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오동 심은 뜻은
‘벽오동 심은 뜻은’은 김도향이 작사 작곡하여 부른 대중가요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 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잔별아 쏟아져라
카 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달맞이 가잔 뜻은
님을 모셔 가잠인데
어이타 우리님은
가고 아니 오시느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 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잔별아 쏟아져라
카 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뜨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그런데 이 노랫말의 바탕은 작자 미상의 시조다. 그 시조의 전문은 이러하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一片明月)만 빈 가지에 걸렸세라.
이 시조를 이해하려면 먼저 벽오동과 봉황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봉황은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보통은 그냥 붙여 읽어 하나의 새처럼 생각한다. 봉황은 왕의 상징으로 쓰였다. 봉황은 용과 짝을 이루는 존재로도 전해지며, 왕조의 번영이나 성군의 출현을 알리는 신성한 징표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는 성군의 덕치를 찬양하는 노래와 궁중무용에도 봉황이 등장했고, 궁궐 기와와 건축 장식, 비녀·부채·악기 같은 공예품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전국시대 제자백가 장주(莊周)가 쓴 『장자』의 ‘추수’ 편에 “남방에 원추(鵷鶵)라는 새는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는 구절이 나온다. 원추는 상상의 새 봉황을 말하며 봉황이 앉아 쉬는 상서러운 나무가 오동(梧桐)이다. 연실(練實)은 빨라야 60년에 한 번 맺힐까 말까 한 대나무 열매이며, 예천(醴泉)은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만 솟아나는 샘을 말한다. 한마디로 봉황은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에만 나타난다는 전설의 새다.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와 예천(醴泉)의 물을 찾는다는 새인 것이다. 벽오동과 봉황이 같이 쓰인 이유가 이러하기 때문이다. 봉황이 깃들게 하기 위하여 벽오동을 심는 이유다. 일부 설화에서는 죽음 뒤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재생의 이미지까지 더해져, 길상과 영원한 생명력을 뜻하는 상징으로 확장되었다.
앞의 시조는 성군을 맞이하기 위하여 봉황이 서식하는 벽오동을 심었더니, 오라는 봉황은 날아오지 않고 그 가지에 밝은 달만 걸려 있다는 내용이다. 위대한 성군이 나타나 치세하는 태평성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된 이세보(李世輔)의 작품이 시가(詩歌) 박씨본(朴氏本)에 전한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 올까 하였더니
봉황은 아니 오고 오작(烏鵲)만 날아든다
동자야 오작 날려라 봉황 오게.
벽오동을 심어 놓고 봉황이 날아오기를 기다렸더니 봉황은 오지 않고 까마귀와 까치만 날아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동자야 저 까마귀 가치들을 날려 보내 버려라, 봉황이 날아오게란 뜻이다. 이 시조 역시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내용이다.
또 송강 정철의 시조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있다.
다락 밖에 벽오동 있건만
봉황새는 어찌 아니 오는가?
무심한 조각달만이 한밤에 홀로 서성이누나.
송강이 시를 짓던 식영정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호에 벽오동이 많이 심어져 있다. 선비들이 글공부하는 서원에는 항상 벽오동을 심어 좋은 임금이 나와 태평성대를 기원하고 곧은 선비 정신을 가다듬기 위하여 시에 자주 인용하였다.
참고로 오동나무와 상주가 사용한 상장(喪杖, 지팡이)과의 관계에 대해 간단히 덧붙인다. 아버지의 상장으로는 대나무가 쓰였고, 어머니의 상장으로는 오동나무가 쓰였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뜻으로, 고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우주관에 따른 것이다. 아버지의 상장은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대나무를 짚은 것이다. 어머니의 상장은 오동나무 지팡이 아래쪽을 네모로 깎아서 사용하였다. 네모는 땅을 상징한다는 우주관에 따른 것이다. 아버지는 하늘, 어머니는 땅이라는 상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오동나무를 어머니의 상장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동나무 동(桐)이 같을 동(同)과 발음이 똑같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같다는 의미이다. 오동나무가 없는 경우는 버드나무가 쓰였다고 한다. 버드나무 류(柳) 자가 같을 류(類) 자와 발음이 똑같기 때문이다. 이 역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같다는 것이다. 오동나무와 동일한 상징이다.
다음은 오동동타령을 보자.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 비 오는 밤 낙수물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오동동타령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대중의 아픔을 달래며 큰 사랑을 받은 대중가요다. 작사가 유호가 글을 쓰고, 작곡가 한복남이 곡을 만들어 가수 황정자가 부른 이 곡의 배경과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전쟁 직후 사회는 전란의 상흔과 빈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시름을 잊게 해줄 밝고 흥겨운 유행가가 절실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오동동을 흔히 여수의 오동도를 연상한다. 나도 학창 시절에 오동도에 수학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한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곡의 무대가 된 ‘오동동(梧桐洞)’은 경상남도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유명한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마산 오동동은 항구도시의 번화가이자 요정과 술집이 밀집한 유흥가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름을 달래던 공간이었다. 1950년대 마산 오동동은 술집이 많았던 것이다. 요정이 있었고 요정에는 기생들이 술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오동동타령은 마산 오동동 지역 기생들의 질펀한 삶과 술, 사랑, 바로 옆의 푸른 합포만 바다와 연결되는 남녘의 구수한 민요풍 가요다. 신민요풍의 경쾌한 5음계 가락과 쾌활한 리듬을 더해,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웃음과 흥을 되찾으려는 대중적 열망을 반영하여 탄생한 노래가 오동동타령이다.
여기의 ‘오동동’이라는 단어는 가사 속에서 크게 세 가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실제 지명인 마산시 오동동(梧桐洞)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예로부터 오동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가사의 공간적 배경이 된다. 둘째 술자리나 소리판에서 북이나 장구를 칠 때 나는 ‘오동동 둥둥’ 하는 흥겨운 악기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이다. 셋째 의태어로 쓰였다. 님이 그리워 가슴이 졸여지거나, 술기운과 흥에 겨워 가슴이 ‘오동동 둥둥’ 뛰어오르는 심리적 상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니까 오동동은 마산의 술집 거리 오동동, 오동잎이 떨어지는 소리나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또는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 등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동동주’의 ‘동동’과 발음을 맞춘 언어유희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노래의 첫머리 ‘오동추야’는 오동추라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오동추야(梧桐秋夜)다. 곧 오동잎이 떨어지는 가을밤이라는 얘기다. 오동동타령의 오동동을 한자로 하면 오동동(梧桐洞) 외에 오동동(梧桐動)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오동잎이 떨어지는 장면을 표현하는 의태어에 발음의 기교를 넣은 노랫말이라 할 수 있으므로, 고려가요 ‘동동’에 나오는 ‘아으 동동(動動)다리’와 같은 맥락의 후렴구로도 볼 수 있다.
다음은 민요 신고산타령을 보자.
신고산이 우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에
구고산 큰애기 반봇짐만 싸누나
어랑어랑 어허야 어야 더야 내 사랑아(후렴)
삼수갑산 머루 다래는 얼크러설크러졌는데
나는 언제 임을 만나 얼크러설크러지느냐
(후렴)
가을바람 소슬하니 낙엽이 우수수 지구요
귀뚜라미 슬피 울어 남은 간장을 다 썩이네
(후렴)
신고산타령은 함경도 지방의 신민요로 ‘어랑타령’이라고도 한다. 노래의 후렴에 ‘어랑어랑’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신고산타령은 개화기 무렵에 등장했다고 추정하는데 작사자와 작곡자는 모르고 가사 앞머리를 따라 ‘신고산타령’이라 부른다.
그런데 첫머리에 나오는 신고산이 설악산이나 금강산처럼 동해안 어딘가의 높은 산인 줄 아는 이가 많다. 함흥으로 향하는 기차의 우렁찬 기적 소리가 산을 무너트릴 지경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고산은 산 이름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新)고산은 함경남도 안변군 고산면(高山面) 일대에 철도역이 들어서면서 새롭게 형성된 동네를 지칭한다. 마을 외곽에 역이 들어서면서 조성된 신시가는 신(新)고산으로, 원래 마을은 구(舊)고산으로 고쳐 불렀다. 역이 생기면서 고산의 중심지가 신(新)고산으로 이동한 후, 기존의 고산 마을은 구(舊)고산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경원선이 함흥까지 연결되고, 굉음을 울리며 달리는 철마를 보며 시골 처녀가 대처에 대한 동경에 가슴이 설렌다는 노래로, 둘째 소절 ‘구고산의 큰애기 빈 봇짐만 싸누나’에 답이 있다. 개화기에 급변하는 사회상을 가사에 담았다.
또 노랫말에서 추임새로 쓰인 어랑은 민요에 흔히 등장하는 ‘어기여차’, ‘아롱다롱’ 같은 단순한 추임새가 아니고 함경북도에 있는 실제 지명인 경성군 어랑면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