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TxUmg0bjaw?si=tOEgbnbeZYUvWCgC
2011년 빈 신년음악회
음악의 도시 빈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꿈과 그리움의 고장이다. 하이든과 슈베르트가 소년시절 합창단원으로 봉사했던 성 스테판 대성당의 아름다운 고딕식 건물 첨탑이 지금도 빈의 상징처럼 우뚝 솟아 있고 여러 차례 입은 파멸적인 전화에도 불구하고 옛날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궁전, 고색창연한 교회, 우아한 정원이 한껏 번영을 누렸던 여러 시대의 문화와 예술의 정수를 피력해 준다 또 모짜르트가 지휘했던 극장이며 베토벤이 거닐던 길. 브람스가 즐겨 찾던 커피 집이 그대로 남아서 음악애호가의 마음을 야릇한 향수로 들뜨게 만든다 이렇듯 아름다운 역사의 도시 빈과 끊을 수 없는 깊은 유대를 가진 음악이 요한 쉬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11(1825∼ 1899)를 중심으로 한 많은 작곡가의 「빈 왈츠Wiener Waltz」이다 끊임없이 유려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멜로디, 솟구치는 리듬의 소용돌이. 빈 왈츠야말로 꿈의 도시 빈의 살아 있는 혼이다.
전쟁의 폐허 위에 꽃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화창한 선율.
1866년 8월. 오스트리아는 이웃나라 프로이센과 전쟁을 일으켰다. 오래 전부터 독일 통일을 꾀해온 비스마르크의 계책에 말려들어 일어난 전쟁이었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장비도 사기도 프로이센 군의 적수가 못되었다.
사도바 전투에서 크게 패한 뒤. 적군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성밖까지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함락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마침 프랑스가 중재에 나선다. 결국 오스트리아 군은 항복하고 전쟁은 7주만에 끝이 났다. 전쟁에 진 타격은 사람들의 마음을 실망과 슬픔 속에 깊숙히 잠기게 했다. 빈의 거리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이병과 남편이나 자식을 잃은 여인들의 탄식으로 그 밝던 분위기를 깡그리 잃고 말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음악과 춤도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이때 처참한 패전의 정신적 폐허 빈에 어떻게 하면 즐겁고 쾌활한 노래를 다시 한번 살려낼 수 있을까 고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빈 남성 합창단의 지휘자 요한 헤르베크 」Johann Herbeck(1831∼1877)였다. 이 사람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발견하여 세상에 소개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헤르베크는 자기의 뜻을 살릴 수 있는 작곡가는 그 무렵 흥겨운 왈츠를 많이 만들고 있는 요한 쉬트라우스 2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곧 그에게 빈 사람들의 마음을 북돋아 밝고 쾌활하게 만들 합창곡을 의뢰했다 쉬트라우스 2세도 헤르베크와 동감이었으므로 선뜻 응했다. 아직 합창으로 왈츠를 작곡한 사람이 없었다. 쉬트라우스 2세가 합창곡 의뢰를 받았을 때, 문득 한 무명 시인 Karl Beck의 시 한 구절이 떠올라왔다 대강 뜻은 다음과 같다.
나는 괴로워 슬피 우는 네 모습을 본다.
나는 아직 젊고 영광으로 가득한 네 모습을 본다.
마치 금광 속에 빛나는 황금처럼 거기 진실은 자란다 도나우 강변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변에'
대자연 속에서 슬픔과 괴로움을, 기쁨과 소망들 기쁨과 소망을 모두 한데 감싼 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변함없이 도도히 흐르는 도나우. 패전의 고통을 이기고 힘차게 다시 일어나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쉬트라우스 2세는 이 시에 왈츠 합창곡을 만들어 제목을「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라고 불리리라 마음 먹었다. 이윽고 1857년에 완성한 관현악 반주의 남성 합창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An derschonenblauen Donau op 314」 는 그해 2월15일. 헤르베크의 지휘로 빈의 디아나잘에서 초연 되었다 곧 이어 여름께 파리 만국박람회 개관기념 연주에 초청된 쉬트라우스 2세는 이 곡을 연주하여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제는 빈뿐만 아니라 온 유럽에 유명한 곡이 되고 말았다.
곡은 안단티노의 긴 서주가 있고나서 D장조의 유명한 왈츠를 시작한다. 왈츠의 선율은 그밖에 4가지가 더 나타난 뒤 힘찬 후주로 끝난다 단순하고 명쾌한 선율의 아름다움은 언제 들어도 가슴 두근거리는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 후 쉬트라우스 2세는 「빈 숲속의 이야기」. 「남국의 장미」. 「예술가의 생애」, 「봄의 소리」. 「빈 기질」.「황제 원무곡」.「술. 여자 그리고 노래」,「천일 야화」.「가속도」,「시트론 꽃피는 나라」 등의 걸작 왈츠를 써서 명성을 확고히 굳혔다. 그의 왈츠가 얼마나 유명했는지에 대해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파티에 쉬트라우스 2세의 초대를 받고 브람스가 참석했다.
쉬트라우스 부인이 "기념으로 여기 한마디 적어 주시겠습니까?" 하고 들고 있던 부채를 내밀었다. 브람스는 즉시 그 부채에「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멜로디를 적은 뒤. "애석하지만.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토를 달고 한다.
쉬트라우스 2세는 왈츠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널리 공연되는 「박쥐」,「짚시 남작」을 비롯한 비롯한 오페레타를 16곡이나 썼다. 그가 아직 본격적으로 오페레타를 쓰기 전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오페라 「호후만의 이야기」로 유명한 오휀바크 」Jacques Offenbach(1819∼1800)와 만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오휀바크가 "반드시 오페레타를 작곡하십시오 틀림없이 성공할 테니까요!" 하고 권했다는 일화가 있다 물론 그의 오페레타에도 우아한 왈츠와 즐거운 폴카가 넘치고 있다.
안동림 / 충주대 영문학과 교수
https://youtu.be/1dXuGlxeXGc?si=4xFMEbDtA8oNV3UP
J. Strauss II: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Waltz, Op. 314 · Wie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
"도나우(영어로는 다뉴브[Danube])강"하면 "빈", "빈"하면 "왈츠", "왈츠"하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An der schonen blauen Donau)"을 누구나 연상하게 됩니다. 유럽의 지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 3자 관계는 대개 알고 있습니다.
이 곡은 '왈츠의 아버지'로 불리운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ss, 1804∼49)의 아들인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Johann Strauss, Jr. 1825∼99)가 작곡을 했습니다. 1867년에 빈 남성합창협회의 청탁으로 카를·베크의 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가"를 왈츠로 작곡한 것이 바로 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입니다. 그 전 해(1866.6), 사도와에서 전개된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의기소침해 있던 빈 시민들은 이 곡을 듣게 되자, 그것을 노래하면서 또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곡의 연주 시간은 10분 20초입니다. 이 연주는 바로 2003년 빈 신년 음악회에서 연주된 실황녹음입니다. 2003년 1월1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7시)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 영어로는 비엔나[Vienna])"에서 열렸는데 실황은 전 세계에 위성중계를 했습니다. 지휘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했는데요. 1939년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시작된 빈 필 신년음악회는 전세계 40여개국에 생중계되는 세계적인 음악회입니다. 매년 새해가 시작되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머닉 오케스트라(Wiener Philharmoniker)는 해마다 지휘자를 바꿔가며 신년 음악회를 열고 있는데요 이는 항상 전세계의 관심이 됩니다. 물론 그 TV 실황은 고스란히 음반과 비디오, DVD 등으로 나오고 인기리에 팔립니다. 2002년 신년음악회는 일본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휘를 해서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죠. 요제프 크립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로린 마젤, 카를로스 클라이버, 주빈 메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쟁쟁한 지휘자들이 그동안 지휘를 해왔구요. 2001년에는 아르농쿠르가 했었답니다. 상임 지휘자가 없는, 아니 다르게 말해서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빈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의 신년 음악회 지휘자가 된 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지금은 한국에서 중계를 별로 안해주지만 저도 어렸을 적에 새해에 TV에서 중계를 해주던 신년음악회를 보던 기억이 나네요. 세계에서 가장 음향이 좋기로 알려져 있는 금빛이 찬란한 빈 악우협회 황금홀(Musikverein Goldenersaal)에서 왈츠가 연주되는 것을 보고 여기 한국과는 다른 모습으로 새해를 맞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1842년 궁정 지휘자인 오토 니콜라이에 의해 창단된 빈 필하모닉은 흔히 1980년대만 해도 레너드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불렸는데요. 일찌감치 뉴욕필이 떨어져 나가고 카라얀이 타계한 지금은 빈 필하머닉 오케스트라와 견줄 오케스트라가 없는 듯 하네요. 다른 오케스트라와 다르게 빈 필은 지금 음악가 단체가 아니라 당당히 한 명의 아티스트로 대접받고 있는 것을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의 홈페이지에 가면 알 수 있습니다.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1929년생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로렌 지방의 귀족 후예로 베를린에서 태어났죠. 성장은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이루어졌고 그라츠와 빈에서 첼로 수업을 받으며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르농쿠르가 원전악기나 정격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빈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공부하면서부터 였다고 하네요.
졸업 후 빈 심포니의 첼로 주자로 취직한 것이 1952년, 우리 식 나이로는 24세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르농쿠르는 정격연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빈 심포니의 멤버들을 일부 규합하여 (여기에는 그의 아내가 된 바이올린 주자 알리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Concentus Musicus Wien)'라는 원전악기 앙상블을 결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1953년으로, 이들은 4년 후인 1957년에 데뷔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게 됩니다.
글쓴이 : 베토벨라
https://youtu.be/Q_T0cQMT-rI?si=SeAdT8V_L-3ZN3Jv
J Strauss II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314 | 뉴욕 필하모닉, 번스타인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