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입버릇처럼 되뇌면서도 무념무상한 일상을 덤덤히 받아들이던 나를 박찬일의 글이 부산행 기차에 오르게 했습니다. 그의 저서 ‘백년식당’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군침 돋는 이야기에 몰입해 베갯잇을 적시지만 특히 ‘담벼락 노점에서 백년식당이 된 서민 음식, 할매국밥’편에 이르러선 침샘이 범람할 지경이 이르렀습니다. ‘술만 마셨다 하면 오밤중에도 이 집 국밥이 생각나는 것이다. 입에 짝짝 붙는 부드러운 수육,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할매국밥을 먹기 위해 곧 다시 기차를 타야 할 것 같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부산행 기차에 아니 오르고는 못 배길 지경에 도달했습니다. 도대체 할매국밥이 어떻길래 박찬일이 술만 마셨다 하면 오밤중에도 생각이 난다는 것인지 궁금한 사람이 직접 확인을 해볼 수밖에요.
백년식당/박찬일 지음, 중앙 M&B 펴냄, 2014.11 10 발간
바라기는 술이 불콰해진 오밤중에 할매국밥집에 들러 돼지국밥 한 그릇을 바닥까지 싹 비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서울사람인 갑판장이 출장지인 부산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일행들의 동조도 있어야 하고, 다른 일정도 고려해서 동선을 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아쉽게도 환한 대낮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편이 더 부산시민스런 행보이지 싶기도 합니다. 마침 납품 받은 고기를 손질하는 것을 보게 됐는데 책가방만한 삼겹살 덩어리를 작업대에 올려놓고 삶기 좋게 팔뚝만한 크기로 토막을 내는데 그 양이 김치냉장고를 꽉 채울 양이었습니다. 하루에 50kg정도의 고기를 쓴다더니 그 말이 결코 허언은 아닌 가 봅니다.
수육 中/할매국밥, 범일동 부산
할매국밥집이 돼지 삼겹살을 쓴다는 것은 앞서 고기를 손질할 때 직접 확인을 했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수육을 주문하니 역시나 삼겹층이 선명한 잘 삶은 고기가 나옵니다. 뭉텅 썰어 수북히 담은 것을 서울식으로 얇게 저며 썰어 펼치면 두 접시는 되지 싶습니다. 지방층이 풍부한 삼겹살 부위라 두툼하게 썰어 주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오히려 그 쪽을 더 당연시 하는 눈칩니다. 하기사 대부분의 손님들이 오래 전부터 이 집을 드나든 단골이니 뜨내기인 갑판장이 고기의 두께를 가지고 뭐라 할 입장이 못 됩니다.
국밥/할매국밥, 범일동 부산
분명히 질 좋은 고기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기대했던 것보다 수육이 촉촉하지 않고 퍽퍽한 감이 있었습니다. 오후 두 시를 넘긴 시각이라 수육을 막 삶아낸 시점에서 시간이 지나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합니다. 수육보다 국밥에 들어 있는 고기가 국물을 머금어 더 촉촉하고 맛있었습니다. 국물을 한 술 떠 먹어보니 박찬일이 왜 술 마신 날 오밤중에라도 먹고 싶은 음식으로 할매국밥을 꼽았는지 알겠습니다. 고기를 충분히 넣고 우려낸 국물임에도 불구하고 기름기를 촘촘해 제거해서 느끼하거나 무겁지 않고 오히려 맑고 시원한 맛이 납니다. 콩나물과 미나리를 넣고 한소끔 끓여낸 복국이 이른 아침의 해장으로 당긴다면 오밤중의 속풀이용으로는 할매국밥이 맞춤이겠다 싶습니다. 갑판장도 이젠 술 마신 오밤중이면 이 집의 국밥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부산 출장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행해준 친구들...고맙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국밥이 얼마 전에 500원이 올랐는데도 5천원입니다. 학생이나 택시기사는 여기서 좀 더 깍아준다니 쥔장의 배포가 어지간한 분은 아닌가 봅니다. 아무리 월세 부담이 없는 가게라 하더라도 부산시내에서 통용되는 돼지국밥의 가격에 맞춰 가격을 정하기만 해도 쉽게 더 많은 이윤을 취할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이러니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을 세월 동안(1956년 개업) 손님이 끊이질 않는 것이겠지요.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손님을 불러 취한 이득을 다시 질 좋은 음식과 속 깊은 인심으로 손님에게 되돌리니 이대로만 한다면 60년을 넘어 진정한 백년식당이 되고도 남을 집입니다. 아직은 2대째입니다만 3대째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이 집, 마늘도 맛있습니다.
첫댓글 아~ 땡기네요
땡기면 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