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궂은 비에 같이 이번 답사에 참석하기로 한 두명이 꼬리를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져온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화의 단절(!!)에서 비롯된 오해였다. 하지만 이미 숙소까지 마련해 두었으니 어찌하랴. 나머지 셋만 출발하기로 한다.
비 때문에 평소보다 늦은 출발이었다. 아마 답사를 시작한 이래 제일 늦은 출발이었을 것이다. 오전 11시라니~ 추석연휴라 교통체증을 걱정했지만 전혀 막히지 않고 평소와 똑가은 시간에 충주에 도착하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중앙탑(보물 제6호)다. 중앙탑 답사는 서너번 왔었다. 일반적인 이야기들이야 생략하기로하고^^ 탑이 지금 놓여있은 곳은 평지보다 10여미터 높다. 처음에는 2미터정도였었는데 강가에 위치하다보니 홍수피해를 입고 해서 자연스럽게 주위가 낮아져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탑이 만들어진 설은 여러개의 학설이 주장되는데 어떤 것이 정확한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여러번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는 탑주위에 조각공원이 조성해 놓았다. 여러 작가들의 조각품을 둘러보고 비내리는 강가 원두막에 앉아 잠시 침묵에 빠져 감상에 젖었다. 바로옆의 향토민속사료전시관에 들러 유물을 감상하고 잔디밭에 전시된 무인상에 흠뻑 빠졌는데 H양의 몰래카메라가 있었을줄이야... 그들의 의문은 도대체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였지만 난 정작 소원은 빌지도 않았고 그냥 돌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어 무심결에 손을 올렸을뿐이다라고 항변했다.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는 언제보아도 적막감에 쌓여있다. 길옆에 있다보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들러 한번씩 보고는 가지만 특별한 지식이 없는한 그 가치를 알기도 힘들고, 열악한 보호환경에 그저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나올뿐이다. 지난 봄에 대전에 사시는 한 지인(직업이 형사~ 웬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음^^)의 집을 갔었는데 중원고구려비의 비문을 솜씨있는 스님께 부탁하여 붓글씨를 써서 거실 도배를 해 놓았던 것이 생각난다. 같이 동행했던 서너살 꼬마도령의 한문읽기 실력을 구경했었는데...
중압탑에서 얻은 지도에서 발견하고 어렵게 찾아간 억정사대지국사비(보물 제16호)는 한적한 동네 산자락 사과나무 과수원에 자리하고 있다. 비에 촉촉이 젖어있는 시골길을 달리는 맛은 참으로 그만이었지만, 바로 옆에서 비옷을 입고 고추 수확을 하는 아낙네의 바쁜 손놀림과 낙과를 막기위해 지지대를 세우던 과수원아저씨의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워진다.
경종대왕 태실(지방유형문화재 제6호)은 억정사대지국사비와 조금 떨어진 곳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가지런히 만들어놓은 나무계단을 오르는 길은 짧지만 자연의 정취를 만끽하기에는 그만이다. 태풍이 동반한 바람에 하나둘 떨어져있는 도토리를 품은 빽빽한 참나무숲과 이름모를 버섯들의 모습도 보인다. 작지만 생각보다 화려한 태실의 모습에서는 세월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1928년 관리와 유지가 어렵다는 조선 총독부의 구실로 훼손되어 오랜 세월 방치되었다가 1976년에 복원하였다고 하니 이 깊은 산속의 작은 태실에까지 손길을 뻣친 그들의 철저함에 그저 놀라울뿐이다.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융탑(국보 제197호),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전 사자석등(보물 제656호) , 보각국사 정혜원융탑비(보물 제658호)는 한곳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 원래의 제자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인상깊었던 것은 사자석등의 사자모습과 비문의 글씨였다. 오랜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글씨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름다웠는데 우리 모두 실력부족으로 인하여 원문해석을 하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한적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어 인적이 없는 오솔길을 걸어 답사하는 즐거움에 자연을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고, H양과 S양은 그야말로 야자나무버섯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야자나무버섯~ 작명은 S양의 작품이다..... ㅎㅎ)
어느덧 시간은 저녁으로 향해가고, 조금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말을 전하려 중앙탑에서 봉황휴양림 관리인에게 전화했을 때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불어나 다리가 넘쳐서 들어올수 없다는 말을 했었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답사를 강행했다. 어둑해질 무렵 찾아간 휴양림은 소나무와 낙엽송이 자리잡은 산자락에 위치하였다. 우리가 묵을 오두막의 이름은 박달나무집. 저녁 식사후 태풍피해 방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슬비만 간간이 내리고 이상이 없길래 다른곳도 피해가 없는줄 알았었는데... 많은 이들이 또다시 삶의 터전을 잃고 시름에 잠길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다. 동행하지 못한 A양에게 전화를 하니 A양은 폴짝폴짝 뛴다. 자기만 떼어놓고 갔다고... 짐풀었는데 다시 싸서 내일 아침에 합류한단다. 밤새 들려오는 계곡물소리에 잠을 설친다. 도심의 차량경적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자건만...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에는 깊은 잠을 못자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는 완전한 자연인으로 돌아가기는 틀린 것 같다(^^).
A양과 합류하여 안성으로 향한다. 고려시대 큰 사찰이었다는 봉업사는 폐사지가 되었고 그 흔적으로는 안성죽산리5층석탑(보물 제435호)와 죽산리당간지주(경기도유형문화제 제89호), 죽산리3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8호)만이 근처에 남아있다. 도로가에 위치한 5층석탑과 당간지주에서 증거사진을 몇장 -이곳에서 H양과 S양의 자연다큐는 다시 시작되었다. 탑의 틈새에 청개구리 4남매가 자리하고 있어서~- 남기고 다음장소로 출발한다. 죽산리3층석탑은 5층석탑이 있는 뒤쪽 동네 오른쪽 인삼밭 한귀퉁이에 서있다. 우연히 안성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도에서 아~~저기있다하며 먼발치에서 차타고 휙 구경을 한 것이 답사의 전부이다^^.
매산리 석불입상(경기도유형문화재 제37호)는 미륵당이라 부르는 높은 누각안에 모셔져 있다. 사각형의 보개를 썼는데 이목구비의 비례가 맞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었고, 특히 축 늘어져 어깨가지 내려온 귓가 인상적이다. 앞에 작은 3층석탑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짧은 기억력을 원망할수밖에...
시간은 어느덧 흘러 점심시간이 되고 우리는 근처 칠장사로 향했다. 칠장사에는 참 많은 문화재가 있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 이곳 칠장사가 나와 전부터 꼭 답사를 하고 싶었었는데 이번에 답사하는 아주 좋은 기회를 가졌다. 짧은 은행나무 터널에서 깜찍한 표정으로 증거사진을 남기고 준비해간 김밥과 떡, 치킨으로 주차장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점심을 해결했다. 칠장사의 문화재를 살펴보면 칠장사오불회괘불탱(국보 제29호), 혜소국사비(보물 제499호), 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 당간(경기도유형문화제 제39호), 당간지주(경기도유형문화제 제89호), 대웅전(경기도유형문화제 제114호), 소조사천왕상(경기도유형문화제 제115호), 칠장사(경기도문화제자료 제24호), 사적비(안성시향토유적 제24호), 동종(안성시향토유적 제25호), 부도군(경기도유형문화제 제89호), 봉업사석불입상(보물 제983호)등이다. 혜소국사비가 기억에 남고, 콩밭을 헤치며 올라간 당간지주 앞에서는 휙하고 지나가는 뱀을 보고 질겁을 하여 한걸음에 계단을 뛰어내려왔는데 H양이 뒤에서 이야기 하기를 내가 그렇게 빨리 뛰는 것은 처음 보았단다^^. 사천왕상 발밑에 깔린 분들도 다른곳에서처럼 무섭지가 않고 귀엽다고 이구동성 의견을 모았다.
찬조출연자분과 함께한 세종옛돌박물관은 감탄사가 저절로 새어나온다. 그많은 문인석과 무인석... 동자승... 불상들... 어디서 가겨왔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몇년전에 나의 고향에 있는 정인지묘(충북도지정기념물 제33호)의 신도비를 도난당해 한참 심란해 했었는데 어쩌면 저것 하나하나 그런 경로로 얻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몇의 뜻있는 분들이 일본에서 가져온 문화재들도 있었고, 테마별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석물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보며 어쩌면 똑같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을까 감탄사가 나온다. 한번쯤 둘러볼만하겠고 언제가는 꼭 카메라 들고 찾아가 하나하나 표정을 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천 장암리에 위치한 태평흥국명 마애보살좌상(보물 제982호)은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기에 우연히 눈에 띄어 답사를 하게 되었다. 몇 번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미륵바위로 불리는 화강암에 조각되었고 확실한 명문이 있어 조성연대를 알수 있다. 손에 들고있는 연꽃 한송이와 반가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지방색이 짙고 조각성은 떨어지지만 10세기에 조성되어 다른 동시대 불상과 비교 연구자료로 높이 평가되고 있고, 높이가 세계에서 제일 큰 반가상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그 유명한 이천쌀밥. 여러군데 눈에 띄는 곳이 있지만, 이천에 살고있는 친구에게 연락하여 제일 맛있다고 추천하는 집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 맛깔스런 반찬과 쌀밥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A양이 그렇게도 외치는 녹색병과 백세주 한병 후딱 비우고~ 찬조출연하신 멋진 남자분(ㅎ~~ 아부성발언, 밥을 사주셨으니^^)과 정담도 나누고 하는 사이 시간은 늦어가고... 갈길이 멀기에 아쉬움을 뒤로한채 찬조출연하신 분과 헤어진다. 돌아오는 길에 남의 살(^^)을 조금 구입하여 아침부터 기록을 세워보자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내일 우리의 아침식사는 삼겹살과 목살이야!!!
또다시 날은 밝아오고 우리 답사의 마지막날이 된다. 8시에 일어나 아침부터 라면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휴양림 근처의 마애불상군께 인사를 하러 출발한다. 봉황마애불상군(지방유형문화재 제131호)은 휴양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8구의 불,보살상이 양각되었는데 마모가 심해 정확하게 알아보기는 힘들고 위쪽에 위치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애여래좌상은 두광에 5구의 화불이 인상적이었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남한강줄기와 평야지대의 시원스러움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또 뱀을 보았다. 이로서 삼일내내 뱀을 보는 기록을 세웠다~. H양의 몸사리는 모습(으시시~~~)... 처음 보았다. 어제 그렇게 내 흉을 보더니만..... 알알이 영글어가는 논둑길을 백여미터 걸어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신나는 아침식사시, 우린 두 번의 아침식사를 했다. 삼겹살에 목살에 황태미역국에.... 거하게 한상 차려놓고 계곡물소리 , 이름모를 산새소리 듣고,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송을 보며 흥겨운 배불리기(^^) 작업에 들어간다. 평소답지 않게 좀 조신을 떨며 조금밖에 먹지 않은 A양의 행태는 아직까지도 불가사의다. 아마도 녹색병이 없어서 그랬던 듯~ 옆에 분명히 매실음료병이 있었는데~
휴양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원평리 미륵석불(지방유형문화재 제18호)을 답사하러 출발한다.
신라시대부터 있던 선조사가 병자호란때 불타고 석불만 남았다고 하는데 마을 한귀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 작은 현대식 절이 바로옆에 지어졌는데 그 어울리지 않음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중턱을 가져 후덕한 인상의 석불입상이고, 연와대좌도 보인다. 고려때 경기 충청지방에 유행하던 석불입상의 형식을 잘 따르고 있는 우수한 조각수법을 보인다고 한다. 작은절 마당에 있는 탐스런 늙은 호박들에서 가을의 정취를 다시한번 느낀다.
충주권을 벗어나 한참여를 달려 음성 미타사에 이른다. 현재 몇km밖에서도 한눈에 보이는 지장보살을 안치해 놓았는데 그 크기에 눈이 휘둥그레하다. 미타사 옆을 살짝 돌아 산을 오르면 미타사마애여래입상(충북도지정유형문화재 제130호)이 있다. 머리부분은 양각으로 양손과 허리, 양발부분은 낮은 부조와 음각선으로 처리하였다. 고려후반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보호각안에 있다. 좀더 산길을 오르면 미타사석조여래좌상(향토문화재)이 삼성각안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와 양손은 절단되어 없어지고 옛절터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1964년 머리와 양손을 복원하였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의 미타사가 중창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또한 고려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각 공포에 조각된 용과 봉황장식이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삼일의 일정을 뒤로하며... 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팔자좋게 답사를 다닌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가 않다. 봉사활동이라도 가야할까하는 마음은 생기지만 일신의 편안함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흠뻑 물들다 보니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냥 말로만 쫑알거리고 있다.
산천 여기저기서는 벌써 가을의 향기가 묻어난다.
토실한 도토리를 줍던 중년 아저씨의 손길에서
수확에 한창이던 아낙의 고추자루에서
빨간 자태를 뽐내던 사과나무의 가지가지에서
알알이 영글어 고개 숙이는 벼이삭에서
[ 출연진들에게 한마디 ]
S : 삼일동안 안전운전하고 사진도 찍고 애 많이 쓰셨어~ 아침식사때 고기한점 큰거로 준거 알지? 크크~~~ 담에는 더 큰거로 줄게.
H : 자연다큐와 모델사진 찍느라 재미있었지. A양과 나의 모델료는 언제 줄건지?? (으시시~~) 꼭 전화주셔... 계좌번호 핸폰에 넣어줄까?
A : 구여움 덩어리 그 자체인 우리의 막내... 쌌던 짐 풀었다가 다시 싸는 기염을 토하고 합류해서 어찌나 반갑던지. 앞으로도 꼭 그 자세로 답사에 임해주길! A양은 가끔 말한다. 언니들이 자신의 향학열에 불을 댕겼으니 책임지라고.... 답사때 자꾸만 불러주면 되는건지 어쩐건지~
M : 찬조출연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밀어붙이기 한판으로 찾아갔는데도 반갑게 맞아주시고 밥까지 사주시고... 담에 이 원수는 꼭 갚도록 하지요.
첫댓글 선림원님 감사합니다 자주들리시고 좋은자료 부탁드립니다. 좋은 나날 되십시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올린다면 ..국보?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