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탁월한 학승,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이번 겨울 호에 소개할 교부는 탁월한 학승(學僧)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345-399년)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사막교부들 가운데 한 분이지만 사막 수도승 영성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심화시킨 인물이다.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은 학문적 토대를 갖추고 그 위에서 점차 발전해 나간다. 그만큼 에바그리우스는 수도생활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삶의 여정
에바그리우스가 걸었던 삶의 여정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보게 된다. 평범하다는 말은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고뇌와 좌절 등 넘어짐과 일어섬을 반복했다는 의미에서다. 팔라디우스가 쓴 『라우수스의 역사』(Historia Lausiaca) 제38장을 보면 에바그리우스는 젊어서부터 총기를 드러냈던 탁월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와 수도생활이 한창 번성하고 있었던 4세기 중엽에 태어나 반세기를 조금 넘게 살다 갔지만, 수도생활과 영성생활에 미친 그의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그가 걸어 온 삶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매우 극적이었다. 54년의 일생 중, 수도승으로 살았던 16년을 빼면 38년을 세상에서 생활하며 여러 일을 경험했다.
에바그리우스는 오늘날 터키 북부에 있는 폰투스의 이보라에서 출생하여 바실리우스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부제로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여 탁월한 지식과 지혜로 온갖 이단과의 싸움에서 혁혁한 공헌을 했다. 그의 명성은 콘스탄티노플 전체에 알려졌고, 그는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교만과 애욕의 노예가 되었고, 마침내 한 고관의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어느 날, 꿈속에서 이 일로 인해 자신이 처하게 될 온갖 곤경을 보고서 예루살렘으로 탈출하여 루피누스와 멜라니아의 수도원으로 피신하였다. 여기서도 악습을 끊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자 원인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는 하느님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로 가서 수도승이 될 것을 약속했다. 에바그리우스는 멜라니아에게 수도복을 받고 이집트로 가서 니트리아에서 2년을 생활한 후, 다시 켈리아 사막으로 가서 14년을 살았다. 이것이 한 위대한 교부의 파란만장 했던 삶의 궤적이었다.
평생의 화두
에바그리우스는 켈리아 사막에서 생애 마지막을 보내면서 이후 수도생활과 영성생활의 확고한 토대를 놓은 방대한 작품들을 저술했다. 아쉽게도 그의 사후 오리게네스 논쟁에 연루되어 많은 작품들이 유실되었지만, 우리에게 전해지는 작품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의 사상과 가르침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삼부작 중 하나인 『프락티코스』(Praktikos)는 수행생활에 관한, 그리고 삼부작의 또 다른 하나인 『그노스티코스』(Gnostikos)와 『기도론』(De Oratione)은 관상생활에 관한 전통적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에바그리우스가 전하는 가르침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다.
고대 다른 교부들과 마찬가지로 에바그리우스의 주된 관심과 가르침의 핵심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영성생활에서의 진보’였다. 즉, 어떻게 영성생활에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회심 이후 그의 전 삶을 지배한 평생의 화두였다. 앞서 언급한 대표작들은 이 물음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대답을 전한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 체험과 깊은 통찰에서 나온 지혜의 산물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에바그리우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간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하느님이 맨 처음 순수 정신(nous)인 이성적 존재들(logika)을 창조하셨는데, 그 목적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인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순수 정신들은 자기 역할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결국 육체에 결부된 영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순수 정신이 아니고 육체와 영혼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지니게 되었다. 타락의 정도에 따라 천사, 인간, 악령과 같은 세 범주의 타락한 정신으로 구분된다. 인간은 천사의 조건과 동시에 악령의 조건에도 연결되어 있다. 천사는 인간을 선으로 이끄는 친구인 반면, 악령은 인간을 악으로 이끄는 적이다. 따라서 인간은 선과 악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인간 영혼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가르침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그리스 철학 전통을 바탕으로 인간 영혼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즉, 이성부(reasonable part), 정념부(irascible part), 욕망부(concupiscible part)이다. 이성부는 영혼의 가장 고귀한 부분으로 타락한 정신의 직접적 연장(延長)이다. 나머지 두 부분은 육체와 연결되며 욕정부(passionable part)로 통칭된다. 영혼의 욕정부에는 그에 해당하는 욕정들이 공격하여 영혼을 병들게 하고 영혼의 이성부가 본질적 인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욕정들과의 싸움을 통해 욕정부의 악을 제거하고 덕을 심고, 이성부가 무지에서 인식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바그리우스의 인간학은 현대 교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는 많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그리스도교 교의가 형성되는 과정이었고 다양한 생각과 의견이 공존했던 시대였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성생활의 단계
에바그리우스는 영성생활을 크게 수행(praktike)과 관상(gnostike) 두 단계로구분하고 있다. 관상은 다시 자연학(physike)과 신학(theologike) 두 단계로 나뉜다. 자연학은 오늘날의 물리학이나 자연과학이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관상 혹은 영적 인식’을 뜻한다. 신학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사변학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관상’을 뜻하는데, 곧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온 존재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수행이란 “영혼의 욕정부를 정화하는 영적 방법”(『프락티코스』 78)이고, 관상이란 영혼의 이성부가 본질적 인식에 전념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생활은 영혼의 욕정부와 관련된 ‘악’과 이성부와 관련된 ‘무지’를 제거하여 영혼 안에 ‘덕’을 쌓고 ‘인식’을 얻기 위한 전적인 투쟁이다. 영성생활은 바로 수행적(금욕) 차원과 관상적(신비적)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행 없는 관상도 관상 없는 수행도 참된 영성생활이 될 수 없다. 영성생활은 수행을 통해 관상으로 나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영성생활의 진보를 이처럼 단계적으로 구분한 것은 에바그리우스의 공헌 중 하나이다.
수행생활(bios praktikos)
그리스도교 수행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악한 생각들 혹은 욕정들과의 내적 투쟁이다. 악한 생각은 악령들이 우리를 공격하는 수단이다. 그들은 우리 안에 악한 생각을 불러 일으켜 우리 마음과 정신을 흩뜨려 순수한 기도를 방해한다. 따라서 수행이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는 악한 생각들과의 싸움이다. 결국은 악한 생각들을 일으키는 악령들과의 싸움인 셈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최초로 여덟 가지 악한 생각 목록을 제시했다. 그는 말한다. “모든 생각을 포함하는 발생학적 생각은 모두 여덟 가지다. 바로 탐식 · 음욕 · 탐욕 · 슬픔 · 분노 · 아케디아 · 헛된 영광 · 교만이다.”(『프락티코스』 6) 육체와 관련된 탐식, 음욕, 탐욕은 영혼의 욕망부를 공격하고, 마음과 관련된 슬픔, 분노, 영적 태만(akedia)은 영혼의 정념부를 공격한다. 그리고 헛된 영광과 교만은 영혼의 이성부를 공격한다. 영혼의 각 부분을 공격하는 이런 악한 생각들로 인해 영혼은 병들게 되고 결국 본질적 인식, 곧 관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이란 영혼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다. 영혼이 건강을 회복한 상태는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 즉 내적평정 상태이다. 이 상태에 이른 영혼은 더 이상 악한 생각들에 동요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늘 평온하다. 이 평정심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아파테이아가 사랑(agape)이라는 자손을 낳고, 사랑은 관상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말한다(『프락티코스』 머리말 8 참조). 사랑의 구체적 모습은 온유이다. 온유는 수행의 정점에 도달한 수행자가 드러내는 고유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관상생활(bios gnostikos)
수행을 통해 내적평정 상태에 도달한 수행자(praktikos)는 사랑을 통해 이제 관상(gnostike)으로 나아간다. 관상가는 먼저 우리 감각으로 인지되는 가시적 피조물을 통해, 그런 다음 불가시적 피조물인 영적 존재(천사와 성인들)를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간접적으로 인식(자연학)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인식(신학)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관상생활의 핵심 내용은 기도다. 에바그리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당신이 신학자라면 당신은 참되게 기도할 것이며, 만일 당신이 참되게 기도하면 당신은 신학자다.”(『기도론』 61) 신학자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다. 신학자는 관상가이고, 관상가는 순수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그분과 일치와 친교를 누리는 사람이다. 에바그리우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격정적인 생각에서 돌아서면서 자기 아버지께 하듯 그분과 더불어 이야기한다.”(『기도론』 55)고 말한다. 기도는 하느님과 영혼의 대화이고, 이 대화를 통해 영혼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온갖 악한 생각들이라는 것이다. 수행을 통해 온갖 악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진 관상가는 이제 하느님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에바그리우스는 관상가(gnostikos)의 가장 큰 적을 분노라고 말한다. “모든 덕이 관상가에게 길을 활짝 열어주지만 무엇보다도 분노의 억제를 쉽게 해준다. 사실 인식에 도달했지만 쉽게 분노하는 사람은 철침으로 자기 눈을 찌르는 사람과 비슷하다.”(『그노스티코스』 5) 에바그리우스는 어떤 악도 분노만큼 우리 정신을 악령으로 변형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관상가의 탁월한 덕을 온유로 제시한다. 이처럼 분노는 관상가가 끝까지 경계해야 할 유혹으로 분노의 다스림은 중요하다.
마무리 하며
에바그리우스는 철저한 수행자이자 위대한 관상가였다. 영성생활과 수도생활에 대한 그의 수행적(금욕적) · 관상적(신비적) 가르침은 전통적 가르침으로 자리매김했다. 에바그리우스의 가르침은 이후 수도영성과 그리스도교 영성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항구한 가치를 지닌다. 한 해가 끝나면서 이처럼 중요한 교부를 소개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 동 · 서방의 가교, 요한 카시아누스
다소 발음하기 민망한 ‘병신년’ 새해가 밝은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벌써 한 해의 1/6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세월의 빠름을 더욱 실감한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멈추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17세기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작년 봄 호부터 우리는 고대 수도교부들과 함께 그리스도교 수도생활의 맥을 짚어 나가고 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교부는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인물로 동방과 서방의 가교 역할을 했던 요한 카시아누스(356년경-435년)이다. 그는 동방 수도승 전통을 서방에 전달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삶의 여정
요한 카시아누스는 356년 경 오늘날의 루마니아에서 태어났다. 당시 루마니아는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이 걸쳐 있던 지역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공용어로 쓰였다. 라틴 세계와 그리스 세계 모두에 속해 있었던 카시아누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했다. 이러한 특별한 배경은 그가 동방과 서방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카시아누스는 십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친구 게르마누스와 함께 고향을 떠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에 들어선다. 그들은 먼저 팔레스티나로 가서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수도승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이집트 수도승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장상에게 이집트로 여행을 가겠다고 허락을 청한다. 당시 이집트는 한창 피어나고 있는 수도승 생활의 성지와도 같아 더 깊은 내적 갈망을 지닌 사람들이 이집트로 몰려들었다. 집요한 청으로 장상에게 2년간의 말미를 얻은 그들은 이집트 전역을 여행하며 이집트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카시아누스는 『담화집』에서 자신이 이집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완덕 추구를 위한 영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약속한 2년이 지났는데도 그들은 돌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 원로에게 조언을 구하여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이집트에 머무는 것이 더 좋다는 확신을 얻고 10년을 더 머문다(『담화집』 17참조).
이집트에서의 체험은 훗날 서방에 동방 수도승 영성의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된다. 카시아누스는 이때 켈리아에서 오리게네스의 노선을 따랐던 에바그리우스를 만나게 되고 에바그리우스의 제자이자 동료가 된다. 그 후 오리게네스 논쟁으로 오리게네스의 노선을 따랐던 수도승들이 켈리아에서 추방될 때 카시아누스도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한다. 399년, 그들은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보호를 받게 된다. 카시아누스는 거기서 부제로 서품되고,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가 유배를 가게 되자 이 불의한 사정을 알리러 로마로 파견된다. 로마에서 안티오키아로 갔다가 다시 로마로 파견된다. 안티오키아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는데, 총대주교가 그를 사제로 서품한 것이다. 이런 체험에서 “수도승은 여성과 주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한다.”(『제도서』 11,18)는 그 유명한 구절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카시아누스 여정의 종착점은 갈리아다. 언제, 무슨 이유로 갈리아로 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 그는 배를 타고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이 일은 서방 수도승 생활의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당시 갈리아에도 수도승 생활을 위한 시도들이 여럿 있었지만 뚜렷한 방향을 못 찾고 있던 상태였다. 이때 카시아누스의 출현은 획기적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수도승 생활의 성지로 간주되었던 이집트에서 직접 수도승 생활을 했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수도승 생활의 본질과 목표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시아누스는 지역 주교의 요청에 따라 『제도서』와 『담화집』을 저술하는데, 이 두 작품은 동방 수도승 생활과 영성을 서방에 전해주고 꽃피운 대표작이다.
불후의 명작
카시아누스는 421년 경 『제도서』를, 426년 경 『담화집』을 저술했다. 갈리아 수도승들에게 이집트에서 자신이 체험한 바와 사막 교부들의 가르침을 전달함으로써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였다. 이 두 작품은 단일 작품처럼 계획되었는데, 수행을 통해 관상으로 나아가는 전통적 가르침에 부합한다. 총 12권으로 된 『제도서』는 주로 외적 인간의 양성을 위한 수행 생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1권에서 4권까지는 수도원의 제도에 대해서, 그리고 제5권에서 12권까지는 수행 생활의 구체적 내용인 여덟 가지 악습을 차례로 다루고 있다. 반면 24개의 담화로 구성된 『담화집』은 관상과 더욱 진보한 영성생활의 단계와 관련된 내적 인간의 양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담화집』은 크게 3부분, 즉 담화 1-10, 담화 11-17, 담화 18-24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부분은 서언으로 시작된다. 특히 제1부 서언에서 수행생활과 관상생활의 개념이 야곱과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언급된다. 카시아누스는 야곱을 수행생활로, 이스라엘을 관상생활로 해석하는 이전 수도승 전통에 따라 외적 생활과 내적 생활의 개념을 설명한다. 담화 9와 담화 10에서는 기도에 대한 사막 교부들의 전통적 가르침을 전한다. 카시아누스는 자기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상투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곧 “이집트에서 이렇게 한다. 이집트는 수도승 생활의 발상지이다.”라는 구절이다. 이처럼 이집트 사막교부들의 삶과 가르침을 전하는 카시아누스의 이 두 작품을 통해 서방 수도승 생활은 참된 방향을 잡고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나가게 된다. 성 베네딕도 역시 카시아누스의 이 작품들을 읽었다. 그는 이 작품들 안에서 에바그리우스가 종합한 사막 교부들의 풍부한 영적 가르침을 통찰했다. 그래서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은 카시아누스의 작품들을 읽도록 권고하고 있다(성규 42,3.5; 73,5 참조). 카시아누스의 작품은 서방 수도승 생활의 길을 준비했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교 영성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르침
『제도서』와 『담화집』에 나타난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의 핵심은 내적 생활의 발전이다. 이는 초기 수도교부들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다. 내적 생활에서 어떻게 진보할 수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이자 화두였는데,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은 이에 대한 나름의 종합이라 하겠다.
카시아누스는 『담화집』을 시작하면서 먼저 수도승 생활의 궁극 목표(telos)와 직접 목적(scopos)을 구분한다. 우리가 이 생활을 하는 궁극 목표는 ‘하느님 나라’이고, 이 목표에 이르기 위한 직접 목적은 ‘마음의 순결’ 혹은 ‘애덕’이라는 것이다(『담화집』 1,4 참조). 우리는 순수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카시아누스가 생각하는 궁극 목표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포기’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순결을 얻어야 한다. 포기는 기도를 위한 것이다. 기도 안에서 사랑하는 분과 함께 있으려고 모든 것을 떠나는 것이다.
카시아누스에게 수도승은 ‘세상을 포기하는 자’다(『제도서』 4,1). 그는 세 단계의 포기를 이야기한다. “첫째 포기는 현실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부와 재력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둘째 포기는 과거에 가졌던 마음과 육신의 습관과 악행과 감정을 배척하는 것이다. 셋째 포기는 우리 마음이 현세적이고 가시적인 모든 것을 멀리하고 오직 미래의 것을 바라보고 볼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것이다.”(『담화집』 3,6) 이것을 다른 말로 외적 포기, 내적 포기, 관상적 포기라고 한다. 이러한 포기 없이는 끊임없는 기도도 마음의 순결도 순수한 기도도 하느님과 일치도 하느님 나라도 불가능하다. 오늘날의 수도승들은 포기가 아닌 소유를 통해 목표로 나아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포기는 수도승을 끊임없는 기도로 이끌어준다. 카시아누스는 『담화집』 9-10 담화에서 기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주님의 기도와 시편에 기도의 모든 형태가 요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주님의 기도와 시편이 끊임없는 기도에 이르는 길이니, 수도승은 이것들을 꾸준히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사악 압바는 시편의 한 구절을 택해서 일상에서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기라고 한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하느님, 어서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시편 70,2)라는 시편 구절을 제시한다(『담화집』 10,10 참조). 오늘날 시간전례 도입부로 사용되고 있는 이 구절은 바로 카시아누스의 권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사용하고 시편을 점점 더 내면화 해 나간다면 마음이 정화되어 순수해질 것이다.
결국 포기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마음의 순결을 얻은 수도승은 순수한 기도로 나아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나라라는 궁극 목표에 도달한다. 이것이 사막 교부들의 입을 빌어 카시아누스가 우리에게 전한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카시아누스의 궁극 목표(하느님 나라)와 직접 목표(마음의 순결)는 우리 영성생활(내적 생활)의 두 차원, 즉 관상적 차원과 수행적 차원의 목표에 부합한다. 관상생활은 하느님 나라를, 수행생활은 마음의 순결을 목표로 한다. 수행을 통해 마음의 순결에 이른 자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 자기 수행이 부족한 오늘날 내적 생활에 대한 카시아누스를 위시한 교부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마무리하며
토마스 머튼은 카시아누스가 서방 수도승 생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카시아누스가 서방 수도승 생활과 영성 발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할 때 머튼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서방 수도승들은 16세기 동안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에 따라 양성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시아누스는 그리스도교 전통에 굳게 서 있던 수도승 영성의 가장 탁월한 스승이자 그리스도교 영성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다양하고 풍부한 체험을 바탕으로 동방의 보화를 서방에 전해준 전통의 전달자였으며, 동방과 서방을 이어준 가교였다. 이 공로로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화두인 내적 생활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큰 스승으로 간주된다. 새것만을 추구하고 과거와 현재의 올바른 대화가 단절되어가는 오늘날, 동방과 서방을 이어주고 교회의 고귀한 전통을 전달해 준 요한 카시아누스는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교부 중 한 분이다. 독자들이 이 지면으로나마 교회 전통 안에 숨겨진 값진 보화를 맛보게 된다면 원고를 쓰는 필자의 노고에 큰 위로가 될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