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유토피아]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인 369쪽을 읽고 나니, 내 마음에는 당황과 감탄이 남았다. 이런 상상력이 가능하다는 것에 감탄하고, 이걸 어떻게 글로 풀어나가야 할까 막막했다. 일단 이 책은 S(Science)F(Fiction)소설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공상 과학 소설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러한 종류의 소설과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읽으면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솔직하게, 나는 이 소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책은 총 8개의 단편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 미래의 배경으로, 더 발전된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제목은 ‘유토피아’일지 몰라도, 이 책의 이야기들은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즉,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 완벽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는 부정적인 미래와 암울하고 억압적인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기계, 로봇과 같은 것들이 더욱 발전된 배경에서 사람들은 더욱 억압받고 침울해 져간다. 8편을 다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발전된 미래 사회에서 오히려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그리고 한 줄기의 소망을 잡으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8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마지막 단편 이야기 [씨앗]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주인공은 나무들이고, 다양한 나무들과 로봇들의 갈등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솔직히 이게 무슨 말인지 싶었다) 더 설명해 보자면, 인간과 닮은 로봇들이 사는 세계는 모셴닉과 수킨슨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기업이 지배하고 있었고, 이 두 기업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 행성 전체를 서서히 파괴하면서 이윤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로봇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씨 없는 식물을 만들었다. 기업에서는 씨앗에서 발견한 유전자를 조작해 조작된 씨앗을 만들었다. 그 열매 안에는 씨앗이 없기에 다시 심어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농부들은 기업들을 통해 항상 씨앗을 구매해야 했으며, 결국 모든 일은 기업의 이득으로 돌아갔다. 실적, 수익, 이윤, 돈, 이익만을 생각하는 기업. 이 기업들이 이제는 나무들을 찾아와, 자연의 방식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씨앗을 퍼트리고, 뿌리를 내려 자라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방식은 어쩌면 기업의 생계를 방해하는 것이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자연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기업의 경영을 방해하는 것으로만 보았던 로봇들은 불법이라고 이야기하며 경찰에 신고한다.
“도망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저들은 빠르게 이동하는 똑똑한 기계로 세상을 지배한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뿌리와 두 발뿐이다. 거대한 기계가 다시 돌아온다면 우리는 그 뿌리마저 뽑힌 채 실험실이나 감옥에서 시들어 죽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씨앗은 살아남을 것이다. 수많은 씨앗 중 하나 정도는 살아남을 것이다. 살아남아서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하나만 있으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 하나를 위해서, 우리는 기다린다. 지평선 너머에서 더럽고 거대한 기계의 날개 소리 대신 꽃가루가 날아오는 날을. 바람을 타고 우리가 뿌린 씨앗이 춤추며 돌아오는 날을. 그런 날이 정말로 온다면, 바로 그날 세상은, 인간은,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땅과 바다는 더 이상 상처 입지 않고, 사람과 자연은 햇살 속에 하늘을 향해 함께 자라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353-354p.
그러나 나무들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작은 씨앗을 뿌려, 어떻게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작은 씨앗이라는 희망을 붙들고 나무들은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책은 각 단편 이야기마다 많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중 이 [씨앗]이라는 이야기는,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우리의 이익과 편리함을 위해 파괴하고 있는 이 자연은, 아마 이 이야기에서의 나무들처럼 작은 희망을 붙들고 생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자연의 아픔과 고통을, 우리는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환경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수없이 듣고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또 파괴한다.
자연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의 문제들이 그렇다. 한 번 언급되면 또다시 묻히고, 조용히 사라진다. 많은 기사와 뉴스들이 사회 여러 부분에서 아픔과 고통을 언급하고,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지만, 대부분은 무시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아가는데 더 바빠서,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일일이 챙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우리는 평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 강요 또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낼 테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작은 문제 하나조차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특별히 앞에 언급했던 자연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있는 문제이다. 새로운 여름과 겨울을 맞이할 때마다, 더 뜨겁고 추운 공기를 느끼며,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쓰레기를 마주하고, 점점 사라지는 동물들과 숲들을 마주한다. 그런 것들을 듣고, 보고, 느끼면서도, 내 삶에만 집중한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인 삶이 아닐까?
앞에서 이렇게 말한 나도, 어쩌면 이러한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많은 문제를 접하지만, 막상 기도하거나 삶을 살아가면, 내 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와 상황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이러한 문제를 위해 소리치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더욱 대단해 보인다. 나도 더 이상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이제는 조금 더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나’에 초점을 맞췄다면, 그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는 것이다. 사회에 널려 있는 문제에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볼 것을 다짐해 본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에 함께 살아가는 현대인들 또한 노력하길 바라본다.
정보라 작가는 사람을 초점에 두기보다, 기계, 사물, 자연과 같은 것을 주인공에 배치하곤 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이 더 독자에게 잘 다가오게 되는 것 같다. [씨앗]이라는 짧은 이야기로, 이 사회의 환경 문제를 다룬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에서도 작가는 차별, 갈등, 죽음 등과 같은 여러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또 읽고, 여러 번 읽어야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책의 내용이 방대하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엔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들인가 싶었다가, 이제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자연스레 우리의 마음에 여러 사회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한다. 직접적이기보다, 스스로 끝없이 고민하도록 이끄는 책인 것 같다. 나는 다시 펴서 읽을 마음이 솔직히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이다.
사회는 더욱 발전하고 있다. 어쩌면 정말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토피아의 세계로 점점 더 가까이 갈수록, 어쩌면 사회의 문제는 더욱 급증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유토피아에 숨겨진 디스토피아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작가가 바라듯, 많은 사회 문제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더욱더 관심을 가지길 바라며, 그리고 그 작은 관심들이 모여, 문제를 하나하나 헤쳐 나가는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나무들이 작은 씨앗에 소망을 두었듯, 나도 그 작은 관심에 소망을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