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기엔 손해 보는 것 같이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아서 남편에게 한 마디 툭 던졌습니다.
"남산에나 다녀올까요? 지금쯤 벚꽃이 만개했을텐데..."
"벌써 다 졌지,아직 있을라구..."
"아니죠,여기보단 더 늦을 걸요.이제 한창 보기 좋을 땔텐데..."
"그럼 가보자."
웬일로 선선히 내 제의를 받아들이는 남편입니다.
분명히 안간다고 할 거란 짐작으로 그저 던져본 말에 동의해준 남편이 고마웠고, 급한 성미에 꾸물거리면 남편 마음이 변할까 봐서 세수만 한 민낯으로 간단하게 배낭을 지고 따라나섰습니다.
남편과 나란히 남산 길을 걷는 것은 40년만에 처음입니다.
평소 때 양재천 산책도 걸음속도가 달라 함께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역에 하차,6번출구로 나와 조금 걸으니 남산 입구 계단이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갈 땐 힘들지만,그 다음부터는 탄탄대로여서 나이드신 분들이 걷기엔 좋은 곳입니다.
"천천히 가야돼요,난 빨리 걷지 못해요."
몇 번인가 부탁을 했는데도 남편은 항상 앞질러 저만큼 가고 있고 나는 뒤쫓아 가느라 힘이 듭니다.
개나리,진달래 벚꽃으로 화사한 남산은 상춘객들로 붐빕니다.
'흡연위반 벌금 10만원'이란 입간판이 보입니다.
어쩐지 역한 담배 연기냄새가 안나더니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걷는데만 열중하는 사람처럼 열심히 걷고만 있습니다.
나와 보폭을 맞추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걸으면 좋으련만,말을 하면 벌금을 물린다는 조항이라도 있는듯 걷고만 있는 남편은 낭만도 멋도 없는 사람입니다.
군데군데 앙증스레 피어있는 야생화를 디카에 담고 싶은데,남편을 따라가느라 마음만 바쁩니다.
사실,아직은 남산행이 무리일지 모르지만,5월초에 있을 동기 친구들과의 일박이일 여행에 동참하기 위해 다리힘도 키우고, 여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 시험삼아 와본 남산걷기입니다.
날씨가 좋아 불편은 없었지만,역시 무리인듯 피곤함이 밀려옵니다.
갔던 길을 뒤돌아 장충동에서 냉면과 왕만두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두 시간을 깊은 잠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역시 우리 동네가 편안하고 좋습니다.
"우리 동네 벚꽃만 못하네."
남편의 퉁명스런 멘트입니다.
벚꽃나무도 우리 동네가 더 많고 연속적으로 있어 보기에 더 황홀합니다.
규모는 남산이 훨씬 크지만 아기자기한 멋은 우리 동네가 더 좋습니다.
가끔씩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혼자 디카들고 남산에서 천천히 걸어보고 싶습니다.
간식과 음료수를 꺼내고 벤치에 앉자,비둘기가 쪼르르 우리 바로 앞에 와서 쳐다보고 있습니다.
빵 부스러기를 주자 냉큼 쪼아 먹습니다.
사람들에게 길들여진 눈치가 9단쯤인 비둘기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목마가렛
디모르포세카(오스테오스펄멈,아프리칸데이지,스푼데이지)
수선화
돌단풍
금낭화
산마늘
누군가 얌체같은 사람이 산마늘 잎을 따간 자리가 보입니다.
산마늘 잎 장아찌가 백화점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즐기기 위해 가꾸는 식물을 훼손하는 일은 범죄입니다.
앵초
버베나
유리오프스
무스카리
스윗아리삼
첫댓글 옥덕님 꽃피는 봄철에 영감님과 비록 말은 없으셔도 정다운 데이트를 하셨군요.
이번 발병이 전화위복이 된것 같습니다.허리가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동안의 정성이 열매맺는듯 합니다.
본심이 착하신 어른이라 앞으로 손녀데리고 즐겁게 지내실 꺼예요.
남산 걷기가 좋았는지,남편은 어제도 우리 동네 구룡산과 대모산엘 다녀왔습니다.
같이 가자는 걸 사양했습니다.
남산 걷기가 좀 무리였는지 온 근육이 다 아파서요.
오늘은 좀 나았는지 덜 아픕니다.
와~~진짜 봄꽃 잔치네요~~
어찌 되었던 봄꽃이 만개 하였을 때 맞추어 본다는 것은 행운입니다..ㅎㅎ
복많으신 선배님~~나도 복 많은 사람 되려고 동네라도 나갑니다 *^^*
봄은 하루 이틀 날자를 놓치면 못보게 되더라구요.기세요.
어서 나가서 맘껏
멀리만 바라보고 사노라고 이 좋은 남산을 외면 했네.돌단풍 이 모양으로 아기자기 하며 참예쁘다.
멋진 데이트 였네요.짝짝
남산 걷기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어요.
점심시간이라 근처 직장인들까지 함세해서 길이 비좁을 정도였어요.
옥덕님은 그 어려운이름을 기억할 수있을까 부럽습니다.
디모르포세카는 이름도 모양도 첨 봅니다.
요즘은 수입외래
40년만의 데이트라니요..ㅎㅎㅎ 넘 심했어요..ㅎㅎㅎ 엽구리 찔러서라도 자주자주 데이트하세요..ㅎㅎ
그래야겠지만,다음엔 나혼자 와봐야지란 생각이 드는 걸 어쩝니까.
<41년만에 데이트>는 훨씬 내용이 더 좋을것입니다
41년만의 데이트...
그 때 가서는 더 재미있는 내용으로 올릴게요.
옥덕님 40년만의 데이트 제목에 끌려 궁금했는데 재미있네요.
남편은 낭만도 없다고 했는데 그건 옥덕님의 느낌일 뿐 말수 적은 분들도 의외로 감성이 풍부한 사람도 있답니다.
힘들게 오르는 남산길 보다 아름다운 양재천이 더 산책하기엔 좋겠지요...
그 날 무리해서 온 근육이 다 아팠어요.
당분간은 우리 동네 산책 정도가 좋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