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두잔을 아주 천천히 마시고 일어섰다. 오면 가야하고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도 있는 법이다. 무엇을 위해 떠나고 무엇 때문에 돌아가는가? 한번의 떠남이 마지막 여행이 된 사람들이야 많았겠지만 돌아옴의 기약없이 작정하고 떠난 여행이 있었을까?
장수천은 소래산에서 발원하여 인천대공원 호수와 장수동, 만수동을 거쳐 담방마을에서 만수천과 합수하여 소래로 흘러들어가는 자연하천이다. 만수천의 오염이 심하여 합수점부터는 더러운 하수물이 흐르는 죽은 하천이었다. 오염으로 인해 주변주택가가 악취로 고생하자 만수천은 합수점까지 복개하여 버렸다. 이름하여 복개천이 탄생한 것이다. 만수동은 두줄기의 복개천이 존재한다. 하나는 남동구청쪽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복개천이고 오른쪽으로 만수동 성당쪽으로 올라가는 복개천이다.
하수물로 변한 하천을 정화하기 위해 관로를 묻어 상류의 물을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 많은 주택의 하수관을 다 모으지 못했는지 복개천에서 여전히 오수가 흘러나왔다.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기 위해 오하수를 모은 임시저장소가 담방아파트옆에 있는데 장마철만되면 넘쳐 흘러 하천을 오염시켰다.
이렇게 오염되고 버려진 장수천에 대한 자연하천 복원공사가 진행형이다. 갈수기에 물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인천으로 오는 상수도 원수를 인천대공원 호수에 보충하여 수량을 확보했다. 장수천 물은 주변에서 나오는 물 뿐만아니라 팔당에서 온 한강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장수천에서 나의 고향의 물을 만날 수 있다.
하상은 되도록 자연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엿보인다. 인공구조물을 최대한 줄이고 침식을 막기 위해 큰 돌을 하천변에 깔기도 했다. 갈대와 부들이 자라고 버드나무도 무성한 구간도 생겼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붕어, 피라미, 미꾸라지 등도 서식한다. 하천변으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를 만들고 일부구간은 벚나무 등도 심고 여러종류의 꽃도 심어 사시사철 꽃길이 조성되었다.
이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분리하지 않아 늘 위태롭던 길도 두길을 분리하여 걷는 사람들이 더욱 편해졌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한 토마토와 야채를 파는 판상도 있고 아파트촌으로 와서는 중간중간 정자들도 많다.
예전 만수3지구, 행정구역상으로는 만수6동을 담방부락이라고 했다. 밀물이 지금 금호아파트 입구까지 올라왔다가 썰물로 나갈 때 높이가 형성되었던 하천에서 물이 담방담방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담방마을이 되었다. 그러니까 의성어가 마을이름이 된 특이한 경우이다. 장수천은 하천을 막는 장애물이 거의 없다. 지금도 서창톨게이트 부근 수문을 닫아 놓지 않으면 조금사리때는 금호아파트 입구까지 바닷물이 올라온다. 몇 년전까지 물이 올라올때면 작은 숭어새끼들이 물에 뜬 부유물을 먹으려 뻐끔거리면서 올라오는데 꽤 근사한 볼거리였다. (지금도 그런 지는 관찰하지 못했다.) 만수천에 의해 오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밀·썰물이 수시로 드나드니 심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 서창2지구가 시작되고 생태공원으로 가는 입구에 만수하수종말처리장이 있고 이 물을 바로 장수천에 방류한다. 하수가 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화된 물은 물비릿내보다는 꽤꽤한 냄새가 여전하다.
구월동 농수산물시장옆과 남공공단과 연수구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 승기천이다. 이 하천도 장수천과 같은 복원과정을 거쳤는데 하천에 물이 흐르게 하기 위해 절대수량이 부족했다. 이를 위해 여기저기서 물을 꿔 왔는데 만수하수종말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이 일부 제공된다.
하수종말처리장 방류구옆에서 많은 강태공들이 낚시를 즐기고 있다. 이런 꽤꽤한 방류수에 무슨 고기가 있을까 의심했었는데 최근 이곳에서 낚시를 한 사람을 만났다. 밀물을 따라 오르는 망둥어가 많이 잡히고 장마철이나 비가 많이 오는 때에는 민물장어가 잡힌다고 한다. 숨이 막혀 죽을 정도가 아니면 생명들의 본능은 살아 꿈틀대는 것인가 보다. 바람기가 많은 사내들은 백지장 들 힘과 문지방 넘어갈 힘만 있으면 바람을 피운다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고 웃은 적이 있었는 데 고기들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탁류조차도 개의치 않는가 보다. 비유가 좀 거시기 하다.
인천대공원에서 소래습지생태공원까지가 인천둘레길 구간중 남동길이다. 여름에는 가로수가 없는 구간도 있고, 주변에 고속도로와 대형도로가 밀집되어 있어 소음이 심하고, 일부 구간은 차량이 다니는 길과 겹치는 등 약간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심속에서는 꽤 운치있는 길이다. 이 길과 연결된 시흥쪽의 호젓한 농로길도 있고 수산동쪽의 언덕위에 바람부는 언덕길도 좋다. 이 거미줄처럼 얽힌 농로, 시골길을 거의 다녀 보았다. 길이 분화되고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못배기는 이상한 성격 탓 일게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길에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고, 마음의 고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란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멀리가지 못할 때면 이 길을 걸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오늘 내가 걸은 길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속죄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충분했는 지 모르겠다.
첫댓글 가지 않은 자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음을 통감했네요.
항상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정리하셔서 책으로 발간하면 참 좋겠네요.
젊은 친구들에겐 역사서로서의 가치도 적지 않을듯.........
박순환님은 시리즈 대왕이시네요. 여행작가를 하시면 좋겠어요.
ㅎㅎㅎ 시리즈 대왕 멋진 표현입니다.
바람부는 언덕길은 배꽃 필 때 가면 나주 배밭 저리가라죠......
문지방 넘을 힘만 있어서는 바람 피기 쉽지 않을 텐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