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신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유목민 생활하던 부조들과는 달리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토지에 대한 철저한 규칙이 주어졌다. 땅은 각 지파에 분배되었고 그 땅은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도록 명해졌다. 설사 어떤 특별한 이유로 팔리거나 저당 잡히더라도 일정한 기한이 차면 반드시 다시 되돌리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악한 왕 아합은 왕궁 곁에 있던 나봇의 밭이 탐나서 그것을 차지하려고 했지만 이런 이유로 거절하는 나봇 때문에 매우 속이 상해 있었다.
(왕상 21: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왕상 21: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왕상 21: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떼를 부리는 이기적인 아이처럼 아합은 식사를 거르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왕국을 다 잃은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변칙과 탈법의 달인 이세벨은 남편의 이런 모습이 너무 한심한 듯 나봇을 제거할 방도를 냈다. 그것은 바로 두 사람의 거짓 증인을 세워서 나봇을 신성 모독과 왕에 대한 명예 훼손 죄로 몰아서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다. 레위기의 법을 이유로 부동산을 파는 걸 거부하는 나봇을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법을 이용해서 죽이는 것이다.
(왕상 21: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왕상 21: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하나님의 법에 충실히 따르려 했던 나봇을 죽이는 방법이 어찌 예수님을 무고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처럼 비열하고 야비했지만, 아합은 모른 척하고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때 선지자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왕상 21: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엘리야는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내려가는 아합을 만나서 그에게 비극적인 그와 그의 가문의 결말을 예언했다. 하지만 엘리야의 이 말을 듣고 아합은 즉각 회개의 표시로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겸비한 척하면서 다녔다.
(왕상 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누가 봐도 이 악한 왕은 자신 앞에 닥친 불행한 일을 피하려고 회개하고 겸비한 행위로 치장했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은 그의 이런 행위조차 은혜를 베풀 이유로 받아들이셨다.
“아합이 베옷을 입은 것은 단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은 물론 하나님도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왕이 그의 치세 초기에 여호와께 이렇게 돌아섰더라면 백성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온 나라를 뒤흔드는 큰 부흥을 가져왔을 것이다. 아마도 회개가 너무 늦은 것이었든지 아니면 대부분 공포심에서 나온 회개의 몸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든 하나님은 양심의 아픔이 아무리 미약하다 해도 그것을 보았고, 왕의 자책과 슬픔의 말에 귀를 막지 않았다. 하나님은 훗날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 것을 주목하신 것처럼 아합 왕이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 것을 주목하셨다.”(재림교회 성경주석 왕상 21:29)
이 정도면 은혜를 베푸는 하나님의 행위도 가히 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에게 남긴 상처와 같은 병이다. 죄인을 향한 그분의 사랑은 하나님을 죄인이 회개하는 시늉만 해도 은혜를 베풀려고 안달이 나게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 우리의 습관적인 이기심, 이 모든 것을 고치시고, 치료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우리는 주님을 실망케 합니다. 아버지,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은혜를 저버려서 마지막에 버린 바 되지 않도록 은혜 베푸실 때 그 은혜를 붙잡을 수 있도록 새로운 결심과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