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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심재용의 ‘손빚음’과 '보듬이' 평론: 보듬이의 정신 |
[미술여행=엄보완 기자] 대백프라자갤러리가 ‘손빚음’이 갖는 미학적 의미와 반복된 기법의 재현이 주는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는 수천(手天) 심재용(沈在容) 도예가를 초대해 심재용 손빚음 그릇전: '바라보茶' 전시를 개최한다.
사진: 심재용 손빚음 그릇전: '바라보茶' 전시 알림 홍보용 포스터
2024년 6월 25일(화)부터 6월 30일(일) 까지 대백프라자갤러리 B관(12F)에서 열리는 심재용 도에가의 손빚음 그릇전: '바라보茶' 전시에서는 기계를 멀리하고 손빚음 기법으로 100여점의 작품들을 빛어낸 심재용 도예가의 예술혼이 담겨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소설가 정동주 선생은 도예가 심재용에게 ‘손빚음’이라는 새롭고 고유한 말과 뜻을 선물했다. ‘손빚음’은 인간의 손을 통해 창조해 내는 도구이며 예술적 그릇의 진정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도예가 심재용의 ‘손빚음’과 '보듬이'
도예가 심재용
도예가 심재용은 2017년 "대구광역시 관광기념품대전" 대상(大賞)과 2018년 "대구광역시 공예대전"대상(大賞), 2019년, 2021년 "경상북도 공예품 대전" 대상(大賞), 2023년 "경상북도 우리 그릇 공모전" 은상(銀賞) 등과 함께 "2016 프랑스 리옹 도자 박람회"(Les tupiniers du Vieux Lyon) 에서 기품있는 도자를 선보여 박람회 측으로 부터 작품수준의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심재용은 첫 개인전 이후 ‘손빚음 그릇전’을 전시 주제로 정하고 개인전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손빚음’이 갖는 미학적 의미와 반복된 기법의 재현이 주는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예술로 승화시켜 나가고 있다. ‘손빚음’은 물레 없이 손으로 흙을 주물러 그릇을 만드는 일에 붙여진 우리말 이름이다.
서양에서는 물레를 쓰지 않고 손으로 만든 흙 그릇을 핀치팟(pinch-pot)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핀치팟을 만드는 기술을 핀칭(Pinching)이라고 한다. 이처럼 서양식 도자용어는 교육현장에서 우리말보다 앞서 서구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도자기가 동양의 전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식 용어로 사용 되어지는 것은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모순을 보여주는 점이다.
그리고 ‘보듬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무언가를 보듬는 그릇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겐 친숙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용어이기도 하다. 마음을 맑게 하여 본연의 자신을 볼 수 있는 그릇이기도 한 ‘보듬이’는 물레 없이 기초부터 완성까지 손으로 성형해 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보듬이’의 가장 큰 특징은 굽이 없다는 것이다. 보듬이는 우리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어 안는 시대의 정신이며 가슴이다. 보듬이는 ‘보듬다’라는 타동사에다 다른 말에 붙어서 사람이나 사물을 뜻하는 ‘이’ 를 붙인 말이어서 ‘두 손으로 보듬어 안는 찻그릇’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손빚음으로 만들어내는 그릇은 투박하고 묵직한 맛과 질감이 특징이다. 보듬이는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과 극복 방안들을 그릇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색깔과 무늬로 사상과 꿈을 표현하며 삶의 진정성과 소망을 말하려고 한다.
<작가노트>
도예가 수천(手天) 심재용(沈在容)
우리는 지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다. 손빚음 보듬이 작업을 시작한 이래 찻그릇은 시대의 마음을 보듬어야 한다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10여년의 긴 시간 동안 감히 찻그릇에 시대의 마음을 담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고민하며 용기내지 못하고 망설였지만, 이번 손빚음 찻 그릇전시를 통해 용기를 내었다.
물레라는 인간의 손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이러한 훌륭한 기계를 멀리하고 손빚음 기법을 고집한 결과물로 100여점의 작품들을 얻을 수 있었다. 열아홉번째 맞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올바른 도자, 차 문화를 재정립하는데 기어코자 한다.” -도예가 수천(手天) 심재용(沈在容)
사진: 심재용, 손빚음 보듬이 (1)
● 평론: 보듬이의 정신
수천 여 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비와 번개의 이야기를 토기 안에 그려 넣었다. 비는 은혜로움(敬)이요, 번개는 두려움(畏)이니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이를 그려 넣지 못하고 다만 그릇에 담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그릇이란 천재적인 발명품을 넘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도구였다. 그릇 이전의 생(生)이란 두 손 가득 쥔 열매와 고기는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공동체는 언제나 주린 배를 쥐며 떠도는 일종의 생존이었다. 그릇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생존이 삶이 되고, 인생의 길이와 넓이가 모두 늘어나고 깊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사람들은 신의 가르침 혹은 은혜가 담긴 이 발명품을 빚어내는 도공들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신의 비밀을 엿듣고 땅 위에 이를 구현하는 신비주의자들이었고, 아리엘 골란(Ariel Golan)에 의하면 그들이 그려 넣는 비와 번개무늬는 단순히 하늘을 향해 초자연적인 현상을 바라는 인간의 바램을 넘어 신 그 자체를 의미했다. 하늘신과 지옥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 토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경외심이 넘쳐흘렀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그릇을 만드는 사람들은 신정일치의 사회에서 점차 구속받기 시작했다. 제사장들은 그들을 속박하고 억눌러 자신의 지배하에 두기를 원했다. 종교적인 이유와 실리적인 이유 모두 있었다. 신의 비밀을 탐하는 자들이라는 경외심을 함부로 사람들에게 노출시켜서는 안 되었고, 동시에 그릇이라는 위대하고 귀한 발명품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도자기를 굽는 사람들은 도공(陶工)이라는 위치로 억지로 끌어내려졌다.
그들은 이제 지배자들과 엘리트들을 위해 그릇을 만들었다. 토기가 자기로 발전하고, 없던 굽이 생겨났으며, 더 이상 신의 이야기가 아닌 상류층들이 아끼는 문화를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눈부신 예술성으로 빛나던 시절도 있었지만 모든 공은 그릇을 소유한 귀인들의 것이었다.
바야흐로 도예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무언가 이전과 달라졌을까? 무엇으로 그릇 만드는 사람들의 일을 예(藝)라 부를 수 있을까. 상징은 희미해지고, 관례는 여전한데, 기술은 멈춰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아래서 움직이는 시장의 요구에 따라 대동소이한 작업의 연속 속에서 그들을 빛나게 하는 생각과 이야기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보듬이’는 이러한 고민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사진: 심재용, 손빚음 보듬이 (2)
평강 정동주선생이 보듬이를 창안했을 적, 물레를 돌려본 적 없던 이 미학자의 생각을 현실로 다듬어 줄 용기 있는 작가가 필요했다. 보듬이는 우송 김대희와 연파 신현철의 손에서 시작했지만 그에게는 전통과 유려함 모두를 아우르는 것 너머의 작업도 필요했다. 젊은 작가 수천 심재용의 십 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심재용의 작업은 저 수 천 년 그릇의 기원와 오늘 사이를 연결하는 일이다. ‘손빚음’이란 세상에 없던 단어다. 보듬이라는 말과 뜻이 세상에 없던 것에서 출발하듯, 정동주 선생은 심재용에게 손빚음이라는 새롭고 고유한 말과 뜻을 선물했다.
저 먼 옛날의 작업과 조금 먼 옛날의 작업, 그리고 오늘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시작은 모두 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다만 물레와 기계의 힘을 빌려 성형하는 단계를 잊어버리고 더 먼 옛날로 기꺼이 돌아가려는 태도에는 저 먼 옛날의 그릇에는 원시적인 힘과 고유의 미감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일그러진 파형(破形)의 맛을 넘어서는 굴곡지고 예측 불가능한 일렁임이 있다. 수 천 번의 핀칭(pinching)으로 쌓아 올리는 과정 안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녹아드는 추상의 그림자가 스며있다. 최소한의 유약으로 번들거림이 없고, 안료를 쓰지 않고 흙만으로 만들어내는 색채에는 원시성과 현대성 사이에서 비비적대는 유희가 있다. 상징은 도드라지고 이야기는 구체적이다. 그는 일상을 담는다. 오늘 우리 사회를 떠도는 항간의 이슈도 있지만 저 먼 옛날 비와 번개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오늘날 아무것도 아닌 자연현상이 되어버린 시대의 무미건조하고 우울한 여름 풍경도 있다.
사진: 심재용, 손빚음 보듬이 (3)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옛 것이고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다. 이 천 년여의 굽의 역사를 벗어던진 보듬이는 온전한 우리나라의 새로운 현대미술이다. 또한 도예 중 가장 전형적이고 전통과 답습에 길들여진 찻그릇 사이에서 가장 자유롭다. 창안자가 제시한 몇 가지 틀 안에서 온전히 작가가 뛰어 놀게 만드는 하얀 캔버스다. 어쩌면 심재용의 붓과 재료는 안목 뛰어난 당신에게도 별로 본 적 없는 화풍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기대하는 것이 그의 전시장에는 없다. 백자가 없고, 청자나 분청이 없다. 진사나 천목 같은 것도 없다. 화병이 없고, 잔도 없고, 항아리도 없으며, 다관이나 각종 꾸미개도 없다. 여기에는 완제품 같은 공예가 없다. 세트를 만들어 끼워 넣어 팔고자 하는 의도도 없고, 작가성이랍시고 억지로 구겨 넣은 트렌드도 없다. 빛깔이 하야면 다 백자라고 불러주는 시대니 집 앞 공방에서 몇 천원 주고 만든 우리집 고양이 밥그릇은 흰색에 푸른 무늬를 넣었으니 청화백자인가. 여기에는 그런 억지도 없다. 그의 모든 문법은 창안자와의 십 년의 대화를 거치며 작가 심재용이 직접 만들었다. 그것이 보듬이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는 유려하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손빚음으로 자신의 전시를 연 첫 번째 작가로 이름남을 것이다. -정다인(2대 동다헌)
사진: 심재용, 손빚음 보듬이 (4)
도예가 수천 심재용 (Shim Jae Yong, b.1975)은 경일대학교 조형대학 산업공예학과(2002)와 2004 경일대학교 조형계열 인테리어조형디자인학부 일반대학원을 졸업했다.
대구, 구미,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이 열 아홉번째 개인전시다. 신재용은 ▲2012 대구광역시 올해의 청년작가상과 ▲2013 대한민국 새하얀 미술대전 우수상, ▲2013, 2014 대한민국 경상북도 산업디자인전람회 금상, ▲2014 경상북도공예품 경진대회 동상, ▲2015 대한민국 대구관광기념품 경진대회 은상, ▲2016 대한민국 경상북도 미술대전 우수상, ▲2017 대구광역시 관광기념품대전 대상, ▲2018 대구광역시 공예대전 대상, ▲2019 경상북도 공예품대전 대상, ▲2021 경상북도 공예품대전 대상, ▲2023 제2회 경상북도 우리 그릇 공모전 은상 외 200여회 수상한 수상작가다.
심재용은 주로 후학들을 지도하는 교수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2~2003 경일대학교 산업공예학과 조교와 △2004~2005 문경대학 도자기공예과 외래교수, △2005~2006 문경시 자활후견기관 외래교수, △2005~2006 경일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외래교수, △2006~2008 경일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겸임교수,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심재용은 또 중소기업청 신기술 혁신개발(천연 색소지 도자타일 개발.2003), △2004 ㈜동영세라믹스 소지연구 연구원, △신라도자기축제 워크샵 작가, △2005 사회문화 예술교육 사업(사회 공동체와 함께하는 도자기 만들기) 참여작가, △2008 문경시 공공예술 설치계획 수립 학술용역 연구원, △구미시 평생학습 관계자 워크샵 작가, △2011~2013 문경대학 도자기공예과 초빙교수 역임, △2014~2015 동국대학교 미술대학 문화조형디자인과 외래교수 역임, △2016 프랑스 리옹 도자박람회 손빚음 보듬이 제작 워크샵 작가, △2015~2017 사단법인 경상북도 도예협회 사무국장 역임, △2018~2023 사단법인 경상북도 도예협회 기획이사 역임, △2018 경상북도 찻그릇 명인 7인에 선정됐다.
심재용 도예가는 현재 경북산업디자인전람회 초대작가, 대구미술대전 추천작가, 경북미술대전 추천작가, 구미도예가회 회원, 한국도예협회 회원, 대구경북공예협동조합 감사, (사)경상북도예협회 이사장, 구미공예문화연구소 소장이자 수천요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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