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天함석헌, 시 아닌 詩〔105〕】 " 빈 무덤"
빈 무덤
하늘처럼 믿었던 님
하늘 무너지듯 돌아가
쓰라린 가슴 붙안고
수심의 두 밤 새웠건만
그래도 삶은 낮에만 있는 줄 아는 마리아
제 맘엔 일찌긴 듯 일어나
한편 세상 무서운 두려움에
떨리는 사지(四肢) 거누어가며
살금살금
오히려 제 몸 생각하는 맘 품고
죽은 님 몸에 기름 발라
길이길이 돌무덤 속에 머물러 두자
새벽 하늘 밑에 찾아갔건만
사랑하는 님 등걸조차 어디로 가고
빈 무덤만 남았더라.
영원한 저녁에 돌아가신 님을
낮에 어이 찾았던고?
하늘 뜻에 사시는 님을
세상 일 보며 어찌 섬기려 했던고?
당신께만 바치라시는 님을
제 좋은 맘에 뫼시자 웬일이었던고?
님은 제대로 제 나라에 제 맘에 살으시어
무덤은 빈 대로 남았더라.
빈 무덤 앞에 놀라는 사람
우습기도 하구나.
빈 동산에 서는 여자
가엾기도 하구나.
해 뜨려는 붉은 빛 보고야
부실부실 일어나
죽은 님 가 보자는 맘
밉기도 밉구나.
이 사람아,
이 게으른 주검의 딸아,
이 썩어질 살의 썩어질 짝아,
네게 줄 거야
텅 빈 껍질에서 더할 것이 무어냐?
껍질밖에 모르는
갇혀 사는 이 사람아!
이 갈릴리 사람아!
밤낮 흔드는 풍랑(風浪)에 흔들려 흔들거려
이랬다저랬다 마름처럼 떠도는 맘아!
고기 잡을 생각하고
큰 고기잡이꾼에게 잡힐 생각 못하는
낚시질꾼의 딸다운 이 여자야
울어보면 어떠냐?
너를 비웃는 냉랭한 빔 앞에
너를 노려보는 노한 바위 밑에
너를 가엾이 여기는 잠잠한 동산 속에
울어라 울어서
천사의 말 울려내는 그 동굴의
무섭게 벌린 입에 맞추어 울려 울어라.
울어라 마리아야
이 답답한 애처로운 마리아야
끄물이는 등처럼 타기는 하면서도
빛 못 내는 이 막힌 사랑의 맘아!
엎더져 울어라!
목을 놓아 하늘 땅을 부르며
어깨를 들먹여 바위에 부딪치며
눈물 흘려 차디찬 땅을 녹여내며
맘껏 힘껏 뜨겁게 울어라!
네 눈에 어리는 맑고 뜨거운 눈물
티끌 뚫는 구슬 되어
생명의 딴 세계 네 앞에 열리고
그 산 위에 서시는 영광의 님
엄숙하신 목소리로
“마리아야” 불러
네 귀 네 눈 뚫어 그 거룩한 얼굴 알아보게 하고,
네 가슴 그 맑은 숨에 열려 그 하늘 기운 마셔
네 입술 터지며 “랍오니” 부르게 될 때까지
울어라, 쓸쓸함에 거꾸러지려는 마리아야
빈 무덤에 그저 울어라!
이 잠자다 온 여자야!
이 맘 한가해 시체에 준비하여
이담 만날 날 기다려보자는 하와의 딸아!
이 세상에 빛으로 계시던 날
귀 불고 일러주시던 님의
사랑의 약속 잊어버린
둔한 마음아!
네 사랑 어디 있나?
네 믿음 어디 있나?
네 바람 어디 있나?
울라! 울라!
빈 무덤 앞에 올라!
몸을 잊고 세상 잊고
무서움 슬픔을 다 잊어버리고
울기만 하라!
잠 자고
살림 걱정 할 대로 다 하고
썩어질 짝의 요구에 응해 섬길 대로 섬기고
긴 밤이 다 샌 후
무덤 문 열어줄 사람 없을 걱정하며
주검 동산에 죽은 님 찾아온 마리아야!
불쌍도 하구나, 울어라!
너 몰랐더냐?
너 잊었더냐?
생명의 약진 낮에 있지 않음을,
사랑은 살림이 아님을,
영원은 햇빛 아래선 볼 수 없음을.
너 믿었더냐?
밤과 낮 두 세계에 두 님을 갈라두고
번갈아 맞춰가며 섬길 수 있으리라고.
하나신 님
생명 바쳐 섬길
섬기어 생명 얻을
영원한 참 사랑의 참 생명의 님은
낮이 오기 전
사람이 나오기 전
세상이 벌어져 나오기 전
네 흐린 눈이 뜨이기 전
영원의 저녁 영광 안으시고
영원의 갈릴리 끌없는 바닷가에
약속의 너 기다려 거니시더라.
1949. 수평선너머(1953)