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 김용택
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눈부시게,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지는 해 아래로 가는 출렁이는 당신의 어깨에 지워진 사랑의 무게가 내 어깨에 어둠으로 얹혀 옵니다 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사랑은 때로 무거운 바위덩이를 짊어지는 것이더이다.
......
오래전 주님의 사랑은 날개를 다는 것이라 믿었던 순수하고 어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신 사랑에 취해 하늘을 날며 살리라 다짐하고 응답했던 그 시간부터 사랑은 찬란한 노을빛 어둠의 노래임을 그 사랑은 내게 두렵고 고독한 십자가임을 알았고 이제 사랑은 한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바윗덩이를 짊어지는 것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허나 어찌합니까. 당신의 사랑, 그 감당키 힘든 무게를 내려놓고 이제 살 수 없음을 깨달았사오니...
“그리스도 우리의 빛! ~~~”
우리가 버렸던 꿈, 우리가 돌을 던졌던 희망, 우리가 옷을 벗겼던 진리,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던 사랑...
그분이 슬픔과 어둠의 영혼 가운데로 빛이 되어 부활하심을 선포하는 부활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불신보다 크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죄악보다 강해서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영혼이 부끄러운 배반에서 일어나 부활의 찬가를 부르게하는 부활입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의 큰 기쁨을 한국가톨릭문화원 카페회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저는 한국가톨릭문화원의 박유진 신부입니다. 이곳에서 스콜이란 이름으로 활동하죠.
성금요일인 어제 오후 4시, 건축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 비도 내리지 않았는데 제 머리 위 하늘을 가로지르는 신비롭고 찬연한 무지개를 봤습니다. 서울 가회동 성당 마당에서였습니다. 여러분도 보셨는지요.
“희망을 새겨주시고 당신은 숨을 거두셨구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2008년의 부활인사를 드리며 언젠가 지리산 노고단길에서 만났던 무지개의 묵상과 그곳 정상에서 만난 노을의 묵상으로 오늘 부활의 인사를 나눕니다.
부활을 맞이하는 우리는 주님의 꿈과 사랑으로 부활하는 자임을 믿습니다.
몇 년 전 이곳 한국가톨릭문화원 카페 게시판에 좋은 시를 나누는 게시판을 만들면서 저는 여기에 올리는 첫 번째 게시물로 정호승 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는 시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다시 나눕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 정호승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겨울밤은 깊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도, 하루의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둥켜안고 웃어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울어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
주님의 사랑과 축복 그 꿈을 넘치도록 받는 부활이 되시고 여러분이 교회의 꿈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카페의 작은 나눔들이 아름다운 믿음을 꿈을 함께 키워가는 작고 소중한 또 하나의 하늘의 기쁨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더불어 올해는 한국가톨릭문화원이 시작된지 1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10년간의 적지 않은 시간 속에서 함께 기도하고, 후원해주시며 거룩한 기쁨의 발판을 만들어주셨던 소중한 분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는 4월 12일, 여의도 KBS홀에서 펼쳐지는 우리들의 축제에 바쁘시더라도 여러분 함께 해주셔서 더 큰 희망의 도약을 위해 수고하고 땀흘리는 이들을 격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에는 ‘거룩한 기쁨’의 교회를 위하여 한국가톨릭문화원이 있음을 언제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한국가톨릭문화원 카페회원님 모두의 가정에 부활의 기쁨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부활을 향한 여정)
뜬금없이 마음 가는대로 지리산을 향한 날은 원 없이 비를 맞고픈 스콜의 마음을 아는 듯 앞을 가늠키 힘든 폭우가 쏟고 더러 번개가 하늘을 가르는 그런 날이었다.
마음에 한가득 물이 차오를 때 하늘은 비를 멈춘다.
산 몸뚱이를 사로잡은 구름을 뚫고 노고단을 향할 때 빗물 맺힌 차창엔 빛의 환영이 새겨지고 있었다.
환영(幻影)이야, 빛이 그리운 영혼이 하늘 오르는 길에 환영을 보고 있는 게야.
“내가 구름 사이에 무지개를 둘 터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워진 계약의 표가 될 것이다.” (창세기 9:13)
허나 그건 환청(幻聽)도 환영(幻影)도 아니었다. 지친 내가 잊고 있는 시간에도 그분은 한 점 미물에 지나지 않는 나와의 계약을 기억하고 계셨다.
무지개를 바라보며 그것을 만드신 분을 찬미하여라. 그 찬란함은 매우 아름답도다. (집회서 43:11)
왜 가슴이 젖고 싶었는지 왜 길을 떠나고 싶었는지 왜 하늘 가까이 이르고 싶었는지 그분은 알고 계신다.
젖은 기억이 모두 사라지도록 당신의 빛 앞에 당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닫힌 찬미를 열어주시는 그 분, 그 빛.
무지개는 영광스러운 호를 그리며 하늘을 가로지른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손길이 그것을 펼쳐 놓으셨다. (집회서 43:12)
하늘을 가로지른 빛의 손길이 마음을 가로지르고 계셨다. 접힌 영혼을 펼치려 지극한 손길이 어둔 마음의 하늘을 가로지르고 계셨다.
그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옥 같았으며 그 옥좌 둘레에는 비취와 같은 무지개가 걸려 있었습니다. (요한묵시록 4:3)
접힌 영혼에 다시 얼을 새기고 숨을 불어넣어주시는 분 당신 옥좌에 걸린 무지개를 희망의 비취로 펼쳐 주시는 분, 당신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주님의 약속 앞에 주님의 광채 앞에 주님의 형상 앞에 제가 엎드릴 때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듣게 하소서.
사랑한다. 나는 약속을 잊지 않는 너의 하느님이니 내 사랑의 징표를 잊지 말아라.
지켜 주리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리라. 한 점 하늘에 새겨질 빛이 되게 하리라.
무지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영광스런 원호를 그린다.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손이 당기는 활이다. (집회서 43:12)
네게 펼친 나의 무지개는 내 손이 당기는 활이 되리니 내가 너를 화살로 삼아 당기리라. 나의 힘만으로 그대 모든 것을 맡긴 채 날아가거라. 내가 사랑하는 때로 네가 힘들어하는 약속이 이루어질 세상을 향해...
사랑합니다. 제 어둠 한 가운데 무지개로 가로질러 가셨던 주님.
폭우를 뚫고 노고단을 향하는 길
그 길목에서 쌍무지개를 만났었다.
휴가시즌도 지나버린 지리산은
날씨의 영향과 버무러져 지나는 차량과 인적 조차 거의 없다.
산과 산 사이 가득한 건
미처 바람에 실려갈 수 없던 구름들 뿐이다.
잔구름들은 차라리 지리산을 엄마품인듯
편안히 묻혀있기로 했나보다.
구름을 헤집고 노고단을 향해
다시 산길을 간다.
어느덧 산아래 풍경이 아득하고
저 산과 구름 아래
내가 잠시 떠나온 세상이 있다.
다시 심장이 가빠온다.
내 몸에 작은 흥분이 춤을 추는 시간이다.
해질 무렵,
그 시간이 오고 있다.
힘겹게 구름을 젖히고
마지막 빛이 다가오고 있다.
장엄한 의식이 시작되는
해질 무렵의 서막이다.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사람들은 누구나 해질녘이면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서성거린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싸리나무도 노을 한 폭씩 머리에 이고 흔들거린다.
저 노을 좀 봐. 저 노을 좀 봐.
누가 서녘 하늘에 불을 붙였나. 그래도 이승이 그리워 저승 가다가 불을 지폈냐.
이것 좀 봐. 이것 좀 봐.
내 가슴 서편 쪽에도 불이 붙었다.
(조은일님의 시에서)
이젠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여기서 우리와 함께 묵어가십시오 (루가복음 24,29)
주님, 저도 이곳에서 잠시 머물 것입니다.
희망의 빛을 잃은 제자에게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듯
제게도 당신의 빛 한 조각을 나누어 주시어
다시 보게하시고 한 걸음에 다시 달려갈
힘, 힘을 주소서.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코헬렛 12:2)
제 시간의 지나온 흔적과
가야할 앞날의 설계를 떠나온
시간을 벗어난 시간이옵니다.
이 현재의 기억은 온통 당신 뿐이옵니다.
당신으로만 물들어 취해야할 빛의 전례에 임하게 하소서.
나의 운명은 석양의 그림자, 풀잎처럼 시드는 이 몸이옵니다. (시편102,11)
저의 취기 서린 넋두리여도
당신의 노을에 취한 것이니 들어주소서.
제가 그림자이거든 당신 빛의 그림자이게 하시고
시든 풀잎처럼 말라가거든
당신께 타들어 말라버리게 하소서.
당신 안에 소진함이 저의 기쁨임을 당신이 아시오니...
해는 너에게 더 이상 낮을 밝히는 빛이 아니고 달도 밤의 광채로 너에게 비추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너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 주시고 너의 하느님께서 너의 영광이 되어 주시리라. (이사야 60,19)
주님만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
빛이신 주님,
내 힘이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을
당신을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축제의 환호를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의 빛 속을 걷습니다. (시편 89,16)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야훼여,
행복합니다. 제가
당신의 빛속을 걷고 있사오니...
의인에게는 빛이, 마음 바른 이들에게는 기쁨이 뿌려진다. (시편 97,11)
제가 의인이어서 빛을 누림이 아니옵고
제 마음이 청정하여 기쁨이 뿌려짐이 아니옵나니
당신은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시는 빛의 하느님,
당신은 슬픔의 때를 씻으시는 노을빛의 야훼이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리나이다.
야훼여, 제 안에 마르지 않아야할 사랑의 샘물은
당신의 노을빛 아름다움을 닮게 하소서.
당신의 노을빛 사랑을 닮게 하소서.
당신의 화살이 날아갈 때 번쩍이는 빛 때문에 당신의 번뜩이는 창의 광채 때문에 해와 달은 그 높은 거처에 멈추어 섭니다. (하바쿡서 3,11)
저 반짝임을 담다.
번뜩이는 광채를 담다.
빛 그 앞에 호흡을 멈추다.
저 빛이 화살처럼 영혼의 심장에 박히기를
기도하다. 간절히...
내가 사랑할 세상을, 사람을, 소명을
빛속에... 담다.
눈물로 보여지는 나는 아니다 아픔으로 이어져 느끼는 살아있음, 결국 사랑은 홀로선 나무처럼 애절하게 타오르는 성냥개비 돌아보며 돌아보며 절망하고 내 바라던 사랑의 하늘은 더욱 더 붉게 꺼져 간다.
(서정윤님의 시에서)
노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노을은 새겨지는 것
너무도 깊이 새겨지다가
내 안에 온통 머금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빛을 주고서야
노을은 한 노을빛의 사람을 남기고
꺼진 듯 사라지는 것이다.
남겨진 노을에게
'빛이 되어라' 한 울림 심어놓고...
저 노을은 누군가의 말처럼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는 전례다.
어떤 축복의 안수가
저 노을만큼 비장하고 장엄할까.
우주의 생명을 노을은 다 주려 한다.
난 견디기 힘들만큼
행복하다.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 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 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대의 단층 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산을 물들이고 느티나무 잎을 물들이는 게 저무는 해의 손길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구름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나는 내 시가 당신의 얼굴 한 쪽을 물들이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내 노래가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당신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저녁노을이기를,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길 소망했습니다
시가 끝나면 곧 어둠이 밀려오고 그러면 그 시는 내 최후의 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내 시집은 그때마다 당신을 향한 최후의 시집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떨었습니다
최후를 생각하는 동안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한 세기는 저물고 세상을 다 태울 것 같던 열정도 재가 되고 구름 그림자만 저무는 육신을 전송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스러져 가는 몸이 빚어내는 선연한 열망
동살보다 더 찬란한 빛을 뿌리며 최후의 우리도 그렇게 저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무는 시간이 마지막까지 빛나는 시간이기를,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하늘 위에 마지막 순간까지 맨몸으로도 찬연하기를,
(도종환님의 '저녁 노을'에서)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 승패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기형도님의 시에서)
여러분은 빛과 함께 있는 동안 그 빛을 믿으시오. 그리하여 빛의 아들이 되도록 하시오." (요한복음 12,36)
주님, 저는 지금
'빛과 함께' 있사옵니다.
하오니 부디
빛의 아들이 되게 하소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8,12)
찬연한 석양빛 그 너머에까지
빛의 길만을 따르게 하소서.
어둠 속을 걷지않고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눈부시게, 눈이 부시게 쏟아지는 지는 해 아래로 걸어가는 출렁이는 당신의 어깨에 지워진 사랑의 무게가 내 어깨에 어둠으로 얹혀옵니다
사랑이 날개를 다는 것만은 아니더군요 사랑은, 사랑은 때로 무거운 바윗덩이를 짊어지는 것이더이다
(김용택님의 '노을'에서)
제가 무척 좋아하는 시입니다.
눈부시게 지는 빛의 길을 가시는
당신 사랑의 무게가
제 어깨에 어둠으로 남을 것임을 압니다.
사랑은 날개를 다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 우주의 무게가 느껴지는
바윗덩이을 짊어지는 것임을 압니다.
허나 어찌합니다.
제가 노을에 취한 것을.
당신이 그렇게 찬란한지 차라리 알지 못했다면 당신이 그렇게 나를 물들이는지 알지 못했다면 나는 꿈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붙들고 계시기에 저는 오늘도 슬픈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주님 저로 하여금 노을처럼 살게 하소서. 노을처럼 죽게 하소서. 내 슬픈 기도가 어느 날 사랑이 되게 하시고 기쁨이 되게 하시고 부디 아름다운 부활길이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스런 부활로 이 밤을 비추신 천주여, 교회 안에 자녀의 정신을 박아주시어, 저희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새로워져 당신께 깨끗한 봉사를 드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세세에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천주 성자,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부활성야 미사 본기도에서)
알렐루야!알렐루야!알렐루야!
빈 무덤에 가득한 승리의 기쁨을 나눕니다.
그 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 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마태 28,5-6)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는 일이 없어 죽음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6,9)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죽었다가 부활한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1고린 15,20)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로마 4,25)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로마 4,25)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은 몸까지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
(로마 8,11)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때가 오면 죽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그 음성을 들은 이들은 살아날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요한 5,24-25)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이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1고린 15,51-5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요한 11,25)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같이 다시 살아나서 또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로마 6,5)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을 믿습니다.
(1데살 4,14)
+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마지막 사진은 비오는 날 제 방에서 바라본 신천성당 부활예수님상입니다.
복음문화의 삶을 꿈꾸며 이곳 카페를 찾으시는 모든 분들께 부활의 큰 기쁨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부활을 위해서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살아야 할 소명을 지닌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제 그대가 부활의 삶을 함께 나누는 부활의 사람이시기를 기도합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카페에서 여러분과 함께 부활의 꿈을 키우고 나누는 여러분의 사제가 되겠습니다.
스콜
Catholic Cultural Center 한┃국┃가┃ 톨┃ 릭┃ 문┃ 화┃ 원┃
|
늘 바쁘게 스쳐가곤 했는데 오늘은 오래 머물지않을 수가 없습니다. 영상 메시지와 함께 부드런 주님 손길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께 영광!!
신부님 잘듣고 보고 갑니다. 자주 들러 보고 읽고 가겠습다. 감사합니다.
참 소중한 시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아! 이러한 곳이 있었군요, 아름다운 음악과 신부님의 멋진 목소리와 가슴을 울리는 글, 그리스도의 평화가 잔잔하게 울려퍼짐을 느낍니다.
이 비오는 아침에.. 주님의 깊은 사랑을 다시 또 느끼며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 ^^*
매순간 숨쉬는 동안에도 늘 주님 함께하심을 주님은총 가득함을 느끼고 깨달음에 감사하나이다. 신부님의 영성이 노을빛 으로 다가오네요 늘 푸른 솔처럼 변치마옵소서.주님께서 신부님과 함께 하시길 ...... 아멘
t신부님 좋은말씀과 여러모로 도음이 많아지네요 신부님 목소리에 신심 이 두터워짐니다...
신부님 좋은말씀 오늘에야 비로소 듣고갑니다. 제가 살고 있는곳도 지리산과 가까운 곳의 성당이랍니다.
마음이 평온함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