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epilogue]
지금까지 1년 이상, 두서 頭序 없이 써 내려 온
장황 張皇스런 둔필 鈍筆을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주변과 매스컴 뉴스를 보고 있자니,
우리 역사가 너무나 왜곡. 축소되어 있다는 분심 憤心에
사로잡혀 이글을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려장 高麗葬’이란 단어는
예전 고구려시대에 돌림병이 돌 때, 전염병 예방의 차원에서
전염병에 걸렸거나, 의심이 되는 취약한 노약자를
관 官에서 주도하여 매장한 극단적인 예는 있었으나,
이는 고구려뿐만 아니라
당시, 대부분 부족이나 각 나라에서 돌림병을 차단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시행하였던 방역 防疫 제도의 한 방법이었습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焚書坑儒의 ‘갱유’도 전염병 차단의 목적에서
노약자들을 생매장한 것을 악의적으로 표현했다는 시각 視覺도 있습니다.
그러니, ‘고려장’이란 단어로 사용하기보다는
‘역병장 疫病葬’이나, ‘인류보호장 人類保護葬’
혹은 ‘원시 제병장 原始 除病葬’이라 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노령화로 접어든 요즘은, 요양원 療養院을 비유하여,
‘부모님의 나이가 많으면 산 山에 내다 버린다’는 뜻을 지닌,
'현대판 고려장'이란 호도 糊塗된 의미로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고려를 보고 ‘동방예의지국 東方禮儀之國’이라 호칭하였습니다.
그런 사례가 있었다면 감히, 어느 누가 ‘예의지국’이라 추켜세워 주었겠습니까?
‘고려장’이란 단어는 1900년대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은 용어였는데,
일제 日帝가 우리의 미풍양속 美風良俗에 찬물을 끼얹고
효행 정신을 말살시켜 민족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저해 沮害하고자 의도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일반인들은 스스럼없이 사용하고,
매스컴[mass communication]에서는 대중을 상대하여
일반상식 퀴즈[quiz]로도 나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언행들이다.
학식이 높다는 학자나 어른들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 殘滓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본문에 언급되었지만,
사드 (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高高度地域防禦,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배치 관련 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이 한반도의 ‘샤드’ 배치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였다.
그러자, 답변이 궁색해진 고대 동양사를 잘 모르는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과의 고대 역사와 지도를 제시해달라”고 당시, 우리나라 이 모 대통령에게 의뢰하였다.
기업인 출신으로 돈 버는 데는 천재지만 역사관이 미약한 이 모 대통령,
강단의 역사학자들에게 고대의 영역을 표기해달라고 하니까 그들은,
‘중국 측이 제시한 내용이 맞다’라며 한 줄 수정도 없이 그대로 미국 측에 제시해 버린다.
고대 중국과의 관계를 알려달라는 미국 대통령의 주문에
중국이 ‘고대로부터 한반도는 중국의 복속 국가’라고 사실과 상반된 허황 虛荒한 주장을 하며,
그 증거로 제시한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그려진 조작 왜곡된 지도’를 보고도
한 줄 수정 修正도 없이
‘맞다’라고 확인해 준 정신 나간,
후안무치 厚顔無恥한 강단의 역사학자와 담당 외교관들.
그들 모두, 우리의 찬란 유구한 역사를 외면하고,
사리사욕 私利私慾에 사로잡혀 저지른 엄청난 과오 過誤다.
무지 無知하거나 사욕 私慾이 많은 자들,
그 자리에 있으면 아니 될,
직책과 탐욕에 눈이 먼,
무식한 저팔계 豬八戒 같은 작자들이다.
고귀한 진리와 학문을,
조상의 얼이 담긴 발자취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곡학아세 曲學阿世로 이용하는 자들이다.
철저한 이기주의 利己主義에 집착한 인간,
그들은 민족도 조국도 우습게 여기는 작자들이다.
매국노 賣國奴나,
을사오적 乙巳五賊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학위 자랑이나 하는 얼빠진 역사학 박사나
낯 두꺼운 강단의 역사학 교수들,
그리고 외교 담당 고관대작 高官大爵들,
그들이 제2의 을사오적이며,
감히, 국격 國格을 손상 損傷시키고,
해국 행위 害國 行爲를 저지른 배은망덕 背恩忘德한 작자들이다.
그 울분 鬱憤으로 본 소설을 시작하여,
짧은 상식과 어설픈 역사관이나마 나름,
고증 考證을 참고하여 서술하였습니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의 실제 이름은 다르겠지만,
그들이 담당하였던 시간적 공간적인 역할과 활동하였던
그 배경과 역사적인 결과는 결코, 허구 虛構가 아닌,
실사 實事와 대동소이 大同小異할 것입니다.
더불어,
필자의 이 글이
무분별한 국수주의 國粹主義와 편협 偏狹된 역사관이 아니라,
한자 漢字를 포함한 중국이 자랑하는 모든 문물 文物의 근원,
그 시발 始發이 동이족의 홍산 문화였으며,
그 홍산 문화의 적통자 단군조선에서
중원의 황하문명으로 전파 轉派 되었음을
입증 立證하는 하나의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필자의 바람입니다.
제1부는 일단, 여기서 매듭짓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 외면 外面 당하고 있는,
우리 한반도 선조 先祖의 한 줄기인 흉노의 후예 훈족이
당시, 세계의 중심부인 거대한 로마제국을 정벌 征伐하고,
그곳에서 획득한 붉은 석류석이 박힌 세계적으로 진귀한 황금보검과
( * 사진 - 황금보검. 보물 제635호. 국립경주박물관 전시소장)
동로마. 서로마제국으로부터 공출 供出 받은 다량의 금궤 金櫃 및
당시 로마의 귀족들조차 감히 함부로 만지기 어려운 귀한 명품인,
다양하고도 휘황찬란한 로만 그라스(Roman glass) 수백 수천 數百 數千 점을 싣고,
(실제, 로마제국의 여러 유적보다 신라의 서라벌, 경주에서 더 많은 수의 갖가지 다양한 로만 그라스가 출토되고 있음. 그동안 도굴 盜掘되었고 현재까지 미발굴 未發掘 된 고분 古墳을 감안 勘案한다면 당시, 한반도로 유입 流入된 로만 그라스의 그 수량과 다양성은 더 풍부할 것으로 사료 됨.
로만 그라스의 생산지인 로마제국의 관할영역보다 오히려 이역만리 당시,
지구의 끝,
머나먼 신라의 경주에서 로마제국의 유품들이 더 많이 발굴되고 있음.)
많은 훈족의 무리가,
수차례에 걸쳐,
재차 再次,
조상의 혼이 서린, 선조의 터전,
한반도 신라로 귀환 歸還하는 과정을 그리는
제2부는,
일, 이 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 所要될 것 같습니다.
그때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건강하세요.
- 元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