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그의 디자인이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앙리마티스(1969~1954)의 탄생 150주년 특별전 감상을 위해 삼성동 섬유센터 건물에 있는 마이아트뮤지엄을 방문했다. 호응도가 높아 2021년 4월 4일까지 전시 연장이 결정되었다.
언뜻 생각하면 식상한 마티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시 기획에 따라, 혹은 방문자에따라 콘텐츠는 얼마든지 다양해질 수 있다. 파리와 뉴욕 여행은 끝없는 여행 콘텐츠를 양산하는 것처럼 말이다. 금번 전시는 그의 드로잉 기법, 손가락 관절염으로 그림을 못 그리게 되며 창안된 방법인 컷아웃(cut-out) 기법으로 탄생한 재즈 시리즈, 발레 공연을 위한 무대 의상, 보들레르 등과의 협업을 통한 삽화 작업, 그리고 프랑스 로사리오 성당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재즈와 연극 Jazz and Theater>을 타이틀로 기획되었다.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본 탐방기는 전시 주제와는 다르게 써 나갔음을 알린다.
아래 작품은 입 속에 든 3개의 막대기는 '입에 칼을 꽂고 공연하는 어릿광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관객은 즐겁게 쳐다보며 박수치겠지만, 서커스를 공연하는 당사자에게는 입에 칼을 꽂고 살아야 하는 삶의 고통스런 혹은 정렬적인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광대는 언제나 웃음과 슬픔이 공존한다.
<칼 삼키는 사람 Sword Swallower>
입장하기 전 로비의 모습이다. 화려한 색상의 나풀거리는 종이 오리기 기법으로 탄생한 패턴들이 배경이다. 열대 지방의 창연한 색과 바다 속의 생물들이 생생히 보이는 듯하다. 마티스와 재즈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했는데, 그는 이전에 여행했던 타히티, 모로코, 알제리 등지에서 받은 영감으로 1947년 그의 말년 <재즈>라는 작품집을 출간했다.
현대예술에서 형태는 피카소가 대명사이고, 색채는 마티스가 선구자로 되어 있지만, 금번 전시를 보면 마티스는 현대 디자인의 선구자 중의 한 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본 전시 촬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로비 휴게실 곳곳에 그의 작품들이 걸려 있어 진품은 아니지만 감상은 가능하다. 아래 작품 <파란 누드>는 그가 더 이상 붓을 들 수 없을때 만든 컷아웃(종이오리기_ 작품인데, 이번에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중 하나는 종이오리기 콜라주 기법의 과정은 그냥 오리는 것이었다. 즉 사전 드로잉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오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한마디씩 하는 말이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겠다. 너도 그릴 수 있지 않겠니?" 이다. 이 말은 유명 추상작품을 보고 "나도 저렇게 마구 그어댈 수 있겠다. 저게 무슨 명화인가?" 라는 말고 같다. 판단은 각자에게 맡긴다. 오늘날 예술은 마케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무엇이 맞다 틀리다고 말할 수도 없을 듯하다^^
로비에 걸려 있는 마티스의 그림들은 아티쉬(Artish)라는 아트전문업체의 작품들이다. 아티쉬는 국내에서 최초로 이중섭, 김환기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의 아트포스터와 아트상품을 제작하여 보급하기 시작했으며, 마티스의 제품도 동일한 목적으로 제작하여 판매를 한다. 다시 말해 진품이 아니라 프린트하여 액자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직접 방문하여 진품을 봐야지 작품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하는 자들과 미디어 시대에 복제품을 보고 감상할 수도 있다는 자들이 있다. 맞고 틀리다는 없다^^
금번 전시는 1부-오달리스크 드로잉, 2부-<재즈>와 컷아웃, 3부 발레 <나이팅게일의 노래>, 4부 낭만주의시와 마티스 삽화, 5부 로사리오 성당으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그의 회화작품들이 메인 주제가 아니지만, 그의 예술관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예술가도 삶의 여정에 따라 변화한다. 혹은 변해야 한다. 변화하는 예술가가 좋다. 변화하는 사람들이 좋은 것처럼 말이다.
그의 후반기는 '단순성의 시기'를 거쳐 '본질만 남는 시기'라고 아래와 같이 정리되는데, 보통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순화하고 나중에는 본질만 남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후반기에도 계속해서 복잡한 것은 그만큼 욕심이 많아서가 아닌가. 인생은 어렵다. 되도록이면 단순화시켜 쉽게 만들려 노력하자!
아래는 촬영이 안되어 다른 책에 있는 사진을 찍어 가져온 것이다. 그는 평면화가이다. 예술사에서 입체회화를 평면회화로 전환한 것은 말 그대로 획기적이었고, 고전주의자들의 비난을 배부르게 먹었다. 그런데, 힘들게 도입한 평면을 다시 입체로 만들어 무대에 재현한 것이다. 1919년 러시아 발레단(발레뤼스) 연출가 디아길레프가 <나이팅게일의 노래> 의상과 무대미술을 제안했다. 그는 그냥 화실의 화가가 아니었다.
마티스를 생각하면 애처롭기도 하다. 인생 후반에 손가락 관절이 말을 듣지 않아 아래와 같이 목탄이 달리 대나무 막대로 드로잉을 했다.
그는 1941년부터 조수의 힘들 빌어 침대에서 작업했다. 신체가 고통스러워도 작업을 계속 해 나가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한다. 아프면 움직이기도, 공부하기도, 일하기도 싫지 않을까. 거기에서 차이가 생기는 듯하다. 마티스 왈, "내가 꿈꾸는 것은 순수함과 평온함이 균형을 이루는 예술이다. 예로, 신체적 피로를 풀어주는 안락의자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켜주는 예술을 꿈꿉니다" 정작 자신의 신체는 힘들어도 타인의 신체를 안락하게 해 주면된다는 소명을 가진 것인가.
5부 '로사리오성당'은 그의 말년 1949년 방스(Vence)에 있는 성당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평면설계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실내벽화, 실내장식을 맡아서 진행했다. 말년에는 많이들 종교로 돌아선다. 아마도 평온해 지고 싶어서일 것이다.
로사리오 성당의 사진들이다. 어린아이가그려놓은 듯한 그의 드로잉이 성당 벽면에 가득하다. 예수와 마리아의 고난의 모습이 아닌, 열대 바닷속의 미역줄기 같은 해초들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넘실거린다.
5번 로사리오 성당 공간에는, 마티스가 디자인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해 놓았다. 나는 몰려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도슨트를 꼭 신청하지는 않지만, 금번에 우연히 시간이 맞아 따라다녔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유익했다.
어떤 예술사가 왈, 성당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내용 때문에 사람들이 감동받지 않는다. 그 찬란한 빛과 색상의 어우러짐으로 사람들이 경건해 질 수 있는 것이다. 내용이 중요한가 형식이 중요하다. 아니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풀리지 않는 문제이다.
로사리오 성당 모형 앞에 앉아 있는 마티스이다. 그는 유신론자였을까...
스테인드글라스 모형 옆으로는 실제 로사리오 성당 동영상이 흐른다. 쉬어가며 관람하면 좋다.
처음 언급했던 로비에 걸려 있는 아티쉬에서 판매하는 그림들이다. 가격은 개당 20만원 후반대이다. 금번 전시에서 색채의 마술사로만 생각했던 마티스의 콜라쥬 컷아웃 기법과 그것을 통해 앞으로는 색(color) 뿐아니라, 형태(form)도 눈여겨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관람의 수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금번 전시를 통해 느낀 것이 있다. 마티스가 손가락 관절을 다치지 않았다면 그의 컷아웃시리즈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약용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자기 각자만의 사는 법을 긍정적으로 고려해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