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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산(宿星山)의 이름은 한자 ‘잘 숙(宿)’과 ‘별 성(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 말 풍수 대가인 도선국사(827∼898)가 팔도 명지를 찾아다니다가 가야산 오도산을 거쳐 이 산 아래에서 노숙하며 별을 보고 점을 쳤다고 숙성산이 됐다.
또 이 산에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서 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자 ‘숙(宿)’이 ‘별자리 수’의 의미도 있다고하니 별과 관련된 산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숙성산은 수도지맥의 가야산 능선에서 두리봉 밑으로 오도산까지 남하하는 지맥이 토해놓은 산이다.
가조면 벌판을 감싸고 있는 오도산과 두무산, 비계산, 별유산(의상봉) 등 해발 1,000m급 산들이 또아리를 틀고앉아 흡사 영남 알프스를 연상케 한다.
88고속도로 거창 가조IC에서 내려 남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정면에 숙성산이 보인다.
그 왼쪽에 머리를 헤쳐 풀고 누운 특이한 모습의 산이 미녀산이고, 오른쪽 민둥산 줄기가 숙성산이다.
이웃한 미녀봉은 유방봉 눈썹바위 등 암릉을 타는 맛이 짜릿하지만 숙성산은 미녀산에 비해 조형성(造形性)은 다소 떨어진다 하겠다.
하여튼 숙성산과 미녀봉은 한 세트로서 신문사에 ‘안내광고’를 올릴 때 ‘숙성미녀’라고 하면 그 뜻이 요상하여 고개를 갸우뚱한다.
신문사의 광고는 딱 넉자만 올릴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들머리인 ‘학산(鶴山)마을’은 지형이 학과 관련한 학설(鶴設)에 기인하여 학(鶴)자를 쓰고, 높다고해서 산(山)자를 부쳐 지은 이름이란다.
또 '봉황재'는 지도상에 있는 이름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옛날부터 ‘봉화재’라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봉화대(烽火臺)가 있는 고개라서 그렇게 불러진 듯하다.
산행코스: 학산마을 입구-학천사-학산마을 경로당-봉황재(봉화재)-봉화대-무덤전망대-숙성산-시리봉-말목재-임도-광성마을-광성교(광천정)
약 8.5km(카카오맵의 광성마을 갈림길 왕복 400m 제외)의 거리를 4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고도표
국제신문의 참고 지도(오늘 실제로 걸은 코스)
부산일보의 참고용 지도.
이성우의 산그림(참고용)
오도산자연휴양림 기점의 산군.
수도지맥의 오도산에서 가지를 쳐 오도재 건너로 이어지는 미녀봉과 숙성산.
광성마을로 하산하는 말목재에서 산길이 어지럽다. 그래서 '카카오 맵'을 참고로 정확한 산길을 잡아본다.
빨간 실선은 국제신문과 우리가 걸었던 길이고, 말목재에서 미녀봉 방향 200m지점에서 하산하는 등로가 그어져 있다.<말목재에서 구체적인 지도있음>
거창군 가조면의 '학천사' 또는 '학산마을회관'을 입력하여 학산마을 입구에서 차를 맘춘다.
도로변에 숙성산 이정표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학천사(鶴天寺) 표석 맞은 편 포장도로를 걸어 오르기 전 좌측에 작은 인공 연못을 보고 들어가 본다.
마치 돌무덤처럼 생긴 돌무더기와 '추월한수(秋月寒水)'라는 오석이 서있는 곳이다.
추월한수(秋月寒水)는 '가을달이 맑고 차가운 강물을 비춘다.' 라는 주자(朱子)의 ‘재거감흥(齋居感興)' 이십수(二十首) 중 제10수로서 안동 퇴계선생종택의
당호가 '추월한수정'이기도 하다.
비석에 새겨진 심호기(心湖記)의 단기 4291년이면 1958년이 된다. 빽빽하게 기록된 글자와 말미에 아들과 손자, 증손자까지 기록돼 있다.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아무곳에서도 올려진 데가 없다.
포장도로를 따라 일행들은 휑하니 앞서가버리고...
우리는 학천사에 닿았다. 한덤님은 부지런히 절마당을 가로질러 들어가고 필자는 입구에서 카메라만 갖다댄다.
숙성산 학천사(鶴天寺) 백산 스님(이상호)은 지난 2013년 10월 28일 법무부 주관 `제68주년 교정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안동교도소 교정위원인 백산 스님은 불교법회, 합동생일자 법회, 합동결혼식 지원, 체육대회, 경비교도대 TV지원 등 전국의 교정시설을 월 2~3회
방문하면서 수용자들의 심성순화와 교정교화의 공로로 국민포장을 수상하였다.
백산스님은 1986년 학천사로 들어가 무욕청빈의 삶을 살았으며, 현재 세계참불교연합 총재와 한국불교승가일불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승용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나무들이 우거진 중앙에 데크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곧이어 학산마을경로당이 나온다.
'학산마을경로당' 나무 간판을 옆으로 뉘었다.
안내판의 학산마을 유래에는 “가조면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일명 서리터(상현 霜峴)라고 부르던 것을 무학대사가 노숙하면서 지형이 학설(鶴說)이라 하였기에 학(鶴)자와 높은곳에 자리한다하여 산(山)자를 부쳐서 1950년 청암(靑菴) 이담(李淡)이 이름지었다“고 되어있다.
'숙성미녀오도두무'와 월현산까지 안내판.
좌측으로 물이 말라 거북등처럼 갈라진 학산소류지를 지나고...
뒤돌아보니 가조벌판을 에워싸고 있는 장군봉과 우두산의 하늘금.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노라니 정면 포장임도 정점에 잘록한 봉황재(봉화재 325m)가 보인다.
새로 콘크리트 공사를 마친 도로 좌측으로 새 길이 나있어 앞서가던 우리 일행들이 질러가는 길인 줄알고 올라 갔단다.
이 길로 올라온 일행들은 길이 없고 가팔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포장임도는 좌측으로 구불구불 휘어 오르지만 우리는 바로 질러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본다.
봉황재에 올라서서...
이정표를 살펴보니 숙성산이 1.7km이고, 반대편으로 월현산 1.3km을 가리킨다. 그 아래 날개 떨어진 이정표는 학산마을 1.3km.
사각돌기둥 비석에는 공사종점 325m가 적혀있다.
숙성산 방향으로 성큼 올라서 5분쯤 걸었더니 흩어진 돌무더기들이 산재해 있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퇴색된 안내판은 거의 판독 불가하고...
억새가 자욱한 공터는 당시 봉화 파수꾼들의 숙영지로 활용되었을 것.
아직 당시의 흔적들이 무너진 채로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이 봉화대는 사천의 안점산(봉대산)에서 진주 망진산, 광제산, 합천 삼가 금성산을 거쳐 거창 숙성산에 닿았다가 금귀봉, 새재로 향한다.
학산마을 갈림길 이정표를 만나...
자세히 들여다 본다. 봉화재를 경유하면 2.2km이고, 이 갈림길에서 바로 질러가면 1.6km란다.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합천호가 드러나 보인다.
전망바위 트인 곳에서는 뽈록뽈록 삿갓을 닮은 봉우리들이 일렬로 줄을 서있는 게 보인다.
앞에 작은 봉 지나 첫 삿갓닮은 봉은 박유산(朴儒山 712m)이고, 그 뒤에 또닮은 금귀산(金貴山 839m), 그 우측 뒤 잡목가지에 가린 산이 보해산(912m)이다.
화질이 별로지만 박유와 금귀, 그리고 보해산이 가조벌판을 에워싸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앞을 가러막고 선 커다란 바위를 돌아 올랐더니...
앞서간 일행들이 천하의 명당인 무덤전망대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북풍을 막고 햇볕을 안고 있는 이 무덤전망대에선 합천호와 그 주위를 에워사고 있는 산들이 적나라하게 확인이 된다.
합천호 뒤론 황매산의 모습이, 그 우측으론 월여산이, 그리고 합천호 끄트머리 좌측으로 희미한 실루엣의 금성 악견산의 모습도 가늠된다.
합천호 우측으론 감악산이 가늠되어...
살짝 당겨보니 시설물들이 확인되었지만 성능 나쁜 카메라는 다 담아내지 못한다.
합천호 뒤로 좌측에서부터 황매산과 월여산, 그리고 우측 조금 가까이 두루뭉실 감악산과 매봉산인 듯. 정면 가까이엔 망일산(望日山 621m).
더 우측의 모습.
사진을 조금 당겨보면 황매산과 좌측으로 금성 악견산.
점심으로 가져온 구운 고구마를 펼쳐 정상주를 곁들이는 중, 또 앞서가는 두 여성회원을 카메라에 담는다.
황매산과 월여산 사이로 희미한 모습의 높은 산맥들이 지리산인가보다 하여...
살짝 당겨 보았지만 성능 시원찮은 카메라는 그걸 담아내지 못한다.
식사를 끝내고 얼마가지 않아 삼각점봉을 지나고...
돌무더기와 새 정상석이 큼지막하게 세워진 숙성산 정상에 닿는다.
돌무더기위 예전의 정상석을...
10년 전의 정상석과 비교를 해본다.
최근 거창군에서 화강암 정상석을 새로 세웠다.
거창군은 표지석이 없거나 오래된 관내 6개의 산정에 특산물을 형상화해 디자인한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일명 봉대산(烽坮山)으로도 불렸다는데, 아마도 인근에 있는 봉화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새 정상석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으니 그것 또한 도선국사의 점성(占星)과 관련이 있다는 뜻.
정상의 이정표. 숙성산과 미녀봉은 4km의 거리.
억새 우거진 이 이정표 지점이 광성마을 갈림길이지만 이정표의 하단부에 날개 떨어진 자국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5분 만에 시리봉에 올라선다. 시리봉 정상 표지판엔 높이가 836m로 잘못 적혀있다. 857m로 정정해야...
시리봉에서 말목재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빙판은 보이지 않지만 땅밑이 얼어붙어 매우 미끄러운 길.
세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보니 달게 마신 정상주 석 잔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셈이다.
우측 잡목사이로 오도산을 살펴보다...
우측 도드라진 바위쪽으로 조금 벗어나 보니...
오도산을 오롯이 조망할 수 있는 바위전망대를 만난다. 오도재 뒤로 드러나는 산은 두무산인 듯.
살짝 당겨본 오도산의 모습.
오도산은 한국표범이 마지막으로 생포된 곳이다.
표범은 1962년 2월 12일 오도산 해발 1134m지점에서 산 아래 묘산 가야마을에 살던 ○홍갑씨에게 생포되어 창경원으로 옮겨진 뒤 12년 동안 살다 생을 마쳤다.
솔갈비가 깔린 솔밭능선을 지나면...
맞은편 미녀봉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고도가 떨어지면서 말목재(해발 660m)에 내려서면 국제신문 가이드는 좌측으로 내려서서 개척산행 수준으로 진행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우리는 '카카오 맵'을 참고삼아 미녀봉 방향으로 약 200여m 진행하다 좌측으로 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 네이버지도에는 등로가 표시돼 있지 않음.
이 개념도의 좌측 그림이 '카카오 맵'으로 말목재에서 미녀봉 방향 200m 지점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는 등로가 녹색 실선으로 그어져 있다.
빨간 실선은 국제신문과 우리가 실제로 걸은 길로 나중에 '카카오 맵'의 등로와 무덤있는 지점(합류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우측 등고선이 선명한 지도는 필자가 참고로 올린 지도로 빨간 실선은 우리가 직접 걸은 트랙.
1) 말목재에서 50여m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 만나는 나즈막한 봉우리에서 좌측 지능의 빨간 점선으로 조금만 내려서면 국제신문의 트랙과 만나게 되고,
2) 두번째 밧줄이 걸린 작은 바위봉우리를 내려서면 '카카오 맵'의 녹색 실선이 그어진 등로인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아무런 표시가 없음)
말목재는 오도산자연휴양림 갈림길. ※ 광성마을 방향으론 날개가 없다.
미녀봉 방향으로 약 200여m 진행하면...
좌측으로 만나는 하산길(녹색 화살표). 미녀봉 방향으로 길을 찾다가 되돌아오는 한덤 님. ※ 이곳이 이정표를 세워야 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묵은 산길 희미한 흔적을 따라 녹색화살표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다가 되돌아 서서...
다시 말목재로 돌아왔다. 그리곤 국제신문의 안내대로 내려서서...
우측으로 비스듬히 산사면을 타다 난데없이 우측으로 90도를 꺾어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물론 국제신문의 촘촘한 시그널을 따랐다.)
※ 오르막을 오르지 않고 산길을 정비하여 지능에 바로 붙을 수 있도록 해도 되겠는데...쯥
그리곤 좌측 작은 지능선을 타고 내려서면서 능선위로 쳐다보니 아까 말목재에서 미녀봉 방향 50m 지점의 첫봉이였다.
작은 지능선이 끝이나고 ...
'카카오 맵'을 확인하니 아까 되돌아선 녹색실선의 등로에 합류되었다. '카카오 맵'의 녹색 실선의 능선을 바라보니 등로는 묵어있다.
국제신문 가이드가 말목재에서 바로 내려서게 하였으니 앞으로도 이 등로는 점점 더 묵어갈 게 분명하다.
이 이후 하산길은 국제신문과 카카오 맵의 등로가 일치한다.
말목재에서 국제신문의 가이드는 매끄럽지 않은, 거의 알바산행으로 이리저리 헤맨 모습이다.
한덤 님은 개척산행이란 미명으로 선답한 가이더와 알바의 추억을 공유한 셈이 되었다고 조크를 던진다.
따라서 '카카오 맵'의 산길을 따라 말목재에서 미녀봉 방향 200m지점에서 광성마을 이정표를 세우고 바로 내려서는 길을 지자체에서 정비했으면 좋겠다.
바로 아래에 있는 무덤 한 기.
비석을 살펴보니 '함종 어(咸從 魚)'씨 무덤이다.
또 한 기의 무덤도...
'함종 어(咸從 魚)'씨
미녀봉 외날개 이정표를 지나고...
숙성산과 시리봉 사이의 날개떨어진 갈림길 이정표에서 내려서는 길을 만나면 임도에 얼추 다 내려왔다는 뜻.
임도에 내려서면 이정표에 숙성산 1.9km라고 표시되어 있다.
구불구불 임도를 걸어...
뒤도 돌아보고...
맞은편 비계산인 듯 고개를 돌려본다.
사유지인 듯 조성된 부지는...
계단식으로 아주 넓게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맞은편 595봉을 지나 박유산과 그 뒤로 금귀산의 모습이 나란히 보인다.
세 봉우리 지나 끄트머리 또다른 인상착의의 보해산의 모습.
돌아본 미녀봉.
시야를 막아서고 있는 장군봉과 지남산, 우측으로 우두산(별유산)까지, 그리고 맨 우측 끄트머리에 비계산의 도드라진 암봉이 선명하다.
광성마을에 내려서서 학산쪽 200m 떨어진 곳에 우리 버스가 보인다.
돌아보는 내려온 길로 좌측이 미녀봉 우측이 숙성산. 중간 잘록이가 말목재.
광성마을 표석이 있는 지점에 춘산대 표석이 있다.
최근에 세워진 비석들로 자료를 찾아보지만 알 수 없다. '지중추부사 사천이공신도비'와 그 옆 비석엔 '춘산거사'라는 글자가 확인이 된다.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는 조선 시대 중추부의 정이품 무관 벼슬을 말한다.
아마도 사천이씨들의 행적으로 보인다.
버스가 대있는 공원에 육각정자가 있다. 주춧돌 등 한눈에 보아도 제법 연륜이 있는 것으로 보여...
편액을 살펴보지만 광천정(廣川亭)으로 낙관이 없고...
기둥과 난간, 그리고 마루는 제법 고풍이 서렸다.
광천정이 있는 이 지점이 산행 후 뒷풀이 장소로 안성마춤일 것.
광성마을(원래지명 '수구막') 유래에는 밀양 박씨의 광계정(廣溪亭)과 사천 이씨의 모의재(募義齋)가 있다고 하였지만...
뜬금없는 오리백숙! AI가 어쩌구저쩌구 하여도 끓여 먹으면 까딱없으니 산행 후 오리백숙 맛은 기가 막힌다.
-춘설(春雪)-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雨水節(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이 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어름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롬 절로 향긔롭어라.
웅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정 지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