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대행진
지금
남해 금산에서 발생한 신호가 통신장애가 수리되지 않아 출근길에 큰 교통 혼잡을 빚었다 사라진 손바닥이 디지털 기기에 종속된 이후에 바늘구멍 속의 폭풍이 혼연일체 현상이 일어났다 이 짧은 시간 동안에 베토빈이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 올리자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동안 새들이 갈증이며 샘물인 눈물을 마구 쏟아냈다 금빛 샌드위치의 아름다운 음악을 듣지는 못하고 뼈아픈 별을 콸콸 쏟아내는 자, 아픔이 너를 꽃피울 때 쪽빛 청바지가 한 잔의 붉은 거울 속으로 들어가 그늘 반 근의 어둠과 설탕으로 새우의 겨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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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보는 고통이 자명한 산책처럼 우연에 기댈 때가 있었다 창문과 덧문 사이로 스며든 그리운 나무,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가 슬픔치약 거울크림을 바르고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나뭇잎보다 먼저 일어나는 한 떨기 꽃으로 눈앞에 없는 사람의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쓸쓸해서 머나먼 눈물이라는 뼈, 애도의 깃을 품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참참이 달아나는 저녁, 입속의 검은 잎이 기억의 집으로 돌아와 푸른수화로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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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볼이 발그레한 인류는 지금 막 익어가는 중이다 한 번 살기에 딱 알맞은, 착각이란 한껏 달콤한 과일 같은 것, 그러나 사랑의 어두운 저편에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캄캄한 유리알로 구르는,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밀서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소문들이 소리 없이 자라는 달 긷는 집에는 삶이라는 직업이 없고 나무 물고기만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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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들고양이들이 북극점을 따라갔다 하루 동안의 행진, 백 년 동안 내리는 눈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로 달릴 때, 평지라는 이름의 아름드리 물가는 사나운 디오니소스처럼 뛰어오르고 우리는 매일매일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낡은 의자에 앉아 공포와 전율의 나날 속에서 죽은 눈을 위한 송가로 차가운 잠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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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장을 넘기는 손가락이 뜨겁다 아무 날의 도시에 펼쳐진 60개의 별, 경쾌한 유랑처럼 대중들이 자신의 별을 찾아 읽는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꿈속에서 새떼를 베끼다 시간의 동공이 열리면, 어느 바람이 라망의 선율을 타고 당신의 첫 입술에 도달하는 하루 또 하루,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애인처럼 키 큰 장미가 하늘의 맨살을 속절없이 찔러본다, 갈라진다 갈라진다 푸른 밤의 여로에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인 선데이서울 지면 그 여름의 끝에는 예술가의 앵두가 혼뎅혼뎅 익어가고,
*시인들이 시집 제목 60여 편을 차용함.
―『불의 인류』, 秀作, 2020
첫댓글 시 합평 시간에 길기장 샘이 시 본문에 인용하신 다섯 권의 책 제목을 보면서 지금(본명 지연식) 시인의 이 시가 생각났다.
시집 제목이라는 구슬을 꿰니 한 편의 어엿한 시가 된 <시인 대행진>.
이 시는 착상의 승리, 배치의 묘미, 이들을 관통하는 예술혼의 지경을 펼쳐 보여준다.
연필을 들고 체크해 보시라. 내가 읽은 시집이 몇 권이나 되는지.^^
감사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 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