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 IAEA와 핵안전협정을 맺으면 자국내에 있는 핵시설을 모두 보고하여야 하고, 이 '최초보고서'에 따라 임시사찰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인공위성을 통해 이미 드러났고, IAEA의 1차 임시시찰 과정에서 육안으로 발견된 바 있는 2개의 시설을 처음부터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중 하나를 '소형 핵재처리서설 또는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소', 다른 하나는 '액체 및 고체 핵폐기물 저장소'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바 있듯 핵개발을 하는 싸이클에 의하면 이러한 시설이 꼭 있어야겠죠. 그리고 이 시설에서 샘플을 채취해보면 북한의 과거 플루토늄 추출량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애초에 이 시설을 신고하지 않았고, 더욱 의혹이 가는 점은 IAEA의 사찰단이 오기 며칠 전 군인과 노동자들을 대거 동원하여 흙으로 완전히 덮어버렸습니다. 1989년 위성촬영에는 <그림A>처럼 되어 있던 건물을 <그림B>처럼 흙으로 덮고 경사를 완만하게 하여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건물을 군사시설이라 하여 끝까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최초보고서에서 신고한 '방사화학실험실'이 사실은 재처리시설이고 이 시설 또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밌는 것은 북한이 이것이 재처리시설임을 나중에야 시인하면서 '고속증식로(高速增殖爐)'의 연료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전문가들은 어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고속증식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연소시키면서 동시에 소비한 양 이상의 새로운 플루토늄을 만들어내 발전하는, '미래의 원자로'라 불리는 선진기술입니다. 그런데 핵무기용 플루토늄 추출이 불가능한 경수로(輕水爐)도 "기술력이 없어 못만든다"고 주장하던 북한이 핵 선진국에서도 기술상의 문제로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고속증식로를 만들겠다니, 핵에 대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황당무개한 변명이 또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겠지요. 자동차 엔진을 만들 기술이 없어 오토바이 엔진을 갖고 있다던 사람이 비행기 프로펠러를 만드는 중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니, 북한은 갈수록 의혹만을 짙게 했습니다.
더구나 지금도 북한이 발전용이라고 주장하는 그 원자로 주위에는 송전탑이 없습니다. 50MW급 원자로와 200MW급 원자로도 거의 완공 단계에 있었는데도 발전소를 건설한다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송전시설 공사가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데도 이 원자로들을 무슨 용도라고 생각해야겠습니까? 그러니 5MW급 원자로는 더 큰 원자로에서 대량의 플루토늄을 얻기 전까지 몇 발의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예비단계, 50MW와 200MW급은 본격적인 대량생산을 위한 원자로로 추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수 : 그렇다면요, 북한이 흑연감속로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고 또 1998년부터는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해 내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앞에서 말씀하신 핵무기 개발의 4대 필수조건 중 첫 번째인 '핵분열성 물질의 획득'만 충족시킨 것 아닙니까. 핵폭발장치의 제조, 핵실험, 핵투발수단의 개발까지 다 충족하여야 '무기로서의 핵'이 갖춰진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진실 :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핵이 무기로서 위력을 갖자면 핵분열성 물질을 획득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럼 나머지 3가지 요소는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먼저 핵폭발장치에 대해 알아봅시다. 앞에서 핵분열물질로서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몇 그램의 핵분열물질을 갖고 있다고 핵무기의 위력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KT의 핵폭탄을 만들려고 하면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의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임계질량'이라고 합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주장대로 정말 90g 정도의 플루토늄을 갖고 있느냐 IAEA의 주장대로 kg 단위의 플루토늄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IAEA에 따르면 20KT 위력의 임계질량을 플루토늄은 8kg, 우라늄은 25kg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 정도 이상의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했어야 표준원자폭탄이라고 하는 20KT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초임계질량'이라고 합니다.
초임계질량이 달성되었으면, 즉 kg 단위의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을 추출해냈다면 본격적으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폭장치입니다. 그러면 슬슬 핵폭탄의 작동원리에 대해 설명해야겠는데요, 민수씨는 혹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핵폭탄의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민수 : 네 알고 있습니다. 그건 TV 퀴즈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기도 하는 문제던데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리틀보이, 나가사끼에 떨어진 것은 팻맨 아닙니까?
진실 : 맞습니다. 당시 핵개발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3개의 핵폭탄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실험용으로 사용하고, 실전에 사용된 나머지 두 개중 하나는 홀쭉하고 긴 외형을 따 '리틀보이(little boy)', 다른 하나는 뚱뚱하고 큰 외형을 따 '팻맨(fat man)'이라 불렀습니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는 우라늄탄이고 8월 9일 나카사끼에 투하된 팻맨은 플루토늄탄입니다.
이 두 원자폭탄의 외형을 보면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의 기폭장치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핵무기 내부에는 당연히 핵분열 물질이 들어있을 텐데, 이것을 초임계질량 상태로 만들어서 운반하다 보면 자칫 핵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폭발 전까지는 미임계질량 상태로 쪼개놓았다가 이것을 투하할 때 순간적으로(백만분의 1초라는 극히 짧은 순간에) 초임계질량 상태로 만들어주는 기폭장치 (고성능폭발장치라 하여 '고폭장치'라 부름)가 필요합니다. 뒤에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것은 원리는 간단한데 고도의 기술력과 여러 차례의 실험을 거쳐야 합니다. 비싼 돈들이고 오랜 시간이 걸려 핵분열물질을 획득하긴 했는데 기폭장치가 잘못돼 핵사고가 일어난다든지 불발하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테니까요.
핵물질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데 가장 적합한 형태는 구형(球型)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어느 복권 추첨 TV프로그램을 보니 투명한 구 안에 여러 개의 공을 넣고 돌리다가 구멍으로 빠져 나온 공에 쓰인 번호를 행운의 숫자로 채택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던데, 만약 그것이 구가 아니라 네모난 상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구 안에서 공이 잘 튀길까요, 네모난 상자 안에서 더 잘 튀길까요? 당연히 구 안에서 공들끼리 서로 열심히 부딪히고 이리저리 굴러다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핵 연쇄반응을 잘 일으키려면 핵무기 속의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완전한 구 형태로 되어 있거나 구형으로 조립되도록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둘(또는 그 이상)로 갈라져 있는 구를 일순간 하나로 '합쳐지게 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리틀보이의 경우 아래 <그림C>에서 보듯, 공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길다란 파이프의 양쪽에 있다가 갑자기 하나의 반쪽을 세게 밀어 다른 반쪽에 갖다 붙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포신형(Gun type) 기폭장치라 합니다. 팻맨은 좀 다른 방식을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귤을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귤은 안에 여러 개의 귤 조각이 있는데 그것이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조금씩 틈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을 손으로 세게 감싸쥐면 간극이 갑자기 좁혀지면서 구형이 되겠지요. 이것을 <그림D>와 같은 내폭형(Implosion type) 기폭장치라 하는데, 팻맨은 그런 방식이어서 리틀보이보다 더 둥글고 부피가 컸던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포신형은 우라늄탄에, 내폭형은 플루토늄 탄에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은 물론 핵무기 제조방식이 많이 발전했지만 이러한 제조 원리는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
민수 : 생각보다 원리는 간단하군요. 그런데 북한이 이러한 기폭장치를 갖고 있단 말씀이십니까?
진실 : 북한이 핵분열물질을 갖고 있는가 여부는 90% 정도 확신을 갖고 10% 정도 회의감을 가질 수 있지만 기폭장치의 개발여부는 99% 확신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핵분열물질의 경우 북한 내부의 극히 소수의 연구사나 최고위층 정도가 되어야 그 구체적인 성과를 알고 있겠지만, 기폭장치실험은 여러 사람의 눈에 띌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기폭장치 개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증언과 증거가 있습니다.
일단 영변원자력연구소 남측에 넓은 분화구 같은 것이 생성되어 있는 것을 인공위성이 탐지한 바 있습니다. 핵분열물질과 기폭장치를 갖추게 되면 대개 그것을 시험해보려고 소량의 핵분열물질을 장입하여 실험을 해보게 되는데 1KT 급이라 하여도 그 위력이 막강하니 꼭 화산 폭발하듯이 증거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IAEA 사찰단이 이 실험흔적을 지적했을 때 북한은 "이 흔적은 원자로 동체에 대한 충격파 실험 흔적"이라고 대답한 바 있습니다. 원자로 안전을 위해 그런 엄청난 실험을 하다니,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절대 안정성이 요구되는 핵단지 내에서 기폭장치 실험을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또한 1991년 6월에는 북한이 내폭형 방식에 의한 기폭장치를 개발하였다는 첩보가 미국 정보기관에 입수된바 있는데, 북한이 이 시기에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으로 예상되는 바 무언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핵화학방위국'에서 근무하다 1993년 11월 남한으로 온 탈북자 이충국 씨는 자신이 직접 기폭장치 실험에 참가한 것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1993년 3월 한국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답변하기를 "북한은 기폭장치 실험을 1980년부터 영변지역에서 70회 이상 실시하여 기폭장치를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이 기폭장치 실험을 제네바합의 이전에 이미 70회 이상했으며 합의 이후에도 4차례 정도 실시했다는 것은 이미 정설에 가깝습니다.
물론 기폭장치 개발이 그리 손쉬운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된 핵무기를 얻자면 특수폭약이나 고속촬영카메라 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 때문에 북한이 외국에서 공식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닙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현재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상당히 조잡하고 지저분한 형태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극히 초보적인 단계의 핵무기라해도 핵은 핵입니다.
민수 : 그렇다면 이제 핵무기 제조의 조건으로 핵실험과 핵투발수단이 남는데요, 이 분야에 대한 진척 정도는 있습니까?
진실 : 아시다시피 북한은 현재까지 공개적인 핵실험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핵무기 제조에서 실험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예산이 투여된 상당히 정교한 무기이기 때문에 실험을 통해 그 실질적 효과를 시험하고 각종 장치에 대한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북한 같은 나라가 핵을 개발했을 때는 핵실험을 실시해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난과 제재를 받기보다는, 자국의 핵보유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orm Nor Deny) 정책을 취함으로써 협상의 도구로 삼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입니다.
또한 꼭 핵실험을 해야만 핵폭발의 신뢰성을 보장받고 그 위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까지 핵을 보유한 국가 중 최초의 핵실험에서 실패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1996년 UN에서 결의한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서명 154개국, 비준 51개국)이후 세계 모든 나라들은 어떠한 형태·규모·장소에서도 핵폭발 실험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선진국에서는 편법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핵폭발 실험을 하고 있다는데 북한이 이러한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정보에 따르면 90년대 중반 카자흐스탄이나 우크라이나의 지하 핵실험실을 빌려 핵실험을 실시했다는 보고도 있었으나 이는 그리 신빙성이 없는 정보로 보입니다. (북한이 벼랑끝 전술의 마지막 카드로 핵실험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핵투발수단은 앞서 말씀 드린바 있듯 무기로서의 핵이 완성되는 중요한 요건입니다. 아무리 만들어봤자 목표지점에 떨어뜨리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2차대전때 일본에 했던 것처럼 비행기에 실어서 투하할 수도 있지만 대공미사일의 위력이 당시와는 비할 바 없이 강해진 현대전에서 비행기로 핵을 투하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레이저에 탐지되지 않는 최첨단 항공기를 개발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래서 현대전에서 주로 사용하는 핵투발수단은 '미사일'인데요, 민수씨 혹시 북한의 미사일 중에서 이름을 아는 것이 있어요?
민수 : 제가 그것도 모를 것 같아서요? 그야 스커드B형을 개량한 노동1호와 북한이 인공위성을 실어 쏘았다고 주장했던 대포동1호가 가장 유명하잖아요.
진실 : 네 알았어요. 그럼 탄도(彈道)미사일이 뭔지 아세요?
민수 : 탄도미사일? 그건 말은 많이 들었는데 솔직히 뭔지는 정확히 모르고 있는데요.
진실 : 이것도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들어갈 테니까 확실히 딱 들어맞지는 않아도 가능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게요. 육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무기로 '대포(大砲)'가 있죠? 이것이 어떻게 발사되는 지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거예요. 총과 비슷한 원리로, 대포알을 장전·격발하여 포신을 통과해 멀리 날려보내는 겁니다. 물론 낙하지점이나 풍속 등을 계산해서 포의 높이나 각도 등을 결정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 대포를 수∼수십 km가 아니라 수백∼수천km로 날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신의 길이가 엄청나게 길어져야 할 것입니다. 수백 km의 사정거리를 얻으려면 포신의 길이가 100m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상상만 해도 우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방향에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첫째는 대포로 말하면 탄알에 자체의 추진장치를 달아 스스로 날아가게 만들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탄알의 머리부분에 고성능 카메라나 센서를 부착하여 사람들이 지상(地上)에서 탄알이 날아가는 경로를 보면서 조정하면 더 정확성을 높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리에 의해서 나온 게 로켓(rocket)인데, 알다시피 영화 같은 데에서 보면 로켓의 뒤로 불이 뿜어져 나와 먼 거리를 날아갑니다. 자체의 추진장치를 갖고 날게 되는 것이지요. 로켓의 원리에 두 번째 원리를 결합해서 나온 것이 미사일입니다. 사전에 보면 미사일은 "로켓·제트엔진 등으로 추진되며, 유도장치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유도되는 무기"라고 정의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흔히 미사일을 '유도(誘導)미사일(guided missile)'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이라고 하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되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높이와 거리까지는 로켓의 추진력으로 날아갑니다. 하지만 작은 로켓에 담긴 연료로 그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없을 테니 일정 지점에 도달하면 로켓의 분사를 그치고 그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가졌던 가속도에 의해 자유탄도를 그리며 목표에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탄도'는 탄알이 날아가는 길, 즉 투포환처럼 포물선을 그리는 궤도를 연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민수씨, 그럼 ICBM 이란 말도 들어봤을 거예요. 그건 뭔지 아세요?
민수 : ICBM이란 말도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듣기는 했는데 사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어요. 제가 군대를 갔다 왔어야 말이죠.
진실 : 호호호. 그게 군대 안 갔다 온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요?
ICBM은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의 약자로, 번역하자면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고 불러요. 미사일은 그 용도에 따라 전략미사일, 전술미사일, 방공미사일, 대전차미사일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ICBM은 전략미사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전략과 전술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을 거예요. 전략 무기들은 주로 대량 파괴, 장거리(長距離), 고성능 등의 특징을 갖고 있죠. ICBM은 말 그대로 대륙을 건너서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사거리 1000km 이상의 미사일을 말해요. 여기에 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장착하고 날아가면, 전장(戰場)이 어딘가에 상관없이 상대방의 주요 도시를 습격하여 대규모의 인명을 살상하고 큰 혼란을 초래하는 전략미사일이 되는 것입니다.
1993년 발사된 노동 미사일은 960∼1280km의 사거리를 갖고 있었어요. 이 정도면 북한에서 일본까지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이죠. 그리고 1998년 발사된 대포동 1호는 일본 혼슈 북단을 지나 발사지점으로부터 1900km 떨어진 태평양상에 추락했어요. 당시 일본 열도가 공포에 떨었던 이유가 충분했죠. 이미 북한의 미사일은 일본쯤은 충분히 사정거리에 두고 있다는 것을 대외에 선전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현재 북한은 대포동 2호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조금만 개량하면 사거리 6000km 이상으로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으리라는 관측도 있습니다.
대포동 1호가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은 이 미사일이 3단계 미사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미사일이 장거리를 날아가자면 일단 그 정도의 충분한 연료를 탑재해야겠고, 또 미사일이 가벼워야겠죠. 그래서 과학자들은 미사일을 여러 단으로 분리하여 처음에는 커다란 몸체를 지니고 날아가다가 연료가 일정정도 연소하면 불필요한 부분을 분리해 떨어뜨리고, 다시 새로운 연료로 재추진하여 목표지점에 접근하다가, 나중에는 초경량으로 탄도를 그리며 떨어지게 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98년 실험에서 북한은 3단을 분리하여 점화시키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무튼 "우리는 ICBM 기초가 되는 다단계 추진 기술도 갖고 있다"고 전 세계에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북한은 이 미사일에 인공위성(광명성 1호)을 실어 쏘았다고 주장했지만, 군사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공위성'이라는 말보다도 그런 미사일 탄두 분리 능력을 보유했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특히 북한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나라가 이것을 보유했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를 향한 협박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탄두에 인공위성이 아니라 핵폭탄이 실린다면 그것은 곧 전략핵무기가 되는 것 아닙니까.
민수 : 하지만 어디선가 "북한의 미사일은 정확도가 상당히 떨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진실 : 그렇습니다. 전문가들은 노동 1호의 원형공산오차(CEP)를 약 5km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대포동 미사일도 그 정확도는 그리 높지 못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미사일에 핵이 실린다고 하면 정확도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광범위한 지역을 대량 살상하는 무기인 만큼 목표지점에서 몇 km 벗어난다고 해서 별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가 '핵'만 가지고 고민을 해왔는데, 탄두에 핵을 장착하는 기술보다 더 쉽고 가벼운 생화학무기를 장착한다면…. 이것은 지금의 기술력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북한의 핵투발수단 개발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그 중 결정적인 것이 탄두의 무게를 줄이는 것입니다. 2차 대전당시 일본에 떨어졌던 리틀보이의 무게는 자그만치 4톤이나 되었습니다. 그것을 B-29 폭격기에 탑재하여 약 9000m의 고공에서 투하한 것이죠. 미사일에 핵을 실으려면 이 탄두의 무게를 1톤까지는 줄여야 하는데, 이 기술이 앞으로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다음은 국방홍보원에서 발행하는 국방저널 2001년 2월호에 실린 '북한의 미사일 위협 실체와 미국 정책방향'이라는 글 중 일부입니다.
"(북한 미사일의) 탄두 소형화를 위해서는 고속 X-ray 카메라를 비롯한 실험용의 여러 가지 특수장비들이 필요하다. 정확도 향상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외국의 도움이 적게 필요하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 보다 진보된 자이로스코프 및 각종 유도·조종 장치와 관련기술이 필요하다. 재진입시의 연소방지를 위해서는 세라믹 차폐와 같은 열 차단 능력이 우수하고 응력에 강한 복합 재료를 필요로 하며 대부분의 이들 고효율 자재는 상용시장에서는 확보가 불가능한 것들이다. 1단 부스터의 추진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대포동 1호에 사용된 것 보다 더 큰 엔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노동 1호 엔진 4개를 다발로 묶어서 사용할 경우 가능하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더 큰 직경의 부스터를 필요로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의 선반 및 다른 공작기계들과 공구를 필요로 한다. 중국은 중거리 미사일인 둥펑(東風)3호의 사거리 연장을 위하여 알루미늄으로 제작했으나 북한이 같은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고급의 알루미늄 합금을 구입할 수 있는 외국의 공급처를 찾아야만 한다."
민수 : 그럼 앞으로의 과제는 북한이 이러한 첨단 기술 및 장비를 더 이상 추가로 입수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데 있겠군요.
진실 : 네 그렇습니다. 여기서 잠깐 방향을 돌려 '대북 경제제재'에 대해 살펴봅시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여론 매체를 통해 "북한의 어려운 경제형편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탓"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더라도 적지 않게 그러한 요소가 있다면서 은근히 책임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는 의도까지 내비칩니다.
물론 북한이 정상적인 수출입을 통제 받는 부분이 있습니다. 냉전시대에 COCOM이라는 기구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대공산권수출조정위원회'(The Coordinating Committee on Multilateral Export Controls)이라고 불리던 이 기구는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한 국가들이 가입하여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군수물자 수출을 통제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즉 서방국가들의 군수 물자 및 군사적으로 전용이 가능한 물자가 공산국가로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4백여 개 품목에 대해 수출을 통제했으나 이후 공산권의 기술향상으로 규제가 무의미해진 품목은 제외하고 군사목적으로 전용 가능한 반도체 및 통신장비 등을 새로 추가하여 150여 개 품목에 대해 수출을 통제하였습니다.
이 기구는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해체되면서 그 필요성이 감소되어 1994년 3월 해체되었다가 북한, 이라크, 리비아 등 불량국가들에 대한 제재를 위해 네덜란드 바세나르에서 회의를 갖고 새로운 협약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바세나르 협약(The Wassenaar Arrangement)이라는 이름아래 구성된 새로운 체제가 1996년 발족했으며『전략물자 및 기술 기본리스트』에 따라 '국제평화와 지역안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국가'로의 무기 및 무기로 전용 가능한 물자에 대한 수출입·기술 이전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었었다는 말은 아마 세계 최대의 사기 중의 사기, 엄살 중의 엄살로 기록될 것입니다. 세상에 군수품 수출입을 통제 받아 경제위기에 봉착한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바세나르체제의 가입국은 현재 33개국밖에 되지 않아 빠져나갈 구멍도 많습니다. 더구나 북한의 옆에는 세계 최대의 인구와 자원을 갖고 있으며 피로 맺은 우방이라 말하는 '중국'이라는 엄청난 시장이 있습니다. 지구상의 모른 나라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일절 끊는다해도 중국을 향해서 만이라도 개혁 개방을 한다고 하면 충분히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어떻게든 잡아서 끌고 오고 있으니 답은 뻔한 것 아닙니까. 북한 인민이 저토록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된 원인은 첫째도 폐쇄된 체제·독재 정권에 있고 둘째도 폐쇄된 체제·독재 정권에 있습니다. 이 너무도 자명한 원인을 덮어두고 애써 두둔하려는 사람들은 도대체 눈을 뜨고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민수 : 그럼 이제 총괄적으로 정리해보죠. 북한은 현재 어느 정도의 핵을 보유하고 있을까요?
진실 : 북한이 핵 과거를 검증할 수 있는 샘플채취 및 미신고시설 사찰을 거부해왔기 때문에 정확한 파악은 힘듭니다. 다만 과거에 핵개발에 참여해봤던 과학자들과 핵 선진국들은 대개 지금까지 북한이 최소 6kg에서 최고 24kg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내폭형 플루토늄탄을 1개에서 4개까지 만들 수 있는 양이죠.
신건(辛建)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해 10월 24일 국회 정보위에서 한 비공개 보고를 통해 "북한이 10∼30㎏ 정도의 농축 우라늄을 확보해 조악한 수준의 핵폭탄 1∼3개를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이 50% 이상이다"고 밝힌 바 있고, 이준(李俊) 국방장관은 10월 23일 국회 예결위 답변에서 "정부는 북한이 20kt의 핵무기 1, 2개를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 10∼12㎏을 제네바 합의 이전에 추출해 보유중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폭실험여부와 핵무기 소형화의 진척여부에 대해선 추적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그 동안 만났던 북한 고위층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볼 때 김정일이 지금 1개 이상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확신' 정도로 남겨두고, 일단은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 양이 90g뿐이라고 해둡시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보았던 대로 북한의 핵시설은 플루토늄 대량 생산을 위한 시설이라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에서 장황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에 따로 정리하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도 "의혹을 가지고 바라보면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느껴진다"는 말을 받아 들여, 일단은 북한의 핵시설을 '발전용 시설'이라고 해둡시다.
하지만 북한의 전력사정을 생각할 때 현재 급한 것은 원자력 발전소가 아닙니다. 완공을 앞두고 공사를 중단했던 50MW급, 200MW급 원자로와 가동 중이었던 5MW급 원자로를 모두 합친다해도 원자력 발전을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전력량은 255MW입니다. 물론 이 정도의 전력량이라 해도 해만 지면 암흑천지로 변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전력량입니다. 그러나 발전소의 전기출력이 그대로 전기가 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국가의 경우 송배전의 과정에서 약 6%정도의 전력손실이 발생하고 있는데, 북한의 경우 송배전시설이 워낙 낙후해 30%이상의 전력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 역시 "그 정도 전력이라도 어디냐"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엄청난 생산과 연구비용, 장기간의 건설기간, 거기다 방사능 누출의 위험까지 안아야 하는 원자로를 가동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전기를 얻을라치면, 정말 정상적인 국가운영자라면 화력발전소나 기타 복합발전소를 몇 개 더 짓지 원자력 발전소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김정일이 전력 생산을 염두에 두고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거라면, 김정일의 허영심이 국가경제를 망치는 또 다른 예로 기록될 것입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주위에 송배전 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수년간 원자로를 가동했으니, 누가 이것을 발전용이라고 믿어주겠습니까?
민수 :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척 억지로 의혹을 부풀리면서 이것을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 지렛대로 활용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 제네바 합의를 통해 경수로 지원 등 많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었고 일정정도 체제보장의 약속까지 받았잖아요.
진실 : 경제적인 이득이나 체제보장을 받으려고 그런 불장난을 해요? 만약 핵포기의 대가로 경제적인 이득을 챙길 것을 예상하고 핵 의혹을 증폭시켰던 거라면 제네바합의 과정에서 북한은 공사 기간이 길고 관리하기도 어려운 경수로 건설보다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김에 열효율이 높은 LNG복합발전소나 송배전 시설 같은 것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 컸을 것입니다.
또한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여 일본의 핵개발과 중국의 핵무장 강화, 한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 등의 연쇄효과를 가져올 게 뻔한 핵개발보다 적극적인 개혁 개방을 통해 체제보장을 받는 편이 가장 빠르겠지요. 세계적으로 가장 폐쇄되어 있고 "이 나라만 민주화되면 전 세계 민주화의 절반은 끝나는 셈이다"라고 이야기되는 북한이 핵에 대한 모든 의혹을 풀고 개혁 개방하겠다고 나서면 도와주겠다는 국가와 국제기구가 줄을 설 것입니다. 물론 김정일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것이라는 말이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고 화가 날 따름입니다.
북한은 지난 20002년 12월에 열린 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부터 남측에 전력공급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래서 남한 여유 전력을 북한에 공급하자는 의견도 많이 일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전기를 연결하자면 송전 최단거리인 남측의 문산과 북측의 남천배전소까지 거리가 90km에 달하는 데다 남측의 주파수가 60Hz인데 비해 북한은 50Hz대로 직접송전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밖에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대북 전력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북한에 전한바 있지만, 북한은 남북한의 전력시설을 일치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전력시설 시찰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속셈과 현재 처해있는 딜레마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민수 : 이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럼 이제 최근의 여론과 관련해 몇가지 질문을 해요. 저는 어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있는 토론광장에 자주 들어가 보는데요, 거기에서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토론방이 개설되어 의견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게 보이는 이야기는 이런 거예요.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통쾌하다…. 혹은 남북이 통일되면 그 핵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니 상관없다는 식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죠. 물론 대개 중고등학생들의 의견으로 보이지만 좀 심각해 보입니다.
진실 : 거기에 대해서는 앞에서 익히 이야기를 했지만 몇 가지만 더 추가해서 말씀드릴게요. 올해 초 조선일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어느 나라를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적으로는 '다른 나라'를 겨냥한 것이라는 견해가 54.4%로 '한국'(27.7%)이라고 응답한 사람보다 갑절 가량 많았다고 합니다. 또 한국일보의 조사에는 핵 문제를 '핵 개발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26.6%), '핵 개발로 이어져도 안보 위협 아니다'(21.2%)로 보는 낙관적, 이상적 견해가 '대미 협상용이지만 안보 위협 요인이다'(30.1%), '핵 개발로 이어져 심각한 안보 위협 요인이 된다'(14.4%)는 견해보다 오히려 많았고 합니다. 심각한 안보 불감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가 너무 불안에 떨고 있어도 문제이지만 확실한 위협요소가 눈 앞에 있음에도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문제죠.
일단 이런 이야기를 해보도록 해요. 1999년 8월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미그전투기 40대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2000∼2001년에는 러시아의 최신형 전투기인 미그 31기 20대 8억달러어치를 도입했습니다. 1억 달러면 미곡물협회에서 지원하는 옥수수를 200만톤 정도 구입할 수 있는 막대한 돈이고, 이 정도의 양이면 북한의 년간 곡물부족분 200만 톤을 메워 단 한사람도 굶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8억 달러이면 8년 동안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이지요. 그런데 최근 뿐 아니라 극심한 식량난 속에 수 백만 명이 굶어 죽던 90년대 중반에도 김정일은 핵무기 제조물질과 장비를 도입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나라 국민도 눈 하나 까딱 하지 않고 굶겨 죽이는데 대한민국 국민을 동포라 여겨 남한을 향해 핵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짝사랑 정도가 아니라 백치(白痴)입니다. 김정일은 "조선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면서 "전쟁이 일어나서 우리가 질라치면 지구를 폭파시켜버리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는 남한 국민이 살자고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유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이 김정일 개인의 왕국을 견고히 하고 인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보았듯 인민이 굶어 죽든 말든 엄청난 예산을 써가며 핵놀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손에 핵이 놓여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더욱 기고만장하여 세상을 협박하며 인민들의 고통의 시간을 연장시킬 것입니다.
남북이 통일되면 북한의 핵이 남한 것이 될 것이므로 좋은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소설이나 만화를 너무 많이 보았다'는 말밖에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습니다. 핵을 비롯한 모든 대량살상무기는 그것이 남한 것이 되었든 북한 것이 되었든 미국 것이 되었든 지구상에서 다 없어져야 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북한의 핵무기를 남한이 접수(?)하게 된다 하더라도 자진해서 해체하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민수 : 그렇다면 왜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 겁니까?
진실 : 반대하지 않다니요? 저는 반대합니다. 적당한 예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니 비슷한 경제 형편의 B라는 사람도, 그 옆 집의 C, D, E라는 사람도 경쟁적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보니 이 자동차라는 새로운 발명품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A, B, C, D, E 가 모여 토의를 했습니다. "너무 위험한 발명품이니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이 만들거나 타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자." 물론 여기에는 자신들은 이미 그 맛을 볼대로 봤으니 다른 사람까지 그 쾌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는 이기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상대로 동네 사람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왜 너희들은 했던 것을 우리는 못하게 하느냐!"
물론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도구인 자동차와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핵을 비유한 것이 논리전개상 처음부터 잘못되었지만 이 정도의 예를 들어봅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래, 너희들 맘대로 해라"해서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이 바른 길일까요, 불평등하다는 욕을 먹더라도 "악을 향한 평등보다는 선을 향한 불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옳을까요? 저는 당연히 후자(候者)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NPT 체제는, 국제정치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적하는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입니다. '2차대전 후 최고의 걸작'이라고도 불리는 NPT는 1967년을 기준으로 핵 보유국, 비보유국을 갈랐고, 핵탄을 보유할 수 있는 나라를 기존의 핵 보유국으로 제한했습니다. 이들 나라는 핵폭탄 '소지허가증'을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보유국들은 NPT 체결 이후 다자간 혹은 양자간 협상을 통해 꾸준히 핵무기 보유 숫자를 줄여왔습니다. 물론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을 검토하던 회의에서 "핵 보유국의 핵 감축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것 때문에 NPT 연장회의가 난항을 겪기도 했지만 NPT 체제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현실적인 필요성은 다 공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핵보유국들의 핵감축협상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불만이 많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서로간에 신뢰감이 조성되지 못한 탓도 있고,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으며, 특히 최다 보유국인 미국인 과감한 핵감축을 하지 못하는 것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미국도 갖고 있는데'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자동차와 핵을 비유한 것처럼 적절하지 못합니다. 미국이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북한이 핵을 개발해야 할 어떠한 명분도 안됩니다. 특히 평화주의자일수록 북한의 핵개발을 반대해야 합니다. 핵에 대응해 핵을 개발하겠다는 '악의 사슬'은 평화주의자들이 가장 경계하고 반대해야 할 논리 아닙니까? 그런데도 북한 핵 이야기만 나오면 엉뚱하게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문제다'하는 엉뚱한 이야기부터 꺼내는 자칭 평화주의자들의 속내를 저는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민수 : 제 주위에도 반전 평화운동을 한다는 친구들이 몇 명 있는데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치 않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일부 언론이 부풀리면서 강경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주장하던데요?
진실 :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오늘의 대화를 통해 내내 말씀드렸기 때문에 따로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자기 눈앞에 플루토늄 추출물이나 고농축 우라늄이 보여야 믿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을 보여준다 해도 "그것이 우라늄일 걸 어떻게 아느냐"고 우길 지도 모르겠군요. 아마도 자기 머리 위에 핵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북한이 핵개발을 완료했다고 선언한다해도 '협상용이요 방어용'이라고 또 다른 논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의 조선침략을 경고하며 10만 양병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옳았는지, 그런 사람들을 임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역적으로 몰아붙인 사람들이 옳았는지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의 경우 그 당시에 태어났다면 "내가 일본으로 직접 가서 내 눈앞에서 무사들이 칼 닦고 있는 것을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을 테지요.
민수 : 좀 우울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군요. 그럼 이제 대안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렇다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진실 : 요새 우리 사회에는 '그렇다면 전쟁하자는 말이냐?'가 유행인 것 같군요. 대안을 논할 때면 무조건 전쟁이냐 아니냐 부터 따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전쟁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평화 싫어하는 사람 있습니까? 결론부터 전쟁에 못박아 놓고 상황이 그쪽으로 가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김정일도 최소한의 판단능력은 있을 텐데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김정일도 '평화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나지 않은 상태'를 평화로 이해한다면 어떻게든 자기 정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하는 김정일이야말로 평화주의자 아닙니까. 지금 한국의 적지 않은 사람들도 평화를 '전쟁 아닌 상태'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소극적 평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적극적 평화는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완성될 때 평화도 완성됩니다. 신문에 실린 어떤 분의 글을 보니 "전쟁은 절대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던데,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건 없습니다. '절대'라는 부사(副詞)를 굳이 붙이고 싶다면 '사람은 사람을 절대 착취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같은 경우에서나 쓸 수 있겠습니다. 과정을 쭉 살펴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면 전쟁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희생을 동반한다 하더라도 거짓 평화 앞에 무릎 꿇는 거짓 양심보다는 진정한 평화를 위해 결단도 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독재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민주주의자들의 이러한 용기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진행과정을 보더라도 대화를 통한 해결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범접해서는 안될 절대원칙을 세워놓고, 이러한 주장에 먼저 동의하지 않으면 모두 전쟁광쯤 되는 것으로 취급하는 그 무지몽매함에 반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쟁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은 누구든지 할 수 있고, 그래서 평화주의자임을 자처하기는 너무도 쉽습니다. 물론 고되게 평화운동을 하는 선량한 많은 분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분쟁의 상대가 '완벽한' 평화주의자일 때는 우리가 먼저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불신을 허물고 서로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상대를 완벽한 평화주의자로 단정지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북한이 되었든 미국이 되었든 말입니다. 우리가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결론을 세워놓은 걸 알게 될수록 김정일은 기고만장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전쟁이 없으면 좋지만 있어도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상대로 싸울 때는 '전쟁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이 평화를 지켜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말로 됩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 핵문제에 강경한 대처를 주문하는 사람이 전쟁광인 것이 아니라 '절대' '완벽한' 이라는 조건을 붙이며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더 위험하게 봅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말하라고 하면, 가장 이상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은 '북한을 민주화하는 것'입니다. 인민들의 손에 의해, 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정권을 교체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북한민주화운동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보다 현실적이고 방면한 대책을 내보라고 하면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전면포기'라는 강한 원칙을 내세우고 여기에 대해 어떠한 타협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네바 합의 후 10년의 과정에서 교훈을 찾아 "무엇을 해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김정일의 제안에 속지 말고 "핵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해 보여야 지원을 해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당근을 주면 따라오겠지'하는 생각은 김정일에게 통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채찍도 있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공조가 가장 중요합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김정일을 포위하여 단결된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상대로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북한은 '민족 공조'를 주장했습니다. 안으로는 "우리는 김일성 민족"임을 외치면서 필요할 때는 남쪽에 대고 '우리 민족'을 외치는 사람이 김정일입니다. 한국에 새로 들어설 정부는 허울뿐인 민족에 속지 않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길 줄로 믿습니다.
민수 : 북한이 핵개발을 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진실 : 음…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앞서 제시한 방안과 완전히 다른 해결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 NPT 탈퇴와 핵연료봉에 대한 봉인제거 등 계속되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호들갑을 떨면서 곧장 대처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듯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입니다.
북한의 마지막 핵카드라고 해봤자, 그동안 핵을 보유해왔노라고 시인하면서 핵실험을 단행하는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어떤 우방도 용인하지 못할 제한선(red line)을 넘어서는 행동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국제사회가 압력을 넣어도 포기하지 않을 핵개발이라면, 그리고 이미 한 두 개의 핵폭탄을 보유한 것이 확실하다면 그냥 갈 데까지 가보라고 내버려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서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됐을 때 국제사회의 공분을 모아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특히 한국 내에 적지 않은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설득할 방법이 별로 없으므로 그리 현실적인 방안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민수 : 오랜 말씀 감사합니다. 사실 선생님의 말 중 아직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지만 주위 사람들과 더욱 많은 토론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배워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실 : 저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께서 새 정부를 '토론공화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성역 없는 토론이 오가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남한의 민주주의가 높이 발전하는 것 또한 북한민주화에 든든한 밑거름으로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 긴 이야기 들어주신 것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