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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삶의 열매 20: 역대상 16장 34-35절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1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은 순탄한 삶을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사람보다는 순탄한 삶을 사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솔로몬은 순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더 복된 사람일까요? 이것은 복이 무엇이냐는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난 주에 한 자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자매는 남편과 사이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큰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가서 한 자모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자모는 자기가 매우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그 자모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교단이 어디세요?”하고 물었더니 “교단이 뭐가 중요해요?”하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교단을 밝히지 않는 것을 보니 이상한 교회에 다니나보다 생각하고는 “아니 어떻게 이단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저렇게 행복해하는 데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저한테 묻는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행복하려고 다니는 것은 아니야!” 이것은 그 전에도 그 자매에게 했던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 무조건 행복합니까? 모든 것이 순탄합니까?
대부분은 일생동안 아무 일 없이 평안하고 순탄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복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파란만장한 삶으로 인해 언제나 하나님과 가까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참 복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시편 119편 71절을 보면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말미암아 내가 주의 유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하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순탄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솔로몬 왕도 그렇지만 역대하 14-16장을 보면 유다 나라의 아사 왕이 나옵니다. 그가 왕이 된 초기에 아프리카의 구스나라가 쳐들어왔는데 그 군사의 수가 무려 백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아사왕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너무나 강하고 많은 군사를 동원한 구스의 군대에 비해서 자신이 이끄는 군대는 적었고 약했습니다. 그때 아사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역대하 14장 11절을 보면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하면서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순탄하여 하나님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인생의 어려움을 겪어도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아사가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직접 구스 군사들을 치셨습니다. 그러자 구스 군대는 너무나 놀라 겁을 먹고 뿔뿔히 흩어지면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것을 본 아사 왕과 이스라엘 군사들을 구스 사람들을 따라가면서 죽였고 전쟁을 대승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략물을 얻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셔서 복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아사왕은 하나님을 힘을 다해 섬겼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역대하 15장 15절을 보면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하고 있습니다.
아사 왕과 온 유다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만나주시고 평안을 주셨는데 무려 35년 동안 전쟁을 막아주셨습니다. 역대하 15장 19절입니다. “이 때부터 아사 왕 제 삼십오 년까지 다시는 전쟁이 없으니라”
그런데 35년 동안 전쟁이 없이 평탄한 삶을 살면서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웃 나라인 이스라엘이 유다를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이웃 아람 나라에 돈을 주면서 도와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 아사 왕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십니다. 역대하 16장 7-9절을 읽어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구스 사람과 룹 사람의 군대가 크지 아니하며 말과 병거가 심히 많지 아니하더이까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그 말을 들은 아사는 선지자를 향해 화를 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35년 간의 평화의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했지만 아사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외적인 평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풍요로 인해 하나님을 잃는 것보다 인생이 비록 힘들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복으로 여기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솔로몬이나 아사왕과 다르게 다윗은 일평생 파란만장한 삶을 삽니다. 그런 그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하나님의 법궤를 시온성으로 옮겨오는 것을 통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법궤를 옮긴 후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백성들을 축복하면서 말합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상 16장 34-35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했으면 아마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면서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법궤를 이렇게 옮겨왔다”하고 자랑스럽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요즘 성전을 크게 짓고는 “내가 성전을 이렇게 건축했어”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헤롯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 야고보를 죽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로 사람과 헤롯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이권을 생각한 헤롯의 신하들과 두로 사람들은 서로 화해를 위한 잔치를 헤롯이 머무는 궁궐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한 참 잔치가 무르익자 사람들이 이제 헤롯에게 한 마디 하라고 했습니다. 교만한 헤롯은 일어서서 한껏 자신의 지식을 내보이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 연설은 들은 두로 사람들은 헤롯을 향하여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입니다.”하고 소리치면서 아부했습니다. 사람들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그 영광을 자기가 다 차지했습니다. 칭찬이 독이 된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은 헤롯에게 뱃속에 위를 갉아먹는 벌레를 보내셔서 고통가운데 목숨을 잃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법궤를 시온성으로 옮긴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서 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낮추고 그를 높이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그가 여러분들을 도운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다가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하나님의 어떤 점에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인자하심으로 베푸시는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잠깐 있다가 그치는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 영원한 성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 역시 영원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그 영원한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다윗을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 건져주시고 돕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면서 백성들에게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
하나님이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신다는 것은 만국이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에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나라를 강하게 하셔서 강하다고 교만한 그 나라를 치게 하시면 그 나라는 아무리 강해 보여도 순식간에 망합니다. 역사는 그렇게 강한 나라가 다른 강한 나라에 공격을 당하면서 무너졌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는 그와 대적할 나라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무너집니다.
앗수르가 그랬고 바벨론이 그랬습니다. 메대와 바사가 그랬고 헬라가 그랬습니다. 또 로마 역시도 그랬습니다. 로마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로마도 역시 무너졌습니다. 중국의 강한 나라들이 다 무너졌고 또 중국을 무너뜨렸던 몽골도 역시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국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내시고 모으시기에 능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에서 숱한 어려움의 길을 갔습니다. 그것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와 같이 자신의 일평생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대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행하십니다. 여러분 역시도 순탄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금방이라고 죽을 것같은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는 여러분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근심하지 말고, 아무 염려도 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을 읽어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신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집은 여기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셔야만 여러분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충만한 나라요, 처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사시는 것은 잠시 뿐입니다. 길어야 100살을 겨우 넘길 뿐입니다.
백 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은 것같아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하고 있습니다. 욥기 9장 25에도 역시 “나의 날이 경주자보다 빨리 사라져 버리니 복을 볼 수 없구나”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은 잠시 머무는 이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예비하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여러분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소망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집은 영원한 집입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사랑과 섬김으로 함께 살며,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구원받은 백성들과 함께 영원토록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나라에서 구원의 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찬송하고 있는 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 5장 9-12절을 보면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 9-10절에도 역시 어린 양을 찬송하는 찬송 소리는 계속 울려퍼집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이 찬송은 시편 106편 47절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이 찬송을 부르는 구원받은 성도의 대열에 여러분들도 역시 함께 하실 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로써의 최고의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시편 118편 21절을 보면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과 존귀함은 여러분들의 어떤 상태에 따라 조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령님의 인치시고 항상 함께 동행하시면서 지켜주신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의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선하시며 인자하심으로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하루 하루를 감사하면서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