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빗속을 뚫고 양산 천성산을 향한 길)
아빠! 지퍼는 올렸어?
제 딸년은 생긴 외모도 상당히 여성스러울 뿐 아니라 연신 걸려 오는 친구들의 핸펀 응대 또한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감한 것 같은데, 좌우지간 집에만 오면 별로 말수가 없이 무뚝뚝 하기 그지 없다.
그러다 출타를 할려고 현관문을 나서는 애비를 보고 딱 한마디 하는 말이 바지 지퍼를 제대로 올렸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 이다.
사실 난 집에 들어 오면 철을 가리지 않고 반바지를 입고 생활을 하는데 물론 지퍼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풍 문제도 그러할 뿐 아니라 샤워 할 때 대충 단추만 풀르고 신속히 욕실로 직행할 수 있는 편의성 때문인데
어떤 때는 전철이나, 아니면 회사에 출근을 해서 한참을 일을 하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대문이 입을 쩍 벌리고 있어
황당해 하는 경우가 무척 잦다.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그칠 줄을 모른다.
등산 베낭을 매고 우산을 챙기는 애비를 보고는, 딸 아이가 놀랜 눈으로 오늘은 여러 마디를 더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 이 무신 청승이냐며 한참을 나를 주저 앉히기 위해 설득을 하던 딸 아이가 애비의 결연한(?) 얼굴을
보곤 이내 포기하면서 빗길에 주의해야 할 여러가지 안전 문제를 거론한다.
쌩뚱 맞은 잔소리를 들으며 한편은 귀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내가 벌써
아직은 애기 처럼 어려 보이는 딸 아이의 걱정과 근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일면 고맙기도 하면서 또 다른 일면으론 약간은 서글푼 감정이 솟구 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장면 2. (만부득히 산행지를 소금강 계곡으로)
어쩌다 내 똥차 옆자리에 앉게 되면, 딸 아이가 꼬옥 하는 말이 있다.
아빠! 아빠 차는 어쩜 이리도 할아버지 차와 똑같은 분위기야?
...
아빠! 할아버지 차와 똑 같다고 하는 표현은 최악의 경우를 말함이야 알기는 알어?
알고 있다 이 년아.
아무리 아들이라고 하여도 그렇지 퀴퀴한 냄새가 정말 똑 같다 똑 같어.
사실 부전 자전인지 우리 아버님도 나랑 똑 같이 집안에선 늘상 지퍼를 내리고, 차에만 올라 앉으면 연신
담배를 피워 대신다.
딸 아이가 지퍼를 올리라고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내가 출타를 해서 내린 지퍼로 인해 남들로 부터 우사를 당할까 해서,
차에서 무자비하게 담배를 피워 그 냄새가 딸 아이 옷에 배일 까 해서 하는 말이 또한 아님을 물론 난 잘 알고 있다.
내가 아버님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걸 보면서 제 딸 아이는 무척 마음 아파 하는 것 같다.
믿기 싫은 일일 터이지만 이미 자기 아빠도 할아버지 처럼 나이를 제법 많이 먹지나 않았나 하는
우려 때문이란 것 또한 난 잘 알고 있다.
수원 톨게이트를 지나면서 빗줄기가 장대처럼 굵어 진다.
강 대장님이 여러 분들의 고견을 듣곤, 안전한 계곡길과 여러 볼 거리가 있는 소금강으로 산행지를 변경하신다.
장면 3. (소금강 구룡폭포와 주문진 포구에서의 뒷풀이)
지난 겨울 어느 날 꼭두 새볔에 서울 서초역 인근에 차를 세우고 난 뿔난 표정으로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눈치를 보면서 겁 먹은 표정으로 걸어 오는 딸년을 길거리에 세우고 아주 박살을 냈다.
아마도 몇년 만에 벌어 지는 부녀 지간의 대격돌이었다.
야간 작업을 한답시고 허구 헌 날 학교에서 밤을 홀라당 새우곤 다음 날 저녁 늦게서야 발라당 집으로 들어 오기를
밥 먹듯 하던 딸 년이 전날 곡차 한잔 거하게 하고 늦게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깨어나 아무런 생각없이
딸 방문을 열어 보곤 난 화들짝 놀라게 된다.
집에 들어 온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사전에 통보없이 야작을 하는 건 절대 금물이라 여직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던 터이라 가슴이
벌렁거리고 머리속엔 온통 불길한 생각만 뭉개 뭉개 피어 오른다.
자나 깨나 불조심 하기에 앞서, 자는 딸도 다시 보아야 한다고 하더니만 아뿔싸 하는 생각이 펀득인다.
서울 쪽으로 무조건 차를 쏘면서 어렵게 딸년과 통화가 되어서 중간 지점인 서초역에서 접선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마한너무 까시나야! 이젠 간댕이가 쌔리 부었나? 무단 외박을 감히 한다 이거지?
나보다 키가 더 커 보이는 딸년이 한참을 눈물만 질금거리더니 어느 순간 성큼 내 쪽으로 다가 온다.
내가 입고 있던 겨울 파커 지퍼를 쑥 내리곤
아빠! 앞으론 꼬옥 이런 남방 좀 사 입어, 색깔이며 디자인이 얼마나 젊은 오빠처럼 보이고 좋아.
시끄럽다 이 년아.
그리고 아빠! 어제 직장에서 또 힘든 일 있어 술 마니 드신거야?
알 필요없다 이 년아.
글구 아빠 술 퍼 마시는 거 하고 너 무단 외박하는 거 하고 무신 상관이 잇노?
아빠! 어제 나하고 통화한 거 기억이 전혀 안나?
목소리가 아무래도 어늘한 것 같아서 내가 문자까지 넣었는데 못 보았어?
띠이-우웅.
양재역을 거쳐 세곡동을 지날 무렵 화장실이 급하다며 차를 세우곤 후미진 곳에서 핸펀을 열어 보았다.
아빠! 개스 밸브 한번 더 확인하고 베란다 창문은 잘 닫고 주무세요.
야간 작업하고 내일 뵐께요. 예쁜딸 삐선 올림
소금강에 도착하니 다행스럽게도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 졌다.
우비 챙겨 입고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을 내려다 보며 걷는 트래킹의 운치는 정말 오랜만에 맛 보는 감동이다.
구룡 폭포에 도착하기 바쁘게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쏘가리님 친구 분이 운영하시는 주문진 항구 인근의 횟집에서 상상키 어려운 적은 비용으로 감칠 맛 나는
자연산 회를 걸신 들린 넘 처럼 많이 먹고 모래 사장에서 몇 몇 분들이 사진 촬영을 마치기 바쁘게 어시장으로 차를 돌린다.
차 중에서 쏘가리님께서 주문진 어시장에 가면 꼬옥 이면수를 사라고 권하시면서 이 지역 출신답게 어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상하게 전해 주신다.
이면수는 임연수어가 본디말 인데 함경도 지역에 살던 임 연수란 이름을 가진 분이 이 고기를 워낙 잘 낚아서 그러한 이름이
지어 졌으며 여타 생선 처럼 이면수 껍띠기가 별미라고 하신다.
강원도 동해안의 어떤 부자가 당시로선 고가이던 이면수 껍띠기로 쌈을 싸서 먹기를 즐기다가 재산을 탕진할 정도였다고 한다.
경북 경주에 있는 어떤 부자는 고등어 껍질을 즐기다가 거지가 되었다는 얘기가 문득 생각났다.
난 삶에 대한 의욕과 밥맛이 떨어 지면 어시장을 찾아 든다.
왁자지껄한 시장을 두리번 거리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억센 뱃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은 산교육일 뿐 더러 민초들의 순박한 모습 이기에 혹여 찍사 재주라도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왕 왕 드는 곳이다.
여러 볼 거리가 풍부한 주문진 어시장을 검은 등 재칼 처럼 어슬렁 거리며, 난 몇 차례 산행을 함께 하며
여러 좋은 작품들을 우리 느림보님들께 많이도 선사해 주셨던 주작님의 생각이 간절했다.
오늘 함께 하셨으면 참으로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며 몹시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성인이 다 된 분들이 함께 하는 산악회는 천태 만상의 인물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제 각각 이듯이 그들이 사유하고 추구하는 바 또한 다양하다.
어떤 사람의 언행 그 자체가 바로 그 분의 인격인 바, 사소한 말 한마디 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함이 좋을 듯 합니다.
나이, 성별, 빈부를 떠나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에서 화합과 우애가 넘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찬란한 황혼의 엘레지를 위해서 느림보 산악회를 아름다운 추억과 즐거움의 장으로 만들어 보십시다.
다음 산행은 꼬옥 주작님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산행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탄천변에서 돌삐 올립니다
첨언 ; 사실 전 정형외과 의사로 부터 오십견을 진단받으면서 무거운 걸 들지 말라는 말씀을 누차 들은 몸인데
오리역에서 느림보 버스를 하차하여 주문진 항에서 산 이면수와 명태 코다리를 한 보따리 들고 귀가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재미는 당근 여기서 부터 입니다.
집꾸석에 들어 가서 구져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의 발로일 뿐이데. 단지
난생 처음 들어 볼 예팬네의 칭찬을 기대하며, 탄천 뚝길에 접어 들 무렵 갑작스레 용무가 급했다.
의사가 무거운 걸 들지 말라고 해서 사실 난 그동안 남자 소변기에서는 용무를 보지 몬하고 늘상
쭈구리고 앉아서 볼 일을 보았다.
양손에 어물을 들고 그냥 지퍼만 내린 채 길 가에 있는 쥐똥싸리 나무를 조준하여 시원스레 갈기고 있는데
지나 가던 차가 헤드 라이트를 켠 채 내 바로 옆에 멈추곤 떠나질 않는다.
술김에 성질도 뻗히고 하여 무신 구경 났니? 엉 구경 났어? 하며
두 남녀가 탄 차를 향해 냅따 오줌 줄기를 돌려 버렸다.
요즘은 경찰 패트롤 카엔 남녀가 한쌍이 함께 근무를 하는 가 봅니다.
그길로 패트롤 카에 실려 유치장에서 일박을 하곤 오늘 아침에 경범죄 법정에 섯질 뭡니껴?
새파란 판사님이 벌금 100만원을 때리길래 아니 노상 방뇨 함 했다고 거금 100만원이 웬 말이냐고 강하게 반발을 했더니
판사님 말씀이 저의 죄목은 노상 방뇨가 아니라
흉기 소지죄라는 쌩뚱 맞은 말씀을 하시더군요. 캬 캬.
첫댓글 '우리 모두 찬란한 황혼의 엘레지를 위해서거움의 장으로 만들어 보십시다'
느림보 산악회를 아름다운 추억과
돌삐님의 이 말씀을 주작님께서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돌삐님의 한바탕 웃음밭..
오늘도 역시 함빡 웃고 갑니다.
산행을 하다보면 산사를 마주 할때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특정 종교에 편승하지도 못하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마는...
돌삐님의 심취하신 종교사랑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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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님께서 이 글을 꼭 보실것을 기원합니다
다음에 사찰을 경유하면
돌삐님을 따라서 저도 법당에서 ...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 " 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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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무거워진 산행후기를
미소지으며 즐감하도록 애를 쓰신흔적이 양파껍질을 연상합니다 ㅎ
다음 산행후기도 기다리는 열혈펜이 되어 버렸습니다 ㅎㅎ
작가수준에 달하는 글솜씨와 간간이 나오는 딸아이 이야기등등 소설책을읽듯이 단숨에 읽어내려갔답니다
이렇게 글재주가있으면 다녀온 소감도올려보련만 뭘좀해볼라치면 한두줄에서 제실력이 바닥이 나버리니 참...오늘산행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를 하시려나 매우~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