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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로마서 8 장 )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우리들 심령깊이 간직하고 남은 생애를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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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내 육체 안에서 나의 영혼과 하나가 되어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 본질이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과
하나가 된 것은 곧 예수님과도 하나가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특별히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과 소원을 가지고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성령님과 하나가 된 것은 곧 예수님과
하나가 된것이며 이것을 가리켜 예수님과의 연합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영적 사건입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나의 죄로 인하여 내가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없는 것이요 완전하게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을 이미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정죄 즉 죄의 심판과 형벌을 다 받게
하셨습니다.그래서 우리에게 더 이상 정죄함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우리들 가운데에 아직도
지난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회개란 내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고 죄악에서 떠나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을
하는 지정의의 인격적인 회개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 입니다.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날마다 고백하거나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회개를 하지 않아도 내가 하나님앞에 인격적으로 죄를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회개를 받으신 것으로 확신을 가져도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실 때 어부의 상식으로는 못마땅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 두 배가 가득할 정도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짧은 고백 속에 베드로는 온전한 회개를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비록 그 배 위에서 눈물흘리며 애통해 하며 지난날에
지은 모든 죄를 회개하지 않았어도 모든 죄를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실 때에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13:10)
베드로는 이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훗날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저주하는 큰 죄를 지었지만
그 자리에서 회개함으로 더 이상 정죄함에 빠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예수님께 다시 죄송하다고 말하지
않았고, 예수님이 그 문제에 대해서 일체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완벽한 회개를 하지
않았어도 우리가 인격적으로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쳤다면 하나님은 그 순간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1. 나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 :1-2)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나의
죄로 인하여 내가 받아야 할 심판과 형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성령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생명의 성령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 :3-4)
사람은 본성의 연약성과 죄악성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과 죄
때문에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시키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의 짐을 짊어
지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을 따라서 살아야합니다.
이렇게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은 율법의 요구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율법을 다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따라서 살면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고 인정해주십니다.
2.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 :5-6)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이 죄악된
본성을 따라 산다면 그 결과는
죽음일 것이지만, 성령을 따라 살면 의와 생명과 평안이 보장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로마서 8 :7-8)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그래서
죄악된 본성 그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로마서 8 :9-10)
이렇게 성령께서 그 속에
거하시는 성도는 더 이상
육신 즉 타고난 죄악된 본성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따라사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과 같고
또 어느날 죽게 될 것이지만,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는 생명이십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
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로마서 8 :11-12)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계시다면 부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계신 자신의 영으로 장차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의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값없이 은혜로 구원하셨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큰 빚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지옥 갈 죄인을
천국 가게 하신 구원의 은혜의 값을 어떻게 환산할 수 있겠는가?
미래의 우리 몸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빈무덤을 남기고 부활하셨듯이, 예수 믿는 성도도 빈무덤들을
남기고 부활할 것입니다.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보증하십니다.
3.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 :13 -14)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려면 육신의 소욕을
죽여야 합니다.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기 위해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면 우리는 더욱 영적인 생명이
살아나게 되어 생명력이 넘칩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육신의 소원을 따라서 살려면
성령의 소원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소원을 따라서 살면
잠시는 편하고 좋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4. 영광과 함께 고난도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로마서 8 :15-17)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은 '양자(養子)의 영'
곧 우리를 양자(養子)로 삼으시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자(親子)이시고 예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양자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근거하여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고 우리 속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마음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영의 고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인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기업을 이어받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 곧 천국을 이어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의
상속자로 묘사되었고 우리도 그와 함께 천국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로마서 8 :18)
장차 나타날 영광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즉 천국의 영광이요 거기에 거할 성도의 영광입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로마서 8 :19-21)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광스런 부활체를 입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 시간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지금은 기다리며 허무한 데 굴복하고
썩어짐에 종노릇하고 있지만, 그 날이 오면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영광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5. 성령은 능히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8 :22-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는
중생한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은 최종적 영광의 구원과 비교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든 피조물들과 중생한 성도는
함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영광스런
몸의 구속(救贖) 즉 부활을 기다리며 사모함으로 가지는 탄식입니다.
죄와 죽음과 불행이 영원히 사라질 그 날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중생과 칭의로
시작된 구원은 성화로 진행되다가 마침내 영화(榮化)로 완성될 것입니다.
택함 받은
모든 자들은 다 중생되고
칭의되고 성화되어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 :24-25)
우리가 바라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참고 믿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참으면 우리의 인격이 형성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만한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의 고통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 후에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피조물과
인간의 탄식을
말한 바울은 성령도 탄식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6. 성령은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 :26)
감사하게도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도와
주십니다.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죄에 빠질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사단의 역사가 있을 때,시험을 당할 때 큰 고통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일어납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여주십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로마서 8 :27)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여
모든 영광이 회복되도록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 :28)
성령을 따르는 자에게도 환난도 있고 고난도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가운데도 한 가지 확신하며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 :29-30)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미리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고 우리는 그의 동생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너희 아버리라고 하여 제자들을 형제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인격을 배우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성도로
부르시고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7.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넉넉히 이깁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로마서 8 :31-32)
세상에서도 권력자가 어떤 이를 위하면 그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온 우주의 최고 권력자이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그 외에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 확실합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8 :33-34)
우리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속죄를 확증하셨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8 :35-36)
이와 같이, 성도의 구원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너무 크고 확실합니다. 아무도 그 사랑의 줄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에 근거한 성도의 구원은 영원한
보장을 가집니다. 성도의 삶은 고난과 핍박의 삶이지만,
성도는 어떠한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낙심치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 헐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 :37)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
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리라"
(로마서 8 :38-39)
사도 바울이 성도의 넉넉한 승리를 단언한 이유는,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그들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그의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앞에 내려놓고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이미 다 용서해 주신 줄 믿고 더 이상 정죄함 가운데
빠지지 않게하여 주시옵소서.
단지 내가 아직 고백하지 못한 최근의 죄가 있다면 미루지 말고
즉시 회개하게 하셔서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의 허물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많이
비판 받아야 할 사람인줄 스스로 깨닫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어
사탄의 역활을 대신하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바로 세워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남은 생애를 승리하는 우리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22. -샬룜-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