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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행당/念行堂 (중요민속자료 제90호) 충효당과 더불어 하회의 남쪽을 대표하는 남촌댁(당호 염행당)은 정종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 있다. 많은 도서와 진귀한 골동품들도 그 때에 소실되었다고 한다 양오당/養吾堂 (중요민속자료 제91호) 당호는 양오당(養吾堂)이며, 주일재(主一齎)는 류후장(柳後章 1650~1706)의 아호이다. 이 집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증손인 류만하 공이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 지은 집으로 그의 아들인 류후장 공이 증축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정면에 보이고, 좌측에는 작은 담을 쌓아 놓았는데, 이것을 내외담이라 한다. 안채로 통하는 문 앞에 내외담을 쌓아둠으로써 문을 열어도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하였다. 주일재는 사랑채, 안채, 사당, 광채(곡식 등을 넣어 두는 곳)로 구성되어 있다 수령 400년 소나무 보호수 서당 원지정사/遠志精舍 (중요민속자료 제85호) 서애 선생이 선조 9년 (1576년)에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 있을 때 만송정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 북쪽에 짓고 학문을 했던 곳으로 은퇴한 후에는 정양하던 곳이기도 하다. 원래 원지(遠志)는 한약재로 심기(心氣)를 다스려 정신의 혼탁과 번민을 풀어주는 소초(小草)를 말하는데, 하회마을의 안산이기도 한 원지산(遠志山)에서 자생하는 풀이다. 북녘에 있는 임금님을 사모하는 선비의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1921.10월 설립한 하회교회 카페 달봉이네 삼신당 하회마을 중앙에 위치한 600년수령으로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느티나무 보호수 하회별신굿놀이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양진당/보물 제306호 우뚝 솟은 솟을대문과 장엄한 분위기가 감도는 「양진당(養眞堂)」은 풍산 류(柳)씨의 대종가(大宗家)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은 겸암 류운룡(柳雲龍, 1539~1573)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1515~1573) 선생을 지칭한다. 당호인「양진당(養眞堂)」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柳泳, 1687~1761)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다.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 부르며, 양진당(養眞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서 고려양식과 공존하는 고택이다 풍산류씨의 하회마을 입향조(入鄕祖)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 공(公)이 13세기 입향 당시에 처음 자리잡은 곳에 지어진 건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 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하여, 고려말 건축양식과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섞여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正南向)의 집이며 99칸으로 전해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 충효당 忠孝堂 (보물 제414호) 충효당은 문충공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다. 서애는 현재 충효당이 지어지기 이전의 집에서 소년기와 만년을 보냈다. 선생이 30여년 몸담은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극히 단출했다고 한다. 선생은 64세 때인 1605년 9월에 하회마을이 수해를 당해 풍산읍 서미동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기거하다가 1607년 5월 6일 삼간초옥 농환재에서 타계했다 만송정/萬松亭 (천연기념물 제473호) 안동 하회마을(중요민속마을 122호) 북서쪽 강변을 따라 펼쳐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있는 소나무숲이다. 강 건너편 바위절벽 부용대(芙蓉臺)의 거친 기운을 완화하고 북서쪽의 허한 기운을 메우기 위하여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하여 만송정(萬松亭)이라 한다.
매년 음력 7월 16일 밤에는 이 숲에서 강 건너편 부용대 꼭대기까지 밧줄로 이어 불꽃을 피우는 선유(船游)줄불놀이가 펼쳐진다. 부용대에서부터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참나무숯의 불꽃이 하늘에서 터지고 , 그 빛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장관이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뱃놀이와 함께 펼쳐졌다고 하니 그 풍류를 짐작할 수 있겠다. 4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줄불놀이는 일제강점기부터 수십 년간 중단되다가 최근 다시 이어지는 전통놀이이다. 부용대/절벽사이에 길이 있는데 양쪽에 사는 두형제가 서로 교류를 나누었던 길이라고 한다 나는 예전에 걸어서 겸암정사에서 옥연정사로 가보았다 옥연정사 민박이 하루에 30만원이라고 한다 |
첫댓글 평화로워 보이고.
마음이 안정감을 주는 하회마을
서너번 다녀 온 곳으로.
우리나라의 옛날 한옥 모습 그대로~~
예쁜 자태가~~
하회 마을 다시한번
즐갑합니다
부용대에서 내려다
보는 고즈넉한 풍경에
내려오기 싫엇어요
하회마을 굽이굽이
돌아 가는 강물과
어우러진 풍경에 반해서
언제나 좋은곳 으로
안내 하시느라
애쓰시는 반장님과 임원진들 덕분에
편하게 트레킹 합니다
노고에 감사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