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밝은 세상에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있습니다. 답답하기만 한 도시의 막힌 공간에 그 옛날 심금을 울리고 애수와 향수에 젖게 하던 소박한 교회의 종소리가 다시 울려 퍼져 어렵고 힘들어 지친 심령에 위로와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어릴 때 부르던 동요가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종소리가 새벽 종소리가 날아와 앉는다 내 귓가에.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흩날리듯 꿈(?)속에서 쏟아지는 새벽 종소리 땡 땡 땡 땡” 어릴 때 듣던 노래 속에 숨어있는 그 맑은 종소리가 문득 그리워집니다. 종소릴 들으며 교회 갈 준비를 하며 부산을 떨던 주일날 아침의 가족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따스하고 행복합니다. 제 유년 시절의 예배당 종소리는 새벽을 깨우고, 마음을 깨워주었으며, 논과 들의 바쁜 일손들의 시계였고 쉼의 울림이었습니다. 저는 그 종을 쳐보고 싶어 관리하는 집사님을 얼마나 졸랐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하루는 몰래 종을 치다가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종은 아무 때나 울리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덕분에 집사님은 저에게 종칠 기회를 자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을 치는 게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기다란 종 줄을 움켜잡고 온갖 힘을 다해 그 종을 당기면 뎅~ 하고 종소리가 났는데, 종의 추가 반대방향으로 내림 박질 할 때마다 나의 작은 몸뚱이도 따라 올라가 공중으로 부웅 떴다가 내려앉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종소리는 저의 꿈을 싣고 멀리 멀리 퍼져 갔습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어릴 때 듣던 예배당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뎅그렁 뎅그렁 지금도 귓가에 들려 오는 듯 합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 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윤동주 시인의 ‘십자가’라는 시입니다. 시인도 눈만 뜨고 문만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예배당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이나 수요일 저녁 또는 새벽에 울리는 뎅그렁 뎅그렁 나무에 달린 종소리를 들었을 것이구요. 그리고 교회 마루바닥에서 뒹굴며 장난치던 시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그렇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교회 마루바닥에서 제일 많이 뒹굴면서 자랐기에, 어른이 되어 조국이 식민지의 어두움에 빠져 있을 때 교회당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불멸의 시를 남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릴 때 제가 듣던 종소리는 그냥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이 종소리는 민족의 양심을 일깨우는 소리였으며,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소리였습니다. 타락한 이들의 가슴을 두들기는 채찍이었으며, 게으름과 이기심에서 일으키는 소리였습니다. 새벽마다 울려나는 예배당 종소리는 학생시절 자주 부르던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라는 노래와 함께 보릿고개를 넘는 희망이었으며 산업시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제일 먼저 배우는 노래가 '학교종'이었으며, 아침을 시작하는 소리도 두부장수의 종소리이거나 청소차의 종소리였습니다. 아득하게 교회종소리가 울리면 태양은 영락없이 떠올랐고 어머니는 새벽밥을 지었고 아버지는 일터로 나갔습니다. 은은한 종소리가 노을을 싣고 오면 새도 바람도 평화롭게 잠들던 어둑한 시골 마을은 봄이면 연둣빛 잎들이 순진한 아이들처럼 솟아오르고, 겨울에는 설화가 만발하여 가끔씩 노루가 먹이 찾아 내려오곤 했습니다. 조금 커서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할 때는 먼저 대문에 달려있는 종을 울렸고, 나중에는 초인종소리가 나는 벨을 울렸습니다. 노래자랑에서 실로폰을 저음의 '솔'부터 5개 음을 차례로 울리면 참가자는 팔짝팔짝 뛰면서 합격의 종소리에 환호합니다. 학창시절 종소리는 하루가 시작되는 희망의 소리요 하루가 마감되는 평화의 소리였으며, 고뇌를 녹여주고 반성하는 삶의 풍경화였습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알리는 종소리는 겨울거리에 울려 퍼지는 사랑의 종소리이며, 하얀 도화지 위에 사랑을 그리게 하는 따스한 마음과 따뜻함이 가득 담긴 소망의 소리입니다. 흰눈사이를 가로지르며 성탄절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산타크로스의 썰매를 힘차게 달리게 하는 소리도 종소리이고, 평화롭게 농사를 마치고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두 손 모으고 기도하는 밀레의 그림도 만종입니다. 지금도 종소리는 생각하기만 해도 얼마나 부드럽고 은은한지 몸도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양심의 소리요, 마음을 열어주는 소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어릴 적 종소리는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울려지는 희망의 종소리요, 생활이며 생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쉽게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김병식님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종소리가 그치고부터/ 가슴을 울리던 종도/ 치는 이가 없습니다/ 내 종도 그대의 종도/ 이제 녹 쓸고 더러워/ 헛간에 빨갛게 놓여 있습니다/ 종소리가 그립습니다/ 하루가 마친 들에/ 은은히 퍼지는 종소리.” 맞습니다. 사라진 종소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로가 되어주던 내 마음의 종소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이 종소리가 멎은 후, 교회는 시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기적이 되어갔으며, 사회는 병들고 썩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에나, 눈 오는 날이나, 저녁 퇴근길에서 그 때의 그 종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가끔은 온갖 소음은 다 참아내면서도 교회의 종소리를 못 참는 이 시대가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울려 줄 종소리가 아쉽습니다. 그만큼 저 멀리서 들려오던 종소리는 어느새 제 영혼 속에 깊이 스며들어 제 마음의 고향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 노을이 짙은 강 건너에서 울려오던 종소리는 저를 먼 곳 미지의 세계로 달리게 했으며, 때론 순수한 감각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제 저도 그 종소리를 울리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랑의 종소리, 마음의 종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비록 커다란 범종은 울리지 못하더라도 복음송가의 가사처럼 기도의 종소리가 되어 많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며 살고 싶습니다. “주께 두 손 모아 비나니 크신 은총 베푸사 주가 예비하신 동산에 항상 있게 하소서. 오! 주, 우리 맘에 새 빛이 어두움 밝게 하시어 진리의 말씀 안에서 늘 순종하게 하소서. 서로 참아주면서, 서로 감싸주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주께로 가는 길. 오! 주, 사랑의 종소리가 이 시간 우리 모두를 감싸게 하여 주소서.”
나폴레옹이 프랑스 대군을 이끌고 유럽을 휩쓸고 있을 때, 장군 한 사람이 정예 부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의 국경 도시인 펠드리히를 공격하였습니다. 펠드리히 시에서는 비상의회를 소집하고 항복 여부를 논의하였는데, 대다수 시의원들의 의견은 미리 항복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데로 모아졌습니다. 그때 교회의 지도자 한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부활주일이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의 힘만을 믿는다면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긴다면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무서워 떨고만 있지 말고, 교회의 종을 힘껏 치고 부활절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그 뒷일은 하나님께 맡깁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펠드리히 시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찬송소리가 메아리치기 시작했습니다. 종소리와 찬송소리는 프랑스군 진영에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프랑스 군대는 밤사이에 오스트리아 군대가 도착했기 때문에 울리는 기쁨의 종소리와 노래 소리일 것이라고 판단해서 공격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말았습니다. 펠드리히 시민들이 울린 종소리는 구원의 소리요, 희망의 소리요, 생명의 소리가 된 것입니다.
밝은 세상에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많고 문화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교회 종소리가 아름답고 크게 울려 퍼진다고 합니다. 답답하기만 한 도시의 막힌 공간에 그 옛날 심금을 울리고 애수와 향수에 젖게 하던 소박한 교회의 종소리가 다시 울려 퍼져 어렵고 힘들어 지친 심령에 위로와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탄생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한 성탄 종소리가, 이 땅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여 화관을 씌우시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고, 생명과 평화를 안겨주는 축복의 종소리로 온누리에 퍼져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