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우연히 거리에서, 혹은 라디오에서 듣게 된 어느 노래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그 노래가 누구의 노래인지, 또 어떤 제목의 노래인지를 알아내 그 노래를 시간이 날 때마다 듣는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안을 하면서 듣고,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 약간의 시간을 이용해 듣고, 어쩌다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그 음악을 듣는 거죠. 물론 학교에 가거나 학원에 갈 때 역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그 노래를 듣고 심지어 그 노래를 듣고 있지 않을 때조차 저 스스로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렇게 노래를 듣다 보면 언젠가부터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 ‘증상’ 이란 것은 그 음악이 말 그대로 질리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단순히 그 음악이 지겨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사 하나하나가, 모두 완전히 ‘질리게’ 되어 더 이상 듣고 견딜 수 없게 되는 거죠. 그 노래는 물론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다른 노래들조차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게 되더군요.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선물해주신 비틀즈의 음반이 저에게 그랬습니다. ‘넘버원즈’ 라는 이름으로 발매된 그 앨범에는 비틀즈의 히트 싱글들이 수록되어 있었고 그 노래 중 ‘쉬 러브스 유’ 라는 제목의 노래는 저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책장 안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 음반 -오랬동안 잊고 있었던- 비틀즈의 음반을 찾게 되었을 때 저는 다시 ‘쉬 러브스 유’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안을 하면서,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에, 학교와 학원을 가면서 저는 ‘쉬 러브스 유’를 들었습니다. 물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노래를 듣지 못할 때는 저 스스로 노래를 흥얼거려 ‘쉬 러브스 유’는 제 생활의 일부가, 아니 제 생활의 전부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한달, 두달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노래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싫어져 더 이상 ‘쉬 러브스 유’는 물론 그 노래가 수록된 ‘넘버원즈’ 전체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 증상은 단순히 그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비틀즈의 음악이 나오게 되면 그 노래의 가사 하나 하나가 제 귀를 파고들어 저를 괴롭히더군요. 정말로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도사님의 생각이 난 것은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선물해주신 ‘넘버원즈’를 찾았을 때도, ‘넘버원즈’에 수록된 ‘쉬 러브스 유’를 미친 듯이 듣고 있었을 때도 아닌, 바로 증상‘이 나타날 때였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가장 친한 친구와 놀이공원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놀이공원 안의 조용한 식당에 앉아 밥을 먹고 있던 중 비틀즈의 ’렛잇 비‘ 가 흐르더군요. 그때 저의 ’증상‘은 꽤나 심각한 것이어서 저는 ’렛잇 비‘가 흘러나오는 식당 안에서 가만히 그 음악을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렛잇 비‘를 구성하는 음표 하나하나가 저를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밥을 먹다 말고 식당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저를 쫓아와 걱정스러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친구를 바라보며 전도사님이 떠올랐습니다. 귀를 살짝 덮는 숏컷을 한 친구를 보며 친구의 머리와 비슷했던 전도사님의 머리가 생각났습니다. 너무도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이 선물해준 음악을 듣던 중이 아니라 ’증상‘이 나타날 때 당신의 생각이 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너에겐 사람을 질리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고 말입니다. 전도사님께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저의 용모가, 제 목소리와 말투를 비롯해 고기를 먹지 못하고 비 오는 날에는 꼭 치마를 입어야 하는 등의 제 모든 특징들이, 행동들이 질려버렸다고 하셨지요. 저의 모든 것이 전도사님을 괴롭힌다고 하셨지요. 전도사님께서 저에게 느끼셨던 그때의 느낌은 저의 ‘증상’과 비슷한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일지라도 결코 완벽할 수 없다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아꼈던 그 아름다움이 결국엔 자신을 괴롭히게 될 것이라는, 그 것이 비슷한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음악이 그렇둣이 언젠가는 저를 한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저의 모든 것을 질리게 느끼게 만드는, 저에게는 그러한 특징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서 저를 떠나신 건지도 모릅니다.
제가 당신을 알게 된 것은 제가 고등부로 올라가게 되어 처음으로 고등부 반 배정을 받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우연히도 당신은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한 후 다시 교회를 다니려 했고 당신의 친구의 추천으로 우리 교회를 찾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한 반의 담임 전도사를 맡게 되셨죠. 처음에 당신이 제가 속한 반의 담임 전도사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아무리 대학생이라고는 하지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지 석 달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전도사 일을 맡긴다는 것은 파격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짧은 세월동안 만났던 어떤 남자들보다도 멋진 남자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고등부 반을 배정 받고 담임 전도사로 당신이 배정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당신은 알고 계시는지요. 같은 반의 아이들 역시 모두 저와 비슷한 기분인 것 같았고 다른 반의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우리를 부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 하실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의 어떤 점이 그리도 우리에게 호감을 주었는지 이해하지 못하실 태지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누구보다도 멋지고 세련되면서도 누구보다도 겸손하며 둔한 사람이니까요. 당신은 당신에게 수많은 여학생의 호감을 살 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실 태지요.
당신이 담임 전도사를 맡은 반에 속하게 되었다는 인연으로 시작된, 그 해의 첫 성경공부 시간을 저는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반 배정과 담임 전도사 소개를 끝낸 후, 당신은 교회 본당 뒤쪽의 잔디로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둥그렇게 앉힌 후 [가볍게 시작하자] 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그 날 당신이 부른 찬송가 83장과 221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당신의 모습과 당신의 목소리를, 당신이 부른 찬송가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당신의 반에 속해있던 유경이를 기억하시는지요. 그 아이는 언젠가 그때를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순간] 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만큼 당신은, 당신이 부르는 찬송가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날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부른 찬송가가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신은 찬송가 두 곡을 부른 후 당신은 성경책을 꺼내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에게 첫 성경 공부 시간의 주제로 창세기 가 아닌 누가복음을 제시하셨지요. 대부분의 성경 공부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내용을 다룬 창세기나 신약의 첫 복음서인 마태복음을 시작으로 커리를 짜는 것이 보통이지만 당신은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을 다룬 누가복음으로 저희 반의 성경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때 우리 반 아이들 중 누구도 당신이 정한 순서에 불만을 표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의아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 공부 시간들이 창세기로부터 시작해 구약의 반도 제대로 끝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순서도 나쁠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당신은 누가복음 1장 30절부터 몇 절인가를 더 큰 소리를 외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에게 성경을 왜 예수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지, 왜 누가복음이 중요한지를 한동안 역설하셨습니다. 저는 성경 공부 시간 내내 당신의 말을 한자도 빼놓지 않고 들었습니다. 중요하다 싶은 말들은 필기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저에게 성경을 왜 예수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지는, 왜 누가복음이 중요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건 당신이었으니까요. 그 날 당신을 알게 된 이후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당신이었던 겁니다.
그 날 이후 제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당신은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에서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아 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외모는 청년부의 대학생 오빠들 중 누구보다도 수려했으며 -사실 저는 남자를 사귀는 데 있어 외모는 그리 중요한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중요한 조건이 되느냐의 문제와 그것이 매력적인 조건이 되느냐의 문제는 분명히 다르더군요. - 교회의 누구보다도 좋은 대학의 좋은 학과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의 그리 크지 않은 교회였기에 당신이 다니는 대학만큼 좋은 대학을 다니는 사람은 드물었던 것입니다. 목사님마저 저희같이 입시를 앞둔 여고생들이 보기에는 3류 일수밖에 없는 신학대학을 나오셨으니까요. 또한 당신은 예배시간에 대학생 언니들을 제치고 피아노 앞에 앉을 정도로 피아노 실력이 뛰어났고 목소리 또한 미성(美聲)이여서 간혹 당신이 피아노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실 때면 저희는 저절로 마음 속이 신앙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에게 선망 받았던 이유는 단지 이런 외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저희가 보기에도 그 누구보다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당신은 교회에서 열리는 모든 예배와 기도회에 빠지거나 늦는 일 없이 참석하셨고 예배시간 외의 활동에도 누구보다 열심이셨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친구들에 말을 따르면 당신은 일요일 새벽, 누구보다도 먼저 교회에 나와 예배당을 깨끗이 청소했고 예배가 끝나고 나서도 늦게까지 남아 당신보다 어린 신자들을 하나 하나 챙기셨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모범적인 신자였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이 직접 희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유능했습니다. 당신이 수업을 맡은 반의 성경공부 시간은 그 어느 반보다도 충실히, 그리고 빠르게 진도가 나갔고 학생인 우리들의 성취도 역시 그 어느 반보다도 높았습니다. 물론 그 성취도는 성경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신앙적인 목적이라기보다는 당신의 관심을 끌기 위한 욕심에서 나온 것임을 굳이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은 영문학 전공생답게 영어 실력 역시 뛰어났습니다. 당신이 교회를 찾은 외국인과 유창한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본 우리는 당신에게 어려운 영어 지문을 가지고 가 해석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당신은 그런 귀찮은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또 우리의 영어 실력 부족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당신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영어 큐티 시간이나 영어 성경 해석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조금씩 발견해 가는 동안 당신은 교회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교회라는 곳은 오는 사람은 절대 막는 법이 없어서 상당히 개방적인 곳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보수적인, 폐쇄적인 공간이지요. 대부분의 경우에 교회라는 곳은 당신처럼 그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지 채 3개월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담임 전도사자리를 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말했듯이 그것은 분명 파격적인 일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담임 전도사자리를 맡으셨습니다. 그것은 청년부 회장이었던 당신의 친구의 강력한 추천 덕분이기도 했지만 진짜 이유는 당신은 이미 그 독실함과 유능함으로 교회 안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목사님이 당신께 가지는 신뢰는 대단한 것이어서 목사님은 청년부의 언니, 오빠들이나 우리 고등부 아이들 앞에서 당신의 독실한 신앙심을 한껏 추켜세우시곤 하셨습니다. 당신은 극히 짧은 시간에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사람들의 신뢰를 얻으며 교회의 중심적인 위치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이 나온 김에 우리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하고 싶습니다. 지루하고 긴 설교시간만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작은 불만조차 갖지 않을 만한 좋은 목사님이셨습니다. 목사님은 당신과는 달리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서울의 한 신학대학을 나오셨습니다. 아니 그 학교마저 학생운동을 하다 퇴학 당하셨다고 하더군요. 목사라는 직업은 변호사나 의사처럼 학위가 필요하다거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에 학위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학한 신학대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분이셨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네 동생들을 돌보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 우리 아버지세대 분들 세 명중에 한 명 꼴로는 갖고 있을 - 이야기를 군부 독재 타파를 위해 존경하는 교수님의 복음서 연구 강의를 거부해야 했던 이야기나 시위의 주동자중 한 명으로 검거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주님께 의지하며 고통을 이겨냈다는 이야기, 또 역시 시위의 주동자중 한 명이였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제적당했을 때 자신의 제적을 취소하라고 다시 시위를 벌이던 선후배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들과 함께 지루하게 되풀이 하셨던 것입니다. 그 날의 주제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을 말이죠. 그리고 그 설교의 마지막은 자신은 항상 자신을 검거해 고문했던 경찰들과 자신을 퇴학시키는 데 동의한 교수들과 힘들었던 학생운동의 끝에 결국 변절한 동지들을 자신은 진심으로 용서했으며 아직까지 그들을 변함 없이 사랑한다는,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자는 말로 끝났습니다. 그분의 일생은 오직 사랑과 용서, 그리고 예수님으로만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모범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신자셨고 어떻게 보면 정말 보기 드문 별난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교회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던 그 해 크리스마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욕하고 비난했지만 적어도 목사님만큼은 당신을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당신을 앞서서 비판해야할 위치에 있었던 목사님은 교회 안에서 당신을 비난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목사님의 일생이 오직 사랑과 용서로 가득 차 있어서가 아닐 것입니다. 목사님만큼은 진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목사님만큼은 당신을 알고, 이해하고 있어서인지 모릅니다. 당신을 알고 있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비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가 당신의 반에 속해 보낸 1년은 정말로 바람과 같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당신과 여름 수련회에 다녀왔고 가을에는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여름 방학이 끝날 즈음에는 당신과 저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학원에서 실시한 모의고사 성적이 나온 주의 주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험에서 전교 등수가 40등이나 떨어졌고 그 일로 부모님께 몹시 야단을 맞았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던 아버지는 저에게 교회를 가지 말라고 까지 말씀하셨죠. 저는 예배 후 성경공부 시간이 끝나고 교회 본당 뒤 잔디에서 당신을 앞에 두고 그만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제가 심란해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당신이 먼저 저에게 다가오셨죠. [소영아 무슨 일 있니? 얼굴이 어두워 보이는 구나.] 당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가 그만 저를 엉엉 울려버린 것입니다. 그 날 당신이 저를 안아 주신 것이 제가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곳에 당신과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날 이후 당신과 저는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향한 제 마음이 단순한 존경과 관심의 차원을 넘어 이성에 대한 분명한 사랑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역시 분명할 것입니다.
그 해 가을 당신은 교회에서 한 명의 전도사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당신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지 이미 1년 가까이 지나기도 했지만 당신이 보여준 독실함과 유능함은 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신뢰를 갖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던 어느 날, 당신이 학사장교로 뒤늦게 군대에 간 당신의 친구를 대신해 당신이 교회 청년부의 회장에 선출되던 날, 저는 당신께 제 마음을 고백하려했습니다. 줄곧 당신을 사랑해왔다고, 당신을 처음 만난 날, 제가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당신이 고등부의 전도사 일을 맡으면서 보여준 수완은 차라리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며 따르고 싶다고 고백하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그 날 당신께 드리려 준비한 제 편지에는 [당신을 따라 ‘나 아닌 우상을 섬기지 말라’ 라는 십계명 중 한 절을 외면서도 당신은 이미 저에게 하나의 우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라는 말이 쓰여있기도 했지요.
저는 토요일이었던 그 날 저녁, 교회에서 당신이 청년부 회장 선출 뒤풀이에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9시가 지나고 10시가 지나도록 교회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집으로 가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당신은 보통 매주 토요일이면 다음 날 새벽에 열리는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에서 주무시곤 했기에 그 날도 그러시리라 기대하며 저는 당신을 계속 기다리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을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성경을 읽기로 한 것은 10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방에는 제 성경책이 보이지 않아 저는 교회 본당 4층의 베드로 실로 올라갔습니다. 격주로 토요일마다 모여 함께 성경을 읽는 성경 통독부의 모임이 오후 4시쯤 그곳에서 있었는데 모임이 끝나고 성경책을 그곳에 놓고 온 듯 했기 때문입니다. 본당 1층에서 베드로 실이 있는 4층까지 수 십 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저는 줄곧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께 뭐라 말씀을 드리며 편지를 드릴 것인지,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고백을 한 후 집으로 달려가 버리는 것이 더 좋지는 않을까 하는 따위의 생각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과연 당신이 제 마음을 받아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그다지 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때 저는 당신이 제 마음을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전 그 때 당신이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당신과 저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신께 고백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전 당신에게 조금 더 특별해 지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제 마음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던 것입니다.
제 성경책은 예상대로 베드로 실에 있더군요. 저는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혹 당신이 교회로 돌아오신 건 아닐까 걱정하며 서둘러 베드로 실을 빠져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비워 깜깜했던 4층의 복도도 저를 서둘러 계단으로 내몰았습니다.
제가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본당 현관에 도착했을 때 당신은 현관 앞에 있는 계단에 앉아 계셨습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온 것을 알지 못한 듯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가방에서 당신께 드릴 편지와 선물을 꺼냈습니다. 그때까지도 제가 당신의 곁에 있는 줄 모르시던 당신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 소영이니? 웬일이야? 아직도 집에 안가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술에 취한 사람의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조금의 부끄러움이나 당황스러움도 없이 저를 담담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때 당신의 표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저는 한순간 당신이 술에 취해있다는 나의 짐작이 착각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 날 제가 어떻게 당신에게 제 마음을 고백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 가슴은 행여 그 소리가 당신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크게 뛰고 있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 귀에 들어 올 리 없었고 제 시선은 발목 양말 위에 스니커즈를 신은 당신의 발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날 제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제 입술 사이를 파고든 당신의 혀의 느낌과 제 코를 찌르듯 풍겨온 당신의 취기였습니다.
그 해 크리스마스까지 당신과 저는 두 번의 데이트를 했습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교회에서의 당신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당신과 저의 관계를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은 무척 곤란한 일이었기에 불평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서 당신은 저에게 조금의 신경도 쓰지 못할 만큼 바빠지셨습니다. 당신이 크리스마스 행사준비의 상당부분을 맡아 지휘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고등부나 청년부의 행사뿐만 아니라 당신의 관할 밖인 것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것은 바로 목사님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사랑밖에 모르시는 우리 목사님께서 그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사기를 당하신 겁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 날 여러 가지 행사를 열고, 자매 고아원의 아이들을 초청하고, 개척 30주년을 기념으로 더 크고 높은 십자가를 달고, 교회 이름으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보낼 교회의 자금을, 그만 사기 당해 버리신 겁니다. 교회는 당연히 발칵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한 전도사님들께서는 대책을 강구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전도사님들께서는 언젠가 [그 사람이 사기를 칠 리가 없네. 가까운 시일 내에 그 돈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네.] 라고 태평히 말하시는, 우리 사랑밖에 모르시는 목사님께 사태를 설명해 드리랴,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고 범인을 수소문하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셨습니다. 그분들은 저희가 준비하는 연극이나 찬송 같은 크리스마스 행사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상황을 잘 알지 못했던 우리로서는 눈앞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으신 전도사님들이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선 크리스마스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태평하셨고 목사님들께서는 갈팡질팡하며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저희는 그제서야 대학생 언니들에게 이야기를 전해듣고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청년부의 회장이었다지만 당신은 아직 어린 대학생이었고 교회에 온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으므로 목사님과 관련된 그때의 그 사건에 개입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다른 전도사님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직접 우리를 지휘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를 위해 초, 중, 고 별로 집행부를 만들고 각 부별로 찬송과 연극, 율동을 직접 준비해 연습을 시켰습니다. 또 당신은 알록달록한 장식물품과 나무를 구해와 트리를 만들었고 꼬마 전구로 교회의 구석구석을 이쁘게 꾸몄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당신은 정말로 한 명의 예수나 다름없었습니다. 눈앞의 닥친 크리스마스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다른 사건 때문에 크리스마스 행사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시던 다른 전도사님들과는 달리 당신은 오로지 크리스마스 행사에만 충실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행사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천지나 다름없을 정도로 중요한 행사였고 그만큼 크리스마스 행사에 온 노력을 쏟는 당신은 우리에게 예수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일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합창부는 네 개로 나눈 화음이 어설프게 나마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고 율동부는 율동은 물론 간단한 수화까지 안무의 하나로 익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연극만큼은 단 시간 내에 성과를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본을 구하고 소품을 만들고 특히 대사를 외우는 것은 결코 1주일의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제안한 것이 바로 작년 크리스마스에 했던 연극을 다시 한 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연극이라면 소품과 대본을 다시 구할 필요도 없었고 작년에 배역을 맡았던 아이들중 대부분이 다시 동일한 배역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사를 외우는 것 역시 수월할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연극이 작년에 이미 상당히 호평을 받아 교회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연극을 준비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당신의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준비는 순조로웠습니다. 행사의 첫 리허설이 열린 23일 저녁 우리는 하나의 기적을 보는 듯 했습니다. 불과 닷새 전만 해도 아무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던 행사들은 당장 공연을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맡은 파트를 준비하기 바빴던 우리는 리허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 없이 끝나자 모두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 누구도 그 짧은 시간에 행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둘러 쌓여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창세기’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요. 아무런 준비도 없던 상황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도운 당신은 아무것도 없던 우주에 천지를 창조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저에게 당신은 예수를 닮아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한 명의 예수를,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저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행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에 열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최종 리허설을 보시고는 매우 만족하신 표정으로 중, 고등부 아이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당신을 매우 추켜세우셨습니다. 사랑밖에 모르시는 목사님께서는 그 순간에도 무능한 자신과 당신이 비교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시는 듯 했습니다. 아니 사랑밖에 모르시는 목사님은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행사 준비가 되는 동안 그동안 혼란을 빚던 다른 부분들도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기를 친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전도사님들과 몇몇 신자 분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최소한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돈으로 새 십자가를 단 다거나 교회이름으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매 고아원의 아이들을 초청해 간식과 선물을 줄 정도는 되었습니다. 사건의 수습을 위해 교회 일에 크게 신경을 못쓰시던 다른 전도사님들도 눈앞에 닥친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열심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이제 와서 아무리 신경을 쓴다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별다른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유지된 것은 그분들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 한 분의 공이니까요.
크리스마스 행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기도와 간단한 찬양으로 시작한 행사는 율동부의 율동과 찬양부의 찬양, 목사님의 역시나 지루한 성경 말씀 시간을 거쳐 곧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연극이 시작할 시간이었습니다. 교회의 신자들과 그 가족들이 교회의 예배당을 가득 메웠고 한쪽에는 자매 고아원이 아이들이 모여 앉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시겠지요. 그 날 당신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혀 계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할 연극의 주연인 제가 그 때 교회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몇 시간 전 리허설 때만해도 분명히 무대 복을 입고 연극 리허설에 참여했던 제가 연극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 핸드폰으로 당신과 제 친구들의 전화가 수십 차례 전화를 걸려왔으나 저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어디 있니, 무슨 일이야] 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도 수십 통이 왔으나 저는 그것을 확인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원 응급실의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두 달 넘게 생리를 하지 않은 저를 의심하신 어머니께서는 그 날, 리허설이 끝나고 잠깐 집에 들린 저에게 임신 테스트기를 건내주셨습니다. 저 역시 생리가 너무나도 늦어져 혹시나 하고 의심을 하고 있었던 터라 무척이나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테스트기를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는 당신도 아시는 그대로였습니다.
그 날 저의 임신을 확인하신 어머니는 곧장 저를 데리고 교회로 찾아가셨습니다. 저희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으므로 아마 연극을 비롯한 모든 행사가 끝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주연인 제가 빠진 연극은 엉망이 되었겠지요. 저는 당장 당신에게 달려가 저의 잘못을 빌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어머니께서 무서운 표정으로 차안에 남아 있으라고 하셔서 차안에서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날 교회에서 어머님이 어떠한 행동을 하셨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어서 저는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의자의 시트 속으로 숨듯이 파고들었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당신이 술에 취해 제 입술을 훔치시고 성경 통독반의 모임이 있었던 베드로 실에서 제 몸을 만져주셨을 때 조금의 거부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제가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역시 조금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날, 제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어머니는 당신의 머리를 붙잡고 [개새끼] 라며 당신을 몰아붙이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이 저를 임신시켰다는 소문이 교회 전체에 퍼졌습니다. 당신은 교회에서 쫓겨나듯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사람들은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누구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의 관계가 처음인지라 당신의 사정 후에 무척 아파하고 있던 저를 뒤에서 끌어안으시며 당신은, 아직도 취기가 느껴지는 말투로 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당신이 우리 교회를 처음 찾은 것은 작년 크리스마스였습니다.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당신은 친구를 따라 우리 교회에서 준비한 크리스마스 행사를 보러오셨습니다. 그 날 당신은 저를 보신 것입니다. 그 해에 저는 중등부의 고등부가 함께 준비한 연극의 주인공인 마리아 역을 맡았었고 원래부터 그 배역에 욕심이 있었던 터라 큰 의욕을 가지고 많은 준비를 했었습니다. 당신은 풀린 눈으로 [그때 나는 무대에서 마리아를 보았다. 저 여자와 만나고 싶다는, 아니 만나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입대하기 전까지 다니던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집에서 한시간이 넘는 거리도 당신에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교회에서 보여준 당신의 모든 기적은 바로 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교회에서 그토록 독실하고 유능한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은 [네가 마리아였기에 나 역시 그에 어울려야 했다.] 라고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 교회에 다니기 전부터 누구보다 독실한 사람이었기에 ‘신앙을 이용하는 것’ 이 당신의 신앙과 양심에 걸렸을 것이고 마음에 없던 청년부 회장에 까지 당선되어버린 그 날에는 평생 입에 대어본 적 없던 술까지 드셨던 것입니다.
그 날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저의 마음을, 저를 얻으시고도 소리내어 우셨던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요. 저는 꺼억 꺼억 소리내어 우는 당신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면서 당신의 눈물의 의미가 분명한 후회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시작된 왜곡된 신앙이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후회하고, 자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그토록 독실했던 것이 모두 거짓이라 말했습니다. 당신은 순식간에 순진한 여학생을 꼬드겨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사탄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당신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저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순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을 뿐 누구보다 독실한 주님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저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당신은 수소문 끝에 당신을 찾아간 저에게 [네가 지겹다. 너의 모든 것이 날 괴롭혀서 견딜 수 가없다.]라고 소리치시며 저에게 다시는 당신을 찾아오지도 연락을 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전도사님, 저는 당신을 원망하지도 않고 당신에게 실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비틀즈의 ‘쉬 러브스 유’의 노래를 듣다가 느끼게된 증상처럼 당신에게 느껴졌다는 것 역시 슬프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사랑의 이유였던 당신의 능력과 신앙이, 당신이 보여준 기적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듯 그 기적에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저에 대한 당신의 사랑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이후 제가 처음으로 교회의 예배에 나갔을 때 저는 마치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각오한 일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본 다는 것은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일이었습니다. 순간 저 자신이 사탄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정말로 저는 사탄일지도 모르지요. 사막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 어쩌면 저는 당신을 시험한 사탄일지도 모르고 당신은 사탄에게 무너진 허무한 예수일지도 모르지요. 힐끔 힐끔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오랜만에 들어도 역시나 지루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잠깐 해보았던 생각이었습니다.
그 날도 목사님은 사랑을 외치고 계셨습니다. 당신이 사라짐으로 그 누구보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을 목사님은, 역시 사랑과 용서밖에 모르시는 분이어서 그 날도, 사랑을 외치고 계셨습니다.
저는 앉은자리에서 다 읽엇습니다.ㅎㅎ..사랑의 경험은 견딤으로부터 단련시키고 대책없이 무너져버린 성곽을 보는 쓸슬함을 보는 것.. 그런 것이 사랑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번 치루고나면 부질없는 희망으로부터 안전하게 착륙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매번 잘못 내려 앉으리라 직감해봅니다.
또한 목사님이 중퇴를 했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있을 수가 없으며 이도 신학대학 졸업자에 한하며 또한 목사 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에서 다음년도 임원진의 선출 시기는 11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 날의 임신 2개월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취약점은 갈등의 부재입니다. 1인칭 나레이터로 써내려간 글에는 아무런 갈등구조가 안보입니다. 그저 우리는, 전도사와 나, 나아가 목사님까지 다 그저 착한 사람들 뿐입니다. 그러면 읽는 독자는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어쨌다고? 너만 잘났다...... 이런식의 반응이 주를 이루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첫댓글 읽기 힘드시겠다 ㅠ.ㅠ 아무도 안읽으실듯 ㅠ.ㅠ
ㅎㅎ 반갑군요 일단 눈이 피로하긴 합니다 지금 복사중입니다 제 컴이 있는곳은 추워서 이대로 보질 못하거든요 ^^
저도 프린트 들어갑니다^^
저는 앉은자리에서 다 읽엇습니다.ㅎㅎ..사랑의 경험은 견딤으로부터 단련시키고 대책없이 무너져버린 성곽을 보는 쓸슬함을 보는 것.. 그런 것이 사랑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번 치루고나면 부질없는 희망으로부터 안전하게 착륙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매번 잘못 내려 앉으리라 직감해봅니다.
매우 사실적인 경험같은 글에 약간 지루함도 있엇지만 세밀한 관찰이 돋보엿습니다.사실의 전개보다 내면의 관찰이 더 세밀하게 이루어 졌더라면,,하는 생각도 잠시 햇습니다만. 저는 두이노에서 소문난 3류 관객이니 관계치 말고 흘리십시요.
관계치 말고 흘려 버리라는 말속에는 늘 뼈가 있음을 기억하시오 ^
사소한 오류부터 지적해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은 분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계속해서 남자주인공의 명칭이 전도사라고 나오는데 소설 내용적으로보자면 그는 전도사가 아니라 주일학교 교사가 맞습니다. 전도사는 반드시 신학대학을 나오거나 다니고 있어야 합니다.
교사가 맞다면 비록 3개월 밖에 안됐다고는 하나 이미 다른 교회에 다녔었고 그만한 능력이 된다고 보면 충분히 교사를 할수 있습니다. 그건 어느 교회든지 비슷할겁니다.
또한 목사님이 중퇴를 했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있을 수가 없으며 이도 신학대학 졸업자에 한하며 또한 목사 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에서 다음년도 임원진의 선출 시기는 11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 날의 임신 2개월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취약점은 갈등의 부재입니다. 1인칭 나레이터로 써내려간 글에는 아무런 갈등구조가 안보입니다. 그저 우리는, 전도사와 나, 나아가 목사님까지 다 그저 착한 사람들 뿐입니다. 그러면 읽는 독자는 짜증이 납니다. 그래서 어쨌다고? 너만 잘났다...... 이런식의 반응이 주를 이루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사를 진짜 악랄한 두얼굴을 가진 남자로 묘사를 하든지 아님 나를 어린 꽃뱀(?)으로 몰고 가든지 하다못해 목사를 돈과 여자를 밝히는 인물로 몰고 가 갈등구조를 튼튼히 세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하자면 다 읽고나니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떠오릅니다... 민요섭...... 잘 읽었습니다.
허걱? 그럼 이 소설은 모래위에다가 성을 쌓앗다는 말인데..편재님의 교회소식은 신뢰감을 1백퍼센트 갖고있기에 예리한 빨간볼펜에 끄덕끄덕..난 아주 정교한 스케치로 봣는데..이궁~
음~!.잘 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