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 미스 하~? 커피 한잔 부탁해."
"....예."
"미스 하. 내 것도 부탁해."
"나도."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주문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일까? 내게 주문을 걸어오던 옛 기억들은 동화같이 아름답기만 했다. 스무평 남짓한 공간에서 하얀 셔츠를 타고 있는 왕자님들은 이런 회고적 성향을 기사처럼 단숨에 무찔렀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나를 잠에서 깨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도르륵 도르륵 미미한 소리로 하얀 커피잔이 채워져 가고 있다. 혹시나 이 커피들이 왕자님들의 손이 닿자마자 말라버리는 게 아닐까? 고작 내가 가진 앙심이 그들이 곤란해하는 표정이라니. '피식' 하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차라리 커피와 함께 저 멀리 사라져 버렸으면....
어느새 쟁반 위엔 주문 받은 다섯 개의 커피잔이 놓여졌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으로 문을 밀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끌었다.
"미스 하. 나도 한잔만 마실게."
그 말 한마디와 함께 덥썹 커피 한잔을 납치하고선 가버렸다. 어깨의 불쾌한 느낌이 머리까지 올라왔다. 어깨를 한번 손으로 쓸어 내린 후 다시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더 뽑았다.
"미스 하가 타준 커피가 제일이라니깐."
"그럼 그럼."
"미스 하. 이런 실력 가지고 왜 여기서 일하남? 내가 더 좋은 데 소개시켜줄까?"
그 말이 끝나자 마자 배에서부터 울려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왕자님들이 웃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내게는 내 가슴의 꽃이 울고 있다. 내 옆에 앉은 최영주씨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들이 맨날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면 내겐 옆에 있는 최영주씨가 그런 동료겠다. 최영주씨의 손을 한번 꼭 안고 서랍으로 손을 옮겼다.
'쿵!'
잠시 울려 퍼진 그 소리로 여러 시선이 내게 왔다. 그리곤 다시 자신들이 하는 일로 시선이 옮겨졌다. 이 행동으로 나를 나타냈지만 한사람만 빼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니 알지만 일부러 무시하는 것이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 가벼운 음도 들린 것 같았는데.... 뭔가가 책상서랍에서 빠져 나온 건가?
책상 아래의 빈 공간 저 끝에 뭔가가 어슴푸레 보였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보니 납작한 연필상자였다. 저게 저기까지 떨어진 게 의아스러웠지만 아직 그것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지 못해 책상 아래로 몸을 숙여 들어갔다. 갑자기 등 뒤로 알 수 없는 기분이 날 떠밀었다. 그 이상한 기분을 무시한 채 더듬더듬거리면서 연필상자를 겨우 손에 닿게 만들었다. 연필 상자가 손에 닿자마자 잊혀진 것들이 손끝으로 하나둘씩 밀려왔다....
연필 한다스
"자아~~~! 이거 시험 잘 치루라고 준비한거야."
그 말과 함께 시영은 자기 손바닥보다 훨씬 긴 선물을 내게 내밀었다.
"뭔데?"
"풀어봐."
"집에 가서 풀래."
"여기서 풀어도 상관없어."
누런 포장을 뜯어보니 종이로 된 상자가 나타났다.
"뭘까...."
"네 합격을 기원하는 선물이지. 분명 합격할꺼야."
상자 속에 연필 한다스가 빈틈없이 꽉 채워 들어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연필을 썼던 일이 없어서 그런지 이 연필을 보니 색다른 감흥이 일어났다.
"고마워. 꼭 합격할게."
"그러길 바란다. 이걸로 공부하면 아마도 더 잘 될꺼야."
"이런 걸로 어떻게 공부해. 깎는데 시간 다 가겠다. 그냥 보관하고 있을래."
"음.... 그걸로 공부하면 더 잘 될텐데....."
"알았어 알았어. 연필깎이라도 사야되겠네."
시영의 얼굴에 그것도 살 걸이란 표정이 역력했다.
"연필깎이가 없으면 칼로 깎으면 되겠지."
"휴.... 다치면 어쩌려고."
"내가 어린애인감? 이래뵈도 요리 솜씨는 있어서 칼솜씨는 좋아."
"무섭네 무서워.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왜?"
"찌를 지도 모르잖아?"
그 말이 현실로 될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언제나 시영에게서 있어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영에게 뭐라 하면 말수로 밀리는 쪽은 나였으니 더욱 답답할 뿐이다.
책상 위에 양팔을 올리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하나, 둘, 셋, 넷.... 연필은 12개였다. 가지런히 모여있는 그 연필 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왠지 그 연필을 보니 합격해야겠다는 생각만 더 할 뿐이다. 선물을 받았을 때의 감흥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연필의 하나하나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 것만 같다. 하나하나 연필을 꺼내 보았다. 전부다 속나무 색이었지만 글씨만 색깔이 틀렸다. 혹시나 연필 아래 편지가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전부 꺼내 봤지만 헛수고였다.
그가 왜 이런 선물을 준걸까? 합격하라는 것밖에 없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이 연필을 쓸 일은 없을 테니깐.
연필상자를 책상에서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가끔씩 힘이 들때면 이 연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만약 시영과 헤어지게 되면 그가 그리울 때마다 보겠지.
행운
시영과 다투고 난 뒤였다. 전화기를 옆에만 두고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 염두도 나지 않았다. 만약 추가 합격되었다는 전화가 그에게 거는 전화로 잘리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숫자를 세면서 7번째 울리게 되면 그 때 수화기를 들었다. 전부 다 추가합격이란 전화는 아니었다. 대게 부모님을 찾는 전화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퉁명하게 집에 안 계시다고 하면서 재빨리 끊어버렸다.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야....."
"왜 전화했어?"
"내가 잘못했어."
그는 내게 아무 잘못한 것도 없었다. 단지 내 이기심으로도 그에게 떨어져 있을 뿐인 걸 가지고 그는 사과했다. 내가 오히려 사과를 빌어야 했지만 난 조급한 마음이 아니 전화를 빨리 끊고 싶은 간절한 생각이 용서를 빌만한 말을 없애버렸다. 마음속으로만 용서를 그에게 구했다. 그가 내 모든걸 이해 해주리라는 얄팍한 이기심으로.
"10시 이후에 전화해 줘. 다른 전화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알았어. 그때 전화할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합격해란 말을 남기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과연 내가 그에게 이래도 되는 걸까. 그는 내게 어떤 질책도 미움도 주지 않았는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두렵게 만드는 걸까.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과는 틀렸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화내며 울며 웃고 하는 게 분명할 만큼 난 솔직하다. 하지만 뭔가 잃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깨달았지만 그것은 서로의 시간이었다. 그 공유의 시간만큼 서로 뭔가를 잃어버리지만 대신 그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값진 것을 채울 수 있다. 나는 두려웠다. 내 잃어버린 공간에 무엇을 채웠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던 것이었다. 무엇하나 잃어버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헛된 욕망으로 내 빈 공간을 채워만 갔다. 결국 텅빈 어항 속에 잡히지 않는 공기만 가득 채운 것밖에 되지 않았다.
시영과의 전화통화 후 한두시간이 지나서 내게 추가합격의 통지가 왔다. 분명 나는 그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여태껏 내가 그 전화를 기다렸던 게 쓸데없이 느껴진건 그 행운 때문이었다. 행운은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현실이란건 희망 위에 얹혀진 소스일 뿐이었다.
대신 현실은 전화기에게 뺐긴 내 모든 감각을 되찾게 만들어주었다. 누가 내 일부라 생각되는 물건을 썼다가 돌려받을때의 그 찜찜한 기분처럼 내 감각도 찜찜했다. 그 감각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나 보다. 또한 시영도....
결합
합격은 되었다. 그 동안의 긴장과 피로가 한꺼번에 풀려 잠만 자기 시작했다. 시영과 만나도 거의 졸다시피 하였다. 그리하여 시영과 밤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술에 취한 것도 문제였지만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잠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야! 그냥 잘꺼야?"
"응. 잘자."
시영이 무슨 말을 했지만 들리지가 않았다. 이미 나는 잠에 빠진 뒤였다.
내 의식을 깨운건 아래에서 오는 통증이었다. 시영이 무슨 짓을 하는 지 알고 있었다. 시영이 무슨 짓을 하던 말건 나는 잠에 빠져야만 했다. 피곤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왠지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예상외로 아래에서 동반되는 통증을 물리치고 쉽게 잠들 수 있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 지 알기나 해?"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시영을 깨워 질책하고 있다. 어제는 잠으로 시영이 내게 한 짓을 잊었지만 지금은 그에게 화를 내면서 그 사실을 잊으려 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둘 만의 시간이 고요하게 흐르는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는 누구나 알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둘의 사정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안다고 해도 이해할 수는 없겠지. 먼저 방의 침묵을 깨트린 건 시영이었다.
"나는 네가 여기에 온게 나랑 다른 목적인 줄 몰랐어."
"내가 얘기했잖아. 잠자러 온다고. 그리고 이 방에 들어왔을 때부터 말했을 텐데? 날 건들지 말라고."
"그럼 네가 잠에서 깼을 때 나를 뿌리쳤으면 되잖아."
조금 언성이 높아진 그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어떡게 내가 잠에 깬 줄 알았을까.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시영과의 성관계를 즐긴 게 아닐까. 잠을 잔다는 핑계로 그에게 모든걸 떠맡기려 했던건가. 하지만 우선 변명부터 해야겠다.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 널 뿌리칠 힘도 없었고. 알잖아?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집에 갈 기력조차 없어서 왔다고 했잖아."
"알았어. 내가 사과하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그리고 그렇게 피곤하면 차라리 나랑 만나지 않으면 되는거 아냐?"
그리고선 그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이 방을 나갔다. 허탈했다. 내 순결도 빼앗긴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그가 내게서 내 자존심을 빼앗아 갔다. 이젠 내가 그에게 매달릴 차례다. 내겐 어떤 자존심도 남지 않았을 테니깐.
그후로 그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이번엔 잠을 잔다는 핑계쪽이 아니라 내가 그를 원한다는 이유로말이다. 한순간의 쾌락뿐이였고 그리고 그 한순간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 성관계를 가지는 건지 아니면 그의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그랬던건지 나는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그와 셀 수 없는 밤을 가졌던 걸까.
왠지 나도 모르게 모든 걸 날 위해 내 변명을 늘어놓고 내 추한 이면이나 혹은 결점은 다 그에게 돌려버렸다. 이 나이때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신념이 될 수 있었고 또한 그건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충분하게 적용되었다.
"내 나이가 20세라는 걸 믿기 싫었던 거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뜬금없이."
"그냥 내 혼자말이라고 생각해줘."
그 말과 함께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믿기 싫은 걸 잊기 위해.
잃어버린 9월
눈물이란 건 이럴때를 위해 만들어진 걸까. 눈물로 잊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이가 죽었을 때의 슬픔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울고 있었다.
시영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시영의 집에 몇 번 간적은 있었지만 대게 그의 부모님이 없었을 때를 이용해 그의 집을 갔기 때문에 만나지는 못했다. 그에게 왜 내게 당신 부모님을 뵙지 못하게 만드냐고 물었지만 그는 부모님이 바쁘시다는 핑계만 늘어놓았다. 그의 부모님을 알게된 후 왜 내게 그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던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죽었다는 메시지를 전한 건 그의 동생이었다.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을 까 하는 의문은 지금 들었지만 그 때는 충격으로 인해 휴대폰을 붙잡고 땅을 쳐다봤을 뿐이었다. 정말로 새하얀 화면이 내 앞을 지나갔으며 그 화면을 점점 채우는 건 시영과의 추억이었다.
"네.... 알았어요."
시영의 소식에 대해 빈말로 대답한 후 나는 무작정 내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선 일상처럼 그랬듯이 천천히 침대 위에 앉아 두 무릎을 모았다. 그가 왜 죽었는 지 또 언제 죽었는지 생각조차 안했다. 당연하듯이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도 현실의 세계는 내가 무안할 만큼 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또 한번 내 전화기가 울리고 있을 때는 생각치도 않게 전화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 전화기가 내게 명령하는 걸 나는 똑바로 그 명령을 이행하고 있다.
"저 하유미씨인가요?"
"예. 전데요."
"지금 당장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누구신데요?"
그의 부모님이란 걸 알고서 바로 밖으로 나갔다. 내 흐트러진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젠 그는 없었고 그리고 또한 그들에게도 그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에게서 나는 사라진 것이다.
시영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그의 부모님은 시영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혹시 시영이 당신과 헤어져서 그런 게 아니냐고. 나는 절대 그와 헤어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자꾸 그들이 그렇게 물으니깐 내가 시영과 헤어진 게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시영이 자기 방에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마감했다고 했다. 굳이 이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쉽게 말하는 그들이 미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와 만난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유서나 어떤 사유가 담긴 편지, 일기 같은 그의 죽음에 대해 어떤 설명조차 하지 않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하지만 그들은 몰랐기 때문에 내게 묻는 것이다.
그들은 시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시영과 나는 하나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님보다 그의 죽음에 대해 떳떳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내가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사정이야 어떻든 시영은 그들 아니 부모님들이란 존재에게 다시 한번 잊혀지는 것이었다. 완전히 말이다.
정말로 억울한 마음이 내 목구멍부터 타고 올라오기 시작해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가 점점 잊혀지는 걸까. 정말 그러기 싫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항상 손을 흔들어야만 한다. 눈물이 얼굴에 희미하게 말라버리는 것처럼 시영도 내게서 하나둘씩 사라질 것이다.
결국 그 시영의 죽음을 안 날짜부터 시작해 그 해 9월은 내게는 시영과의 기억 말고는 어떤 기억도 남지 않게 되었다. 시영만을 기억하면 다시 그가 돌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내 자신이 퇴행해 가는 건 마냥 어린애처럼 생각치는 않고 모른 채로 단지 느끼기만 하는 그런 내가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고적 성향을 가지는 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추억은 모든지 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 내게 묻는다.
"내일은 어디 있는걸까?"
5번째의 입사.
5번째의 입사로 아직까지 이 회사에 다니고 있다. 아직 특채기한은 삼개월채 남지 않았다. 그 전의 회사도 마찬가지로 특별채용직으로 잠시 몸담고 있었다. 대게 그 기한은 1년도채 되지 않는다.
내가 가진 기술이란 CAD이다. 상업 고등학교에 나와 건축설계과를 무사히 마친 나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 즉 학력은 완전 무시되어 건축설계소 같은 곳에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은 이 사회경험이란 걸 많이 체득하지 못한 탓인지 그들은 나를 정식사원에 넣지 않았다. 나는 이 일에 충실하고 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보이게끔 믿게 만드는 거겠지.
특채직원이라고 해서 딱히 편하다고 하는 건 책임이라는 게 무겁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남아 있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 상태로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무책임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런 내가 싫지는 않았다.
전에 고용되었던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인내가 필요했다. 인내라는 것보다 아예 육체와 정신을 따로따로 두어야만 했다. 그래야지 나라는 존재를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원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에서 점점 습득하는 건 일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 가는 것이다. 죽으면 정말로 자기자신을 잃어버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죽음에 대해 점점 두려움을 잊기 위해 혹은 죽음이란 사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일까. 마치 기억을 점점 잃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 또한 이런 연습을 벌써부터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 아니 살아 남아만 하니깐.
"미스 하?"
"이봐 미스하!"
"하유미씨?"
날 부른 소리와 동시에 누군가 내게 손으로 툭툭 내 등을 가볍게 쳤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최영주씨가 눈짓으로 사태를 설명했다.
"예?"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서 자세를 바로 잡아 의자에 앉았다.
"미스하 이 광고용지 복사해줄래? 서른장만."
"예."
복사할 프린트를 받고 복사기로 발을 옮기는 중 내 책상아래를 힐끗 보았다. 거기엔 아직도 연필상자가 구석 저 끝에 어둠을 받고 살짝 반짝이고 있었다.
마지막 소설입니다. 그리고 이 까페에 올리는 작품도 마지막이 되겠죠.
아마도 제대하고 나서 또 쓰게 아니 이 곳에 올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리츠,지키,차지아,F.L.C.L,귀천,어린 신. 이 님들을 우선 하늘에 올려놓겠습니다.
'제길..... 시간이 너무 없었다.... 소설을 기한내에 쓰려는 건 잘못된 생각인데.... 후~. '
여러분 힘내세요. 그리고 제발 노력이라는 것 좀 생각해주시길.
=별속에 갖힌 조개=
별이 이야기 합니다. "어떠한 절망도 희망속에 살지 않는 걸 바라보고 있는다면 당신들은 무언가를 기다리기만 하는 삶에 갇혀버렸어요. 단지 기억속으로만 살아가려면 삶이란 단어는 당신이란 사람을 기억 못할거에요."
조개도 이야기 합니다. "당신을 언제까지나 자신 속에 가두지 말아주세요. 어쩌면 그건 내일의 당신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였습니다.
*자연물과 인공물의 조화로서 언제까지나 변하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당신을 하늘로 연결해드릴께요.* <--- ♠Plastic 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