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멘붕 사회
9월부터 창조절을 지키는 교회가 늘고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하늘의 기운이 변하는 시기이다. 이제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가을의 기운으로 이어진다. 24절기 중 가을로 분류되는 입추, 처서, 백로를 지나 차례로 추분, 한로, 상강을 맞는다. 포악한 무더위가 지나고 마침내 새로운 계절이 왔다. 요즘처럼 계절의 변화를 고대한 적이 있던가, 싶다.
가을은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종종 태풍의 위협은 이 시기에 집중된다. 계절의 변화나 생태계 파괴 혹은 기후 위기 이야기를 들으면 창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요즘 일상을 괴롭히는 것은 자연 현상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크고 작은 사고와 사건 그리고 인재든 천재든 쉴 새 없는 재난은 날마다 굿모닝이란 으례적인 인사말조차 실감이 난다.
그래서 밥은 제때 먹었는지, 잠은 근심없이 잘 잤는지, 매일의 안녕을 묻는 일은 당연해졌다. 순간순간 평안을 묻는 일이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샬롬’은 크게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말하지만, 일상의 안부를 묻는 표현이기도 하다. 성경의 용례에 따르면 ‘안녕, 건강, 화목, 심리적인 안정, 좋은 기분, 날씨’ 등의 의미이다. 과연 내 일상은 샬롬한가? 가까이 살면서 서로 오늘의 샬롬을 위해 기도하고, 형편을 살피며, 따듯이 위로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가?
최근 우리 사회를 긴장시키는 가장 큰 위험은 의료대란이다. 뜬금없는 2천 명 의대 추가정원 때문에 발목이 꽁꽁 묶인 것은 정부와 의료계 두 당사자만이 아니다. 온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잡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여당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를 6개월 만에 서서히 붕괴시키고 있다. 당장은 응급실 뺑뺑이로 드러나지만, 엉망이 된 시스템을 수습하려면 전망이 캄캄하다. 고스란히 피해자는 국민이고, 특히 소아와 노인이다.
게다가 신조어 딥페이크는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새로운 위협이 되었다. ‘딥러닝’(Deep Learning)과 ‘페이크’(Fake)의 합성어인 딥페이크는 가짜 이미지나 영상물을 의미한다. 어쩌자고 사람들은 최신의 기술적 진보가 실현한 인공지능(AI)으로 고작 인간의 몸을 해체하고 영혼을 파괴하려는 마음을 품었을까? 가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지만, 가해자는 너무 쉽게 자신을 숨긴다. 갈수록 사악해지는 악의 호기심은 우리 사회의 코앞에 닥친 비극적 현실이다.
일상의 삶의 자리와 사이버공간 모두를 위협한 것은 모두 인간이 벌인 억지스런 작용에서 비롯되었다. 두 사건 모두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늪에 빠졌다.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 사회의 지성, 법, 치안, 교육, 도덕의식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공동체 전체가 함께 공분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책임자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릴 일이다.
당사자들이 겪는 ‘멘탈 붕괴’는 내 탓도, 남의 일도 아니다. 심리적 안정이 무너져 버린 상태인 멘붕은 더 이상 당사자만의 문제일 수 없다. 외부로부터 오는 심리적, 물리적 충격과 공격 때문에 스스로 지탱할 수 없어 무너져 버리는 것은 한 사람의 불운을 넘어 우리 공동체가 겪고 있는 공통의 아픔이다. 비극은 예고없이 당사자와 마주했다지만, 그 위협의 파장은 어김없이 내 삶의 영역까지 기웃거리고, 넘실댈 것이다.
창조질서의 회복은 단지 환경개선이나 기후위기 대응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당연히 한 사람의 삶을 고치고, 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온 세상을 두루 치유하는 일이다. 개인의 경우든, 우리가 사는 세계이든 송곳같은 아픔은 모든 대응의 우선순위이고, 반경의 중심이 되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라면 두서없는 긴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대안을 찾고 있는가? 혹여 불순한 책임자들은 네 탓과 남 탓조차 지긋지긋해할 국민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노리는 것은 아닌가?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하늘은 푸르고 높아만 가는데, 연일 인재와 악재로 멘붕에 빠진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언제쯤 헝클어진 구김살을 벗을 수 있을까? 무심한 교회는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내일의 집’으로서 역할이 가능할까? 날마다 느낌표 대신 물음표만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