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사진편지 제3126호('26/8/14/금)
[한사모' 공식 카페] - '한밤의 사진편지 romantic walking'
< cafe.daum.net/hansamo9988 >
-[클릭]-
“가슴에 맺힌 응어리 치유해주는 것은 사람의 몫”
80년 동안 맺힌 恨 사랑으로 풀었다
지난 8월 13일자 동아일보에
"日 차별에 못받은 연필, 82년 만에 '한 다스 채웠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안철주 회원님은 이 기사를 보며 말했습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치유해주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사람의 몫이다.”
먼 먼 옛날.
80여년 동안 한 맺힌 응어리를 가슴에 안고 살아온 어느 범부의 아픔을
오지랖 넓은 회원님의 노력으로 풀어준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안철주님은 임진각에서 동해안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DMZ길 330km 완주를 비롯,
한국 그랜드슬렘대회 128km를 완주한 철각이지요만.
그의 여동생은 오빠의 선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준 것이, 결국엔 한 사람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귀한 다리가 되어주었네요.”
그렇습니다. 번잡한 세상살이에 타인의 작은 일에는 모른척 지나가기 마련일진데
그의 세심한 배려로 망구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의 80년된 ‘한(恨)’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 한을 풀어주었으니....감회가 남다를밖에요.
다음은 안철주님이 이 기사를 본 뒤에 밝힌 소회입니다.
❝
동아일보 2026년 8월 13일 자 신문에 「日 차별에 못 받은 연필, 82년 만에 ‘한 다스’ 채웠다」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신문을 펼쳐 기사를 한참 바라보았다.
조무판 선배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이 일이 이렇게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1944년 일본 나고야의 한 초등학교.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 1등을 한 어린 조무판 학생은 상품으로
연필 한 다스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일본인 담임교사는
“너는 조선인이라 다 줄 수 없다”며 연필 한 자루만 건넸다고 한다.
그때 받지 못한 것은 연필 11자루였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에 남은 것은 연필의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상처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자꾸 마음에 걸렸다. 8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선배님께서
그날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은, 그만큼 어린 마음에 남은 상처가 깊었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 연필 한 다스를 채워드릴 수는 없을까.’ 그 작은 생각에서 일이 시작되었다.
주한 일본대사관과 주나고야 대한민국총영사관 등에 사연을 알리고 도움을 구했다.
이미 학교는 사라지고 당시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사연은 일본 나고야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일본에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일본인 퇴직교사 와타나베 마사에 씨가 보내온 것이었다. 상자 안에는
조무판 선배님께서 82년 전 받지 못했던 연필 11자루와 연필깎이, 필통, 그리고 정성스럽게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선배님께 소식을 전해드렸을 때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전화를 받고 한동안 눈물이 나오더라.” 그리고 직접 연필을 전해드리던 자리에서도
선배님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전달한 것은 연필 11자루가 아니었다. 82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어린아이의 서러움에
누군가가 ‘당신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해준 것이었다.
동아일보 기사가 나온 아침, 여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준 것이,
결국엔 한 사람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귀한 다리가 되어주었네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맞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작은 소리였다.
한 선배님의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 작은 이야기를 너무 크고
깊은 상처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정성을 들였다.
통우회 전우들도 따뜻한 말씀을 보내주셨다.
“조무판님의 한(恨)을 풀어준 자랑스러운 이야기”라고 해주신 분도 계셨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해결사를 자처했다”며 박수를 보내주신 선배님도 계셨다. 과분한 말씀이다.
나는 해결사라기 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한 작은 다리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한 가지를 새삼 배웠다.
사람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는 세월이 오래되었다고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억해주고, 진심으로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조금씩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82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한 어린아이의 상처가 한국으로 건너왔고, 다시 일본으로 전해져
한 일본인 퇴직교사의 따뜻한 마음을 만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국경을 넘고, 세대를 넘고, 82년이라는 긴 세월을 넘어 돌아온 연필 11자루.
그 연필들이 조무판 선배님의 손에 놓이는 순간, 오래도록 맺혀 있던 응어리도
봄날의 눈처럼 조금씩 녹아내렸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일을 통해 나 역시 큰 보람을 얻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그 사람의 아픔을 내 일처럼 잠시 품어보는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 걸음 더 움직여보는 것.
그 작은 마음과 행동이 때로는 한 사람의 82년 된 상처를 어루만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배웠다.
조무판 선배님께 연필을 보내주신 와타나베 마사에 선생님, 사연이 이어질 수 있도록 애써주신 관계자 여러분,
기자 섭외에 도움주신 박동진님, 김경수님, 중간에서 애써주신 통우회 이창희 고문님과 김종두님,
시의적절한 조언으로 격려해준 아내, 그리고 함께 기뻐하고 격려해주신 통우회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린다.
특히 무엇보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신 조무판 선배님께 감사드린다.
이제 그 연필 한 다스가 채워졌다.
서러움을 담은 연필 한자루에 따틋한 사람들의 정성과 사연이 담긴 열한자루가 더해졌다.
비로소, 연필 한 다스가 완성되었다.
2026년 8월 13일
동아일보 기사를 바라보며
안철주
❞
첫댓글 너무나 감동적이고 멋집니다
나도 이렇게 누군가에게 한을 남기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