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정치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하고 있다. 윤리수준이 낮아서 권력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는 사심이 강한 사람 일수록 정계에서 출세하는 경향을 부인할 수 없다. 입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지만 정치인들은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공동체전체의 이익보다 우선 자기 가족, 자기소속당 그리고 자기지역의 이익을 뒷구멍으로 챙기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정치계에도 경쟁이 있다고 하지만 노력과 능력에 따라 우열이 판가름나는 그런 구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익 정신에 투철한 엘리트들은 정치를 외면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위에 합당한 인격과 소양을 갖춘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정치의 또다른 병폐는 참가자들이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페어 플레이는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정정당당한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승리했을 때는 승자는 패자에게 관대하게 아량을 베풀고, 패자는 승자를 존중해 주는 그런 풍토를 말한다. 여기서 적장을 심복(心服) 시키기 위해 일곱번을 용서해준 제갈량의 고사를 교훈삼아 소개합니다.
유비가 백제성에서 죽을 때 소수민족의 지도자인 맹획(孟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서남지구의 일부 부족들을 일으켜 촉나라에 대항했다. 제갈량은 식량과 말의 먹이를 비축하며 꾸준히 병마를 훈련시켰다. 이렇게 2년간 노력한후 제갈량은 친히 맹획 토벌작전에 나섰다.
토벌전에 나설 때 참모인 마속이 제갈량에게 말했다.
‘맹획이 있는 곳은 지세가 험준하고 성도와 거리가 멀어 오랫동안 조정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공께서 그를 무력으로 패배시키고 잘못을 뉘우치게 하면, 그는 내일 또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니 성을 공격하여 얻은 것은 하책(下策)이고, 심리전으로 기를 꺾는 것이 상책(上策)입니다. 제생각에는 이번 출정은 그들을 소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심리를 정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제갈량의 생각도 마속의 생각과 같았다. 제갈량은 대답했다. “그대의 건의가 좋소이다. 내 반드시 그렇게 하리다.”
한편 맹획은 제갈량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인마를 조직하여 저항에 나섰다. 제갈량은 맹획이 힘이 쎄고 용맹하며 성격이 곧고 호방하여 한번 한 말은 두 번 하지 않으나 계책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알고 있었다. 제갈량의 머리속에는 점차 맹획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작전계획이 구체화되어 갔다. 우선 전 군대에 맹획을 사로잡을 뿐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선봉대장 왕평을 불러 은밀하게 작전지시를 내렸다.
제갈량의 지시를 받은 왕평은 군을 이끌고 맹획의 진영으로 돌진했다. 맹획이 급히 나와 응전하자 이번에는 왕평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들판으로 달려 가는 것이었다. 맹획은 왕평이 수세에 몰려 도망가는 줄 알고 몹씨 기뻐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빠른 속도로 추격하게 했다. 맹획과 부하들이 산골짜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함성이 물리면서 양쪽에서 촉나라 군사들이 일시에 달려 들었다. 맹획은 순식간에 포획 당하여 이번에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갈량이 포승줄을 풀어 주더니 친히 그를 데리고 촉나라 군영을 돌아 보게 했다. 그러고 나서 맹획에게 물었다.
“그대가 보기에 촉나라 군의 실력이 어떠 한가?”
맹획이 오만하게 대답했다.
“내보기에는 그저 그렇습니다. 내가 이번에 패한 것은 매복전에 당했기 때문이지 직접 교전을 벌였다면 어느 편이 졌을 지 알 수 없지요.”
이에 제갈량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돌아가서 잘 준비한 뒤, 우리 또한 번 싸워 봅시다.”
몇 달사이에 제갈량은 연달아 세번이나 맹획을 사로 잡았다. 그때마다 제갈량은 맹획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맹획은 속임수에 당했다 느니, 운이 나빠서 졌다 느니 하는 구실을 달았다. 여섯번 째 포로가 되었을 때는 맹획이 먼저 선수를 쳐서 말했다. “만약 승상께서 일곱번 째로 나를 붙잡으면, 그때는 진정으로 굴복하고 영원히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제갈량도 한술 더 떠서 받아 쳤다.
“나도 다음에 그대를 사로 잡는다면 결코 석방하지 않을 것이오.”
맹획이 일곱번째로 잡혀왔다. 제갈량은 맹획을 만나지도 않고 아래사람을 보내 자신의 뜻을 대신 전하게 했다.
“승상의 특별명령에 따라 내가 와서 너를 석방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할 수 있다면 또다시 돌아가서 병력을 모아 결전하여 능히 승상을 이길 수 있겠는가?”
맹획은 그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승상 께서 저를 일곱번이나 포로로 잡아서 일곱번을 놓아주셨습니다. 승상처럼 이렇게 인의를 베푼 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마음 깊이 탄복하여 절대 승상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제갈량은 맹획을 비롯하여 부족의 두령들에게 자기 땅을 잘 관리하게 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도록 했다. 또한 소수 민족 간의 충돌을 피하고 군비지출을 줄이기 위해 관청을 두지 않았으며 한명의 군사도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포로에서 풀려난 맹확은 즉시 각부족의 두령을 소집하고 매우 감격해하며 말했다. “촉나라 승상은 참으로 모략이 뛰어난 사람이오. 그가 훈련해 낸 병사들과 기마는 하나같이 슬기롭게 잘 싸웠소. 나는 다시는 그들을 적으로 대하거나 군사를 일으켜 난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오.
맹획은 진정으로 제갈양의 사람 됨됨이에 심복(心服)하여 충심으로 그를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심복(心服)은 심열성복(心悅誠服)의 약자로 그 사전적 정의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정성을 다하여 순종함’ 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의 신념과 태도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순간적 형세의 유불리에 따라 조변석개(朝變夕改) 이므로 상대방을 심복 시킬 정도로 중후하고 견고하지 못한 것이 폐단이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여야가 타협으로 공평하게 어떤 사안에 대해서 협상하여 절충안을 도출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관철했다고 착각할 정도로 격려해주는 사후 분위기 유지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측에서 협상을 파기하거나 쟁송을 벌이면 관계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걷게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우호적인 격려와 박수가 없이 오로지 경직된 태도로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선명성 경쟁을 할 경우 파국은 불을 보듯 뻔 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없이 오로지 자기 주장에 매몰된 유아적인 태도로는 상대가 있는 협상에서 아무런 생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오세영 시인의 “마른 하늘에서 치는 박수소리”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마른 하늘의 박수소리’란 자연현상인 천둥의 시적인 상징 언어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박수란 대개 감동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요무대에서 김동건 아나운서가 특정가수를 소개하며 “박수가 필요 합니다”고 할 때는 “이번에 나오는 가수가 여러분에게 틀림 없이 감동을 선사할 터이니 미리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정도로 의미를 부여 할 수 있지 않을 까 싶습니다. 일상생활의 경우 박수란 통상 상대방의 행위에 대한 묵시 적인 동의 또는 지지를 함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박수는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많을수록 우호적인 관계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수에 인색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EQ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EQ가 부족한 윗사람을 아랫사람이 멋지게 한방 먹인 통쾌한 일화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한음식점에 유명한 주방장이 있었다. 그가 구워 내는 오리고기는 수많은 미식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음식점 주인 역시 그의 요리솜씨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주방장은 내심 주인이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늘 불만이었다.
어느 날 주인은 먼 곳에서 온 손님을 대접했다. 몇 가지 요리가 있었으나 그 중에 오리요리가 으뜸이었다. 주인은 오리다리 하나를 집어서 손님에게 권했다. 그런데 다른 한쪽 다리가 보이지 안았다. 그래서 주방장에게 물었다.
“오리다리 하나는 어디 갔나?”
그러자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는 오리 다리가 하나뿐입니다.”
주인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손님 앞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주방장을 추궁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손님이 떠난 후 주인은 주방장을 따라 오리 우리에 가 보았다. 마침 저녁때라 오리들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다리 하나로 몸을 버티고 서서 잠을 자고 있었다. 주방장은 오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보십시오. 오리들이 모두 다리가 하나뿐이잖아요.”
주인은 오리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 손뼉을 쳤다. 그러자 오리들이 들고 있던 다리를 내려 놓았다.
이때 주인이 주방장에게 “여보게, 오리 다리가 모두 둘이 아닌가?”
주인의 말에 주방장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박수를 쳐야만 다리가 두개 됩니다.
평소 자신에 대한 주인의 격려가 아쉬웠던 주방장이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박수는 ~~에 대한 반응으로 대개 사후적으로 치루어 진다. 그러나 가요무대의 가수 소개 때와 같이 앞으로 있을 감동을 기대 하며 사전에 치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박수를 “칭찬 또는 격려”로 바꿔 인간관계에서 미리 격려하고 칭찬함으로서 상대방의 사기를 높여 나중에 기대하는 결과를 유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심복(心服)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교인을 심복 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생활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주일예배때 설교의 내용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사법정의에 대해서 국민을 심복 시키려면 자신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여당 의원의 비리에 대해서 더욱 엄격하게 파 헤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변명과 핑계로 나와 우리편은 예외이나 당신들은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개혁은 뜨거운 입김에 불과하고 결국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월 26일부터 시작하는 사순 제1주를 맞으며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도 상식수준에서 “용서와 관용”에 관한 아래 성서구절을 함께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번까지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 라도 용서해야 한다.”
이번 칼럼 글을 쓰면서 장스완 지음 “모략의 기술” (유아이북스 간)에 나오는 고사와 일화를 인용하는 등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