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중국의 천주교 신부(神父) 주문모(周文謨) 사건에 연루되어 금정 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되었다. 바쁘고 분주하게만 살아왔던 다산은 모처럼 종6품의 찰방이라는 직책을 맡아 조용한 시간을 내 촘촘히 퇴계(退溪.이황)의 학덕이 실린 서찰(書札)들을 읽으면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 중에 특히 요절(要切)한 부분을 뽑아 부연 설명하여 자신을 경성(警省)하는 자료로 삼기 위해 책을 지었는데 이것이 다산이 지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이다.
다산이 퇴계의 서찰들을 읽던 무렵 서울에 사는 선배인 참판 이익운(字는 계수)에게 보낸 ‘答李季受(이계수에게 답함)’ 라는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요즘 퇴계 선생의 문집을 얻어 읽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근차근 실마리를 찿듯 분석해 봅니다. 그 깊은 의미와 넓은 범위는 진실로 후생 말류로서는 감히 엿보거나 헤아릴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상스럽게도 정신이나 기운이 편안해지고 뜻이나 생각이 가라앉아 혈육과 근맥이 모두 안정됩니다. 안도감이 들면서 예전의 조폭스럽고 발월(發越)하던 기운이 점점 사라지니 이 한권의 책이 저 같은 사람의 병중에 맞는 약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鏞近得退陶李先生遺集。潛心紬繹。其閫奧涯涘。固非後生末流所敢窺測。而異哉神氣舒泰。志慮恬降。覺血肉筋脈。都安靜帖息。從前躁暴發越之氣。漸漸下去。無乃一部陳編。是果此人對病之藥耶 ...]
한편, 다산시문집 2권에 실린 ‘讀退陶遺書(퇴계선생이 남기신 글을 읽으며)’는 다음과 같다.
한적 속에 겨우 보니 모든 일이 바쁜데 / 閒裏纔看物物忙
이 가운데 가는 세월 잡아맬 길이 없네 / 就中無計駐年光
반평생 가시밭길에 희망 기대 어긋나고 / 半生狼狽荊蓁路
칠척 몸이 싸움터에 갈피를 잡지 못했네 / 七尺支離矢石場
만 가지 움직임이 조용함만 못하고 / 萬動不如還一靜
흔한 향취 따르느니 외론 향기 지킴 나아 / 衆香爭似守孤芳
도산이며 퇴계는 그 어디에 있는지 / 陶山退水知何處
아스라이 높은 기풍 끝없이 흠모하네 / 緬邈高風起慕長
註: 다산 정약용 평전(박석무 지음)을 인용하고,고전번역원의 역문을 전재함.
첫댓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은 이회서당 406번 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