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문학관 엿보기
무작정 길을 나섰다. 글 쓰는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추진한 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이다. 나태주 풀꽃문학관이나 신동엽문학관처럼 작가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게 문학관 명칭의 상례인 줄 알았던 터라, 강의 이름을 내건 낙동강 문학관이 낯설었다. 그 문학관에 대하여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막연하게 한 사람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곳이 아니라 강이라는 자연이 어떻게 문학을 품어 안았을지 궁금했다.
차에 오르니 눈꺼풀이 슬며시 내려앉았다. 전날 만만치 않았던 일정 탓이 크다. 지인의 구순 기념 미술 전시회 들러 축하를 건네고, 점심 무렵에는 골프장으로 향했다. 댓 시간 운동하고 저녁 모임까지 마치니 오밤중이다. 게다가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서자, 주차할 곳이 없어 뱅뱅 돌다가 겨우 차 궁둥이를 밀어 넣었다. 몸은 아직 어제에 머물러있는데 마음은 벌써 오늘의 여정에 올라 있다.
문학관을 찾아가는 것은 그저 건물 구경하러 가는 길만은 아니다. 문학이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겨놓았는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은 어떤 뜻으로 한자리에 모이는지 엿보고 싶었다.
문학관은 대체로 작가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작가의 육필 원고와 유품, 작품의 배경이 된 장소를 보존하여 한 사람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후대에 전한다. 하지만 글이나 문학의 터전이 반드시 사람의 이름에만 머물러야 하는 건 아니다. 한 시대의 삶을 품은 마을도, 민초의 애환을 실어 나른강도, 수많은 이야기가 흘러온 고을도 문학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낙동강 문학관이라는 이름은 내게 작은 물음표를 남겼다. 강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물길을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사라졌는지. 강가의 농부와 나루터의 뱃사공, 삶의 고단함을 견디던 백성의 사연은 누가 기록하지 않아도 강물 속에 스며들어 있을 듯하다. 어쩌면 말 없는 자연의 언어를 조용히 마주하는 곳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강가에 문학관이 세워졌다는 게 놀랍다. 문학관 건립은 문학인 몇몇 마음이 모여 비롯된다는 사실을 곱씹어 본다. 문학은 혼자 쓰는 일이지만, 문학의 정신을 지키고 나누는 일은 몇몇 뜻있는 이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원고를 보존하고, 누군가의 작품을 읽히게 하며, 다음 세대에 문학의 씨앗을 건네는 일에는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필요하다.
낙동강 문학관을 향해 달리던 아침, 나는 그 문학관의 이름이 낯설다고 했다. 이름이 낯 섧은 오히려 그곳에 대하여 알고 싶은 마음을 불러왔다. 혹시 과거의 작품을 유리창 안에 가두어 두었을까. 아니면, 지나간 문장을 오늘의 독자가 다시 읽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해 놓았을까. 그리고 작가의 이름을 넘어 그 땅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과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까지 문학으로 품었을지….
이윽고 낙동강 문학관에 이르렀다. 강 언저리에 지어놓은 기와집 사이로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입구에 들어서며 전시해놓은 글귀를 읽고 빛바랜 사진을 보느라 눈이 바빠졌다.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로서 심원한 정신문화의 꽃을 피웠다.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우리 문학을 품은 공간으로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그때마다 뜨겁게 생을 마친 그 땅에 선비들을 모시는 문학의 전당처럼 보였다. 낙동강의 3대 누각인 영호루(안동) 관수루(의성) 영남루(밀양)에 남긴 시의 진수와 역대 상주 선비들의 시문 소개, 칠백여 년간 전승되어 온 낙강범월시회와 전국에 이름을 떨친 상주의 아동문학, 그리고 현대문학을 조감할 수 있었다.
낙동강 문학관을 엿본 후기다. 자연과 인문이 조화를 이룬 강문화는 유장한 강의 흐름에 상징적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강물은 흘러가면서 흔적을 남기듯 한 시대의 삶을 문장으로 붙잡아 두었고, 또한 그 문장이 다음 시대의 사람들에게 다시 흘러 들어가도록 한곳에 불러 모아 놓았다. 그리고 그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징검다리를 놓아 새로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무한한 창작의 원천인 낙동강은 우리의 역사요. 노래이며, 생명이다.
결국 내가 엿보고 싶었던 것은 문학관의 건물이 아니다. 그리고 전시된 유품이나 유물보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깃들어 있는 깊은 뜻이다. 그 속에 남긴 작가의 정신이고, 그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모아 강물 같은 이야기를 지키려는 곳이나 그 모습을 보려고 찾아가는 이들의 마음이 겹쳐 보였다. 그곳이야말로 낙동강 문학관이라는 이름이 걸맞은 곳이 아닐까 싶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 <낙동강 문학관 엿보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자주 김영훈 카페에 방문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