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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15:1-8
제목: 참 포도나무와 가지
<서론>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관계를 떠나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한 가지 간단한 예만 들어도 충분히 증명이 될 것 같습니다.
부모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자녀가 누가 있겠습니까?
첫 사람 아담 이후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기본 부모 자녀 관계라는 기초에서 그 인생이 시작되잖아요.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사람은 관계로 그 삶을 시작하고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인데, 이것은 주님과 성도 간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함께 귀를 기울이기 원합니다.
<본론>
1. 누가 참 포도나무이며 열매 맺는 가지인가? (누가 참 하나님 백성인가?)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포도나무라는, 유대인들에게 굉장히 친숙하고 중요한 이미지를 사용해서 제자들에게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포도나무 비유로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신다는 거죠.
이렇게 하시는 것은, 포도나무가 유대인들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중요한 소재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약 성경이라는 더 중요한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가 구약에서 어떤 이미지로 쓰였는지, 몇 가지 예를 살펴볼게요.
우선, 시편 80편 8절에서 포도나무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시편기자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이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고 심으신 “포도나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렘 2:21) 포도나무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이스라엘을 가리켜 하나님이 심으신 “귀한 포도나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 이미지하면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곳이 이사야 5장입니다.
이사야 5장 역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심히 기름진 땅에 심으신 “극상품 포도나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포도원 주인”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은 “포도나무”하면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두고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가리켜 “참 포도나무”라고, 하나님 아버지를 “농부”라고 이미지를 써서 말씀하고 계시죠.
이것은 마지막 예로 든 이사야 5장 말씀과 흡사한 느낌을 줄 텐데,
실제 오늘 말씀은 주님이 이사야 5장의 이미지를 가져오셔서 말씀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설명일 겁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과 이사야 말씀 사이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묘사한 반면,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당신이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이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육신적인 이스라엘이 참 이스라엘, 참 하나님 백성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참 이스라엘, 참 하나님 백성의 대표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그릇되고 오만한 생각을 산산조각 내는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난 자신들이 참 이스라엘, 참 하나님 백성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아니다, 내가 참 이스라엘이다!”라고 확고히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선언은 주님이 참 이스라엘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누가 참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참 하나님 백성은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5절 머리 부분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이미지로 또한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하나님 백성이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바로 하나님 백성을 결정짓는 기준입니다.
부모님이 믿음 생활 잘 한다고 자식이 저절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고,
집안에 목회자가 몇 명인가 하는 사실이 하나님 백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착하게 살았고 얼마나 많이 봉사했고 얼마나 많이 헌금 했느냐가 하나님 백성 됨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믿고 주님께 붙어 있는 가지인가, 주님과의 관계가 하나님 백성을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붙어 있다고 해서 다 똑같은 가지들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2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어도 가지들이 나뉜다, “열매”의 여부로 나뉜다고 말씀하시죠.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예수라는 포도나무에 가지들로 붙어 있어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이 있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거룩한 공동체 안에 있지만, 믿음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들인데, 이 사람들은 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걸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참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을 믿노라 고백도 하고 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지만, 정작 참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가지들의 결국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무로부터 제거하신다,
뿐만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다음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말씀에서 보듯이, 포도나무에서 잘린 가지의 운명은 단 하나, 밖에 버려져 마르고, 그 후에는 땔감으로 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게, 가지가 볼품이 있어서 장식용으로 쓸 것도 아니고, 힘이 있어서 지팡이나 그릇을 걸 못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달리 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참 믿음으로 붙어있지 않는 명목상 그리스도인들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예수님께 속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예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예수님에서 떨어져 나가고,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말씀을 주시는 때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고 떠나간 이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붙은 가지인 것 같지만, 실상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가룟 유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말씀드린다고 해서, 누가 참된 가지이며 또 누가 붙어 있는 행세만 하는 가지일까 하고 함부로 호기심을 가지고 판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판단하실 권한은 오직 포도원 농부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물론 말씀에서 계속 강조하듯이, 열매를 맺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이것이 예수님께 속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눈은 참 부정확하고 겉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서, 참된 열매라도 그 열매가 아직 작고 미약한 것과 열매가 없는 것을 잘 구분 못합니다.
따라서 누가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믿지 않는지, 우리는 함부로 판단할 권한이 없고,
다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포도나무이신 주님으로부터 잘라내실 때 비로소 그 정체와 열매 없음이 제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잘라내신다는 것은, 가룟 유다처럼 주님을 버리고 떠나가는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 그 전에는 쉽게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가지인지 함부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신을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제대로 붙어 있는 가지로서, 열매 맺는 가지로 서 드릴 수 있도록,
남이 아니라 자신을 점검하면서 믿음의 확신 가운데 굳게 서십시오.
2. 더 열매 맺는 가지를 위한 준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2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함께 읽은 말씀에서 열매를 맺는 가지는 포도원 농부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
“더 열매를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죠.
포도나무 가지가 좋은 포도송이를 맺으려면, 가지에서 자라는 곁순이나 덩굴손을 잘라서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곁순이나 덩굴손들을 내버려두면, 이런 것들이 포도나무로부터 오는 진액을 빼앗아 포도송이가 잘 자라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따라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농부가 가지에서 그와 같은 곁순이나 덩굴손을 아끼지 않고 제거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서 믿음의 열매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시는 모습을 이미지로 묘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가지 된 성도들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인가?
3절에서 그 수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가지 된 성도를 깨끗하게 하는 수단이 “주님 말씀”이라고 설명하시죠.
그 전에 “깨끗하게 한다”는 표현의 의미부터 제대로 보아야 “주님 말씀으로 성도를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으로 돌아가 보면, 주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기시면서 제자들을 가리켜“너희는 목욕한 사람들이고 깨끗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목욕했다, 깨끗하다”고 하신 것은 주님과의 바른 관계, 즉 “죄를 씻고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은, 주님 말씀을 수단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믿음 가운데 서게 하시는 역사를 가리킨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적으로는 말씀으로, 내적으로는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서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씻음 받게 하시는 역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가지 된 성도들을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처럼 풍성한 열매 맺는 가지가 되기 위한 준비는, 깨끗하게 되는 것, 말씀을 따라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죄를 깨닫게 하실 때 회개하십시오.
욕심을 품고 죄를 품고 있으면 믿음의 열매가가 풍성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마음을 늘 주시기를 사모하고, 주실 때 회개를 힘쓰십시오.
3. 더 열매 맺는 가지를 위한 의무: 내 안에 거하라!
4-5절을 보십시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 말씀에서 주님은 성도가 믿음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가지인 성도가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다른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 안에 거함으로써, 주님 안에 계속 머묾으로써 성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많이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가늘기만 하지 볼품도 없고, 무엇인가를 지탱할 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약하고 가는 볼품없는 가지라도 포도나무에 제대로 붙어있고 계속해서 붙어 있기만 하다면,
다른 조건 없이 그저 포도나무에 잘 붙어있고 지속적으로 붙어 있기만 하다면, 그 가지는 반드시, 풍성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성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떠나서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는 아무리 재능과 능력이 많아도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기쁘나 슬플 때 늘 계시옵소서!
주님을 떠나 성도 스스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하지만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하고 가진 재능이 없는 성도라도 주님 안에 계속해서 머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이것은 신실한 주님 말씀이기 때문에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고 있는가, 이것이 성도가 열매를, 많은 열매를 맺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모습인가?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에서 성도가 주님 안에 계속해서 머무는 비결을 말씀하는데, 말씀의 이해를 위해서 히브리인들의 언어습관을 잠시 설명하고 갈게요.
히브리인들은 종종 앞에 했던 말을 뒤에서 다른 표현을 써서 반복하면서 앞의 말을 설명하거나 강조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라는 말씀은, 바로 뒤에 따라오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라는 말씀에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겠죠.
다시 말해서, 성도가 주님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는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이 성도 안에 거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가?
다시 말해서, 주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깨닫기를 사모하고, 따라서 그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려 하는가?
이와 같은 주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됩니다.
주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하기를 축복합니다.
주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자꾸 생각하고 깨닫기를 사모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힘쓰고 기도로 도우심을 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렇게 할 때, 무엇을 구하든지 주님이 이루어주시는 역사를 보는, 다시 말해서, 삶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8절에서 보듯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제자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이 내 안에 거하게, 계속해서 머물게 하십시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기를 사모하고 성령님이 말씀을 밝혀 주시고 순종할 힘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결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누가 참 하나님 백성인지, 또 가지로서 성도가 어떻게 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함께 보았습니다.
1.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믿음으로 붙어 있는 성도, 가지되어 열매를 맺는 성도가 참 하나님 백성입니다.
2.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준비: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이끄실 때 순종하여 회개하는 것입니다.
3.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책임: 계속해서 주님 안에 머무는 것, 즉 말씀이 내 안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