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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으로… 최선으로
23: 14-19
14.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18. 너는 내 희생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희생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찌니라
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찌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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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사를 주관하시는 왕이신 하나님
11월 1일을 주시고, 생명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여! 주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시고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던 것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나라의 것으로 채워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의 부를 허락치 않으셨으나 은금보다 귀한 믿음을 주셨으며 세상의 명예를 주시지 않으셨으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을 주셨으며 세상의 온갖지식을 갖지 못했으나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직장에 목을 매고 있고 사업에 목을 매고 있으나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귀히 생각하며 이 자리에 찾아나왔사오니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10달이 좋았던 사람도 많지만 힘들고 어렵게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세월을 보낸 이도 많습니다.
사야 할 것 못 산 사람, 팔아야 할 것 못 판 사람, 받아야 할 것 못 받은 사람, 갚아야 할 것 못 갚은 사람, 여기 앉은 우리들 문제 문제를 가슴에 안고 왔습니다.
질병을 참고 앉아 있습니다. 죄를 숨기고 앉아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심령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군대, 외국,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며, 원치 않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이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시옵시고 은혜만 충만히 받은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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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
새해의 첫날도 인사하지만 11월 첫날이니 옆의 사람과 "11월달이 복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1620년 부류스타를 지도자로 삼아 102명이 배를 타고 신대륙 오늘의 미국을 찾아 떠났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신대륙에 도착한 사람들은 인디언과 싸워야 했고 또 다른 질병과 싸워야 했고, 전혀 새로운 지역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신앙 때문에 발을 옮겼기 때문에 가자마자 교회를 지었고, 그리고 자녀들을 잘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짓고, 그리고 나서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반이상이 죽어갔고 참으로 눈물 겨운 사연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 그들이 농사를 지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눈물겨운 감사였겠습니까? 이들의 그 감사가 오늘날 개신교회의 감사절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물론 감사절은 본문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3대 절기에서 유래합니다. 더 높이 올라가자면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과 아벨 등이 살던 시대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 보면
무교병 절기(유월절-출 13장),
맥추절(칠칠절-출 34:22),
수장절(초막절-레 23:33-34)
이렇게 각기 다르게 이름이 불리지만 이 세 절기에 해당되는 것이 오늘날의 감사절의 유래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 개신교의 3대 절기는 "성탄절과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입니다. 일부 미국의 엉터리 신자들은 아무리 교회를 안다니는 사람도 1년에 이 3일은 교회에 가고 이 세 절기는 꼭 지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문이 '우리가 농경문화 속에 살고 있지도 않은데 또 IMF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때에 감사절을 지켜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때와 장소가 정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말하는 감사생활은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 달든지 쓰든지 "모든 일에 항상 즐거이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감사는 천국에, 불평은 지옥에 속한 단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씀한 대로 "범사에 감사"하며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내게 관계된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 다시 말해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곧잘 속단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합니다. 지금이 하나의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결론이라고 생각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두고 보는 느긋함과 참아내는 인내가 부족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팔려갈 때는 17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총리대신이 되고 자기의 부모 형제들이 흉년에서 굶어죽게 되었을 때 자기의 부모 형제를 구출해 내는 그런 때는 22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요셉이 22년 동안 불평과 원망과 탄식만 하고 있었다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의 부모 형제를 살릴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기둥교회가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려고 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추석이 지난 바로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교회가 많아졌고 11월 셋째 주일이 너무 늦다고 11월 첫째 주에 지내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내년부터는 11월 첫째 주에 지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절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절기입니다.
크리스챤이 지킬 귀한 절기입니다.
크리스챤의 신앙의 표현의 기회이며
1년 동안의 삶을 청산하는 기회입니다.
농부는 농작물 중에서, 직장인은, 생활 중에서, 상인은 상업 중에서, 선생님은 가르침 중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감사하는 삶의 유형을 보면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은혜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 보면 "이방인의 죄가운데 하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죄"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은 죄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감사하지 못하면서 사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보면 "말세가 되면 감사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이 말세인지 사람들이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도 예를 들어서 설명을 했는데,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10명의 문둥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둥병 환자가 깨끗해졌다는 증거를 누구에게서 받아야 되냐하면 제사장에게 가서 받아야 했습니다. 14절에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9명은 병이 나은 것을 확인하고는 다 자기의 집으로, 친구들에게, 자기들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알리러 떠났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 감사를 했습니다. 10사람이 깨끗해졌는데 한 사람만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뿐 아니라 요즘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아끼고 아껴서 무엇을 마련해 놓으면 어떻게 알고 도와 달라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꼭 도와 달라고 할 때도 제가 모아 놓은 것만큼만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마음속에 갈등이 일어나지만 '에이 주자'라고 생각하고 도와 줍니다. 그러면 고맙다고 해야 되잖아요, 다음에도 고마운 척을 해야 하는데 제가 이때까지 경험한 바로는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기가 뭐 여유가 있어서 줬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강의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다고 주는 강의료가 있습니다. 저는 기분이 좋아서 찾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너무 절박한 데 내가 찾아온 그 돈만큼만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위를 쳐다보면서 "너무 하시네요. 어떻게 이렇게 기가막히게 보내십니까?" 그렇게 해도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마음이 상해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돕는 교회들은 고마움을 알까? 그래서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시골교회도 돕고 선교사도 돕고 있는데, 1년, 2년 도와 줘도 연락 한번 없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6월달에 편지를 썼습니다. "금년까지만 돕고 더이상 돕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는 "더 도와 달라든지, 그동안 고마웠다"는 등 무슨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베푸는 사람은 자기가 귀한 것, 정말 자기가 꼭 써야 될 것을 쓰지 않고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십니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려움을 당할 때 만나면 천사 사촌이 되어 있습니다. "아 목사님, 이번 병만 나으면, 병원에서만 나가면 정말 주일 성수 잘하고 잘하겠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저도 몇 번은 속았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안속습니다. 병원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오면 유효기간이 한달 정도는 됩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며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2.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는 조건적인 감사자들이 이 세상엔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은혜 받았기 때문에, 응답 받았기 때문에, 해결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 들이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상대적인 감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감사는 어떤 것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것입니다. 팔자려니 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맡겼으니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이라는 결론을 이미 마음속에 담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제 일본하고 축구를 해서 2대 1로 이겼다고 합니다. 저는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도된 것을 보니 한 골을 멋있게 넣었는데 수비수들이 그냥 1골을 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또 우리가 넣어서 2대 1로 이겼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만약 재방송을 해서 오늘 본다고 한다면 일본이 1골을 넣었다고 해도 나중에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리 안달을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중계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그때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저런, 바보같은 놈들…"하며 소리 지를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결과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이뤄주실 것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우리는 다음 주일에 맞을 추수감사절을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중심에서 우러나는 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예물을 많이 드리느냐, 적게 드리느냐가 아니라 정말 중심에, 마음 속에 감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했고, 잠언 16장 2절에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만 있는 감사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얼굴이 감사하는 얼굴(표정)이어야 합니다.
그 얼굴에 감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 얼굴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금식할 때도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금식기도를 한다해도 얼굴을 흉하게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금식하는 척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하고 있으면 이미 상을 받은 것이고, 더 이상 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도 그 얼굴에 감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얼굴이 중요하다고 계속 말하는데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노려보시는 분들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의 얼굴을 촬영을 하고 전국에 중계방송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카메라가 앞에 있다는 마음으로 한번 앉아 보세요.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통령 고문 중 한 사람이 '아주 유능한 사람이 한명 있으니 장관에 기용해 보라, 정말 대단한 사람이니 한번 써 보라'고 대통령에게 어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사람은 인상이 좋지 않다"고 거부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 고문은 "아 그 사람이 그렇게 생긴 것이 그 사람의 책임입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셨는데요.", "아니요, 사람이 마흔살이 넘었을 때의 자기의 얼굴은 자기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라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꿔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선행에 대해서도 분명히 보상하겠다고 했습니다.
말에 '감사'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는 말 속에서도 '감사'를 담고 있어야 하며 표현되어야 합니다. 말은 하는 사람의 사상과 태도 그리고 인격을 나타냅니다. 예수 믿는 사람, 특별히 감사하는 자는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잠 18:21).
입은 마음속에 쌓은 선과 악을 드러내는 대문과 같은 것입니다(눅 6:45, 마 12:34).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최소한 몇가지 말에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말, 소망의 말, 사랑의 말, 감사의 말"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말속에
-. 믿음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이 하시는 말 속에 '예수 믿는, 하나님을 믿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분을 믿는 믿음이 여러분의 말 속에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거야. 염려하지마"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소망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걱정하지마, 지금 힘들다고 어려워 할 것 없어. 기도해, 나아질거야. 지나간 10달보다 남은 두 달이 더 복될 거야 " 말 속에 소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 사랑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대개 여자분들이 미장원에 갔다가 오면 칭찬하는 사람 반, 흉보는 사람 반입니다. "야 어디가서 그렇게 망가뜨리고 왔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이 담긴 말을 해야 합니다.
-. 감사가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계단을 이렇게 걸어 올라 올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입을 벌려서 소리 내어 찬송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아이구 남편과 자식들이 건강하게 돌아 올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아유 저 웬수, 내가 어쩌다 저런 사람을 만났노?"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이미 그가 받을 상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생명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건강하게 이 교회에 찾아나와 예배 드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말 속에 감사를 담으시기 바랍니다.
-행동에 '감사'가 나타납니다.
중심으로 감사하는 자는 그 감사가 행동에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었다고 했듯이 행위 없는 믿음이라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노라고 하면서 믿음 있는 사람처럼 행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마음에 담은 그 믿음을 밖으로 표현해 내는 것을 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안보이는 마음의 감사는 보이는 물질로, 보이는 봉사로 표현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절이 되면 우리가 땀흘리고 애써서 벌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시골에서는 농사를 지은 사람이 쌀로 드리고, 과일로 드리고, 곡식으로 드리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감사는 물질로 드리되 정성어린 첫열매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쓰다가 남은 것, 먹다가 남은 것, 입다가 남은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며 구별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사다 놓고 한 참 먹다가 '아이구 건넌방에 할머니가 계시네'라고 하는 분들은 생각속에 어른이 없는 것입니다. 먼저 먹기 전에 어른을 생각해야합니다. 첫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성미 뜨십니까? 성미를 뜨세요. 성미를 뜨는 가정은 화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성미를 뜨는지 확인하시고 뜨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미라는 것은 음식을 만들기 전에, 밥을 짓기 전에 쌀을 퍼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이 먹을 것입니다. 먼저 한줌 떠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오늘도 건강하게 하시고 일자리에서 정말 인정받는 남편이 되게 하시고, 이거 우리 아들 몫입니다."라고 기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름뱅이는 성미도 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밥하기도 바쁜데 언제 기도하고 있습니까? 좀더 일찍 일어나야 기도하죠. 성미 뜨는 집은 싸워도 금방 화해가 될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 싸우고 등돌리고 잤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며 성미를 떠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웬수같은 것 어쩌다 만나게 하셨습니까?"라고 기도하겠습니까? 아무려면 …. "하나님 어젯밤에 싸웠는데 오늘 풀게 하옵소서. 남편이 먹을 밥을 먼저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기도하며 성미를 뜨는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쌀을 푹떠서 성미를 가져오는 것은 감독님 말씀대로 성미가 아니라 '푹미'입니다. 헌금도 내가 쓰는 돈의 첫 용도로 쓰여야 합니다. 십일조도 첫열매입니다. 무엇을 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먼저 몸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몸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육체의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백화점에서 음식을 배달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체국을 이용하여 시골에 선물을 배달시킬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용돈을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효도가 무엇입니까? 함께 있는 것입니다. 찾아가 뵙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나타나서 갖은 아양떨고 잔소리하는 딸보다는 별로 말도 없고 뚱해서 재미없는 며느리가 진짜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가끔 한번씩 나타날 때 고기 반근 사가지고 이리 저리 흔들고 잘난척 하고 와서 돌아가는 며느리보다는 잘 못하는 것 같은 같이 살고 있는 자식이 진짜입니다.
하나님 앞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예배의 자리에 오는 것을 원하십니다. 불경기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고 싶어도 수입이 없어서, 감사헌금을 드리고 싶어도 먹고 살 것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헌금시간이 되면 부담스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와서 앉아 있다가 고개도 못 들고 앉아 있다가 가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의 자리에 앉은 자들을 찾으십니다. 여러분, 어렵다고 해서 부모님을 안 찾아가십니까? "어머니, 죄송해요. 벌지 못했어요. 빈손이에요. 어머니 뵙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하는 말이 진짜 효도하는 것 아닙니까? 오히려 그런 자식에게 더 눈물 겹고 고마워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없어도 중심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는 우리들은 정말 중심에, 얼굴에, 말에, 행동에 감사가 담겨 있어야 하지만, 이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감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변함없는 감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6월 21일부터 24일까지 우리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그때 부흥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에게 강사님이 마지막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돌아오는 추수감사절 때는 전도해서 한 영혼을 하나님께 추수감사절 예물로 드리자."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전도를 못할 사람이라면 최하 100만원을 추수감사절 헌금으로 드리자."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 "아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다 찍어놨습니다. 궁금하면 녹화 상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돌아오는 주일날 새신자가 많든지 막 1사람당 100만원씩 계산하면 엄청난 추수감사가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아멘'을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아멘'을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아멘'을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전도서 5장 6절에 보면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에이, 그때 분위기에 맞춰 '아멘'하라고 해서 했죠."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5절에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꼭 전도해서 한영혼씩 낯선 사람을 다음 주일에 데리고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못한 분들은 최하 100만원씩 드릴 줄 압니다. 그러나 못한 사람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철없이 아멘했습니다."라고 회개의 예물을 드리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얘기는 정말 진심으로 우러나는 정말 감사를 준비해서 감사하는 그런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목사지만 추수감사를 하는 것을 1년 동안 준비합니다. 1년 동안 금년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해야 되겠다라고 준비합니다. 여러분, 이 한주간동안 오늘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여러분의 얼굴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행동으로 감사가 담긴 그런 삶을 살면서 그런 추수감사절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성으로 최선으로 하되 정말 기쁜 마음으로 정말 드릴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정성을 받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마음으로, 얼굴에, 말로, 행동에" 여러분의 감사가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평생의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추수감사절의 계절인 이 11월 1일부터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럼 없는 감사의 생활이 되도록 우리의 중심을 다스리며,
얼굴 관리를 잘 하며 우리들이 하는 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말을 하며,
행동으로 표현으로도 넘치는 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