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1월 4일 금요일 [(백)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1538년 이탈리아 북부 지방 아로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비오 4세 교황이 그의 외삼촌이다. 신심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찍부터 학문 연마에 힘썼으며, 사제가 되어 훗날 밀라노의 대주교로 임명된 뒤에는 교회 개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1584년에 선종한 그를 1610년 바오로 5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며 하늘의 시민답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영리한 처사에 관한 비유를 드시며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우리는 구세주를 고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비유에 나오는 불의한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을 뿐 아니라,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자,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려고,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몰래 깎아 줍니다. 그런데 복음의 맨 마지막 구절에서 주인은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칭찬합니다. 복음서의 내용이 아니라면, 이 비유에서 주인의 행위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고, 스스로를 해치는 자해 행위로 보일 뿐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현재를 늘 미래와 연결시켜 사고하고 판단하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
<더욱 당당하고 더욱 충만한>
가까운 곳으로 가을소풍을 다녀왔습니다. 그야말로 단풍이 절정입니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 나무 몇 그루를 배경으로 한 고풍스런 암자 한 채가 눈에 띄었는데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줄지어선 단풍나무들은 마치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들 같았습니다. 눈부시게 화려하게 단장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한 묵상꺼리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인간들 눈에는 저리도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단풍잎이지만 사실 단풍잎 입장에서는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최후의 몸살을 하며 아파하는 것입니다. 봄날의 아기 손바닥같이 앙증맞고 부드러운 연둣빛 잎사귀는 한 여름의 푸르름을 지나 이제 생명을 다하고 최후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움 그 이면에는 언제나 아픔이나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고통과 십자가로 인해 슬프도록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가 요즘 단풍 나뭇잎처럼 빛나고 아름다워지려면 그 누군가의 희생은 필수입니다. 우리 단체가 절정인 한 그루 은행나무처럼 멋지게 변하려면 그 누군가가 아픔은 필수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대자연의 순환을 닮아 가면 좋겠습니다. 봄날의 파릇파릇함도 좋습니다. 여름날의 푸르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보여주는 단풍은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우리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마냥 쓸쓸하고 허전하고 우울한 것이 아님을 보여줘야겠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어도 더욱 아름답고 더욱 당당하고, 더욱 충만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영적인 삶, 영성생활입니다. 영적생활에 대한 우선권을 두는 노력입니다 영성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 충실하되, 목숨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유한하고 결핍된 존재라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진리를 매일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이 세상 너머에 또 다른 세상, 사랑으로 충만한 하느님 나라가 존재함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꽤나 알쏭달쏭한 비유인 만큼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집사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칭찬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로 큰 잘못을 한 집사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임의대로 사용했습니다. 더군다나 공문서 위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이 불의한 집사에게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합니다 우리도 불의한 집사처럼 행동하라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절대 아니겠지요. 요점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해서든 미래를 잘 준비하라는 말씀, 미래 중의 미래, 가장 궁극적인 미래인 마지막 날, 최후의 날에 잘 대처하라는 말씀, 이 세상 그 너머에, 죽음 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 우리가 지금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들, 사실 유한한 것들입니다. 지금은 대단해보이지만 얼마간 세월이 흐르면 낡고 퇴색되고, 결국 사라져버릴 것들, 무(無)로 돌아갈 것들입니다 우리네 인생에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다 신경 쓰고 관심을 둬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최선을 다해서 전력투구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소통에도 밑천이 있어야한다>
‘포프리쇼’의 김창옥 교수의 아버지는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그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돈은 절대 집에 안 가져다주고 술과 도박으로 사회에 환원하시는 분이셨고, 그래서 어머니와 자주 다투셨는데 폭력도 사용하셨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아버지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이 앉아있으면 어색해서 먼저 자리를 뜨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자신도 아버지와 소통을 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 교수 강의 주제는 ‘소통’이기 때문입니다.오랜만에 전화를 드려도 귀가 잘 안 들리시니, “어, 그래 창옥이냐? 끊어라. 전화세 많이 나온다.”라는 말씀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씀이, “그래 전화 해 주어서 고맙고, 너나 건강해라.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라는 말씀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색한 관계가 편안해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집에 갈 때마다 용돈을 드리니 너무 기뻐하시더랍니다. 어느 날은 공항까지 배웅 나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일은 생전 처음 겪어본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엔 그렇게 크고 무서워보이던 아버지의 작은 체구와 쳐진 어깨를 보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용돈을 드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시지 않고 자신을 바라본다는 생각에 자신도 뒤를 돌아보셨다고 합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은 보지 않고 봉투에서 돈을 꺼내어 세고 계셨습니다.
저도 이것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제가 신학교 가는 것을 그렇게 반대하셨습니다. 지금은 사제로 사는 저의 모습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용돈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돈이란 것이 내가 가지고만 있으면 죽음의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남에게 베풀 때는 소통의 약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김창옥 교수의 어머니도 말로는 “너 쓸 돈도 없을 텐데 왜 자꾸 이런 돈을 붙이냐?”라고 하시지만, 전화를 끊고는 딸들에게 전화해서, “야, 이것들아. 창옥이는 이렇게 용돈 자주 주는데 너희들은 뭐하는 거냐?”하며 자랑하신다고 합니다.
모든 관계에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마련해야합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는 용돈을,조상들을 위해서는 제사상을, 애인을 위해서는 신상 핸드백을, 내 자신을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약삭빠른 청지기를 칭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청지기처럼 주인의 재산을 유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와 같이 살면 안 된다는 말씀일까요? 오늘 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오늘 복음 다음 구절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그러니까 주인을 속이더라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재산이 부정한 재산이라도 그것을 이용하여 친구를 사귀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한데 그것이 부정한 돈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돈으로라도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다면 하늘나라에서 나를 맞이할 친구를 사귀어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독일군 점령지인 폴란드의 크라코프.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리암니슨 분)는 폴란드계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러 도착합니다. 그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찌 당원이 되어 SS요원들에게 여자, 술, 담배 등을 뇌물로 바치며 갖은 수단을 동원하게 됩니다. 인건비 한 푼 안들이고 유태인을 이용하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합니다.
그러나 쉰들러도 자신의 눈을 통해 나치의 살인 행위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한 쉰들러의 현실 직시는 마침내 그의 양심을 움직이고 유태인을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들 일명 '쉰들러의 유태인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였는데 노동수용소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구해내기로 계획을 잡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독일군 점령지인 크라코프로부터 탈출시켜 쉰들러의 고향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스턴과 함께 유태인 명단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한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마침내 1,100명의 유태인을 폴란드로부터 구해내게 됩니다.
그는 적어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건, 또는 나라의 법을 어겨가며 사람의 생명을 구했건 하늘나라에는 좋은 일을 한 것은 잊히지 않고 남아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이태인들이 그를 하늘나라에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를 지옥에 보내려도 해도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간청하여 그가 지옥에 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희가 어렸을 때 부대 철창 밑으로 들어가 부대 철거를 하고 사용하던 카페트 쌓아놓은 것을 빼내어 그것을 팔아 저희에게 자장면을 사 준 기억이 납니다. 부정한 돈임을 그 나이에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장면 하나 사 줄 수 없는 가난한 형편에 미군들이 쓰던 중고 카페트를 철창 밑으로 빼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희를 위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물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되겠지만, 혹 그런 돈이 있더라도 친구를 사귀는데 사용합시다. 많은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1월4일(금) 음10/4 밀라노의 대주교 聖 가를로 님
|
|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또는 가롤로)는 1567년 그는 주교의 관할권에 대한 밀라노 의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 자료집에서 발췌 |
종교개혁의 분열과 갈등이 유렵사회를 휘쓴 시대에
내적 개혁을 통해 교회의 참 모습을 유지하여 교구를 지키는데 열정을 쏟으신 밀라노의 대주교 성 가를로 님이시여 주님의 참모습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