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 -기형도 시인에게 / 오규원
태양의 집 건너편에
(태양의 집, 건너편? 지금은
건녀편이
너무나 선명하게 와 닿는)
건너편에 있는
그 까페, 태양의 집을 두고
달의 집인가 별의 집인가로
그대가 가기 전에
보름인가 얼마인가 전에
각각으로 눈 감을 곳에 닿기 전에
그곳에 어쩌다 잠시 함께 닿아
머물렀던 그 까페, 지금은
나 혼자 지나가다 들른다
어느 새 이름도 바뀐
그 까페, 그대가 ‘잘 있거라’
라고 인사도 못한
등받이가 높은 의자와
정방형의 다탁과 칸막이 벽과
그대가 ‘잘 있거라’라고 역시
인사도 못한 그곳의 곰팡이 냄새와
지하를 오르내리는 낡은 층계와
층계를 덮어놓은 붉은 양탄자와
흐린 불빛에게 그대와는 다른 이유로
‘잘 있거라’라고 나는 인사를
못한다 못하고 나오며, 태양의 집
건너편에 그리고 지하에 있는
그 까페로 들어가는 더러운
양타자가 깔린 층계 입구에게도 나는
그대와 다른 이유로 ‘잘 있거라’ 라고
인사도 못한다
-오규원의 「그 까페 –기형도 시인에게」 전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기형도 추모문집』 (솔)
<감상문>
태양의 집 건너편에 까페가 있다. 태양의 집을 두고 그대는 달의 집인가 별의 집인가로 갔다. 그대가 가기 전에 “그곳에 어쩌다 잠시 함께 닿아/ 머물렀던 까페, 지금은/ 나 혼자 지나가다” 들르게 된다.
그 까페, 그대가 ‘잘 있거라’ 인사도 못한 “등받이가 높은 의자와/ 정방형의 다탁과 칸막이 벽”이 있고 “곰팡이 냄새와/ 지하를 오르내리는 낡은 층계와/ 층계를 덮어놓은 묽은 양탄자와 흐린 불빛”이 있다. 정을 준 장소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만 인사도 못하고 떠나야 한다. 여기까지는 기형도의 추억에 관한 언술이다.
기형도의 “잘 있거라”는 인사에 대해, 오규원은 인사도 못하고 나오는 자신의 처지가 있음을 고백한다. 기형도의 추억에 대한 호출이 결국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입장으로 전환된다.
오규원에게 지하를 오르내리는 낡은 층계와 양탄자가 깔린 층계 입구에 대한 순수기억은 잠재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앙리 베르그손((프. Henri Bergson, 1859~1941)은 순수기억에 대해 “잠재적인 무의식이 현실화된 결과물”로서 소환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에 있어서 순수기억은 “심리학적 의식을 초과하는 존재론적 무의식이다.”
우리의 지각에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들이 물질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잘 있거라”라고 인사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대와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화자는 인사도 못한 채 그냥 나온다. 까페를 중심으로 한 추억의 흔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잘 있거라”는 표현은 기형도에겐 이별에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오규원은 무엇을 빚졌는지, 마음의 빚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잘 있거라”라는 말조차 할 수 없다. “잘 있거라”라는 말을 두고 오규원은 기형도와 다른 감정의 등치관계를 갖게 된다.
- 감상자 -이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