투소가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걷어찼다.
“이게 뭐야! 씨발! 슛 하나 못하고! 2대 0이라고! 0!! 공격수들은 뭐하는 거야!”
“지금 이게 우리 탓이란 거냐!”
크레스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투소를 노려봤다.
“그럼! 니들이 공격을 제대로 못해서 이런거 아냐!”
“웃기지마! 네놈이 연결하나 제대로 못하니까 이런거잖아!”
“이 새끼가!”
가투소가 욱 하며 앞으로 한 발짝 내밀자 동료들이 그를 잡았다.
“참아! 누구 잘못도 아니잖아! 다들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거야.”
칼라드제가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가투소는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감독 때문이야! 경기가 끝나면 구단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어!”
가투소가 씩씩대며 말했다.
경기는 AC밀란의 치욕적인 3:1 패배로 막을 내렸다.
밀란은 경기 내내 상대에게 끌려다녔고, 후반전 루스 타임 코너킥 때 인자기가 헤딩골을 성공시킨게 유일한 득점이었다. 미드밀더들의 중거리슛은 오늘의 스코어만큼이나 답답했다. 총 9개의 슈팅중에 골대로 향한건 단 3개였다. 유벤투스가 8개의 슈팅 중 6개가 골대로 향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다음날 비행기로 밀라노에 돌아온 밀란 선수들은 연습장 멀티미디어실에서 오늘 경기를 비디오 분석했다. 그들 스스로가 봐도 꼴사나운 경기였다. 그들은 격렬한 논쟁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역시 그곳에 감독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디오 분석은 날이 저물어서야 끝났다. 말디니는 자신의 페라리가 주차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어.”
차 앞에는 정감독이 쭈구려 앉아있었다.
“...... 여.”
정감독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디니는 그런 그를 그저 바라봤다.
“내 카푸치노는 수리 중이라서......”
“......”
정감독이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말디니는 대꾸하지 않고 그런 정감독을 바라봤다.
---------------------------------5화에 계속.
첫댓글 음 재미있군요.. 계속 써주시길...
흐흠?약물중독자가 누구?;;
오옷~~,,, 1편부터 쭉 봤는데... 심오한 기운이...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