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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Paradise Lost)은 어디에 있을까?
이 글은 20년 전에 시작하여 미완으로 남겨둔 것입니다. 낙원(paradise), 천국, 극락이 있을까요? 그곳은 어떤 모양일까요? 젖과 꿀이 흐르고, 올림포스 신들이 마신다는 꿀과 술인 넥타르(nectar)가 넘치고, 항상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아니면 손오공이 따먹은 천도복숭아가 달려있을까요? 절에서 49제 혹은 천도제(薦度祭)를 지낼 때 망자에게 이르듯이 금으로 지은 집과 구슬, 옥으로 치장한 궁전 같은 집으로 갈 것이라는 데 극락, 천국이 이런 곳인가요?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요.
나는 어릴 때부터 지옥이 어떨까, 천당, 극락이 어떨까 라는 상상으로 날을 새운 적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어린애가 이상한 짓을 했다고 하겠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철이 조금 들면서 잘 때 어둠 속에서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무덤 속도 이같이 캄캄할까, 위가 막혀 숨도 못 쉴 터인데, 나오고 싶어도 못나올 것인데 하다가 악몽에 시달리고, 극락에 가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현실 세계에서 천국 같은 것을 찾았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인들에게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요? 속세인 부산 해운대에 전낙원(田樂園)이란 분이 지은 ‘파라다이스 호텔’이 있었지요.(지금도 있는가요?) 나는 어머니가 계시던 부산에서 결혼식을 하고 해운대 이 호텔에서 3일을 지냈습니다. 이 보다 좀 더 세련된 천국을 그려본다면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 같이 꿈속에서 본 기암절벽과 복숭아 꽃(桃花)이 만발한 풍경일까요? 여기서도 복숭아가 등장하군요. 복숭아 맛은 천국의 음식 맛이고 그 즙이 넥타르일까요? 옛날엔 홍도, 백도, 삼색도로 나누기도 했지요. 그러나 집에는 복숭아나무는 심지 않았습니다. 여자애가 요상스러워 진다나요?
혹은 몽유도원도 보다 좀 고상하게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읊은 아래 시조와 같은 지리산 골짜기가 천국일까요?
두류산(頭流山) 양단수(兩端水)를 예 듣고 이제 보니,
도화(桃花)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이 시조는 초장, 중장은 좋은데, 종장이 틀에 박힌 진부한 사설(stereotype)이라.... 그러나 한국인들이 찾는 천국, 무릉이란 여전히 맑은 물에 복숭아꽃이 떠내려 오는 녹음이 우거진 곳인 것 같습니다. 서울 우리 집에 개복숭 나무가 있었는데 꽃이 화려하기 짝이 없었지요. 한 가지 더 붙인다면 무릉, 천국은 일체의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 ‘사회’일 것입니다. 그런데 <손오공>에서 보면 중국인들이 그린 천국에는 상제(上帝)로부터 시작하여 위계질서는 엄연히 존재하더군요. 물론 위계적인 것과 억압은 별개의 개념입니다만.
그러면, 서양인들은 천국을 현실 세계에 어떻게 투영하여 만들었을까요? 그 원형은 에덴동산일 겁니다. 1979년 영국 문학기행 중 <실낙원>을 쓴 존 밀턴(John Milton)의 연고지를 찾았습니다. 같이 여행한 한국일보 김성우 파리특파원이 쓴 <컬러기행 세계문학전집>에 잘 소개되어 있네요. 우스터시어(Worcestershire) 주(county)의 버밍엄 부근 해글리 공원(Hagley Park)입니다. 이 곳 정원은 수백 년에 걸쳐 유명한 정원사들이 가꾸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밀턴의 의자(Milton’s Seat)’가 있습니다. 널찍한 벤치지요. 밀턴이 여기에 앉아 <실낙원>을 구상하고 아래 정원을 내려다보면서 ‘천국’의 이미지를 가다듬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실상 밀턴은 이때 맹인이 되어 주변 정경을 바라볼 수는 없었으니 유명하다는 정원을 앞에 두고 천국을 마음속으로 그렸을 겁니다.
이 벤치 뒤에는 <실낙원> 5권 아침의 찬가(Morning Hymn)에서 ‘에덴동산’을 묘사하고 하느님을 찬미한 부분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는 김성우 저 <컬러 기행....>에서 옮김 것입니다.
전능자시여,/ 이것이 당신의 영광스러운 작품들이니,
이렇게 놀랍도록 아름다운 세상의 형체는 당신의 것이니이다.
벤치에 쓰인 글을 모두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조하세요.
These are Thy glorious works, Parent of good,
Almighty! Thine this universal frame,
Thus wondrous fair: Thyself how wonderous then,
Unspeakable! Who sitt’st above these heavens
To us invisible, or dimly seen
In these Thy lowest works; yet these declare
Thy goodness beyond thought, and power divine.
우리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9월 어느 날 오후 이곳에 도착하였습니다. ‘밀턴의 의자’는 쉽게 찾을 수 있게 표지판이 잘 안내해 주더군요. 나도 이 의자에 앉아 사진 한 장 남겼습니다. 그리곤 아래를 내려 보았습니다. 낙원이라면 젖과 꿀은 아니더라도 맑은 냇물이 흐르고, 몇 무리 초식동물들이 한가롭고 평화롭게 풀을 뜯으며 또, ‘기화요초 난만 중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이 날아나듯’ 새들이 지저기는 이쁘게 꾸며진 정원을 상상하겠지요. 그런데 눈 아래 펼쳐진 정원은 텅 빈 공간이었습니다. 가운데 큰 저택 앞에 주차해 있는 차들도 거슬리고요. 넓은 공원을 나누듯 중간을 가로질러 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을 뿐 축구장과 같은 잔디밭이었지요. 이 보다는 밀턴의 집(Milton’s Cottage)이 더 이쁘게 꾸며져 있더군요.(사진 1, 해글리 공원 밀턴의 의자) (사진 2, 밀턴의 집, 엽서)
중앙이 텅 빈 것이 영국식 정원의 특징이죠. 베르사이유 궁의 정원으로 대변되는 인공적, 기하학적으로 잘 다듬어진 프랑스식 정원이나 선남선녀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멋있는 테라스가 있는 이탈리아식 정원과는 달리 별다른 장식이 없고 담장을 따라 나무들이 있고 그 밑에는 화초를 조금 가꾸고, 그리곤 가운데는 잔디만으로 휑하게 비워있는 게 영국식 정원입니다. 밀턴의 집도 대지가 넓지 않지만 중앙은 잔디밭으로 가꾸어 두었군요. 이것이 밀턴이 그린 낙원일까요? 밀턴이 위에서 읊은 바와 같이 하나님의 경이롭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작품이며 그 위 천상에서 아래 낙원(에덴동산)에 있는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고 혹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면서 굽어보며 미소 짓는 곳으로는 조금 초라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게 천상의 이미지로 나의 머리에는 굳어진 듯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곳이 있을까요?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정상에 올라 안개가 자욱이 서린 계곡을 내려 보면서 비슷한 기분에 잠길 겁니다. 오륙도 어린 섬들이 낙조에 젖어 있고 연찬에 겨운 배들이 가물가물 돌아오는 한가한 어촌의 모습이나, 혹은 초여름 종일 논밭 일을 마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저녁 종소리를 들으면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소를 몰고 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농부의 눈에 비친 주변의 풍경도 이와 비슷한 감흥을 주지 않을까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이같은 이미지를 주는 것은 골프장입니다. 텅 빈 골프장 경개 좋은 홀의 벤치에 앉아 낙조를 보면 밀턴의 의자에 앉은 기분을 느낍니다. 22년 전 집사람이 수술하고 미국 애들 있는 곳에서 항암제 치료를 받은 뒤 할 수 있는 운동이란 걷는 것 밖에 없었지요. 방학 중 미국에 가서 ‘그래, 같이 걷기라도 하자’라며 시작한 것이 골프입니다. 골프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진데다, 그래서 50을 넘어서야 이상한 상황에서 시작한 골프라 크게 즐길 수는 없었지요. ‘한국문화사’를 강의하던 미네소타 대학의 골프장은 15년 동안 ‘강사’ 대우를 해 주어 비용도 둘이서 30불 정도였습니다. 이곳 17번 홀 벤치에 앉아 울창한 숲 뒤로 떨어지는 석양을 바라보면 ‘여기가 천국이네, 그런데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까?’라는 상념에 빠지곤 했지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당시에 쓰기 시작한 이 미완의 글에 17번 홀을 묘사한 메모가 남아 있군요.) 요즘은 일 년에 한두 번 치는 게 고작입니다.
7월 20일 비속에서 half bag 두 개를 들고 팔 근육 운동하는 셈치고 남해 행 버스에 올랐지요. 비 확률이 60-80%라 방에서 밖을 내다보면 안개 낀 골프장이 바로 낙원 같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운이 좋으면 이 낙원을 걸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남해에 도착하니 골프장만이 내가 상상하던 낙원이 아니더군요. 7월 중순 한창 물오른 벼 잎으로 덮인 들판이 낙원 같이 정겨웠습니다.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오후에 비가 그쳐 주변을 한 바퀴 걸었습니다. 남해는 마늘의 고향이라 5-6월에 벌써 수확을 했지만 아직도 마늘 냄새가 대기 중에 남아 있는 것 같고 특히 마늘을 심었던 밭 옆을 지날 땐 진한 향이 다가오군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히 범접하지 못하겠지요. 드라큘라도 마늘을 피하는데 하물며 코로나 정도야 쉽게 물리칠 것 같더군요. 수확을 앞둔 콩도 보이고 깨는 한창 꽃을 피우고 있고,.... 고구마는 이제 막 뿌리를 내린 듯 이번 비로 싱싱하게 뻗어 나가더군요. 집사람이 저 고구마 줄기를 걷어 올리면 밑에 고구마가 달려 나오느냐고 묻네요. 이제 뿌리를 내렸는데 고구마를 먹으려면 늦가을까지는 기다려야죠.
논둑을 걸으니 물방개 큰 놈도 보이군요. 이놈은 논에 흔한 일반 방개보다 크기도 하거니와 희소성이 높아 잡으면 고무신을 벗어 물을 담고 조심스럽게 집으로 ‘모셔’갔지요. 그런데 몇몇 논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지군요. 벼 잎 위로 훨씬 자라 ‘피’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논은 4분의 1이 논의 잡초인 피로 덮여 있었습니다. 피를 그냥 두면 벼에 갈 영양분을 빨아 먹어 벼의 성장이 느려지고 비실비실 해집니다. 그래서 논농사에서 가장 성가신 것이 ‘피’를 뽑는 논메기입니다. 모심기를 마친 초기에는 ‘벼 잎’과 ‘피 잎’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모양도 같고 성장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이죠. 나의 기억으로는 마지막 김메기 하던 8월 중순에도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은데, 요즘 피는 7월에도 이렇게 크게 자라나? 새로 들어온 씨앗에 묻어 온 종류인가? 그런데 나는 한 눈에 피를 찾아 낼 수가 있습니다. 피는 잎 가운데 가느다란 흰 줄 같은 게 보이지요. 초등학교 때 학교 논에서 모내기부터 나락 벼기까지 논농사를 3년간 해 본 경력이 있지요. 이 피란 놈은 가을이 되면 훌쩍 커버려 그대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야기를 돌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게 무엇일까요?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고통보다 견디기 힘들다고 합니다. 참기 어려운 육체적 고통으로는 여성들에겐 출산을 꼽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출산 후 아이를 보는 순간 행복으로 변하면서 곧 잊힌다고 하죠.(맞는 말이죠?) 그러면 남자에게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은 무엇일까요? 군대에 입대하여 첫 훈련받을 때? 남자들은 살아가는 과정과 경험이 다양하여 한가지로 꼽기는 어려울 겁니다.
나는 감히 ‘마지막 김메기’라 말하고 싶습니다. 보통 8월 중순 광복절 전후까지 김메기를 3-4 차례 합니다. 초기에는 벼가 자라지 않은 논바닥을 슬슬 긁으면서 물에서 자라는 잡초(水草)와 이제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피를 뽑아내면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김메기를 할 때가 되면 벼가 애들 무릎을 넘어 허리 밑까지 옵니다. 이때가 되면 또 해충 새끼들이 나오기 시작하여 휘발유 냄새가 나는 살충제도 뿌립니다. 내가 논메기를 하던 시절에는 제초제는 별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머리도 극성을 부릴 때입니다. 논일을 끝내고 나오면 발등이나 종아리에 몇 마리 붙어 있지요. 이놈들을 떼어내면 피가 나옵니다.
그러나 참기 어려웠던 것은 거머리나 휘발유 냄새가 아닙니다. 8월의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 허리를 굽히고 역겨운 휘발유 냄새를 맡으면서 피를 뽑으면 (뿌리 채로 뽑아내려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이제는 자랄 대로 자란 벼 잎이 목덜미를 스치죠. 마치 면도날로 목 부위로 베는 것 같습니다.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따가운 상처를 이기지 못해 진흙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목덜미를 만지게 되지요. 이게 따가운 햇살에 바로 말라버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쩍쩍 갈라지면서 고통은 배가 됩니다. 그러면 또 진흙 손으로 목을 만지고, 진흙은 말라 갈라지고.... 지금도 잊히지 않는 육체의 고통입니다. 일이 끝나 고랑에서 몸을 씻고 나오면 목에는 벼 잎에 베인 자국들이 마치 훈장인양 보이지요. 부근 냇가에서 천렵으로 잡은 새끼 붕어와 풋고추를 안주삼아 한잔 하던 선생님들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이야기가 낙원에서 논메기로 흘렀군요. 농촌의 일손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피’일 겁니다. 옛날이라면 상상 할 수 없는 정경이었으니까요. ‘논을 이렇게 내버려두고 있단 말인가?’라고 동네 어른들이 호통을 쳤을 겁니다. 아니면 서울 사람들이 논을 사두고 놀릴 수 없어 모내기만 하고 그대로 내팽개쳤기 때문이겠죠. 에덴에서 쫓겨난 인간들이 잃어버린 낙원(paradise lost)을 현세에서 찾아보려 했으나 낙원을 복원하지(paradise regained) 못하고 황폐한 채로 남아 있는 모습이군요. 낙원을 찾아 온 나그네에겐 쓸쓸한 정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신 비 온 뒤 벌긋케 물던 남해바다의 노을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무지개를 곧 내릴 것 같네요.(사진 3, 4, 석양에 벌긋케 물던 남해바다.) (2020.7.24.)
사진 1, 해글리 공원 밀턴의 의자에 앉아서
사진 2, 밀턴의 집
사진 3, 4, 석양에 벌긋케 물던 남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