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先生말씀選集 2권
15) 주는 어찌하여 가셨다가 오셔야 하는가 1957년 5월 26일(日), 전 본부교회
3. 역사적인 서러움을 책임져야 할 끝날의 성도들
여러분들이 다시 찾아올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책임지셨던 4천년 역사의 서러움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성신까지 오셔서 애달파 했던 2천년 기간을 가한 6천년의 역사적 서러움을 대신하고 책임짐으로써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 인해 끊어진 천륜의 대유업을 인계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늘을 대하는 우리로서는 역사적인 인연을 벗어나 자체만의 생활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책임지고, 미래를 책임지고, 6천년의 하나님의 서러움과 천군천사의 서러움을 대신하고 이 땅의 만민의 서러움을 대신하여,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날을 바라보며 타락권 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서러워하고 염려할 줄 아는 심정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의 서러움과 당신이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알겠나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간곡한 심정으로 뭇인간을 속죄해 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안타까워했던 그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역사의 주인공이요, 우주의 주인공이시며, 미래의 이상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여러분이 모시고자 원해도 모실 수 없으며, 그러한 예수님의 서러움을 풀어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4천년의 서러움에 갇혀 있었고 30여 평생 만민과 후손을 대신하여 죽음의 길을 걸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정을 걸어놓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며 이것을 타고 넘어가 창조이상권(創造理想圈)에까지 도달하기 위해 새로운 신앙기준을 세워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는 실증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신앙자로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되겠는가? 택함받은 이스라엘민족 가운데 중심사명을 맡은 유대교단이 있었던 것같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중심한 세계적 이스라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도 어떤 대표적인 교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즉 역사는 동시성을 띠고 전개되어 나오므로 하나님은 끝날의 사명을 담당하는 하나의 종교를 세우시어 섭리역사를 귀결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끝날을 맞이한 우리로서는 그러한 대표적인 종교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종교를 찾으려 할진대 역사적인 교훈으로서 예수님 당시 유대교가 범한 역사적 과오를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지나친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웠고 지나치게 의식과 규례에 얽매이게 됨으로써 천륜의 법도에 어긋난 생활을 하였습니다. 끝날에 처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처한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밟아 오시게 되기 때문에 세계적인 서러운 고개를 넘어 이 땅에 다시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의 반대에 의해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끝내는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갈보리 산정까지 쫓겨가셨던 것과 같이, 다시 오시는 주님도 세계적인 이스라엘과 유대교적인 교단의 반대를 거쳐 세계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갈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여러 면에서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을 바라보고 느끼시던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고, 역사를 바라보고 느끼시던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고, 미래를 염려하시는 하나님의 서러움을 여러분은 체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서러움에 맺혀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찾아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은 예수님 이후 2천년 역사를 가한 6천년의 역사적인 전체의 서러움을 풀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골고다의 길을 넘어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늘을 향해 호소할 때,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졸고 있던 세 제자의 모습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천적인 가치를 알고서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림으로써 부활하실 주의 영광을 확인해 드릴 때, 그 마리아의 행위를 비웃고 막아선 제자들의 모습을 대하신 그 심정이 예수의 원한이 되었음을 오늘날까지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가시면서 서러운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만은 그런 예수님을 위로하고 염려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한 예수님의 천적인 내적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환희의 은사로 그녀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