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묵은 호텔은 콘도식 식당으로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침실과 거실 그리고 대우 상표가 붙은 전자레인지가 있는 주방, 대우상표를 보니 웬지 기분이 좋아졌다.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더니...그 말이 꼭 맞는 듯 했다.
전날 가이드가 6시에 모닝콜, 7시에 식당을 열라고 하겠으니 7시에 아침식사를 하겠다고 말한 대로 일정이 진행되어 다음날 아침 우리는 7시 전에 호텔 정문 옆에 붙은 까페테리아로 향했다.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다. 아직 7시가 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미 독일에서 그런 일들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걔들이 7시가 되기 전에는 죽어도 문을 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7시가 되어서야 비로서 문이 열렸다. 한국에서 날마다 대했던 음식들 대신에 커피와 과일 주스 그리고 바게트빵, 얇게 썰어낸 햄, 계란 스크램블로 아침 식사를 했다. 여행은 잘 먹어야 된다는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운 생각을 붙들고 열심히 먹었다. 여행은 체력이다. 아무렴!
그 와중에 나는 가이드를 붙들고 생존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몇마디 말을 배웠다. 아침인사 ‘본 조르노’(Have a nice day의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실례합니다. ‘스꾸지’, 감사합니다. ‘그라찌에’, 세마디를 배웠으니 이제 이탈리아 안에서 살 자신이 생겼다.
식사를 마치고 처음 우리가 이동한 곳은 바티칸 박물관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개회예배를 드렸고 감리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본문은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3가지 중요한 단어가 여행을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영적 갱신을 위한 부르심으로 이번 여행을 생각하자면서 순종과 가난과 순결이라는 수도사들의 영성을 말씀하셨다.
순종이란 잘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순례가 되게 하자. 그리고 가난은(나는 이건 자신이 있었다. 왜? 가져간 돈이 많지 않았으니까) 자기를 비우고 서로를 섬기는 영적인 가난을 실천하자고 말씀하셨고, 순결은 주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행하는 순례의 길이 되게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궁핍은 극복해야 하지만 가난은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꽉 꽂혔다.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나는 이번 순례에서의 순종을 결심했다. 주는 대로 먹고(그래서 가급적이면 고추장도 안 먹고 버텨보았다.), 가는대로 간다. 나는 이렇게 순종의 원칙을 세웠고 그 작은 훈련이 결국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이 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주님께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경치가 아니라 유적이 아니라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그 3가지를 생각하면서 여행을 한 결과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가이드를 통해서 들으며 이동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점심을 3시간이나 먹는다고 했다(1:30분부터-4:30분까지). 되새김질을 하나? 생각하며 웃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먹는 식사를 다음날 저녁에 경험해보니 그 정도 시간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가지 음식이 나오고 난 다음에 한참을 기다려 다음 한가지, 또 한가지, 그리고 또 기다림 끝에 나오는 메인음식, 그리고 마지막 후식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다보니 3시간이나 걸리는 식사시간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들으면서 배아팠던 것은 2003년에 관광객 5천8백만명이 이탈리아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뿌리고 간 돈이 얼마나 될까? 얼마나 쉬울까? 앉아서 돈 버는 건!’ 우리나라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상품을 부지런히 계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거리를 주행하는 차를 보니 대부분 소형차들이고 마티즈가 제법 많이 눈에 띄였다. 가이드는 마티즈의 디자인을 이탈리아 사람들이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로마 시내를 들어가면서 대부분 아파트가 오래된 것으로서 80년이상된 아파트들도 많다고 했다. 그리고 아파트는 대부분 5층이상 건축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높이 짓고, 20년만 되면 재개발 운운하는데 이탈리아로 가서 제대로 배워야 한다.
우리들이 아침 식사때 왜 음식이 그렇게 짜냐고 물었더니 가이드는 유럽의 물에는 석회석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서 석회 성분을 희석하기 위해서 염분을 많이 섭취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짜게 먹냐?
앞서 말한대로 오토바이 운전자는 반드시 헬멧을 썼고, 주차선에 주차를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림도 없는 광경을 보면서 질서와 원칙, 이것이 다혈질로 소문난 이탈리아의 감추어진 힘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도착한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 이 박물관은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무려 방을 1,400개를 갖고 있다고 한다(제대로 보려면 얼마나 걸릴까?). 우리가 가던 날도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간단한 검색을 거치고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티켓을 끊고(입장료는 12유로였다.) 계단을 올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안에는 곳곳에 있는 안내판 앞에 여러 관광 단체들이 모여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안뜰로 안내했고, 여러가지 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조각들을 보았다. 흥미롭게도 머리 없는 몸뚱이만 전시되어 있는 조각도 여러 개 보였다.
물어보니 그 가운데는 진짜 조각의 머리를 잃어버린 것도 있었지만, 어떤 조각가들은 죽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각을 만들면서 먼저 몸뚱이를 사이즈별로 만들어 놓고(비만,보통,마른 체형) 거기에 죽은 사람의 얼굴만 조각하여 붙여 팔았다고 전해진다.
원형으로 된 정원의 왼쪽에는 라오콘(Laokoon)이라는 유명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그 작품앞에서 제일 많이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뱀에 물려 죽는 장면을 처절하게 조각한 작품이었다. 조각에 새겨진 인물의 한쪽 손이 잘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서 박물관의 뒤쪽에 위치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Capella Sistina)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교황이 죽었을 때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서 예전에는 만장일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교황선출을 위해서 추기경들이 모이면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흰 연기(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굴뚝으로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교황선출을 위해 의논을 했다고 전해진다.
교황식스투스 4세는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기 위해 이 성당을 건축했다고 전해진다.
가이드의 설명중에서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7년 8개월이 걸렸다는 말은 아마도 이 성당을 짓는데 걸린 기간과 착각을 한 것 같다. 이 성당은 1475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483년에 건축을 완성했다(또 다른 자료에는 1473-1481로 나와 있기도 하다.)
그리고 율리우스 2세의 명에 의해 미켈란젤로는 천장화를 그렸는데 1508년 5월 작업에 착수하여 1512년 불후의 대작을 완성했다고 전해진다(이 기간을 산정해 보면 대략 4년 5개월로 알려져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업은 프레스코기법, 즉 회반죽을 바르고 그 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에 녹인 안료로 그리는 기법으로 진행되었고 1508년 5월10일(계약개시일)에 시작되어 1512년11월1일-이날은 모든 성인의 날이다-에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이 천장화에서 가장 먼저 작업이 시작된 것은 노아의 생애에 대한 3가지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하나님과 아담의 손가락이 서로 맛 닿으려는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러나 이 손가락은 닿아있지 않았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의 손이 닿아야 그 분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능력을 통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오늘 나의 손은 과연 하나님과 맛닿아 있는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얼굴을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미켈란제로의 독특한 예술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천장화를 그리는 동안 거의 대부분 누워서 지내야 했으며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난 다음에는 무릎에 물이 고이고 등이 굽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업은 길고 힘든 작업이었다. 하루에 가로,세로 10cm정도를 프레스코 기법으로 채워가는 이 작업은 열정과 성실함 그리고 신앙심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였다.
성당의 중심에는 최후의 심판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으로는 ‘모세의 일생’이 오른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주제로 하여 각각 6개의 그림들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두 그림이 정확히 무엇을 비교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림을 살피면서 신학교 시절에 배운 마태복음이 모세와 예수님을 대비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천정화를 완성한 후 22년이 흐른 1534년에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되었다. 모두391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피부를 벗겨 죽음을 당한 도마(성 바돌로매)가 자기의 피부 가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한 베드로는 열쇠를 들고 있다. 가이드는 모든 그림에서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라고 생각하면 맞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의 오른쪽 끝부분에 지옥에 떨어져 있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미켈란제로를 괴롭혔다는 어떤 추기경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는 이 등장인물 모두가 나체로 그려져 있었는데 교황 비오 4세의 명으로 나체를 가리는 그림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까지 나체로 그렸으니 어떤 의미에서 불경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이 작업을 위해 다니엘레 다 본테라는 화가가 뽑혔고 그는 이 작업을 하고 난 뒤 ‘기저귀 화가’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박물관을 빠져 나오기 위해서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바쁘게 방들을 지나왔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박물관 창밖으로 보이는 바티칸 공화국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 안에는 교황을 포함하여 약900명의 사제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바티칸 공화국은 엄연한 독립국가이다.
박물관의 여러 방들 가운데 카페트의 방이 인상적이었다. 그 가운데 한 카페트는 어느 편에 서 있어도 예수님의 시선이 자기를 향해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아마 모두의 마음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어도 주님의 눈은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는 것처럼, 이번 여행이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박물관을 빠져나와 베드로 성당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첫댓글 제가 그곳에 있는듯이 묘사되는군요^^ 고맙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기억하셨나요? 가이드 뒤를 따라다니시며 열심히 질문하고 보고, 메모하시는 장면이 떠오르네요.(거룩한 기자의 모습?)
읽으면서 넘 넘 가고픈 생각뿐입이다,,, 이젠 듣고 그림으로 보는 것말고 실제의 것을 보고프네요^^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