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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인륜지대사 라고 한다.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큰 일인지
도 모른다. 남자건 여자건...
지금이야 살기 싫으면 이혼하면 그만이지만 옛날에는 어림도 없
는 소리였다. 고스톱에서처럼 낙
장불입이었다. 여자 입장에서는 한번 시집가면 그집 귀신이 돼야 했다.
신사임당! 팔방 미인의 이 처자를 누가 데려갈 것인가?
미스터 코리아 뽑듯이 신랑뽑기 테스트라도 해야 되는거 아닌가?
!^^
아버지 신명화가 사위를 고를 때 기준은 간단했다.제일 먼저 생각
한 것은 가문이나 재력이 아니라 딸의 서화 활동을 키워주어야 한
다는 것이었다.
신사임당이 시집을 가서도 자신
의 재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신랑감을 택하는 것이
었다.사위 선발권은 여자집에 있
었다. 우리나라 모 재벌가처럼..
타고난 재능으로 이미 상당한 수
준에 이르고 있는 자신의 딸을 예
술가로서의 길을 최대한 보장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 신명화의 주된 관심사였다.
지체높은 권문세가의 집안에서 새로 시집온 새댁의 그림 활동을 인정해 준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
렵고, 반대로 집안이 너무 볼품이 없거나 가난한 경우에는 살림살
이에 바빠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라는게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의 생각이었다. 참 훌륭한
아버지다.
아버지 신명화가 사위로 낙점한 사람은 덕수 이씨인 이원수(李元秀)였다 으뜸(元)에 빼어날 (秀)
다. 왠수가 아니고...^^
이원수는 돈령부사 이명진의 4대손으로 할아버지 이의석은 최만리의 사위로 현감을 지냈고, 증조부 이추는 대제학 윤회의 사위로 군수를 역임한 바 있다.
영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이기, 이행 형제의 조카지만 당시 이원수는 이렇다 할 관직도 없었고,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두 당숙이 영의정과 좌의정 등을 역임한 고관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아버지 신명화를 만족시킨 조건은 이원수가 편모 슬하에서 독자로 자랐기 때문에 딸에게 시집살이를 시킬 만한 가까운 가족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사임당의 어머니 이씨 부인처럼 시집을 보내지 않고 친정살이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결론적으로 농사 지을 때처럼 좋은 밭에 적합한 씨를 선택한 것이다.
밭주인 입장에서...^^
신사임당! 평생 해로할 남편의 선택권은 자신에게 없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선택에 따라 결혼을 해서 4남3녀를 둔 것을 보면 부부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요즘 태어 났으면 세계적인 위인이 되엇을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