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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국사회인야구연합회 원문보기 글쓴이: 야구연합
수비는 야구선수들이 해야 할 가장 평범하고도 기본적인 작업이다. 야수는 타자가 타구를 날릴 때마다 일일이 잡고 던지는 일을 연습에서나 실전에서 밥먹듯 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야수들은 투수가 볼을 던져 타자?? 치도록 해놓고 나서 아웃으로 연결시키라고 리모콘으로 조종하는 부품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 수준이라면 야수들은 수비라면 기계처럼 매끄럽게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감독은 야수들이 에러를 저지를 확률을 0으로 계산해놓고 게임을 치르고 있다.
대부분의 야수들은 수비 따위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귀찮은 일로 여기고 있다. 타격에는 쾌감이 곁들여진다. 어줍잖은 심리분석학을 동원해 보자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어떤 물체를 단단한 막대기로 때릴 때 쾌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선수생활에 지친 노장선수까지도 타격연습 시간에 제 차례가 오면 즐거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비는 귀찮은 일이다. 물론 깜짝 놀랄 멋진 수비를 해냈을 때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플레이에는 동료선수들도 제 일처럼 즐거워 하며 환호한다. 그러나 그런 멋진 플레이는 드물고 대부분의 수비행위는 만족감보다 고통을 요구한다(땅 위를 나뒹굴거나 충돌이 발생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 대부분 야수들은 일반적인 플레이를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며 남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열아홉번 잘하다가 한번만 실수하더라도 졸지에 역적이 되고 만다. 타격에서 열아홉번 잘못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번만 적시타를 뽑아내면 졸지에 영웅이 되는 것과는 정반대다. 자기만족도라는 차원에서 보면 수비란 결국 잘해야 본전밖에 안되는 격이다.
더구나 일반팬들은 수비기술에 대해서는 매우 냉담하다. 수위타자나 최고투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은 끝이 없다. 그러나 기막힌 수비를 펼쳐보인 선수?? 관심을 보인 팬?都?당장 '대단한 야구광'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대중이 야구를 보는 시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중이 큰소리로 외치며 열광하는 장면보다 그냥 평범하게 넘어간 플레이가 기술적으로는 훨씬 더 어려운 경우도 많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내야수가 힘껏 점프해서 머리 위로 뻗어나가는 타구를 잡았다. 또는 외야수가 전력질주 끝에 펜스 바로 앞에서 팔을 최대한 뻗으며 타구를 건져냈다. 3루수가 총알 같은 타구를 몸으로 막아놓고 1루에 던져 타자주자를 잡아냈다. 그리고 외야플라이를 처리하는 외야수가 3루 또는 홈까지 90m에 달하는 긴 거리를 노바운드로 송구했는데 결국 주자는 잡지 못했고 후속주자의 추가진루만 허용했다―.
자, 이럴 때는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겠지만 과연 이런 것들이 눈으로 보기 좋다고 해서 수준높은 플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인 드라이브를 향해 점프하는 것은 무엇보다 쉬운 플레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위험이 따르지 않으며 복잡한 계산도 필요없다. 점프해서 글러브에 볼이 들어오면 다행이고 안 들어오면 그만이다. 3루수가 총알 같은 타구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은 틀림없이 위험한 플레이지만 그것도 '되면 좋고 안돼도 그뿐'인 영역에 속한다. 외야수가 긴 거리를 달려 공을 잡았다고 해서 짧은 거리를 뛰었을 때보다 더 멋진 수비를 펼쳤다고 볼 수는 없다. 외야수는 스타트 할 때 이미 그 타구가 잡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99% 마음 속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일단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무리 한 손을 뻗으며 간신히 건져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유별나게 어려운 플레이가 아니라 그저 일상적인 것일 뿐이다. 그리고 마치 세계기록에 도전하는 투원반선수처럼 멀리 송구하는 것도 그저 겉보기만 그럴 듯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좀더 현실적으로 들여다보면 감독이 주전선수를 고를 때는 타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을 모든 선수들이 알고 있다. 유격수와 포수 등 특수 포지션은 예외지만 그렇더라도 유격수 주전경쟁을 벌이는 어느 선수가 수비 능력은 경쟁자보다 그다지 뒤지지 않으면서 타율이 5푼 정도 높다면 주전자리는 틀림없이 그의 차지가 될 것이다.
감독들은 예외없이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비가 불안한 야수는 약점을 아무리 감출래야 감출 수 없다는 것, 좋은 타격이 승리를 건지는 것보다는 나쁜 수비가 게임을 망치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상 라인업에 선수이름을 써넣을 때면 타선강화에 치중한 나머지 수비의 희생을 감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타력에 의해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타격성적이 어정쩡한 선수들은 수비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들은 당연히 타격성적에 각별한 신경을 쓰지만 거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수비는 연습과 집중력 발휘 여부에 따라 100% 선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렇게 해놓으면 타력이 약간 뒤지더라도 수비가 허약한 경쟁자를 물리??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타격(이는 거의 천부적인 재능이라 할 수 있다) 피칭(이것은 후천적인 연습으로 증진시킬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강한 어깨'를 타고나지 않으면 안된다)보다 수비는 연습을 통해 향상시킬 수 있는 폭이 훨씬 큰 기술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비를 잘하려면 운동선수로서의 기본자질을 갖춰야 유리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남보다 발이 빠르고 남보다 어깨가 강하고 남보다 반사동작이 빠르면 그만큼 유리하다. 그러나 수비를 해내는 데는 천부적인 자질이라는 게 그다지 크게 작용하지 않으며 오히려 꾸준한 연습을 통해 수비력의 차이가 벌어지는 것이다. 수비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수와 타자는 서로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려고 머리싸움을 하지만 야수는 움직이는 볼을 놓고 이것저것 따질 게 없다. 타구가 실제로 움직이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만 예측하고 있으면 된다. 볼을 잡고 던지는 수비기술은 타자나 투수가 갖춰야 할 예민한 기교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다. 그리고 수비하는 야수??가장 중요한 임무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두는 것이다.
수비를 잘하기 위한 키포인트는 집중력 육성이다. 타자가 타석에서 배팅을 하거나 농구선수가 슛하거나 미식축구선수가 공을 갖고 달릴 때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만 집중력을 발휘하면 된다. 그러나 야수는 게임 내내 효과적으로 수비를 해내기 위해서는 실제로 자기??오는 타구는 몇 개 안되더라도 투구수만큼, 즉 한 게임에 150번 정도는 정신을 집중시켜 경계태세를 갖춰야 한다. 야수?都?지속적인 집중력이 필요하며 어느 한순간만 반짝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수들은 무엇에 집중하는가?
첫째는 수비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타자들은 저마다 개성을 갖고 있으므로 특정한 구질을 때릴 때는 대체로 엇비슷한 방향으로 타구를 날리게 된다. 따라서 야수들도 거기에 맞춰 포진해야 한다. 우익수를 예로 들자면 어느 타자에 대해서는 파울선상쪽으로 치우쳐 수비해야 하고, 어느 타자는 우중간쪽으로, 또 어느 타자는 조금 앞으로, 그 다음 타자는 좀더 뒤로 수비위치를 변형시키게 된다. 투수와 포수를 제외한다른 야수들은 상대타자, 지금 던지려는 구질, 지금 이닝에서 처해 있는 상황, 그리고 이 게임의 현재 스코어에 따라 수비위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섬세한 조정은 일반 야구팬들의 눈에는 좀처럼 띄지 않는다. 팬들은 프로선수들의 수비위치 변경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내야진이 전진수비를 펴는 것, 외야수들이 약간 뒤로 물러나는 것, 테드 윌리엄스 Ted Williams나 윌리 매카비 Willie McCovey 등 특징적인 강타자를 상대하면서 야수들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따위나 알 뿐 미세한 조정은 거의 간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미세한 조정이야말로 프로들이 얼마나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의력있는 야수라면 지금 타자는 누구이며, 지금 상황은 어떻고, 지금 우리 투수는 누구라는 것까지 계산에 넣어 '나는 어떻게 수비하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덕아웃에 앉아 있는 감독이나 수비코치는 야수들이 제대로 위치를 잡고 있는지를 꾸준히 살피면서 올바르게 되지 않았을 때는 이동을 지시한다. 시즌 내내 그들의 머리는 '누구 누구를 상대할 때는 야수를 어떻게 배치해 놔야겠다'는 데로 쏠리고 있다.
야구만의 독특한 특성인 개인기와 팀워크가 가장 잘 혼합되는 장면이 바로 수비다. 클럽하우스에서 갖는 미팅에서는 '누가 타석에 나서면 어떻게 수비한다'는 대체적인 전략이 세워진다. 그러나 야수들은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 발이 빠르고 뒤로 뛰는 능력이 뛰어난 외야수는 남들보다 수비위치를 약간 앞으로 잡아도 괜찮다. 발이 느린 외야수는 앞에 떨어지는 단타는 내줄 것을 각오하고 머리 뒤로 타구가 넘어가는 더 큰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어깨가 강한 유격수는 좀더 깊숙한 위치에서 수비해도 좋으며, 필 리주토'Phil Rizzuto처럼 송구모션이 빠른 유격수는 어깨가 나빠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클럽하우스 미팅에서는 모든 야수??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어야 한다.
최근 20년 사이 야구계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수비강화를 위한 차트 사용이 일반화됐다는 점이다. 피칭분석용 차트는 진작부터 있었지만 요즘은 수비용 차트까지 생겨 타구가 날아간 궤적을 일일이 도표화한다. 요즘은 어느 타자가 어느 투수로부터 어느 구질을 얼마나 즐겨 때리고, 타구는 어느 방향으로 갔으며, 땅볼이었는지 플라이였는지 하는 것까지 세밀하게 정보화함으로써 타자의 개별적 성향을 파약하고 거기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수비는 전반적으로 향상됐다. 원칙적으로 현대의 수비차트가 과거 뛰어난 머리를 가진 선수들이 마음속으로 그려놓던 자료보다 더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분석자료는 누구나 손쉽게 구해볼 수 있게 됐으며 게임 도중에도 상황에 따라 코치로부터 선수??전달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는 매우 영리한 야수들만이 알고 있던 자료를 이제는 보통선수들까지도 알 수 있게끔 대중화된 것이다. '하늘의 눈'으로 불리는 코치나 스카우트요원이 스탠드 꼭대기에 앉아 덕아웃에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야수들의 배치상황을 보고 누구를 어느 쪽으로 이동시키라고 워키토키로 감독??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트의 효용에도 한계가 있다. 그것은 그저 기계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컴퓨터 용어처럼) 그 자료는 과거에 있었던 사례를 적어놓은 데에 지나지 않으며 그런 상황은 결코 두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다. 그리고 야수는 '지금 당장' 이 상대를 놓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윌리 메이즈 Willie Mays는 차트를 절대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수비에 대해 일?像?갖고 있었다. 메이즈는 신이 내려준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직감적인' 선수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곤 했지만 그것은 그를 올바로 설명하는 말이 되지 못한다. 지능이 뛰어난 그는 분석력과 사고의 순발력과 통찰력을 갖춘 선수였다. 그가 귀신같은 수비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발이 빠른 덕분이 아니라 머리회전이 빨랐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 팀 투수가 어떤 타자를 상대할 때 어떤 볼을 던질지 나는 항상 미리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볼카운트에 따라 달라졌다. 투수가 타자를 어떻게 처리하려고 마음먹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아는 데다 타자가 그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예견하기 때문에 나는 미리 타구가 도달할 위치에 가 있거나 최소한 그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스타트할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만약 투수가 뜻밖의 실투를 하거나 타자가 평소와 다른 이상한 타격을 했을 때는 내가 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 내 예상이 맞아떨어져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 팀 투수 샐 매글리 Sal Maglie는 타자들이 홈플레이트에 바짝 다가서지 못하도록 자주 몸쪽 공을 던졌고 타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투수들을 상대할 때와 달리 타자들은 앞으로 바짝 달려들지 못했다. 평소 아무리 끌어?藪?능한 타자라도 매글리가 마운드에 서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따라 수비위치를 잡았고 다른 투수가 던지는 날이면 또 그에 따랐다. 그리고 게임 후반에 우리 투수??피칭스타일이나 전략에 변화가 생겼을 때는, 가령 커브 브레이크가 갑자기 듣지 않는다든지 할 때는 그것도 고려했다. 그리고 우익수나 좌익수?都? 나를 보고 수비위치를 조절하라고 일러두었다. 내 움직임을 보면 그들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메이즈가 타자나 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중견수로서도 발군의 활약을 할 수 있었던 뒤에는 이런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타자로서는 '생각하고 나서 때릴 수 없다'손 치더라도 야수로서는 언제나 '생각하고나서 수비한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파울라인의 길이가 300피트(91. 44mm)인 구장에서는 전체 페어지역이 약 9만 평방피트(약 2, 530평)쯤 된다. 그리고 투포수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명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데나 위치를 잡을 수 있다. 전체 수비력은 야수의 배치상황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긴다. 론 페얼리는 LA 다저스 우익수를 맡고 있던 시절 돈 드라이스데일과의 사이에 그들만의 은밀한 사인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드라이스데일은 매번 투구할 때마다 나를 그가 지시하는 장소로 미리 보내곤 했다. 나도 대개는 그가 원하는 지점이 어디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따끔 그는 나더러 전혀 엉뚱한 위치로 옮기도록 했다. 그럴 때 그는 마운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 허벅지에다 공을 문지르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난 움직였다. 파울라인 쪽으로 가라는 건지, 그 반대방향으로 가라는 건지는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질 때까지 계속 움직였다. 내가 마땅한 장소까지 갔다 싶으면 그는 고개를 돌렸고 거기가 내가 서 있어야 할 장소였다.
자, 이제 난 아주 정확한 위치를 잡은 셈이다. 만약 타구가 내 수비범위를 벗어나면 그건 드라이스데일의 실수다. 그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지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있어야 할 곳에 가 있지 않았다면 그건 물론 내 잘못이다."
1966년 6월 중순 애틀랜타에서 이런 수비위치변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례가 나왔다. 방문팀 뉴욕 메츠가 1점차로 앞선 가운데 브레이브스가 9회말 공격에서 2사만루의 역전찬스를 잡았고 메츠 우완 잭 해밀턴 Jack Hamilton은 강타자 행크 에런 Hank Aaron과 대결해야 했다. 에런은 당시 홈런과 타점에서 내셔널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자실에 있던 필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메츠 1루스 에드 크레인풀 Ed Kranepool은 파울라인 쪽으로 바짝 붙었고 2루수는 베이스 쪽으로 치우쳤다. 다시 말해서 1∼2루간을 휑하니 비워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에런은 풀스윙을 하면서도 라이트앞, 또는 우중간으로 곧잘 밀어쳐 안타를 뽑는 타자로 정평이 나 있었다. 필자는 크레인풀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라이트앞으로 단타 하나만 굴러나가도 단숨에 승부가 뒤집힐 판이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면 에런은 센터 정면으로 날아가는 플라이에 그쳐 그대로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게임이 끝난 후 필자는 뉴욕의 웨스 웨스트럼 Wes Westrum 감독을 찾아가 크레인풀의 기이한 수비위치에 관해 물었다.
"그건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겁니다."
"그렇지만 에런은 라이트와 우중간으로도 곧잘 때리지 않습니까?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 말에 프로의 깊은 맛이 숨어 있었다. 현재의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타자는 '지금'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웨스트럼 감독의 설명이 이어진다.
"에런은 금년들어 부쩍 홈런을 노립니다. 다른해보다 더 심하죠. 그런 사람은 배트를 밀고 당기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그가 라이트쪽으로 타구를 날린다면 그건 빗맞거나 스윙이 늦었을 때인데 그렇게 되면 타구는 파울라인 쪽으로 갈 겁니다. 그러나 에런은 되도록이면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우리 투수가 바깥쪽으로 던지면 그가 때린 타구는 기껏해야 센터쪽으로 ??될 테고 실전에서도 그렇게 됐죠. 그리고 그가 바깥쪽 공을 일부러 밀어친다면 그때는 크레인풀이 맞춤한 장소에 가 있는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이 바로 메이저리그다. 즉 모든 가능성을 ?改?보고, 그 중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일을 예상하고, 엉뚱한 일은 제발 벌어지지 않기를 비는 것이다.
야수들의 올바른 위치잡기가 수비의 첫 단계라면 두번째 단계는 앞으로 어떤 플레이가 최선인지를 미리 파악해두는 것이다.
내가 올바른 위치를 선택했고 타구가 내게 왔다고 치자. 그리고 내가 그것을 매끄럽게 잡았을 때 그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미리 파악해 두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①1루까지 달려가는 타자주자의 스피드.
②다른 주자들의 스피드.
③전술적으로 이 상황이 내게 요구하는 것. 동점주자를 홈에서, 또는 3루에서, 또는 2루에서 솎아내야 하는가? 1점을 주더라도 더블플레이로 두명을 잡아 아웃카운트를 늘리는 편이 유리한가? 타자주자가 2루까지 진루하는 것을 허용하더라도 1루주자를 3루에서 잡겠다고 모험해볼 가??있는가?
④내 자신의 능력. 타구가 느리다면 나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최선인가? 만약 타구속도가 빠르다면 그때는? 내가 간신히 잡아낼 수 있는 곳으로 공이 간다면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나의 송구능력은 얼마나 되는가?
⑤우리 동료선수들의 능력.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안은 투수가 볼을 던지기 전에 분명하게 만들어놓고 있어야 한다. 또한 타구가 내게 오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후속플레이를 해야 하는가도 명확히 알아두어야 한다. 나는 어느 자리로 백업해야 하는가? 내가 커버해야 할 베이스는 어디인가? 나는 다른 야수??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그리고 볼카운트가 바뀔 때마다 약간씩(경우에 따라서는 많이) 이런 결정을 수정해야 한다.
따라서 야수들은 딱 소리가 나고 공이 날아올 때까지 그저 멀거니 서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항상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앞선 타석에서 자기가 왜 아웃당했는지를 돌이켜보는 것이 가장 많은 사례이고, 때로는 개인적인 우환에 심란해져 있는 수도 있고, 그저 정신이 딴데 팔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수가 그렇게 방심하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선수들은 대개 자신의 직무에 매우 충실하다.
각 포지션에는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각 포지션에서 성공하기 위한 자질과 주요임무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포수:포수는 경기장 안에서 투수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다.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포수는 볼을 자주 다룰 뿐더러 투수를 리드하고(그는 투수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내야진을 조정하고(다른 선수 전체를 마주보고 있는 유일한 포지션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아웃, 즉 상대방의 득점을 저지하는 아웃을 잡아야 한다.
포수는 상대가 도루나 번트를 자주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어깨가 필요하다. 메이저리그급 포수는 우선 강한 어깨가 주전선택의 기준이 된다.
포수는 볼을 잘 받아내야 한다. 특히 낮은 볼을 받는 기술을 갖춰야 한다. 우수한 투수들은 대체로 낮게 던지기 때문이다. 투수가 낮게 던지다 보면 가끔 원바운드로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를 잘 막아놓아야 하고 누상에 주자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저 단순히 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잘 잡아 주자가 진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크리스 카니자로 Chris Cannizzaro가 뉴욕 메츠의 포수로 처음 들어앉았을 때 케이시 스텡걸 Casey Stengel 감독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의 어깨를 칭찬했다. 그렇지만 카니자로의 약점은 곧바로 탄로났다. 캐칭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2루로 던지려면 우선 볼을 잡기부터 해야 하는데 그는 주자가 달리기만 하면 더듬기 일쑤였다.
"아이쿠 골치야. 한놈은 잡는 건 잘 잡는데 어깨가 엉망이고, 또 한놈은 어깨는 괜찮은데 잡는 게 엉망이고, 또 한놈은 방망이질은 쓸만한데 받지도 던지지도 못하니 이거야 원…"
이것이 스텡걸 감독의 고민이었다. 창단 당시 메츠는 7군데의 포지션이 모두 이 모양이었으니 얼마나 곤욕스러웠겠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포수는 유별나게 발이 빠를 필요는 없다. 그가 달려야 하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땅볼타구가 가면 1루를 백업해야 하는데 그래도 2루수에서 1루로 연결하는 선의 뒤를 받치면 되므로 타자주자와 보조를 맞춰 달릴 필요는 없다. ) 그러나 번트를 재빨리 처리하기 위해서는 몇 걸음쯤 잽싼 푸트워크가 있어야 하며 손놀림도 빨라야 한다. 요기 베라는 번트 처리에 단연 뛰어났다.
그리고 홈 뒤쪽이나 양쪽 파울지역으로 떠오르는 타구는 어김없이 잡아내야 한다. 파울플라이 처리는 보기보다 어렵지만 투수는 포수파울플라이가 뜨면 으레 아웃카운트를 하나 벌었다고 생각하므로 포수가 받는 중압감은 엄청나다.
파울팁은 별개다. 제3스트라이크 때 파울팁을 잡으면 타자를 아웃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순전히 운일 뿐이다. 이런 타구를 의식적으로 잡기에는 타구에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부족하다. 파울팁은 대체로 배트에 맞아 꺾이는 각도가 아주 작을 때라야 잡을 수 있으며 포수의 미트가 마침 좋은 위치에 가 있어야 한다.
이제 투수리드라는 문제를 다룰 차례다. 이는 수비기술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경험, 투수와의 이심전심, 현명한 판단, 나아가 인간성 등과 연관이 있다. 포수의 투수리드는 매우 중요하지만 투수와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포수의 임무가 워낙 막중하다 보니 이런 일들만 잘 해낸다면 타력이 별로 뛰어나지 않더라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일반팬들은 '최우수' 포수를 꼽으라면 본래의 직무는 그럭저럭 해내면서 타력이 좋은 선수를 꼽는다. 오늘날에는 전세계적으로 우수한 수비전문포수가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포수를 고를 때는 수비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아직 타력이 뛰어난 포수가 여전히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묘한 현상이다.
1루수:전통적으로 이 자리는 수비는 별 볼 일 없지만 장타력을 가진 선수들이 차지해 왔다(딕 스튜어트 Dick Stuart, 제크 바뉴라 Jeke Bonura, 그리고 초창기의 루 게리그 Lou Gehrig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 1루수는 기본적으로 송구된 볼이나 잡고, 약간의 초보적인 푸트워크만 있으면 되고, 몇개 안되는 땅볼타구를 처리하고, 번트수비만 해낼 수 있으면 족하다. 주자를 잡기 위해 송구해야 하는 경우도 별로 없기 때문에 어깨가 각별히 강할 필요도 없다. 장타력을 갖춘 외야수들이 주력이 떨어졌을 때 찾아가는 자리가 1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저 겨우 필수조건을 채우는 데에 불과하다. 1루수비에 약점이 있다면 다른 포지션에 구멍이 뚫리는 것보다는 덜 치명적이라 하겠지만 1루수비가 튼실하면 전체적인 팀수비력이 훨씬 강화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1루수의 가장 대표적인 기술은 팔다리뻗기(스트레치)다. 내야수 쪽을 향해 팔다리를 쭉 뻗으면서 볼을 받으면 그냥 뻣뻣이 서서 송구를 받을 때보다 송구거리를 1m이상 단축시켜 단 몇분의 1초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 이런 시간차는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세이프와 아웃 판정을 크게 좌우하며 특히 더블플레이를 완성시키는 데는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2루가 빈 상태에서 1루주자가 있을 때는 주자를 베이스에 바짝 묶어두는 게 1루수의 임무다. 즉 투수가 홈으로 피칭하기 전에는 1루에 몸을 얹은 채 주자가 너무 리드하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한다. 리드가 큰 주자는 2루를 훔?킬? 더블플레이를 저지하거나, 후속안타로 한 베이스를 더 갈 수 있다. 투수가 홈으로 피칭하면 1루수는 본래 위치로 뒷걸음질치며 수비태세를 갖추거나 번트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앞으로 달려들게 된다. 어쨌거나 1루수는 정면으로 날아오는 땅볼타구 외에는 강한 타구를 처리하기가 곤란한 입장이므로 타자들은(특히 좌타자들은) 1루수 부근을 안타 제조의 타깃으로 삼는다.
다른 때(그리고 1루주자가 있더라도 감독의 특별지시가 있을 때)라면 1루수는 베이스로부터 약 6∼7m 후방에 자리잡는다. 게임 종반에는 설사 라이트 앞으로 빠지는 안타를 내줄 위험이 있더라도 파울라인쪽으로 치우쳐서 장타에 대비하는 경우도 있다.
1루에는 왼손잡이를 배치하는 게 더 유리하다. 송구를 받아내는 데는 어느 손으로 받더라도 마찬가지지만 땅볼(또는 번트타구)을 잡아 2루로 송구할 때는 오른손잡이보다 유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팀들은 우익수가 홈으로 송구할 때 1루수를 컷오프맨 cutoff man으로 활용한다. 컷오프맨의 임무는 외야수의 송구가 홈에 뛰어드는 주자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중간에서 차단, 송구방향을 바꿔 다른 주자의 추가진루를 막는 것이다.
2루수:야구장 모형도에는 유격수와 2루수가 2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대칭으로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실제 2루수의 위치는 전혀 다르다.
2루수??가장 중요한 역할은 더블플레이를 연결시키는 피봇맨을 맡는 것이다. 더블플레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1루를 향해 측면으로 선 채 공을 받고, 달려드는 주자를 피하면서 1루로 빠르고 정확하게 송구해야 한다. 이런 더블플레이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2루수의 능력이 평가된다. 전통적으로 2루수는 1루까지의 송구거리가 짧기 때문에 어깨가 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더블플레이를 완성시키려면 강한 어깨가 절대로 필요하며 따라서 2루수의 적성은 이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센터 뒤로 넘어?킬?우중간으로 빠진 공을 릴레이하는 것도 2루수이므로 강한 어깨의 필요성은 여기서도 나타난다.
2루수는 1루에서 달려드는 주자와 충돌해서 넘어지는 수가 많으므로 부상을 견디는 인내심과 어느 정도의 곡예술도 필요하다.
2루수는 또 양옆으로 커버해야 할 지역이 넓기 때문에 좌우 움직임도 기민해야 한다. 그리고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지는 플라이를 어느 방향에서든지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짱이다. 더블플레이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화이티 허조그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몇번을 성공시켰느냐가 아니라 몇번이나 실패했느냐를 따져야 할 정도로 완벽해야 한다. 허조그 감독은 메이저리그 수준에서는 "그런 통계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누구나 능통하다"고 말한다.
유격수:유격수는 투수와 포수 다음으로 중요한 포지션이다. 그는 내야진의 핵심인물이다. 그 이유는 전체 타자의 75%가 우타자이고 어느 내야수보다도 많은 땅볼타구가 그??몰리기 때문이다.
유격수는 어깨가 강해야 한다. 3-유간 깊은 곳이라면 1루까지의 송구거리가 40m가 넘는 등 대체로 긴 거리를 던져야 하므로 송구동작이 빠르고 2루수나 3루수에 비해 어깨가 강할 필요가 있다. 센터 뒤, 또는 좌중간으로 빠진 볼을 릴레이하는 역할도 유격수가 맡는다.
수비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좋은 게 사실이지만 유격수는 다른 내야수와 달리 발보다 머리를 더 많이 써야 하는 포지션이다. 타자에 대한 정보를 갖춰 그에 따라 위치를 이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격수는 타구를 잡은 후 송구자세를 잡기까지 몸을 반전시킬 시간적 여유가 2루수보다 적기 때문에 직립상태에서 그대로 송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루 부드로 Lou Boudreau, 딕 그로우트 Dick Groat, 앨빈 다크 Alvin Dark, 칼 립켄 Cal Ripken 등은 발이나 어깨가 특출하게 좋은 유격수는 아니었지만 수비위치를 정확히 잡음으로써 성공한 예들이다. 물론 이들은 타격솜씨도 대단했다. 그렇지 않고 수비기술 하나만으로는 애당초 주전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유격수의 더블플레이 기술은 2루수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2루수의 송구를 받아 1루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다만 유격수는 더블플레이를 처리할 때 정확한 타이밍을 잡는 데 능숙해야 한다.
3루수:3루수가 수비솜씨만으로 그 자리를 꿰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자리도 수비 위주로 주전을 가리는 게 아니라 강타자들이 경합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뛰어난 수비전문??없었던 것은 아니다. 브룩스 로빈스 Brooks Robinson, 클리트 보이어 Clete Boyer, 파이 트레이너 Pie Traynor, 빌리 칵스 Billy Cox, 마이크 슈미트 Mike Schmidt 등이 그 예다.
3루수가 가장 민첩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번트, 그리고 빗맞아 느리게 굴러오는 땅볼타구다. 이런 것들은 잽싸게 달려들어 1루로 송구해야 한다. 강한 타구는 정면이건 양옆이건 '잡히면 좋고 안 잡혀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체로 3루수는 강한 어깨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돼 왔다. 물론 어깨가 강해서 나쁠 이유는 없다. 3루수도 가끔 3루 뒤쪽에서 3-유간을 처리하는 유격수만큼 긴 거리를 던져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를 하더라도 유격수에 비해 3루수는 홈으로부터 ?楮?거리에 있어 타구를 잡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고 그래서 송구할 여유가 더 많다. 대부분의 경우 3루수의 위치는 베이스 바로 옆이거나 5m 정도 뒤로 물러서는 정도이므로 3루수의 송구거리는 40m가 고작이다. 그러므로 3루수의 어깨는 반드시 강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강한 어깨보다는 정확한 송구, 특히 앞으로 달려들며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도 정확하게 1루로 송구할 수 있는 능력이 더 긴요하다.
내야수들은 어느 포지션을 막론하고 손이 부드러워야 한다. 땅볼타구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부드러운 손을 만드는 것은 긴장을 얼마나 푸느냐에 달려 있다. 손은 정확한 위치에서 공을 빨아들이는 듯이 잡아야 한다. 뻣뻣하고 긴장된 손은 에러를 낳기 쉬우며 긴박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드러운 손'이어야 동작이 빨라 공을 따라갈 수 있다. 땅볼은 상당수가 불규칙바운드를 일으켜 튀어오르거나 가라앉기 때문이다. 어떤 타구는 이상한 바운드를 일으켜 내야수가 도저히 커버할 겨를이 없이 빠져나간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야수가 잡으려는 순간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타구가 게임마다 여러개씩 나오는데 내야수의 손은 그것을 반사적으로 따라가 처리해야 한다.
3루수는 홈으로부터 ?樗?있기 때문에 일단 타구를 몸으로 막아놓고 다시 주워 처리할 시간적 여유가 다른 내야수에 비해 많다. 그래서 '가슴으로 수비한다'는 평판을 얻은 3루수가 상당히 많다(페퍼 마틴 Pepper Martin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각 내야수의 필수조건을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
1루수는 융통성과 확실한 포구, 2루수는 용기와 순발력, 유격수는 두뇌와 순발력, 3루수는 반사신경과 용기다.
외야수:외야수??가장 필요한 자격요건은 스피드다. 그는 무엇보다도 주력이 좋아야 한다. 외야는 허허벌판이고 외야수는 주력으로 그것을 커버해야 한다. 그런 선수가 '좋은 외야수'다. 그런데 실상 수비솜씨는 보통이거나 수준 이하이면서도 오로지 돋보이는 타력 덕분에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타순은 미상불 타력이 좋은 사람을 위주로 짜게 되는데 기왕 수비의 약화를 감수해야 한다면 내야수보다는 외야수(특히 좌익수)의 수비가 처지는 편이 팀에 미치는 손해가 적기 때문이다.
외야수의 전문성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얼마나 멀리 달릴 수 있느냐 ▲시야와 바람 등 각구장의 조건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 ▲라인 드라이브를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 ▲송구를 얼마나 잘하느냐 등이다.
센터에는 가장 유능한 수비요원을 배치한다. 커버해야 하는 지역이 가장 넓은 그는 강한 어깨가 필요하며, 좌중간에서나 우중간에서나 모두 송구를 잘할 수 있어야 하며, 2루수나 유격수가 잡을 수 없는 짧은 플라이를 재빨리 달려들며 처리할 수 있어야 하며, 좌익수나 우익수의 수비까지 백업해야 한다. 그??우중간 지점에서 3루나 홈으로 송구해야 할 경우가 자주 생기며 수비기회가 다른 외야수에 비해 훨씬 많다. 수비의 비중을 따진다면 그는 포수, 투수, 유격수 다음으로 중요하다. 어떤 감독은 유격수보다 중견수를 더 중요시하기도 한다. 내야수의 실책은 한 베이스를 허용할 뿐이지만 외야수의 에러는 3개루를 내주기 때문이다.
우익수는 중견수보다도 어깨가 강할 필요가 있다. 라이트 깊은 곳에서 3루 또는 홈으로 실점을 막는 결정적인 송구를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좌익수는 어깨가 비교적 약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3루까지는 송구거리가 짧을 뿐 아니라 홈송구도 (거리상으로는 우익수나 다름없지만) 포수가 처리하기에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포수는 우익수로부터 공이 날아올 때는 일단 공을 받고나서 몸을 돌린 후 주자를 태그해야 한다. 그러나 좌익수로부터 송구가 날아올 때는 주자와 공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왼손잡이 선수는 중견수나 우익수로 기용되는 일이 많지만 좌익수는 흔치 않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레프트 파울라인 부근에서 공을 잡았을 경우 왼손잡이 야수라면 2루로 송구하기 위해 몸을 반바퀴 돌려야 하므로 단타로 막을 것을 2루타로 내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외야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타트'다. 이것은 직감, 반사신경,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예측, 그리고 연습의 소산이다. 윌리 메이즈는 볼이 배트에 맞는 순간에 이미 스타트를 끊는 등 단연 돋보이는 수비솜씨를 자랑했다. 그뿐 아니라 투구의 종류나 타자의 성향을 파악하고는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떨어지기도 '전에' 벌써 올바른 방향으로 스타트를 끊는 일도 종종 있었다.
1954년 월드시리즈에서 메이즈는 역사에 남는 환상적인 수비 장면을 연출했다. 폴로 그라운드에서 벌어진 1차전이 2-2 동점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8회초 무사 1, 2루의 황금기회를 맞았다. 빅 워츠 Vic Wertz는 435피트(132. 6m)나 떨어진 센터 펜스로 깊숙한 플라이를 날렸다. 메이즈는 뒤돌아서서 전력질주, 펜스 바로 앞에서 관중석을 바라보는 자세로 머리 뒤에서 떨어지는 공을 잡고는 몸을 뒤틀며 내야수??송구했다. 이 장면은 '1954년도 스포츠에서 가장 환상적인 장면 1호'로 꼽힐 정도로 불가사의한 플레이라고 칭송받았다.
그러나 시즌 내내 메이즈의 플레이를 주시해 온 사람들은 그가 뒤돌아서서 뛰기 시작했을 때 공은 이미 그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기자실에서 봤을 때는 공이 떠오르는 순간 그게 홈런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메이즈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그게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는 한 메이즈?? 잡히고 만다는 것을 기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메이즈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 포구가 깜짝 놀랄 묘기로 보였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그가 타구를 잡을 수 있었던 열쇠는 움직이기 시작한 '첫걸음'에 있었지, 마지막 걸음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는 한 일단 메이즈가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면 볼은 그의 수중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외야수의 수비폭은 올바른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스타트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뿐 일단 뛰기 시작하면 얼마나 멀리 뛰느냐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높이 떠오른 타구는 아무리 멀리 날아가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작 야수들이 다루기 어려운 것은 라인 드라이브다. 특히 야수 정면으로 날아오는 직선타구는 낙하지점을 정확히 판단하기가 힘들다. 머리 속에서 입체적으로 타구의 궤적을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조금만 옆으로 휘어지더라도 처?餞塚?된다. 휘는 각도가 작더라도 홈에서 90m ?樗?날아가다 보면 결국은 판단했던 것에서 몇 미터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라이트나 레프트로 날아가는 라인 드라이브는 언제나 파울라인 쪽을 향해 휘게 되는데(이를 슬라이드나 후크라고 한다) 외야수가 포지션을 바꾸다 보면 이런 타구에 적응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정면 라인 드라이브가 날아왔을 때 좀더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장타를 내주기 십상이다. 이런 타구들을 최소한 단타로 막아내려면 '좋은 스타트'가 필수적이다.
어느 베이스로 송구하느냐도 외야수가 깊은 생각해 두어야 할 부분이다. 송구방향은 주자들의 주력, 볼을 잡는 순간 자신의 신체균형과 위치, 송구거리, 전술적 상황, 자신의 송구능력을 순간적으로 종합해서 결정해야 한다. 전위주자를 잡으려 할 때는 반드시 아웃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서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쓸데없이 후위주자?? 추가 진루를 허용하는 손해만 뒤따를 뿐이기 때문이다.
외야수 송구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컷오프맨의 머리를 넘기는 행위다. 높은 송구는 겉보기만 그럴듯한 어깨자랑에 불과하며 바운드가 되더라도 낮게 던져야 팀플레이에 도움이 된다. 컷오프맨이 볼을 잡아 다른 데로 플레이를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위주자의 3루 진출이나 득점을 허용하더라도 다른 주자를 뒤에서 솎아냄으로써 결정적인 위기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전반적으로 외야수비의 수준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필자가 만나본 감독이나 코치, 스카우트요원들도 필자의 의견에 동조한다. 질적 저하라는 것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엉뚱한 베이스로 송구하는 경향이 늘어난 것, 또하나는 열심히 따라??나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를 떨어뜨리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외야수비전문가였던 지미 피어설 Jimmy Piersal은 지나??큰 글러브를 사용하는 것을 낙구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다른 이유를 대자면 경험상의 문제다. 요즘 메이저리그에는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충분히 쌓지 않은 채 올라오는 선수들이 점점 늘고 있다. 수비라는 것은(그라운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플레이가 그렇지만) 반복훈련을 통해 숙달시킨 동작이다. 게임의 실전상황은 '연습할' 수 없다. 상당량의 게임을 치러 직접 몸으로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메이저리그에서 뛸 만한 젊은 유망주들이 대학 과정을 거침으로써 마이너리그에 입문하는 시기가 늦어질 뿐 아니라 마이너리그에서 치르는 경기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상당량'이라는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하나의 원인은 집중력과 주의력 저하를 보고도 그대로 내버려두는 전반적인 사회 풍조가 야구계에도 그대로 흘러들었음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수비는 타격이나 피칭보다 장시간에 걸친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수들은 그런 집중력을 발휘하는 능력이 줄어들었다. 팀수가 늘어나고 연봉이 고액으로 치솟은 까닭에 직업유지에 대한 위기의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있다. 과거에는 올스타전을 야간경기로 거행하기에 앞서(당시에는 야간경기를 치른다는 것이 대단한 행사였다) 관중들??눈요기감으로 제공되던 각종 경연대회가 한동안 없어졌다가 최근 부활됐다. 홈런 컨테스트, 서너명이 짝을 이뤄 외야에서부터 홈까지 볼을 릴레이하기, 포수의 2루송구 컨테스트 등이 그것이다.
1988년 오클랜드 올스타전 때는 수만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런 경연대회를 가졌는데 특히 외야로부터의 중계플레이는 관중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선수들이란 관중을 대단히 의식하게 마련이다.
필자는 올스타전이 끝난 후 여러 감독을 두루 만나보았다.
"아아, 아까 그건 너무나 멋진 플레이였소이다. 그런데 실전에서는 왜 그런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겁니까?"
그 중계플레이에 대한 필자의 소감을 말하자 빌 리그니 Bill Rigney, 앨 로젠 Al Rosen, 로저 크레이그 Roger Craig, 토니 라루사 Tony LaRussa, 스파키 앤더슨 Sparky Anderson 등 모든 감독들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하면서 그 핵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수비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장비다.
오늘날의 글러브는 2차세계대전 이전에 사용하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품질이 좋아졌을 뿐 아니라 글러브의 개념도 달라졌다. 글러브는 1880년대에 처음 개발된 이래 점점 사이즈가 커지긴 했지만 근본적인 사용목적은 공을 잡을 때 부상이나 통증을 방지하는 데에 있었다. 공은 '포켓'이라고 부르는 손바닥으로 움켜잡고 그 공이 떨이지지 않도록 손가락으로 감싸쥐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글러브는 실제로 올가미 구실을 한다. 볼을 잡는 부분은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의 올가미이고 손가락은 공을 잡는다기보다 글러브를 조종하는 데 쓰인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선수들은 사실상 글러브가 닿기만 하면 어떤 공이라도 잡을 수 있다. 외야수들이 한손만으로 공을 잡는 것은 글러브가 워낙 커서 다른 손을 갖다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990년에는 야구행정당국은 글러브 사이즈를 제한하겠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시즌 중반에 이르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선글래스는 내야수는 물론 외야수들 사이에서도 수십년 동안 애용돼 왔다. 이 선글래스는 안경다리를 끈으로 묶어 목뒤에 걸고 렌즈는 안경테에 경첩을 달아 위로 제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야수들은 공이 하늘높이 솟구쳤을 때 손가락으로 렌즈를 밑으로 제껴 햇빛이나 조명에 시선이 방해받지 않도록 한다. 대부분의 구장은 홈플레이트 뒤쪽의 배경이 어두워 공이 뜨는 순간의 조명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선글래스를 처음부터 착용하고 있으면 공을 눈에서 놓치는 수가 있다. 아직까지는 오직 포수만이 파울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프로텍터를 착용하고 있지만 머잖아 야수들도 수비하러 나가면서 배팅 헬멧을 착용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지금도 공격측 주자들은 베이스에 나가서도 헬멧을 쓰고 있다. 투수들은 언젠가는 아이스하키 골키퍼가 사용하는 마스크를 쓰게 될 것이다.
햇빛이 눈에 쪼이면 타구에 얻어맞는 일도 허다하다. 1966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윌리 데이비스 Willie Davis??일어났던 사건은 가장 참담한 사례 중의 하나였다. 데이비스는 한번도 아닌 두번씩이나 햇빛 때문에 공을 놓쳤을 뿐 아니라 두번째는 공을 떨어뜨리고나서 악송구까지 범했다. 그로 인해 샌디 쿠팩스가 0-0으로 끌고나오던 그 게임에서 볼티모어??3점을 헌상했다.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LA는 볼티모어에 4연패로 몰리고 우승을 넘겨주어야 했다. 같은 볼티모어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 요기 베라도 1962년 연습도중 플라이타구에 머리를 얻어맞은 적이 있다. 요기는 당시 포수로서 수명이 다 되어 외야수로 전향해 있었다. 야간경기가 벌어지기 직전 태양이 스타디움 꼭대기에서 뉘엿뉘엿 작별인사를 할 무렵 요기는 주의를 게을리하다가 그만 타구에 이마를 얻어맞았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마가 찢어져 피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동료선수들이 달려나가 응급치료를 해야만 했다. 이마에 피묻은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터덜터덜 클럽하우스로 걸어들어가는 그 모습은 '바이킹'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패잔병 같았다. (몇년 뒤 그 영화를 직접 본 요기 배라는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라는 명언을 남겼다. )
요기 베라가 덕아웃을 거쳐 방송중계석을 통과할 즈음 필 리주토 Phil Rizzuto가 그의 모습을 봤다. 리주토는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양키스구단 전속해설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요기 베라와 뉴저지에서 동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끊지 못할 '동료'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