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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해설】 최상규(崔翔圭)의 소설. 1956년 [문학예술]지에 추천된 작품. 다른 추천 작품인 <단면>과 함께 초기의 그의 소설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유니크한 특색을 보이고 있으나, 작품의 밑바닥을 흐르는 톤(tone)은 악의적인 시니시즘이 아니면 자기 야유에 그친 비위생적인 것이 많았다. 【개관】 ▶배경 : 전후(戰後)의 사회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절망적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순수하고도 원초적인 사랑 【등장인물】 ▶나 : 영장을 받은 아내 있는 사내 【줄거리】 『겨울 어느 날, 아침 나는 영장을 받았다. 어린 아내는 연신 비통해 하며 흐느꼈다. 영장을 받은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미리 싸 놓은 책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나에겐 어제만이 있었을 뿐 내일은 없다. 책 가게에서 돈 삼천 환을 받고 아버님이 물려주신 책을 팔았다. 홀어머니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 자라온 벌거숭이인 나에게 아내는 맨몸으로 시집을 왔다. 내가 떠나게 되면 아내 혼자 어떻게 살아갈까? 홀어머니에게로 돌아가라고 아내를 졸라 본다. 그러나 아내는 연신 흐느껴 울기만 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내가 이제 어른이 되었나 보다. 흐느껴 우는 아내를 추스려 서울 거리로 나선다. 명동 호떡집을 향해서.....』 【감상】 영장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즉 내일이 없는 세계로 갈 수밖에 없는 주인공과 그런 불확실한 대상을 애틋하게 사랑하는 아내의 순수한 인간애를 그려내고 있다. 이를 통해 최상규는 그 시대 지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부대껴야 하는 시대 상황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내일로 승화시키는, 작품 전체의 탄탄한 플롯을 보여 주면서, 전후 문단이 가지는 실험적인 기법에 편승해 있다. 최상규는 <포인트>(문학예술.1956.5)로 한때 관심을 모았던 작가이다. 간결한 문장과 비교적 무시되어 왔던 현실의 다른 측면, 이를테면 가족관계라든가 친구관계라든가 하는 인간관계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의해 그 관심의 내용은 채워졌던 것 같다. 물론 최상규가 파악하고 있는 인간관계는 지극히 소박하다. 그러나 징집영장을 받고 아내와 함께 당황하는 청년을 그린 <포인트>는 이 작가의 세대적 감각의 예리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영장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거만스럽게 일어나’ 앉는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찬바람이 오싹 등골을 스치는’ 의식과 함께 주인공의 의식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데, 이것은 인물의 상투적인 유형화(類型化)로 야기된 소설의 타락을 막아주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현실을 작가의 고유한 자기관련성 없이 수용해 온 종래의 타성적 소설 작법에서 현저하게 진보한 것이 된다. 영장을 받고부터 이 가정을 단란하게 유지시켜 오던 두 사람, ‘아내’와 ‘나’는 각각 분리된다. ‘아내’는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고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한다. ‘아내’는 밥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운다. 그 여자는 슬픈 것이다. 남편의 입대로 둘은 헤어져야 하고 그녀는 친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편의 입대로 생기게 되는 부부생활의 정지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평범한 가정의 주부이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어른’이라고 부른다. ‘어른’이라는 말 가운데는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는, 혹은 인습적인 관행과 윤리에 동화된 일정하누 규격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렇게 ‘어른’인 아내 앞에서 남편은 자신의 태도를 갖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아내를 달래도 보고, 포옹도 하고, 혹은 힐난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그의 태도도 아내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그는 아내가 보여주는 일관된 태도 앞에서 항상 자신의 무력함을 느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서 남편인 ‘그’가 갖는 아내에 대한 태도이다. 그는 스스로 아내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귀여워하는 것이다. 어른으로 비치기 때문에 남편이 갖기 쉬운 열등감이나 비굴함이 배제되고 있다. 이것은 남편인 ‘그’ 자신, 갈팡질팡하는 그의 태도에 깊은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단서는 매우 중요시될 만하다. 왜냐 하면 그것은 상황에 반응하는 인간의 자신감과 긴말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남편의 이미지 창조는 아내의 그것보다 한결 중요한 뜻을 품는다. 빨리 밥을 하라고 독촉하다가, 그깐놈의 찌개는 끓여 뭘 하느냐는 투의 말의 혼선, 굴욕을 모르는 철부지라고 스스로를 생각하면서도 아내와 이웃에게 보내는 창망한 처신, 이런 종류의 혼란은 ‘영장을 기다리지 않던’ 사람으로서는 있을 수 있는 심리의 가능태(可能態)이다. 얼핏 보면 주착으로 비치는 이런 유의 낭패한 모습은 남편과 아내의 부부관계를 종(縱)으로 연결해 온 사고의 고정형(固定型)에 대한 자그마한 도전으로 볼 수 있다. 아내의 슬픔이 남편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본능의 반복이라면 남편의 조리 잃은 행동은 아내에 대한 애정의 발견이다. 모든 것을 참고 의연함으로써 그는 남편으로서의 위신과 정형(定型)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는 아내를 달래고 책을 팔아 돈을 만들고, 연애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아내와의 연애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껴보려고 함으로써, 그 모든 당황의 한가운데를 통해서 아내에의 애정을 실토하고 있다. <포인트>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스토리의 배후에는 이렇게 남편과 아내의 분리가 놓여져 있다, 이 분리는 삶의 소테레오 타리프로 아내를 굳혀놓고 그 맞은편에 끊임없이 혼란을 겪음으로써 남편의 속성을 감추어 가는 남편을 그림으로써 둘의 대립관계를 성립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 대립을 통해 소설문학의 통폐로 지적되어 온 인간 현실의 그릇된 형상화가 시정되고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인간 창조란 상투형(常套型)의 재생산이 아닌 의식의 교질상태를 통해 파악된 존재의 현현(顯現)이라는 점이다. 설정이 매우 기계적이지만, 최상규가 이 작품에서 강조하고 있는 ‘오늘’이라는 문제는 인습과 편견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나 자존(自存)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로서 일단 이해된다. [그는 결국 어제와 오늘을 갈라놓고 만다. 어제는 어른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때문이다.] 는 작품의 끝부분은 작각가 그려낸 남편의 인간 추구와 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남편의 횡설수설하는 행동과 심리의 방황이 지양되고 있는데, 그 지양이 지금까지 추구되어 온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보여주는 대립의 정당한 극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 그러니…우는 것은 모른 척하자…’는 투의 추구 포기와 타협에 의해 매듭지어진 것이다. ‘오늘’은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우리 기껏 잔뜩 살아보잔 말야’라는 남편의 생각이 가리키듯 실존적 행태(行態)로 위장된 안이한 자기 포기로서의 의미를 띠운다. 그러나 그 ‘오늘’이 작가의 설명대로 ‘어제를 갈라놓고’ 그를 비본질적인 관념의 그늘에서 건져놓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어설픈 과거의 풍속에서 뛰쳐나와 아내를 어른으로 말하면서 남편을 응석과 주착의 혼란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성급히 남편을 어른으로 조작한 뒷부분의 실패를 이 소설은 어느 정도 만회하고 있는 셈이다. - 김주연(金柱演) : <한국단편문학대계>(1969)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