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릎까지 덮는 Boots는 승마를 할 때 다리를 보호해 주기위해 14C에 들어서서 만들어 지고, 이때의 부츠는 다른 특별한 장식없이 윗부분에 주름을 잡아주거나 소맷부리처럼 접게끔 만들어 졌다.
이렇듯, 이때 만들어진 신발은 대부분 눈에 잘 띄면서도 기이한 형태의 신발로 Toe부분이 너무 길어서 걷기에 매우 불편한 신발들이었다.
|
이런 불편 때문에 얼마후 제작이 중단되었지만, 이러한 이상한 형태의 신발들은 이후 디자인과 형태에 있어 패셔너블한 신발을 제작할 수 있는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 그러나 그 당시에는 신발 제작시, 기술의 완벽성과 형태의 화려함만을 추구 하였을 뿐 발의 편안함과 안전성을 고려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 지배 계층은 이러한 신발외에, 신발위에 덧 신는 'Pattens'라는 바닥창에 나무못이 박힌 나막신 종류를 신었다.
'Pattens'는 주로 나무나 쇠로 만들어 졌지만 특별히 왕을 위해서는 Cork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
■ 16 세기 신발
신발이 자연스러운 형태로 된것은 16C 말이 되면서 부터이고, 이 때에는 구두 앞 부분의 형태가 여러 번 바뀌었다.
여성들의 신발이었던 Chopines는 16C에 들어서 바닥 버팀대의 높이가 점점 높아져 오늘날 여성들의 하이힐이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
신발의 유행은 단순하게 절단된 발등위에 가죽끈, 나비 리본, 버클등을 장식하는 형태로 변하면서 1590년 경 처음으로 구두에 뒤축이 생기게 되었다. 이 구두 뒤축은 곧 고품격의 유행이 되었고, 발등위에 가죽끈, 리본, 장미꽃 매듭을 장식 하였다.
■ 17 세기 신발
17C 에 들어서 발등을 장식하는 버클이 점차 커졌고, 발등을 덮는 베라부분은 더 길어 졌으며 뒤축도 높아져갔다.
이 새로운 형태는 왕과 귀족들을 매우 만족시켜, 그 이후로 유행에 민감했던 상류층 남성들은 이'하이 힐'로 인해 비틀거리는 일이 계속 되었으며, 길고 커다란 나비 리본이 계속 사용 되었다. |
하이 힐은 자신이 키가 커 보이길 바랬던 루이 14세에 의해 더욱더 유행의 물결을 타게 되었고, 뒤축의 모양도 볼품없는 일직선에서 완만하게 안쪽으로 휜 곡선이 형태를 띄게 되었다. 그래서 이 높고 구부러진 구두 뒤축을 'Louis Heel'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삼총사 시대의 허세로 인해 부츠에도 장식이 달리고 과장되기 시작했다.
|
■ 18 세기 신발
| 18C 의 정장용 제화 기술은 무늬를 넣은 비단과 부드러운 염소 가죽에 수를 놓거나 스팽글로 장식하여 우아함과 장식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신발의 Toe 부분은 뾰족해지고, 구부러진 높은 뒤축을 달았으며, 발등위에는 다이아몬드 버클이 장식되곤 했다.
1780년경,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비로서 여성들의 신발도 유행의 대상이 되었다.
|
■ 19 세기 신발
나폴레옹과의 되풀이된 전쟁으로 인해 Boots는 남성화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여성화 역시 발목을 감싸지 않으면 건강에 나쁘다는 당시의 위생사상에 뒷받침되어 발목 까지오는 편상화가 남녀 모두에게 유행되었다.
영국에서는 앞부분이 긴 승마용 부츠인 'Wellington Boots'가 공직자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남성들의 바지는 점차 길어져 마침내 부츠위로 덮게 되었다.
신발의 대량 생산은 1845년 미국에서 제작된 피혁을 부드럽게 하는 'Rolling Machine'에서 시작, 1858 년에 제작된 'Shoes sole과 Upper(창과 갑피)'를 제봉할 수 있는 기계로 인해 시작 되었다. |
■ 20 세기 신발
|
|
|
|
|
첫댓글 신발하면 생각나는 것은 80년대 빽구두(흰고무신)이네. 봄여름가을 전전후로 신고 다녔던 기억이 새록하네^^
심지어 지리산 등산할 때도..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한 무모한 도전이었어.
그림들이 사라져 버려서 당황스럽군.
앙꼬없는 찐빵에도 댓글을 달아주는 고마운 기문이.
고무신도 당연히 다뤄질 주제였다네
난 진짜 백구두-아버지 꺼-를 신고 다녔다가 발만 상처입었지.
화순 탄광에 취재(솔직이 말하면 취재 흉내)차 갔다가 어느 광부 아저씨 집엘 들렸는데,
작두펌프물에 몇번 행구니 검정고무신이 흰고무신으로 변신하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