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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가족의 심각한 식사 시간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 ||
[필름 2.0 2005-12-02 20:20] |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감독이 6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가족의 탄생> 춘천 촬영현장을 찾았다. 독특한 이력의 가족 구성원들이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 밥상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인다. 제법 겨울 같다. 지난 11월 12일 물안개 속을 지나 당도한 춘천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토요일 아침,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춘천 시내 한 주택가 골목. 아담한 하얀색 집에서 독특한 가족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얀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은 오늘 또 한 명의 가족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둘러싸고 차가운 기류에 휩싸여 있다. 20세 연상의 애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누나 미라(문소리)의 집에 살고 있는 형철(엄태웅)은 무신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채연(이라혜)까지 데리고 살자며 누나를 설득할 참이다. 민규동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공동 연출했던 김태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가족의 탄생>은 이처럼 특이한 구성원들이 등장하는 집안 풍경을 따라가는 독특하고 따뜻한 가족 이야기이다. 지난 10월 27일 크랭크인해 영화에 등장하는 세 가족 중 첫 번째 가족인 무신, 미라, 형철 가족의 10회 차 촬영을 진행 중이다. 촬영장에 가장 먼저 등장한 배우는 이 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이라혜. 선배들 촬영이 다 끝난 후 마지막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여섯 살 라혜는 오전 8시 반 대기소로 쓰고 있는 하얀 집 앞 노인정에 도착해 기다리는 게 뭐 대수냐는 투로 고무 찰흙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 사이 하얀 집에는 촬영에 쓰일 음식들이 준비 중이다. 추운 날씨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 쌀밥과 쇠고기 무국이 아침을 거르고 있음을 요란하게 상기시킨다. 식사 중 엄태웅이 가족들을 설득하는 장면인 이 날 촬영에서 음식은 가장 중요한 소품 중 하나다. 오늘 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태웅이 도착했다. 김태용 감독과 엄태웅은 작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촬영분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인생 재밌게 살자구! 다같이 모여 살면 좋잖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엄태웅은 리허설 사인이 떨어지는 순간 감정을 끌어올린다. 이번엔 문소리 차례다. “문소리 씨는 오늘 밥만 먹고 있으면 됩니다.” 그래도 리허설을 빠트릴 수 없는 일. 침통한 표정으로, 엄태웅이 뭐라 하든 야무지게 밥을 먹는다. 전날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새벽에 춘천에 온 고두심이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김 감독은 문소리한테와 똑같은 주문이다. 하지만 고두심은 “연인 형철 씨가 밥을 먹다 말고 나가는데 어떻게 계속 밥을 먹냐”며 반문한다. 리허설을 마친 세 사람이 밥상 앞에 모였다. 무거운 분위기를 살리고자 ‘오버’하는 엄태웅이 무안하게도, 문소리는 굳은 얼굴로 계속 밥을 먹고 있다. 고두심은 엄태웅이 밥을 먹다 말자 자신도 숟가락을 놓는다. 화난 시누이 문소리와 다소곳한 모습으로 문소리의 기분을 살피는 고두심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꽤 잘 어울린다. 오후 2시가 되자 라혜가 등장했다. 방에서 자고 있던 채연이 무거운 분위기를 못 이겨 박차고 나가는 형철을 따라가는 장면이 이어졌다. 김 감독의 세세한 지시 그대로 따라하며 그럴듯한 채연이 됐던 라혜는 컷 소리가 나자 쑥스러운 듯 현장에 온 엄마 품으로 뛰어든다. 해가 떨어질까봐 촬영에만 열중하느라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제작진을 위한 진짜 밥상이 차려졌다. 촬영 중 계속 밥을 먹은 문소리만 빼고는 식사 장면 촬영을 하면서도 모두가 허기진 상태. 문소리는 “가부장적인 구조와는 달리 동등한 사람들로 구성되는 또 다른 가족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한다. “착해 보이는 감독이 참 독하다”며 배우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할 무렵, 김태용 감독이 식당 대신 사용하고 있는 촬영장 바로 옆 고두심의 후배집에 들어섰다. 배우들은 폭소로 감독을 맞았고 형철 씨, 무신 씨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배우들과 감독은 마치 진짜 가족 같다. <가족의 탄생>은 공효진, 봉태규 등이 등장하는 다른 두 가족의 이야기를 더해 내년 봄 개봉 예정이다. 사진 김춘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