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타 할아버지’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밀린 원고 때문에 나는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도 전에 일을 못하는 고약한 버릇이다. 새로 연재하기로 한 어느 주간지의 1회 분 30매는 이미 데드라인을 넘어서 있었고, 그 밖에도 연말임으로 하여 밀어닥친 문학적 잡무에 속한 원고 빚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성탄절은 내 감각에 그야말로 기쁘고 즐거운 날이어야 함으로 글을 쓴다는 고역을 그날까지 안고 돌아다닐 수는 도저히 없었다. 내 마음은 분주한 위에도 분주하기만 했다.
들떠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무리를 못마땅해 하는 기풍이 일부에 있고 그도 옳은 말씀이기는 하나, 나는 차분하게 지내는 성탄절에는 뭔가 불행한 듯이 느끼는 성미이다. 열 살이 넘도록 어수록하게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정말로 오는 줄 알았던 옛날의 환경이 아직도 내 속에서 꼬리를 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22, 23은 밤을 도와 일을 하였다. 다음 날에는 자랑스런 마음으로 원고를 신문사에 보냈다. 내 심중도 심중이려니와 급박했던 주간지 쪽 사정도 이로써 피했다고 대견해 하였다.
그런데 외출했다가 돌아오니 놀라운 기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툰 인물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이 잘못이었다. 그는 멀쩡한 어른이었음에도 깜빡 딴 생각을 하여 택시에 앉았다가 그만 원고 봉투를 잊고 맨손으로 내려 버렸다는 것이다. 한참 걸어가다가 비로소 그 생각이 떠올랐다니 어처구니 없어 말이 나와지지 않았다.
어디 가서 그 물언을 찾아낼 것인가? 길게 궁리해 볼 것 없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새로 써야 한다는 것이 이 경우 생각할 수 있는 유일의 해결책이었으므로 내 기억력은 전혀 희망을 걸어 볼 수 없는 형편의 것이었고, 파지를 수도 없이 내며 진행되는 몹쓸 집필 습관의 탓도 겹쳐 오리지널의 재생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래도 해내보려는 그 끔찍한 작업을 잠깐 머릿속에 상상만 하여도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오늘 저녁과 내일 하루의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찌 되란 말인가?
나는 오로지 절망하여 방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떤 종류의 엄두도 떠오르지 않았다.
날이 저물었다. 둘레에는 축제의 분위기가 준동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한층 더 할 바를 모를 뿐이다.
이때 전화의 벨이 울렸다. 낯모르는 분이었다. 내 이름을 확인하고서,
“원고를 차에 두고 내려셨지요? 보관하고 있습니다. 갖다 드리고 싶지만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요------.”
신문사에 물어서 전화번호를 알았ㄷ고 하였다.
누가 산타 할아버지는 실지로는 오지 않는다고 하였던가?
내가 어느 만큼 감사 감격하였는가는 여기에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반가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고, 이렇게 고마운 타인의 친절에 접한 적도 없었다.
또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를 흐르는 계절이다. 그때의 그 산타에게 (음성으로 보아 그는 할아버지가 아닌 젊은 남성이신 듯했었으나)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나의 감사와 축복을 보내드린다.
*강신재(1824 –2001)
서울출신의 소설가로 이화여전에서 중퇴했다. 1949년에 문예 지에 소설로 등단하였다.
단편집 회화, 여정, 젊은 느티나무가 있고, 장편 청춘의 불문율, 임진강의 민들레가 있다.
흔히 강신재의 소설은 남녀의 사랑이라는 다소 진부하고 일반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거나 작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대중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독자를 무비판적이며 수동적인 대중 문학의 중독자로 전락시킨다는 비판을 받는다. 강신재의 소설은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이행하던 1960년대의 애정 모랄과 풍속을 세련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